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60화 (260/341)

확장 (3)

선거기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이두형을 돕는 건 물론이고, 경기도 성남에서 출마한 오태원을 지원 사격하느라 매일같이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아쉬운 건 전라남도 순천에서 공천을 받아 출마한 박명철 후보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는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니까.

선거가 진행됨에 따라 내가 은연중에 이두형을 지원한 사실에 대해 대한당과 민국당 측에서 논란을 만들려고 했으나, 시도에 그쳤다.

당연한 이야기지.

국회의원들은 법을 만들지만, 실질적으로 그걸 현실에 적용하는 건 나와 같은 검사들이다.

의전이나 받으며 민생을 후려치는 인간들보다는 실무진이 법을 더 잘 알고 적용을 잘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니까.

그들이 아무리 울부짖어도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지.

온갖 선거 전략이 판치는 시국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이두형을 음해하려는 반대 세력의 네거티브로 치부될 뿐이었으니까.

3주 동안엔 선거와 관련된 사항뿐만 아니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경기도청에서 신도시 건설 사업에 대한 공고가 뜬 것.

지원 기간 자체도 평소보다 훨씬 더 짧게 만들어서 이미 마감이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양시에서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원을 마쳤다.

다른 시군에서도 파악은 했겠지만, 지원 기간 자체가 워낙 짧아서 지원한 도시는 평소보다 적은 상태.

지금 당장은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지겠지만, 큰 그림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상황이 더욱 좋다.

땅 투기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면, 국민들이 생각하기엔 ‘지들끼리 해 먹으려고 일부러 우리들 모르게 서둘러 처리해 버렸네!’라고 생각할 테니까.

법무부장관 건은 그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전체적으로 투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이번 보궐선거의 집계된 투표율은 31.4%로 높지 않은 수치였다.

일반적인 총선 투표율은 50% 언저리.

보궐선거는 그보다 낮은 40%를 밑돌지만, 이번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치.

간혹 20%대를 기록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투표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나에게 유리한 건 확실하다.

이변이 발생하기에 훨씬 더 좋은 조건이니까.

특히나 이럴 때일수록 무소속에서 치고 올라가기 좋지.

“세 개 지역구는요?”

“성왕동이 34.2%이고, 경기도 성남이 37.1%, 전라남도 순천이 23.8%입니다.”

“순천이 확실히 낮군요.”

“예. 그중에서도 20대 투표율이 평소보다 높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박명철 후보가 해당 지역구 대학들의 총학생회와 접촉해서 투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린 효과인 것 같습니다. 이번 총학생회들이 반(反)운동권이라서 이야기가 쉬웠다는군요.”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는 민국당이라서 전라도에서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노력했으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정도랄까.

그래도 당에서 뒤통수를 맞고 전라도에 공천이 됐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이 정도로 노력했으면, 근성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다.

보통 의원들은 전라도로 공천을 받으면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시간 때우기만 하고는 하니까.

“박명철 후보한테 연락해서 선거 결과가 어떻든 간에 끝나고 올라와서 식사 한 끼 하자고 연락해 두세요. 이런 사람을 곁에 두면 분명 도움이 되니까.”

“알겠습니다.”

윤설하가 고개를 꾸벅이고 사무실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소파로 자리를 옮겨 TV를 켰다.

방송 3사에서는 보궐선거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역시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지역구는 바로 성왕동.

정치 지역구인 것에 더불어 이두형이 무소속이지만, 강력한 당선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고, 대한당과 민국당 그리고 이두형까지 셋이서 가장 박빙으로 오차 범위 내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지역구였으니까.

나는 리모컨을 움켜쥐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힘내라, 두형아.”

***

대한당 19%.

민국당 24%.

만세당 5%.

무소속의 이두형이 22%.

현재까지 개표율은 70%.

이 정도 개표율이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날 법도 하지만, 성왕동은 전혀 아니었다.

만세당 후보는 진즉에 떨어져 나갔지만, 다른 후보들 간의 격차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수치.

아직까지도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방송을 통해 보면 편하겠지만, 보궐선거를 하는 지역구가 많지 않아서인지, 한두 시간 정도 개표 방송을 하다가 이내 기존의 편성을 이어가 드라마나 방송하고 있었다.

방송 3사 전부 화면 하단부에 나오는 투표율 수치가 전부.

답답한 마음에 나는 윤설하를 보고 물었다.

“순천과 성남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순천은 투표함을 갈무리하던 차가 이동하던 도중 교통사고가 나서 개표를 굉장히 늦게 시작했습니다. 유의미한 개표율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오차 범위 내에 있습니다. 그리고 성남은 어느 정도 기울었는데…….”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화면 하단부에 기다란 자막이 하나 떠올랐다.

-경기도 성남 : 대한당 이태현 후보, 당선 확실!

“이런…….”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선 유력’이었기에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확실’이 뜨면 이야기는 끝이다.

남은 건 성왕동.

이렇게 된 이상 이두형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윤설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의 대한당 옆에 붙어 있던 119라는 숫자를 지우고 120으로 바꾸어 썼다.

그곳에 나열된 숫자는 총선부터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의원들과 현재까지 확정된 지역구의 의석을 실시간으로 정리해둔 표.

현재까지 대한당은 120석, 성태현 측이 119석, 만세당이 20석, 무소속이 8석을 확보하고 있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의석수는 여전히 29.

13개의 선거구 중 이제 남은 지역구는 단 4개.

이중에서 최소한 하나는 확보해야만 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문제였다.

성왕동에서 이두형이 당선된다고 한들, 성태현 측이 나머지 3개 의석을 모두 가져가면, 만세당과 나머지 무소속 의원들과 합심할 경우엔 과반수인 150석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이두형이 당선되고 나머지 3개 지역구 중 1개는 대한당이나 만세당에서 차지해 줘야 했다.

다른 당을 응원하게 될 줄이야.

“순천 쪽은 어때요? 아직 대한당 힘 못 쓰나?”

“투표 수 자체가 적어서 개표율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전부 오차 범위 내입니다.”

“성왕동은요?”

“이두형 후보의 득표율이 민국당 고준근 후보를 거의 따라갔습니다. 이제 1% 범위 내에요.”

제발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그러나 한참 동안 시간이 흐른 뒤, 떠오른 자막은 반갑지 않은 내용이었다.

-서울 은평구 : 민국당 조현수 후보, 당선 확실!

-서울 강서구 : 민국당 강태현 후보, 당선 확실!

“……젠장.”

남은 자리는 겨우 두 자리.

그것도 전라남도 순천과 성왕동뿐이었다.

TV에서 방영하던 드라마는 다음 화를 예고한 뒤, 뉴스로 이어졌다.

아나운서가 첫 번째로 다룬 내용은 역시나 재보궐선거.

당선이 확정된 지역구부터 차례로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화면이 바뀌며 스튜디오가 비춰지며 아나운서가 입을 열었다.

-지금 막 들어온 속보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던 성왕동의 개표율이 90%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나운서는 갓 전달받은 대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말했다.

-서울 성왕구에서는 무소속의 이두형 후보가 대한당과 민국당, 만세당의 다른 후보를 앞질렀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당선이 유력해 보입니다.

“나이스!”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환호성까지는 내지르지 않았다.

아직까지 맘껏 기뻐하긴 이르다.

워낙 득표율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충분히 뒤집힐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숨 막힌 채로 10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아나운서는 인이어를 통해 다시금 상황을 전달받고는 카메라를 또렷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성왕구의 국회의원이 확정되었습니다. 무소속의 이두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되어 보입니다.

“됐어!”

나는 크게 소리를 치면서 윤설하와 크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30표.

정확히 30명의 의원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남은 지역구는 전라남도 순천 하나뿐.

어차피 그쪽은 대한당의 텃밭이기도 하고, 민국당에서 출마한 게 박명철 후보이기에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성태현 측은 내가 철저하게 견제할 수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만약 대한당에서 당선이 된다면, 완벽하게 캐스팅보트를 쥐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성태현이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만은 가능하다.

“이제 마음을 좀 놓겠습니다.”

“그러게요. 얼마나 떨렸는지…….”

윤설하도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이두형 당선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설하 씨.”

“아닙니다. 검사장님이 더 고생하셨죠.”

“이럴 게 아니라, 저희끼리 간소하게 회식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외투를 챙겼다.

그런데 그때.

“잠깐만요, 검사장님.”

윤설하는 나를 멈춰 세우고 TV를 가리켰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남은 건 어차피 순천이잖습니까. 대한당이 당선되어도…….”

“아니요.”

그녀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판이 묘하게 굴러가는데요?”

“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TV를 바라봤다.

-전라남도 순천 개표 상황.

-대한당 김철현 : 36%

-민국당 박명철 : 37%

…….

잠깐만.

이거 설마…….

나는 외투를 든 채로 다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싶어서 눈을 부비며 투표 현황을 확인했다.

설마 순천에서 민국당이 당선된다고?

박명철 후보가 순천에서 공천을 받은 이유는, 그가 내게 붙은 걸 알고 성태현 측에서 견제하기 위해 쫓아낸 것이다.

전라도에서는 당연히 민국당이 힘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누구도 예상했지 못했지만, 지금 박명철 후보는 성태현이 말한 대로 ‘대한당의 심장부에 깃발을 꽂기’ 직전까지 왔다.

그가 당선되기만 하면…….

이두형의 당선을 확인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긴장이 되는 수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윤설하의 말에 나도 모르게 다시금 손을 모으고 개표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나운서는 놀란 목소리로 카메라를 보며 외쳤다.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대한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민국당 국회의원 탄생이 임박했습니다. 전라남도 순천시의 국회의원은 민국당의 박명철 후보로 확실시 되었습니다!

“예스!”

나는 코트를 허공으로 집어던졌고, 윤설하는 들고 있던 서류들을 휘날렸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얼싸안고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무실 문이 열리며 장하영 부장을 포함한 특수부 검사들이 물밀 듯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축하드립니다, 검사장님!”

“뭐야, 퇴근 안 했어?”

“예. 몰래 기다렸습니다!”

당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중앙지검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모양.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오늘 회식이야. 아무도 집에 갈 생각하지 마.”

“알겠습니다!”

우리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한우 식당으로 향했다.

재보궐선거 결과.

대한당 120석, 만세당이 20석, 무소속이 9석, 민국당이 151석.

국민들이 보기에 민국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여 국정 운영에 굉장히 유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 중 121명은 성태현 측이지만, 나머지 30명은 나와 뜻을 함께하며 완전히 다른 당처럼 쪼개어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소속 9명 중 이두형은 나의 편이었고.

정리하면 내가 확보한 의석수는 민국당 30개와 무소속 1개를 포함해 총 31개.

대한당이나 성태현 측이 서로 합심하지 않는다면, 각각 만세당과 무소속을 전부 끌어들여도 150석이 되지 않는다.

한 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게다가 내가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성태현 측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대한당과 반대 입장에 섰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민국당의 손을 잡아서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내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것.

웬만한 의안들은 내 선에서 전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금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성태현, 이 자식.

X되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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