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섭 (8)
“크흠.”
예상했던 대로 역시나 박창식 장관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무래도 목이 타는지 술잔을 들었지만, 김석원이 술을 채운 채로 일어났을 리가 없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괜찮…….”
박창식 장관이 마다하려고 했지만, 나는 바로 술병을 들어 잔에 부었다.
그는 여전히 거북한 얼굴로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하아.”
짙은 한숨을 내뱉은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최 검사장.”
“예, 장관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자리가 많이 불편하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나는 능글맞게 말을 받았다.
“하지만 저는 장관님이 좋습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박창식 장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렇게 뒤에서 만나서 어떻게 해 보려고 하고…… 또 더러운 제안이나 협박이나 하려고 부른 것 아닌가?”
그의 목소리에선 약간의 노여움까지 끼어 있었다.
“김석원 선배님까지 자리를 비워 주신 걸 보면 뻔해.”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나는 방긋 웃으며 허리를 폈다.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없다고?”
“예. 그저 장관님을 꼭 한번 뵙고 싶어서 부탁드린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박창식의 눈에선 의심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법무부장관이면 원하지 않아도 나와 직계로 연결되는 라인.
당연히 성태현이 그에게 나를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줬을 테니까.
박창식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랑 나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야. 섞일 수가 없어.”
“섞이자는 말이 아닙니다. 같이 공존하자는 거지.”
박창식의 가시 돋은 말투에도 나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 갔다.
“어차피 2년 동안 함께할 거 좋게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오늘은 그저 러브콜일 뿐, 그를 회유하거나 내 편으로 만들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저 내가 그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에 대해 언질을 하는 것뿐.
그게 목적이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그의 투기 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뒤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
그가 심기를 건드렸다.
“아무리 내가 급박해도 손에 똥 묻히기는 싫거든.”
똥이라.
그 말에 조소가 터져 나왔다.
오늘은 웬만하면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을 면전에 대고 이런 소리를 할 줄이야.
아무래도 좋게 흘러가기는 그른 모양.
“장관님.”
부드럽게 반달 모양을 그리고 있던 눈을 치켜뜨고 그를 똑바로 노려봤다.
“제가 잠깐 비위 맞춰 드리니까 당신 아래처럼 보입니까?”
“이 자식이!”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네 속에는 시커먼 구렁이가 숨어 있는 게 다 보인다고!”
박창식은 흥분한 채로 내게 삿대질까지 했다.
“그리고 법무부장관이 당연히 검사장 위지! 어디서 감히…….”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장관님은 왜 여기 계십니까?”
“뭐?”
그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김석원 선배님 때문에 온 거지. 네가 아니었으면…….”
“떠날 수 있는 기회는 많았습니다. 그러라고 김석원 장관님이 자리를 비워 주신 거고요.”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장관님이야말로 제가 무언가 제안을 하길 바라고 여기 남아 계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찔리는 게 있다든가.”
“그럴 리가 있나!”
그는 벗어 두었던 코트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원하면, 내 떠나지.”
그가 테라스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
“코피노.”
말 한마디를 뱉자, 그대로 멈칫하며 날 돌아봤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코피노가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시죠?”
“……뭐?”
“앉아, 이 새끼야.”
“…….”
내가 정면에 있는 의자를 턱으로 가리키자, 박창식은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코피노. 한국인을 뜻하는 코리안(Korean)과 필리핀인을 뜻하는 필리피노(Filipino)를 합쳐 만들어 낸 합성어로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의 혼혈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코피노는 필리핀 현지에서 성매매를 통해 탄생한다.
“2010년 12월 13일 인천공항 출국한 기록이 있으시더라고요. 목적지는 필리핀의 마닐라 공항. 한 1주일 정도 지내시고 오셨던데?”
그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었다.
“그런 걸 일컬어 황제 투어라고 한다죠?”
상황 역전.
나는 의자를 뒤로 쭉 빼 테이블에 발을 떡하니 올렸다.
그러나 박창식 장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름이 조셉이었나?”
“…….”
“이제 고등학교 들어갔다죠? 제 부하 수사관 하나가 직접 가서 보고 왔는데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장관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특수부가 청문회 하는 인간들보다 정보력은 훨씬 더 뛰어나다는 거.”
청문회에서는 주로 국내에서의 비리 혹은 해외로 골프 여행 가는 것이나 조사하지, 이런 쪽은 조사할 생각도, 인력도 없다.
“제가 아무것도 몰라서 청문회 때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이제 말하는 거지?”
그는 눈에 불을 켜고 물었다.
“법무부장관이 되었으니 이용하려고?”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나는 테이블에 올렸던 다리를 내리고 의자를 가까이 당겨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왜냐하면.”
나는 다시금 얼굴에 환한 미소의 가면을 썼다.
“우리 박창식 장관님이 좋으니까.”
테이블로 상체를 뻗어 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저는 말씀드렸잖아요. 장관님이랑 좋게 지내고 싶다고.”
그의 머릿속이 혼란하다는 게 눈에 훤히 들어왔다.
대체 왜 이러는지 전혀 예상도 되지 않겠지.
“저는 존경하거든요. 우리 장관님.”
“……뭐?”
“제가 이 바닥에서 존경하는 검사가 딱 두 명 있어요. 하나가 우리 김석원 전(前) 장관님. 그리고 다른 하나가 우리 박창식 장관님.”
내 말이 100% 진심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제가 가만있을 이유가 있겠어요? 안 그래도 괘씸한 성태현이 우리 장관님을 찍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터뜨려 버리죠.”
나는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랬으면 지금 와이프분께서 이혼하자고 하고, 세 따님분들도 어떻게 됐을까…… 저는 상상이 안 가네요.”
이 상황의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걸 깨달은 박창식 장관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대체 원하는 게 뭔가?”
그는 간곡하게 말했다.
“자네가 바라는 걸 말하게. 내가 힘닿는 한에서는…….”
“아까부터 말씀드리고 있는데, 왜 자꾸 물어보세요.”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장관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니까요?”
“…….”
“까놓고 말해서 제가 이 바닥에 있는 동안, 이렇게 먼저 나서서 친해지자고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들어 본 적도 없으시죠?”
“없긴 하다만…….”
이쯤 되면 슬슬 긴가민가하겠지.
“저는 진짜 순수합니다. 지금까지 제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다 줍니다.”
일부러 단어를 강조해서 말하자, 한껏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가 한순간 진정되었다.
“과격하게 말씀드린 건 사과드립니다. 단지 제 순수한 마음이 곡해되는 게 걱정되어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알겠네.”
“한 잔 받으시겠습니까?”
“그, 그러지.”
박창식 장관은 술잔을 받았다.
“저도 한 잔 주십시오.”
“그래.”
내가 직접 그에게 잔을 부딪쳐서 건배를 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원샷을 하고는.
“그런데 그…….”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존경한다는 말, 진짜인가?”
인간은 참으로 속물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온다니.
남들이 우상으로 삼고, 검사들의 롤 모델 1위가 바로 나다.
그런 인물이 자신을 존경한다고 하니, 어깨가 올라갈 수밖에.
내가 당신같이 해외에 나가서 씨나 뿌리고 다니는 인간을 존경할 리가 있겠냐만은.
“그럼요.”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님처럼 묵묵하게 제자리에서 사건을 처리해 나가는 게 얼마나 멋있습니까? 상대에 굴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우직하게 밀고 나가시는 모습도 참 존경스럽고요.”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기분이 좋기는 한데, 그렇다고 마냥 좋은 티를 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테지.
아무리 내가 이렇게 말을 했어도, 박창식의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아니, 오히려 조금 더 의심의 끈이 팽팽해졌을 수도 있지.
그러나 오늘의 대화는 그 의심의 끈을 느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톱질을 하는 역할이다.
한마디로 은연중에나마 나중에 내가 그를 도와주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깔아 두는 것이지.
중간에 살짝 어긋나긴 했지만, 어쨌든 간에 계획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오늘 목표는 그가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앞으로 그가 나를 대할 때 더 긴장하고 조심스러워질 테지만, ‘그래도 최서준이 마냥 나쁜 녀석은 아니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심어졌을 테니까.
“장관님 바쁘신데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 같습니다.”
“아니네, 괜찮네.”
“청문회도 끝났으니, 이제 정말 장관이 되시는 거잖습니까. 오늘 같은 날은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죠.”
나는 곧장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났다.
“배려해 줘서 고맙네.”
그와 함께 대문 밖으로 나오며 다시금 화기롭게 말했다.
“장관님.”
“그래, 최 검사장.”
“저는 달리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제가 장관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래. 알겠네.”
“또 뵙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게.”
“예. 그리고 법무부장관 임명 축하드립니다.”
***
직접 대면하는 것으로 법무부장관에 대한 모든 설계는 끝이 났다.
다만, 이 판을 더 흔들기 위해서는 언론전에 능한 인물이 필요했다.
신의 손, 고성탁의 빈자리를 채워 줄 인물.
송재훈 PD와 박수형 기자는 나를 위해서 언제든지 나서 줄 수 있다지만, 이제는 그들의 정체가 너무 많이 드러났다.
대한당과 민국당에서 아는 것은 물론이고, 나와 관련된 중요 사건의 최초 보도는 대부분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일반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
아마도 최규현을 하야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게 그 두 인물이었던 탓이겠지.
앞으로 사건을 터뜨릴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매체는 방송뿐만 아니라, SNS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준비하는 사건이 슬슬 예열되기 시작한 걸 성태현이 눈치채면, 당연히 먼저 손을 쓸 터.
직접적으로 정부를 공격하는 게 아닌 이상, 청와대가 작정하고 막는다면 내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적어진다.
그렇기에 고성탁이 수술을 받으러 떠나기 전, 그에게 박수형과 송재훈을 대신해 언론전을 도맡아 줄 적임자를 찾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미꾸라지라는 별명을 가진 놈이 하나 있습니다. 언론에서 만큼은 저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그 친구에게 제가 연락해 놓겠습니다.”
그가 출국하기 직전, 이러한 답변을 받았다.
수사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서가 아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켜서 온 웅덩이 물을 흐린다는 것처럼 혼자서도 다른 언론을 막은 채로 국민들의 눈을 현혹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가졌다는 뜻.
그리고 마침내 오늘.
-보낸 이 : 알 수 없음
-미꾸라지입니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찾아뵙겠습니다.
그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