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섭 (9)
문자를 보낸 이는 ‘알 수 없음’으로 적혀 있어 정보가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처음엔 발신인만 보고서 미래 문자인 줄 알고 철렁했달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문자에서는 본인이 미꾸라지라는 것만 밝혔지, 어디서 만난다거나 특정한 장소를 지정하진 않았다.
퇴근길에 찾아온다는 건 이미 내 동선까지 파악을 했다는 소리일 터.
평소처럼 귀가하다 보면 알아서 접근하겠다는 뜻이겠지.
오후 6시가 되자마자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책상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윤설하가 외투를 챙기며 일어났다.
“바로 차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요. 오늘은 따로 갈 테니, 설하 씨는 따로 퇴근하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들를 곳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내일 봅시다.”
그녀를 뒤로하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까지 접근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미리 집에 가서 대기를 하고 있겠다는 건가?
그렇게 집까지 절반 정도 달렸을 때, 백미러를 통해 강한 빛이 반짝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사이드미러로 시선을 돌린 순간.
타다다닥.
뒤에서 상향등을 빠른 속도로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저 녀석이 미꾸라지구나.
내가 2차선으로 옮겨 가자,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은 빠르게 가속 페달을 밟아 나를 추월했다.
퇴근길에 찾아뵙는다는 게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피식 웃으며 미꾸라지의 차를 뒤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서울 외곽의 한 공터.
라이트를 켠 채로 멈춰 서자, 옆에 있던 승용차에서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하차했다.
내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그는 깍듯하게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미꾸라지입니다.”
매끈하게 빠진 V자형 턱선에 삐죽하게 세운 머리.
별명보다는 조금 날카로운 이미지.
다만, 언론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반갑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서 나는 차의 보닛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고 프로 말을 들어 보니, 언론전에 그렇게 능수능란하다던데.”
“맞습니다.”
그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거 하나로 먹고살았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조중동도 저 못 따라옵니다.”
“그래?”
“예. 기본적으로 각종 인터넷 기사 댓글도 조작할 수 있고요. 원하는 걸 베스트 댓글로 올려서 분탕치고 선동하는 게 제 특기입니다. 그 외에 실시간 검색어 조작이나 디도스를 통한 특정 사이트 공격 등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인터넷은 그렇다 치고, 언론은?”
“사실, 인터넷보다도 언론전이 더 자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국민들은 정치보다 유명 연예인들의 섹스 스캔들과 포르노에 더 관심이 있으니까요. 지금 당장 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만 풀어도 최소 1년간은 정치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안 가질걸요?”
본인까지 저렇게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데다가 고성탁이 인정하고 추천한 인물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터.
나는 품에서 2G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던졌다.
두 손으로 받은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히죽 입술을 찢었다.
“이러니까 진짜 첩보 영화 같네요. 이것도 대포폰인 거죠?”
“거기 나온 번호로만 연락해. 특별한 일이 아니면 먼저 연락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녀석을 바라봤다.
“대가는?”
“에이, 그런 거 없습니다.”
그는 너스레를 떨며 손을 저었다.
“고 프로가 부탁해서 하는 거지, 막 제가 떡고물 바라고 그런 사람……이 맞긴 하지만, 아닙니다.”
“돌려 말하는 거 싫어하니까 그냥 말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중국 총영사 자리나 그런 거 원하는 거야?”
“하하하, 아닙니다.”
그는 킥킥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저는 가방끈이 짧아서 감투 써도 제대로 활용도 못 할 겁니다.”
“그러면?”
“절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는 넉살스레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없습니다.”
정말 중요할 때 내게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소리다.
일종의 백지수표에 가깝달까.
“과도하게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럼요. 고 프로한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허용 범위 내에서 요청할 테니 그때만 도와주십시오.”
“그러지.”
나는 손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다시금 녀석에게 던졌다.
“이건 계약금.”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여기 다이아몬드 박혀 있는 거 아닙니까?”
“싫으면 말고.”
“아닙니다.”
그는 헤벨쭉 입꼬리를 올리며 손목에 시계를 찼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검사님.”
“그래.”
보닛에서 몸을 일으켜 시계에 정신이 팔린 녀석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실력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암만 고성탁한테 믿을 만한 녀석이라고 들었어도,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봐야 확실하게 믿고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지금 언론에서 한번 분탕 쳐 볼 수 있겠어?”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잘됐네요.”
미꾸라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시면 뉴스는 물론이고 기사까지 전부 바뀌어 있을 겁니다.”
“기대하지.”
***
-[단독!] ‘풍 아일랜드’, 환각 상태에서 콘서트 공연한 것으로 밝혀져…….
-6인조 락밴드 풍 아일랜드의 보컬 윤정국이 저번 달에 펼쳐진 도심 투어 콘서트 중 마지막인 23일 서울 콘서트에서 마약에 취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가 복용한 약물은 마약류 중에서도 가장 강한 마약으로 분류되는 LSD로…….
“확실하네.”
아침에 일어나서 읽은 신문에서부터 출근하는 길의 라디오까지 전부 풍 아일랜드의 마약 이야기로 정신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대구 지검의 검경 유착 이야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
이 정도면 충분히 믿을 수 있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남은 건, 법무부장관이 삼키기 좋도록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뿐.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윤설하 씨.”
“예, 검사장님.”
“선거 준비합시다. 이두형 차장에게 본격적으로 움직이라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한랭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이 물러나고 살랑살랑 봄바람에 개나리가 피어 흔들리는 3월.
신동현은 5월 펼쳐질 지방선거의 재보선을 위해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고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면 최소 90일 전에 그 직을 그만두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두형이 출사표를 던졌다.
정식 선거운동 기간은 내일부터지만, 그는 벌써부터 성왕동의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고 있었다.
그가 특수부 출신으로 온갖 비리 정치인들과 잔혹한 범죄자들을 잡아들인 건 익히 알려진 사실.
게다가 여전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최서준의 오른팔이라고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성왕구는 제2의 정치 지역구인 만큼, 절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대한당과 민국당에서도 꽤나 이름이 있는 정치인들이 출마를 선언했으니까.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선거에서 승리만 한다면 특정한 정당에 소속되어서 여의도에 입성한 것보다 훨씬 더 임팩트는 클 터.
그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을 테고 다시금 내 권위도 세울 수 있겠지.
그렇기에 나 또한 그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공무원법과 선거법을 교묘하게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그를 지지해서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게 선거를 하루 앞둔 날.
여느 때와 같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단란한 저녁식사를 하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처제는 청와대 생활 적응할 만하대?”
“어…… 지수?”
한지유는 젓가락을 멈추었다.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성태현 때문에 늘 미안한 감정을 보인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 편하게 말해.”
“그래.”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좋은 것 같더라. 워낙 넓기도 하고, 애들 돌봐 주시는 분도 있는 데다가 식사까지 삼시세끼 전부 제공되니까 편하기도 엄청 편하대. 무엇보다 아이들 영양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게 최고라더라.”
“다행이네. 잘됐다.”
“이번 주말에 부모님 한번 모시고 구경시켜 드릴 거래. 엄마 아빠도 손주들 보고 싶어 하셨거든.”
“하긴…… 장인어른이랑 장모님께서 네 명씩 보시다가 정민이 정수, 정아 세 명이나 확 빠져 버리니까 빈자리가 크셨을 거야.”
“할머니랑 할아버지, 형들 보러 가?”
숟가락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도 갈래. 안 본 지 오래 됐어.”
아들의 투정에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돌렸다.
“우린 주말에 놀이공원이나 갈까?”
“놀이공원이 더 좋아!”
“그래. 그럼 주말에 용인 가자.”
“아싸!”
“대신 이거 시금치랑 당근 먹어야 돼.”
“응!”
한지유는 화사한 미소를 띠우고 아들의 숟가락에 채소를 올려 주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지이이잉.
장하영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나 다 먹었으니까 치워도 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한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천천히 통화하고 와. 지훈이 한 그릇 더 먹을 것 같아.”
“아, 그래?”
“응. 더 먹을래!”
“맛있게 먹고 있어.”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서재로 들어갔다.
“네, 최서준입니다.”
-장하영입니다. 식사 중이실 텐데 죄송합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어, 말해.”
-방금 전에 김나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장하영 부장의 목소리도 나쁘지 않다.
절로 손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뭐래, 들어간대?”
-예, 맞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기다렸던 대답이 들려왔다.
-다음 달 초부터 청와대에 출근할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답니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됐다!
-그런데.
장하영 부장은 가볍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나나가 또 요망하게 입을 잘 놀렸는지, 단기간도 아니고 최소 2년 근무로 이야기를 확정 지었답니다.
2년.
성태현의 마음을 홀리는 걸 넘어 쥐락펴락하기에도 충분한 기간.
-이후에도 1년 단위로 연장이니, 큰 문제가 없으면 계획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고생했어, 장 부장.”
-아닙니다. 다 검사장님 계획인 걸요.
“자네가 섭외한 인물이잖아.”
-감사합니다, 검사장님.
“잘 쉬고 내일 보자고.”
-예. 좋은 밤 되십시오.
전화를 끊고 창가로 다가갔다.
유리에 비친 나의 얼굴엔 아주 흡족스러운 미소가 흐드러지게 걸려 있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간다.
저 멀리 드넓게 펼쳐진 도심 위로.
위태롭게 흔들거리던 성태현이 처참하게 무너지며 자신이 쌓아 온 모든 업적이 쓰러지는 걸 허망하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성태현.
넌 사람 잘못 건드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