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59화 (259/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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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한지유 씨가 대통령님께 보낸 영상 편지입니다.”

“처형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성태현은 귀를 의심하며 태블릿 PC를 받아들었다.

한지수와 한지유가 연락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선거 이후로는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냈으니까.

“뭘 통해서 보낸 거야?”

“PBC 예능 중에 ‘톱스타의 육아 일기’라는 프로그램인데…….”

“방송을 통해 보냈다고?”

성태현은 그러려니 납득을 했다.

요 몇 해 동안 방송을 쉬었다고는 하나, 이제 슬슬 복귀 준비할 때가 되었으니까.

무엇보다 최서준이 검찰직에서 은퇴를 하면, 한지수라도 나서서 일을 해야 될 터.

그런 이유라고 생각한 성태현은 피식 웃으며 태블릿 PC를 받아들었다.

어차피 영상 편지는 제작진 측에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가족이니까 적당히 부탁을 하는 척 대본을 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 걸.

-그러니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의 영상 편지를 보자, 성태현은 속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런 양아치 년이!”

그는 결국 영상이 끝나기 전에 화면을 꺼 버렸다.

“이젠 날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시겠다?”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두형 선거에 힘을 주려는 것 같습니다. 다른 후보들과 차별되게 아동 인권을 강조한 공약을 밀고 있어서…….”

“아니까 조용해 봐!”

성태현이 모를 리 없었다.

최서준이 신동현을 이용해 호시탐탐 민국당 의원들을 빼 가려고 하는 것도 알고 있기에 주시하고 있던 터였다.

이두형 또한 마찬가지.

사표를 내고 나오는 타이밍이 심상치 않아서 출마할 거라는 사실은 직감했지만, 이런 식으로 본인을 선거운동에 이용할 줄이야.

성태현은 조소를 지었다.

“한 방 먹었네.”

“…….”

“이두형 지지율은 얼마나 돼?”

“어제까지만 해도 17%의 벽을 넘지 못했는데, 하루 만에 2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폭등 수준.

“지금 기세로 올라간 다면 사흘 내로 23%까지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위와의 차이는?”

“그래도 아직 12% 가까이 차이 납니다. 26%의 득표율로 중간에서 버티고 있는 대한당도 있고요.”

“보궐선거에서 그 정도는 절대 안전한 수치가 아니야. 알지?”

“알고 있습니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은 언제나 위협이 되는 인물.

정치인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검찰 인맥을 보유한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 법을 다루는 녀석들답게 법 하나는 완벽하게 꿰고 있는 만큼, 선거법에 아슬아슬하게 걸리지 않지만 아예 노골적인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하며 판을 흔드는 녀석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바로 최서준이 예능을 활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PBC 방송국에 경고 주고 선거기간에는 더욱 주의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에 연락해서 최서준이랑 이두형 잘 감시해. 조금이라도 선거법에 위반되면 바로 조져 버려야 되니까.”

“예. 전달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나간 뒤, 성태현은 의자에 머리를 묻었다.

‘쉽게 죽지는 않겠다, 이거지?’

그의 입꼬리가 음흉하게 비틀어졌다.

‘끝까지 발버둥 쳐 보라지.’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다.

‘일개 검사 주제에 감히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 순간, 성태현의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공 실장, 검찰 간부 명단 정리해서 가져와.”

***

“조심히 가십시오!”

남자는 우렁찬 목소리를 내며 내게 90도로 허리를 접었다.

“또 보시죠.”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겠습니다.”

윤설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부드럽게 서울북부지검을 빠져나왔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에 있던 남자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허리를 접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남자는 서울북부지검장, 최건우.

얼마 전, 대검차장검사로 승진 발령이 나서 옮겨 간 민호선의 뒷자리를 이어 올라온 인물이다.

검찰 간부 중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같은 경주 최씨.

만나서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서울고검장으로서 북부지검장의 취임 축하와 함께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정도랄까.

어쩌다 보니 같은 가문인 걸 알게 되어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계획에는 문제가 없었다.

사실, 오늘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울북부지검에서 서울고검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왕동이 있기 때문.

그렇기에 한참 전부터 북부지검 방문을 공식적인 일정으로 잡아 두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성왕동을 지나다가 선거운동을 하는 무리와 마주칠 수 있을 테니까.

한창 성왕동으로 달려가다가 신호등에 걸려 멈추자, 윤설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최건우 검사는 민호선과는 아예 성향이 달라 보이는데요?”

“다를 수밖에요. 저 친구는 뼛속까지 대한당이거든요.”

“그러면 오히려 더 불편해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글쎄요.”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럴까요?”

윤설하는 혀를 내둘렀다.

“요즘에는 매일같이 검사장님과 함께 다니는 데도 아직 모르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

대통령 성태현과 그를 배출한 여당이라는 커다란 공동의 적을 마주하니, 대한당과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밖에.

물론, 수면 위로 드러날 정도는 아니다.

현재까지는 민국당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는 상태.

이미 확실하게 노선을 정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간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중요한 건, 이번 보궐선거가 끝나야 결정이 될 테니까.

만약 선거를 통해 내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 대한당은 민국당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게 붙을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엔 오히려 내가 끌려 다닐 가능성도 있고.

그렇기에 더욱 이번 선거가 중요한 것이지.

“성왕동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제 진입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성왕동의 진입을 알리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보이는 만세당 후보의 선거 차.

몇 블록 가지 않아, 유명 CM송을 변형한 선거송이 귀에 들어왔다.

확실히 선거기간이라는 게 체감되고 있을 정도.

그렇게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 보이는 성왕 디지털 단지에서 한껏 연설을 하고 있는 이두형의 선거 차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세울까요?”

“아니요. 조금 더 가까이.”

윤설하는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어중간한 거리에 차를 세웠다.

나는 뒷좌석에서 내려 차에 기댄 채 이두형이 마이크를 들고 목청껏 유세를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를 듣고 있는 인물들은 역시나 30대가 절반 이상이었고, 그 나머지도 40대 초반의 인물들이 대다수.

일부러 점심시간에 맞춘 덕분에 평소 유세할 때보다 사람도 많았다.

사원증을 목에 건 인물들은 한 손에 커피를 쥐고 멈춰 서서 이두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10분도 듣지 않고 지나치곤 했다.

그들에게는 누가 당선되느냐 보다도 오늘 처리해야 하는 업무. 그리고 퇴근 후 친구들 및 가족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내가 도착한 걸 보고받은 이두형은 자연스럽게 강력한 어조로 톤을 변경했다.

“……입니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내 소중한 자식들을 갑자기 내일부터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커다란 목소리와 귀에 파고드는 주제.

지나가던 회사원들은 하나둘씩 발걸음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정부에서 그렇게 아이를 낳으라며 권고해 놓고서 막상 사고를 당하니,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국가가 말이 됩니까?”

그는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출산율 높이라고, 나라에서 지원해 준다고 이야기만 하면 뭐 합니까? 막상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 주지 않는 걸!”

청중 속에서 ‘옳소!’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수를 이끌어 낸 인물은 선거 캠프에서 잠입시켜 둔 인물.

비록 한 명의 외침이지만, 이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두형에게 기울이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렇기에 각종 선거에서 다른 후보들도 시민을 가장해서 청중 속에 선거 캠프 인원을 섞어 놓는 법이니까.

“그래서 제가 아동 인권을 위해 힘을 쓰려고 하는 겁니다. 소중한 자식들 낳아서 유치원, 어린이집 무상으로 보내 준다고 끝납니까? 육아 자체가 힘든 겁니다. 자식을 낳는 게 애국이라는데, 국가는 왜 아이를 낳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겁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는 여느 때보다 더 열띤 유세를 펼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는 회사원들은 오래지 않아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타이밍.

이두형은 슬며시 호흡을 고르는 척하며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기다렸다는 듯이 청중 속에 섞여 든 인물 하나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기 최서준 검사님 아니세요?”

한 여자의 목소리에 순식간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맞네!”

“대박이다.”

“진짜 최서준 검사님이네?”

“언제부터 계셨던 거야?”

사람들은 순식간에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처음 나를 발견한 인물은 인파에 섞여 슬며시 자리를 떴다.

그녀 역시 이두형의 선거 캠프에서 뛰고 있는 인물 중 하나.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휴대폰을 들어 내 모습을 찍기 시작할 뿐,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형님!”

이두형은 일부러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친 뒤, 내게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는 사이, 시민 중 하나가 외쳤다.

“최서준 씨, 혹시 이두형 후보의 선거를 도와주러 오신 건가요?”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두형이…… 아니, 이두형 후보가 정말 친동생 같은 친구인데 지나가다가 보여서 잠깐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두형 후보 뽑으실 건가요?”

“아니요.”

나는 능청스레 말했다.

“저는 성왕동 주민이 아니라서 뽑고 싶어도 못 뽑습니다.”

그 말에 청중들 사이에서 가볍게 웃음이 터졌다.

“게다가 공직자라서 정치적 성향을 밝히거나 선거에 영향이 갈 수 있는 말은 할 수 없으니 이해해 주세요.”

“그러면 혹시 하고 싶은 말씀 있나요? 아무거나 좋아요!”

“엊그제 제 와이프가 방송을 통해 이야기했습니다만……. 정말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 또한 그런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범법자들을 잡아 처벌받도록 만들겠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누군가가 유도해서가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반응.

잠깐 이야기하는 사이, 이두형이 다가와 내게 꾸벅이며 악수를 했다.

“연락도 안 하시고 어떻게 오셨어요?”

“북부지검 들렀다가 고검 가는 길에 잠깐 들른 거야.”

“아, 그러셨구나.”

이 녀석, 연기가 아주 수준급이다.

벌써부터 정치인 같은데?

“선거기간이라서 같이 있으면 오해받을 수도 있어서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시민 여러분, 먼저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잘 가요!”

나는 이두형의 어깨를 치며 입 앞에서 손으로 술잔을 꺾는 시늉을 했다.

“두형이는 나중에 선거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자.”

“예. 들어가세요!”

그는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고.

나는 곧장 차에 올랐다.

“바로 출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차를 출발시키고서는 백미러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거의 연예인급 인기신데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받아쳤다.

“웬만한 신인들보다는 제가 낫죠.”

사이드미러로 비춰 보이는 선거 캠프 주변의 분위기는 확실히 좋아 보였다.

머지않아 SNS를 통해 내 등장 사실은 물론이고 영상까지도 빠르게 퍼지게 되겠지.

고작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영향을 미칠 건 확실하다.

은연중에 이두형의 정책을 응원하면서 친근한 태도로 그와 가깝다는 걸 어필까지 했으니까.

나와 친한다는 건, 나에 대한 신뢰도를 자연스럽게 이두형에게 옮겨 줄 수 있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간혹 정치인들 중에 자신의 지역구를 오른팔에게 넘겨줄 때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

선거법에 아슬아슬하게 걸리지 않기에 잡을 수도 없다.

안 그래도 한지유의 예능 덕분에 다른 후보들에 대한 추격에 가속도가 붙은 만큼, 무소속의 이두형이 당선 유력 후보로 부상하는 건 시간문제.

그는 높은 곳까지 올라갈 것이다.

이윽고.

내게 날개를 달아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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