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63화 (263/341)

조련 (1)

법무연수원장을 본 뒤에는 서울이 아닌, 광주로 향했다.

지금 바로 돌아갔다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자, 부모님은 반갑게 반겨 주셨다.

다만, 혼자서 갔더니 조금은 아쉬운 기색을 보이셨다.

며느리도 며느리지만, 오랜만에 손자 녀석 얼굴이 보고 싶으셨던 모양.

다음에 데려오겠노라 약속하고는 1박 2일 동안 집에서 푹 쉬었다.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그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어머니가 해 주신 따뜻한 집 밥을 먹은 뒤, 밤공기를 쐬며 정겨운 고향 길을 산책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되었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공원 벤치에 걸터앉아 마시는 게 펜트하우스에서 높은 사람들이나 화려한 여인들과 함께 떠들며 수천만 원짜리 비싼 술을 마실 때보다 훨씬 더 행복했으니까.

평화롭기 그지없는 도시라서 그런지, 이곳에서 만큼은 일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이 생각을 한 게 문제였던 모양.

두 개의 맥주 캔을 비우고 세 번째 맥주 캔을 꺼내 들자, 자연스레 앞으로 서울에서의 계획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한당과의 관계. 그리고 머지않아 진행될 정기 국회에서의 행보 그리고…….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태생이 워커홀릭인 모양.

완벽한 휴식은 글렀다.

“대한당이라…….”

천천히 맥주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지, 요새 들어 대한당 사람들과 부쩍 가까워지고 있었다.

성태현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처사였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대한당과의 인연이 맺어지고 있었다.

최규현과 갈라서기 전에 대한당에 속해 있었던 게 새록새록 스쳐 지나간달까.

……어?

그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내가 대한당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이대로 간다면, 대한당과 정식으로 손잡는 게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니, ‘화려한 복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

다음 총선까지 한정된 것이라고는 하나, 최소 2년 동안은 국회에서 내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머지않아 7월에 펼쳐질 정기국회와 내년 7월까지 총 두 번의 정기국회에서 이 캐스팅보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질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대한당 복귀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은 다름 아닌, 최규현이었다.

정확히는 대한당이 아니라, 1번 라인으로의 복귀.

처음 내가 라인에 입성할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구도는 아니었다.

1번 라인과 2번 라인 모두 대한당과 민국당이 뒤섞여 있었지만, 최규현이 본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대한당 의원들을 전부 끌어모은 것이다.

그에 밀린 1번 라인 소속 민국당 의원들은 어쩔 수 없이 2번 라인으로 옮겨 간 것이고.

다시 말해, 최규현이 없는 지금은 굳이 현재와 같은 구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뜻.

비록 내가 민국당 의원들과 민국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지만, 그들이 1번 라인으로 간다고 해서 공천을 받지 못한다거나,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힘은 더 세지는 거지.

민국당과 대한당에서 동시에 지지를 받고 높은 곳에 올라서는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히 그려진다.

자연스레 내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물론, 지금 당장 대놓고 1번 라인으로 옮겨갈 생각은 없다.

민국당의 지지 또한 필요할뿐더러, 대한당에서 잡은 물고기 취급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서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차근차근 대한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으며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쪽에서 러브콜을 보내서’ 결단을 내리고 옮겨 가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이것 또한 아주 은밀하게.

대한당과 손을 잡는다고 해서 민국당을 발로 찰 생각은 없으니까.

정당 싸움에서 야당과 여당은 마치 사자와 호랑이와 같다.

나는 이들의 다툼에 휘말릴 게 아니라, 둘을 휘어잡는 사육사가 되어야 한다.

지금 내 목표는 단순히 검찰총장이 아니니까.

그 위.

대한민국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위험한 도박이 아니라, 확실하게 왕좌에 앉기 위해서는 두 당을 모두 내 손 안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조련당하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 꼬리를 흔들게 만들어야지.

그게 진정한 왕이니까.

정점 그리고 절대 권력.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를 향해서.

나는 나아갈 것이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위대하게.

들고 있던 맥주 캔을 한 입에 털어 넣고 콰득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아무래도 이번 여행이 생각보다 큰 수확이 될 것 같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날짜는 7월 1일.

며칠 전, 법무연수원장에게 들려온 연락으로는 청와대 측에서도 서서히 의심의 불씨가 커져 가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그럴 만하지.

벌써 두 달이나 지났는 데도 법무연수원장은 사표를 낼 낌새가 전혀 없었으니까.

법무연수원장이 나와 관련이 있다는 건 오래지 않아 알게 되겠지.

이 정도 시간을 끈 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러나 알아채더라도 이미 늦었다.

법무연수원장을 포함해 나를 발령 낼 만한 곳의 사람들과는 이미 접촉을 끝냈으니까.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한들, 강제로 다른 인물을 끌어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올해 상반기 동안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 하나를 꼽자면, 신동현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

그는 나의 라인에서 중요한 사람을 넘어 나와 견줄 수 있는 넘버 투까지 올라왔다.

다시는 성태현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불상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와의 관계도 잘 관리를 하고 있는 상태.

또한, 신동현을 이용하기보다는 공생을 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으니 그와의 인연은 아마도 정상에 오를 때까지 이어질 테지.

“흐으음.”

손에 들린 따뜻한 커피의 향을 맡은 뒤, 한 모금 마셨다.

출근하자마자 냉커피를 찾던 어제와 달리, 2027년 하반기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거라는 걸 말이라도 하듯, 7월의 첫날에는 극심한 날씨의 변화가 있었다.

추울 정도는 아니지만, 외투를 챙길까 고민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고.

창밖에는 주륵주륵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장마의 시작이었다.

딱 오늘부터 시작된 장마는 새벽부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를 쏟아붓고 있었다.

창밖을 보다보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니, 아침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이 우중충한 기분은 날씨 때문이려나.

커피를 전부 비워 갈 즈음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설하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검사장님.”

그녀는 늘 그렇듯이 생긋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검사장님은 그렇지 않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날씨가 습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커피를 내려놓고 대신 리모컨을 들어 에어컨의 제습을 최대치로 올려 두었다.

“오늘 업무 보고는 나중에 드릴까요?”

“아니에요. 지금 해 주세요.”

나는 의자 대신 창가에 걸터앉은 채 윤설하를 바라봤다.

그녀는 보고서를 보고서 말을 이었다.

“10시부터는 하반기 인사로 인해 새롭게 들어온 검사들과의 면담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현성이는 출근했나요?”

“예.”

윤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 본 결과, 일찍이 출근하셨다고 합니다.”

송현성.

신용호와 나의 대학 동기이자, 중요한 동료.

과거 감찰부에서 일하다가 어제까지는 서부지검의 차장검사로 있던 녀석이지만, 오늘부터는 서울고검의 차장검사로 임명이 되었다.

물론, 내가 끌어온 것이다.

드디어 묵은 은혜를 갚은 느낌이랄까.

과거에도 몇 번 도와주기는 했지만, 송현성이 이번처럼 승진 인사에서 난항을 겪고 있던 건 처음이었으니까.

“현성이부터 차근차근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짧게 체크를 하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새로 발령받은 검사들이 적지 않아서 면담 중간에 식사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면담이 끝난 직후에는 하반기 계획에 대한 총괄 회의가 있습니다. 오후 3시부터 계획을 잡아 뒀는데 조금 미뤄질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뒀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 외에는…….”

자잘한 업무에 대해 설명했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머릿속으로 기억만 해 두면 되겠지.

“아, 그리고.”

윤설하는 보고서를 덮으며 말했다.

“오늘 중에 경기도청에서 신도시 건설 사업 대상 도시가 발표될 겁니다.”

“벌써 날짜가 됐군요.”

“예. 시간마다 체크하고 발표 나오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돌아서려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건 알고 계실 테지만, 오늘부터 정기국회가 시작됩니다.”

“예. 체크해 뒀습니다.”

“관련 보도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의안 나오면 알려 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정기국회.

각종 의안이 나오고, 온갖 표결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물밀 듯이 나오는 안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내년에 쓸 예산안.

특정 부처의 예산을 늘릴지 말지. 만약 늘린다면, 어디서 세수를 조달할지. 그게 아니라면, 어느 부처에서 빼 와서 그 부서의 예산을 올릴 건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시작될 터.

이로 인해 내년 한 해 동안 거지처럼 살지, 풍족하게 살지가 정해지는 법.

통과시키느냐, 마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니까.

그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입술이 휘어졌다.

어떤 이를 승자로 만들지는 내 손에 달려 있으니까.

무엇보다 예산안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오래 끌 수가 없으니 무조건 내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

그 외에 사소한 건 저들끼리 처리할 테지만, 중요한 안건이 나오면 나에게 연락이 올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곳이 찝찝한 기분은 왜일까.

출근할 때부터 이어져 온 불길한 느낌은 이상하게도 가시질 않았다.

분명 모든 게 완벽한데.

아니면 단순히 날씨 탓일지도.

오랜만에 쏟아지는 비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며칠 동안 개지 않을 장마 때문에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정기국회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고검에 새로 발령 난 뉴페이스 목록은 면담만 안 했다 뿐이지, 이미 다 체크했으니 문제가 없을 터.

오늘 중요한 일이라고는 경기도청의 신도시 건설 사업 발표 하나뿐인데…….

설마 경기도지사 민형택이 내 뒤통수를…….

아니, 그럴 리 없다.

아무리 음흉한 녀석이라고 한들, 자신의 아들 문제까지 달려 있는데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아 경기도청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신도시 건설 발표 공고가 뜨기까지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눌렀다.

그렇게 10분. 20분. 그리고 1시간쯤 지났을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설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현성 차장님 면담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공지 사항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나는 대답도 않고 최대한 빠르게 그 창을 화면에 띄웠다.

<2027 하반기 신도시 건설 대상 확정 지역>

-고양시 중산동

-안양시 석수동

-남양주시 오남읍

“휴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괜히 걱정했네.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라고 해.”

문이 열리며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 송현성이 들어왔다.

“어유, 검사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는 능글맞게 인사했다.

나는 크게 웃으며 그와 악수를 나눴다.

“이곳에서 보니까 반가운데?”

“그렇지?”

“앉아.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그래.”

나는 송현성과 함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전히 날씨는 우중충했다.

그사이, 창밖에선 더욱 굵어진 빗줄기는 장대비가 되어 창문을 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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