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53화 (253/341)

포섭 (5)

“고양시장은 만나 본 적 있으십니까?”

운전대를 잡은 윤설하가 백미러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두어 번 만난 적은 있습니다. 단체로 만난 거라 자세히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고양시장은 나와 같은 2번 라인 소속.

지나가듯이 인사한 적은 있어도 따로 일대일로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다.

그는 특별할 것 없이 줄을 잘 서서 올라온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이번에 걱정이 되는 건, 그가 성태현 측에게 붙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

아직까지 성태현과 나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긴 하지만, 고양시장은 성태현과 같은 안암대학교 출신이다.

대통령 선거 전에도 동문회에서 몇 번 봤다고 할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러나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다.

고양시장은 그렇다 할 만큼 파워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땅 투기에 있어서 중요한 건 경기도지사의 결정이지, 고양시장은 아니다.

오늘은 말 그대로 예열 과정.

식사로 치면 에피타이저다.

“고양시장은 크게 걱정할 것 없을 거야.”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녀는 천천히 커브를 돌아 좁은 길로 들어섰다.

“5분 뒤 도착입니다.”

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정리해 내려놓았다.

“요즘 매번 운전하느라 고생이 많아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해가 바뀐 뒤부터 출퇴근을 제외한 일정은 윤설하가 픽업을 해 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서울중앙지검에 있다가 서울고검장으로 발령 나서 온 만큼, 인수인계 받을 업무도 많았고 중앙지검에 없는 부서가 있는 만큼 고검의 업무는 추가적으로 새롭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 넘겨봐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꼰대가 되는 법이니까.

그 덕분에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해서 이동하는 내내 차에서 보고서와 서류를 들여다봐야 할 정도.

그것도 모자라, 빈집털이를 위한 준비까지 하려니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잠깐 동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사이, 차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두어 시간쯤 걸릴 겁니다. 쉬고 계세요.”

“알겠습니다.”

고양시 외곽에 있는 산 속 낡은 주택 하나.

문이 열려 있어 조심스레 들어가자, 먼저 온 고양시장 안효근이 먼저 도착해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한국에서 저런 벽난로를 볼 줄이야.

“집 좋네요. 별장인가?”

“아, 오셨습니까.”

상념에 잠겨 있어서 내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온지도 몰랐는지, 그는 놀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반겼다.

“제 사촌 어르신이 사용하시는 곳입니다. 오늘은 잠깐 빌렸고요.”

“그렇군요.”

“앉으시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자, 고양시장은 조심스럽게 내게 술잔을 건네며 물었다.

“제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고…….”

그의 얼굴에서는 부담스러운 기운이 드러났다.

성태현 측에 붙으려고 하는 그의 입장에서 내 방문은 반가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나는 술잔을 들어 올리는 대신,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테이블에 올렸다.

“질질 끌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시장님께서 더 큰 물에서 놀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

“성태현에게 붙으면, 지금 당장 안정적인 삶은 유지가 되겠죠.”

그는 심기가 불편한 듯 크흠 하고 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러나 입을 열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지.

이번 일로 민국당의 대다수 인물들이 성태현에게 붙었지만, 아직까지 자신은 제대로 노선을 정하지 못한 상태.

이유는 뻔했다.

성태현에게 붙는다고 한들, 민국당에서 내로라할 정도로 쟁쟁한 인물들을 뚫고서 더 우선순위를 받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

그렇다고 나에게 붙자니, 위험성이 크고.

그래서 안효근은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인물에게 가장 매혹적인 제안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습니까? 시장님도 여기서 머무를 게 아니고 더 높은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미래와 가능성.

그것이야 말로 정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들이지.

“그 말씀은 저를 차기…….”

그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크게 던졌다고 한들, 대통령을 생각하고 받아먹는 건 스스로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 테니까.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이제 겨우 3개월입니다. 차근차근 올라가셔야죠.”

“……그렇죠.”

이제 겨우 고양시장이다.

적어도 여기서 10년 이상 지내며 경력을 쌓아야 경기도지사 혹은 국회로 들어갈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더 멀리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특별한 자리를 약속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자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도록 도와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저는 발판을 마련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그저 디딤대를 찾겠다고 굳이 전쟁터로 들어갈 필요는 없잖습니까?”

성태현에게 붙어서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심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의 눈빛을 보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오히려 여유롭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조영석 시의원이 조사에 들어갔던데요?”

“…….”

그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안효근 고양시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조영석 시의원은 현재 부정선거로 인해 조사를 받고 있다.

그 덕분에 제일 가까운 고양시장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상태.

“시민들이 다른 거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민생 챙겨 주면 다시 지지율은 올라가는 법이죠. 까놓고 말해서 정치인들이 100% 깨끗하다고 보는 시민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민심을 다시 되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알고 계시잖습니까?”

나는 능글맞게 미소를 지었다.

“신도시가 건설이 되면 땅값이 올라가고, 새로운 상권이 형성됩니다. 당연히 지방 세수도 늘어날 테니 복지도 좋아지겠죠. 그러면 우리 정치인들에 대한 의혹이 피어나도 별생각 안 합니다. 당장 내가 행복하고 배부른데 뭐가 문제겠어요?”

실제로 그렇다.

대한민국에는 실제로 비리를 깨닫고 파헤치며 퇴진을 요구하는 인물들보다 현 상황이 만족스러우면 그저 엉덩이를 붙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고양시장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물론,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저도 걱정이 없겠습니다만, 신도시 건설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순간, 그는 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설마, 그걸…….”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한껏 생각해 보라지.

어차피 낼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니까.

성태현이 아니라 내 라인에 들어온다는 게 고민되긴 하겠지만, 이 제안을 걷어차는 건 미련한 짓이라는 사실은 모를 리 없겠지.

역시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검사님.”

그는 두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오늘부터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 됩니다. 고양시에 신도시 건설 사업을 유치하겠다며 시민들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그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의혹을 벗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안효근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조만간 경기도청에서 신도시 건설 공고가 뜰 겁니다. 시장님은 중산동을 중심으로 사업을 신청하시면 되고요.”

“그리고 뭘 더 하면 됩니까?”

“그게 전부입니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나머지는 전부 제가 알아서 하죠.”

“……정말이십니까?”

“아, 하나 부탁드릴 게 있다면…….”

입가에 웃음기를 지워 내고 말했다.

“이렇게 도와드렸으니 나중에도 함께해 주십시오.”

“그거면 됩니까?”

“예. 저한테 빚 하나 지신 겁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네요.”

뒤통수 치면 각오하라는 소리.

그도 충분히 알아들었는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예, 그러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금 미소를 되찾았다.

“다음에 또 뵈시죠.”

***

고양시장은 가볍게 패스.

처음 생각했던 대로 무난하게 해결되었다.

어차피 신도시가 건설이 되면 고양시장은 당연히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니까.

남은 건 경기도지사.

그 녀석만 설득하면 된다.

어차피 경기도의 신도시 건설 사업이기에 국토교통부는 도지사의 의견을 따라가는 법이니까.

다만, 경기도지사 민형택이 워낙 더러운 걸 밝히고 음흉한 자식인지라 쉽게 대화가 되지 않을 테지.

무엇보다도 우리 라인이 아닌, 대한당 소속이기도 하고.

그와의 담판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조심하십시오. 워낙 갈피가 잡히지 않는 녀석이니까요.”

윤설하는 걱정스럽게 날 바라봤다.

“게다가 단둘이 보자고 강조했을 정도니…….”

“괜찮습니다. 저야 늘 혼자 움직였으니까요.”

“그게 찜찜하다는 겁니다. 경기도지사도 그걸 알 텐데, 굳이 말한 의미가 예상이 가지 않아서요.”

경기도지사가 했던 말이 영 마음에 걸리는지, 윤설하는 함께 차에서 내렸다.

“안까지만 바래다드리겠습니다. 장소도 장소인지라…….”

경기도지사가 선택한 약속 장소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보면 딱 봐도 룸살롱 같은 분위기가 나지만, 그렇다 할 만한 간판도 붙어 있지 않은 상태.

뭐랄까, 정식 허가를 받은 곳 같지도 않달까.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깍두기들에게 신분 확인을 거친 이후,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퓨전 한복을 입은 여성부터 시작해서 치파오 등 특이한 복장을 입은 인물들이 실내를 활보하고 있는 상태.

여자들은 나를 보고 다가오려다가 이내 내 뒤에 윤설하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물러났다.

“이거 아무래도 민형택이 보통 미친놈은 아닌 것 같네요.”

“이상한 취향으로 훨씬 밝힌다는 것만은 확실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안에 들어가면 훨씬 더 심하겠지.

장하영 부장에게 이 녀석이 이상성욕자라는 걸 보고받은 덕분에 미리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꽤나 곤란할 뻔했다.

안쪽으로 얼마 들어가지 않아, 민형택이 예약한 룸 앞에 도착했다.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대화 나누십시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윤설하가 고개를 꾸벅이며 나가려던 그때.

“어?”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나오며 손수건에 물기를 닦으며 우리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얼굴에 덕지덕지 탐욕이 묻어 있는 걸 보니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경기도지사, 민형택이다.

“오셨습니까, 검사님.”

어딘가 한구석 야비해 보이는 미소와 느물거리는 목소리.

그러고는 옆에 있던 윤설하를 보더니, 이내 음흉하게 입꼬리가 주욱 찢어졌다.

“이야, 검사님 벌써 초이스하신 겁니까?”

그는 능글맞게 눈썹을 들썩이고는.

“아니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냥 입구부터 따라서 접대하러 온 거겠네.”

민형택은 자연스럽게 윤설하에게 접근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뉴페이스야?”

말릴 새도 없이 그의 팔이 윤설하의 어깨를 감쌌다.

“오피스룩 콘셉트는 오랜만에 보는걸.”

윤설하의 어깨에 얹어 있던 민형택의 손이 스르르 그녀의 가슴으로 향했다.

내가 나서서 그를 제지하려던 그 순간.

“흥.”

윤설하는 민형택의 손을 탁 쳐 내고 스윽 다가와 나의 팔을 감싸며 자신의 품에 꼭 안았다.

“검사장님.”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콧소리를 냈다.

“저 사람이 남의 떡 탐내는데 가만히 있기예요?”

교태 부리듯이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말에 일부러 기침소리를 내자, 민형택은 실수했다는 듯이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검사님 애인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는 허리까지 숙이며 사과했다.

일단 나는 윤설하를 보며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네. 얼른 와요.”

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며 윙크까지 하고서 도도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밖으로 향했다.

민형택 경기도지사는 먼저 문을 열며 옆으로 물러났다.

“들어가시죠, 검사님.”

그의 얼굴에서 다시금 히죽 미소가 걸렸다.

아무래도 오늘 담판이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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