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섭 (6)
“어유,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검사님 애인이라는 걸 알았으면 침 안 발랐을 겁니다.”
민형택 경기도지사는 게슴츠레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제가 밝히긴 하더라도, 동서가 되긴 싫거든요.”
쯧쯧.
단어 선택이 아주 싸구려인 걸 넘어서 입에 걸레를 물고 있는 수준.
그나마 본인이 밝힌다는 건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미 끝난 이야기니 괜찮습니다.”
달가운 주제는 아니었기에 짧게 정리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수원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긴 했습니다만…….”
“제가 유흥에 관해서는 아주 꽉 잡고 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경기도의 각 시군별로 전부 꿰고 있습니다. 여자들 물은 서울이 더 좋을지 몰라도, 다양한 취향으로는 경기도를 못 따라오죠.”
녀석은 말을 하며 테이블 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 애들 노는 거 보면, 어후…….”
이런 인간이랑 딜을 해야 한다니.
눈살이 찌푸려지는 걸 참지 못할 것 같아 술병을 찾는 척 고개를 돌렸다.
“일단 한 잔 받으시죠.”
“아닙니다, 검사님.”
민형택이 먼저 나의 잔을 채워 주려나 싶어 그에게 술병을 넘기려는데.
“술은 여자가 따라 줘야 맛있는 법이죠.”
그는 뒤를 향해 크게 외쳤다.
“들어와!”
이내 우리가 들어왔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보통 복장도 아니고, 몸의 절반이 드러나 있는 의상을 입은 채로.
민형택은 늘 해 왔다는 것처럼 능숙하게 여자의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죽이죠?”
“…….”
“그냥 벗은 것보다 보일 듯 말 듯 하게 가려야 더 섹시하거든요.”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유, 검사님도 마음에 드셨나 보네.”
내 웃음이 흡족스러운 걸로 착각한 모양.
미친 새끼.
일대일로 보자고 한 건 내가 아니라, 민형택 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입구까지였다고 하나, 어쨌든 윤설하가 함께 왔던 탓에 그의 무례에도 크게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물론, 그녀가 능숙하게 대처한 덕도 있긴 했지만, 민형택의 입장에서는 같이 왔다는 것이 경계되어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오늘 나눌 대화 내용은 적당한 주제가 아니라, 중요한 문제라는 건 만나기 전부터 몇 번이나 강조했던 사실.
그래서 단둘이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는데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니, 여자들을 들인다니.
이건 대놓고 나 보고 엿 먹으라는 소리다.
나를 만나러 오면서 나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할 터.
아까도 윤설하를 모르는 게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워낙 여자에 눈이 먼 녀석이라서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윤설하가 내 그림자 같은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그딴 식으로 접근했다는 소리니까.
말하는 걸 보면 그녀가 진짜 내 애인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이 자식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
“이런 X발.”
민형택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내 얼굴을 살폈지만, 나의 표정은 볼 수가 없었다.
콰당탕탕!
내가 그대로 상을 엎어 버렸으니까.
테이블이 엎어지며 그 위에 차려져 있던 음식이 엎어진 건 물론이고 쟁반들이 날아가 깨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꺄악!”
여자들이 비명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들에게는 눈길을 줄 생각도 없었다.
“너 내가 X밥으로 보이지?”
“……예?”
이렇게 세게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녀석은 졸아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여자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
“다 나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그녀들은 겁먹은 채 대답도 않고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다.
“후우.”
나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들이 열어 놓고 나간 문을 닫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지금 대통령이랑 불화가 좀 생겼다고 이렇게 깝죽거리는 건가?”
“무, 무, 무슨 소리입니까?”
녀석은 기에 눌리고 싶지 않은지 따지려 했으나.
“저는 진짜 여, 여자들이 술을…….”
나는 그대로 옆에 있던 잔을 집어던졌다.
채앵!
도자기로 만든 잔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흩어졌다.
“내가 총장 못 달았어도 고검장이야, 서울고검장.”
민형택의 앞에서 쪼그려 앉아 녀석의 턱을 잡아 치켜들었다.
“너 하나쯤은 박살 낼 수 있어. 조지는 건 일도 아니라고.”
“…….”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일을 크게 벌이면 성태현이 눈치챌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이지, 녀석이 무섭거나 부담스러워서 협상을 하러 온 건 아니다.
그제야 민형택은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사달이 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즉시 태세를 전환했다.
“죄, 죄송합니다.”
녀석은 바로 자세를 고쳐 무릎 꿇고 머리를 숙였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술병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녀석은 자신의 머리를 내려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바로 두 손까지 비벼 가며 머리를 더 낮췄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다시는…….”
나는 피식 입꼬리를 비틀며 술병을 바로 잡고 가볍게 돌리듯 흔들었다.
찰랑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술병이 완전히 엎어지지는 않아서 전부 쏟아지지는 않은 상태.
손이 닳아 없어질 것같이 비비고 있는 녀석에게 술병 하나를 쥐여 주고,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술병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우리 좋게 비즈니스 이야기합시다.”
그러고는 그가 거의 넋이 나간 채로 쥐고 있는 술병에 툭 부딪치며 건배했다.
“비즈니스.”
병째로 술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녀석은 벌벌 떨며 두 손으로 술병을 들고서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그는 병의 내용물이 다 쏟아질 때까지 식도를 열어 두었다.
원샷하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번에 경기도에서 신도시 사업하죠?”
“예?”
알코올 덕분에 겨우 정신이 들었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네. 맞습니다.”
“고양시에 신도시 하나 건설합시다.”
그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게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에이, 제가 맨입으로 해 달라고 하겠어요?”
나는 한 손으로 바닥에 두 개의 직선을 교차되게 그렸다.
“봤어요?”
“에, 엑스요?”
“아니, 열십(十). 정치인이라는 인간이 나랏말을 사랑해야지, 외국어부터 떠오르면 쓰나?”
“아, 죄송합니다.”
“10억.”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도지사님 딱 10억 챙기고 고양시에 신도시 하나 만들어 줘요. 신도시 하나 늘린다고 해서 사업에 문제 생기는 건 아니잖아? 국토교통부에서 예산 좀 더 끌어다 쓰고. 건설 사업 회사 지정하면서 뒷돈도 좀 챙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얼마나 좋아?”
이내 민형택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이 와중에도 돈은 탐나는 모양.
“그리고 제가 이것만으로 끝내려는 게 아니에요.”
나는 그의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것을 펼쳐 가족사진을 보며 물었다.
“아들이 몇 살이더라?”
“스물한 살입니다.”
“어유, 우리 아들은 다음 달에 세 돌인데…… 언제 크나 몰라.”
“새, 생각보다 금방 큽니다. 일하다 보면…….”
“계집질하느라 시간이 빨리 간 거겠지.”
“…….”
“아들이 국가 대표라죠?”
“아, 네. 요트의 한 종목에서 국가 대표로 선발되어 있습니다. 작년에도 국가 대표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 나쁘지 않은 성적도 거뒀고요.”
“요트는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한 번도 못 딴 걸로 알고 있는데.”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한 번 따야죠.”
“아들이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나는 능청스레 물었다.
“요트가 장비의 영향을 꽤 받지 않나?”
“어느 정도 그렇긴 합니다.”
“세계 최고의 요트라면, 우리나라도 꽤나 가능성 있지 않겠어요?”
“……예?”
그는 무언가 직감이 온 것 같았지만, 설마설마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가 그것까지 지원해 드리죠.”
“저, 정말입니까?”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엔 자신의 탐욕이 아닌, 한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저도 아들 둔 아빠인데 자식 이야기로 농담 따먹기나 하겠어요?”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전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떤 겁니까?”
“고양시에 신도시가 건설될지, 말지 알고 싶네요.”
민형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건설될 겁니다.”
“그래요?”
“예. 반드시 될 겁니다.”
나는 방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도지사님이라면 잘 판단하실 줄 알았어.”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SV그룹에서 공고가 하나 뜰 겁니다. 타이틀은 모르지만, 내용은 요트 대여 사업이겠지. 증여는 기록이 남으니 힘든 거 아시죠?”
“예. 대여로도 충분합니다.”
“거기 선발 조건 및 채점 기준이 미리 도지사님한테 전달될 겁니다. 거기 심사관들은 당신 아들인 것도 모르게 블라인드로 채점할 거고. 그러니까 기준에 딱 맞춰서 지원해요.”
어차피 요트 국가 대표를 준비하는 사람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정도로 적다.
애초에 이 사업 자체가 민형택을 위해 만들어진 것.
기준만 알고 있다면, 무조건 그가 뽑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지.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국가 대표를 하고 있는 만큼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가 뽑힐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 도지사님 아들은 내년에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 하나 딱 국가에 안겨 주시면 되는 거예요. 민생도 살리고 국위선양도 하고. 얼마나 좋아?”
“맞습니다.”
“이게 바로 애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게 국가에 충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옳으신 말씀입니다!”
녀석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힘찼다.
그래.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들고 있으면 이 인간도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리고 대한당에는 비밀로 좀 해 주세요.”
그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것까지 알고 싶어요?”
민형택을 향해 다시금 고개를 가까이 가져다대자, 그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전혀.”
나는 다시금 허리를 세우고서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채 멈춰 서서 민형택을 돌아보고 그를 향해 눈꼬리를 휘었다.
“도지사님, 잘 부탁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