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52화 (252/341)

포섭 (4)

땅 투기.

흔히 말해서 있는 놈들만 독식하는 재산 불리기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돈 놓고 돈 먹기라고 하지만, 까놓고 말해 돈을 잃을 염려가 없는 건 사실이다.

웬만한 악재가 아니고서야, 수도권의 땅값은 쉽게 내려가지 않으니까.

게다가 아무 정보 없이 땅을 사는 건, 투기 축에도 들지 못한다.

호재를 알려 줄 정보, 땅을 살 돈, 걸리더라도 빠져나갈 인맥까지 삼박자가 모두 갖춰져야 제대로 투기를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법무부장관이나 되었으니 박창식은 그걸 모두 갖추고 있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 장하영 부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고양시에 1천 평이 넘는 땅을 구매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발제한구역으로 땅값이 오를 걱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2층짜리 건물을 제외하면 허허벌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당시 구입가는 70억 원으로 현재까지는 시세가 변하지 않은 상태.

박창식 측근의 말에 의하면, 그가 은퇴하고 가족들과 함께 살기 위해 마련한 땅으로, 텃밭으로도 쓰고 그의 손자 손녀들과 그들이 키우는 강아지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넓은 곳을 구했다고 한다.

나는 이곳을 타깃으로 삼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린벨트로 지정된 땅을 샀다는 건 투기의 목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박창식도 이 토지를 구매했을 테고.

그러나 투기가 목적이 아니라고 해서 박창식이 마냥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

본래 목적이 어떠했던 간에 땅을 산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땅값이 오르면 투기 의혹을 받기 마련.

그것도 땅을 구매한 사람이 고위 공직자라면, 국민들은 의혹이 아니라 확신을 품게 되겠지.

“장 부장.”

“예, 검사장님.”

“경기도지사와 자리 한번 마련해. 고양시장은 내가 직접 접촉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부동산 투기.

땅값이 오르지 않으면, 내가 직접 땅값을 오르게 만들면 된다.

그러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투자가 아닌 투기가 될 테니까.

법무부장관의 목을 서서히 옥죄어 나갈 시간이다.

***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사각 무테안경을 쓴 남자 하나가 힘차게 인사했다.

“반갑네, 공 검사.”

“만나서 영광입니다.”

그는 내 두 손을 잡으며 허리를 접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이 남자는 대검 중수부의 공상욱 검사.

다시 말하면, 박창식 장관을 칠 칼잡이.

짙은 눈썹에 날렵한 눈. 얼굴에선 호탕함이 드러나고 있다.

한눈에 이 녀석은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이름을 날릴 만한 그릇이라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보는 괜찮은 인재.

옆에서 공상욱을 섭외한 박기원 검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 친구가 다른 건 몰라도 담력 하나 만큼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최고입니다.”

칼잡이를 하기에 아주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뜻.

“그래?”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엉덩이를 붙였다.

“자고로 남자는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와 있어야 큰일을 할 수 있는 법이지.”

“감사합니다!”

“자네들도 앉게.”

“예.”

나는 다리를 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내가 이야기를 오래 끄는 걸 싫어하는 건 알지?”

공상욱은 눈을 번쩍 뜬 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람을 다루는 데에 누구보다 노련한 박기원 검사가 섭외했기에 신뢰도는 걱정할 것이 없다.

문제는 이 인간이 내가 원하는 대담한 짓을 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스스로 박기원에게 찾아와 내 라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만 해도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고검장으로 발령이 난 걸 알면서도 이쪽 라인을 탄다는 건, 사실상 도박이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여기저기 간을 보지 않고 한 번에 왔다는 건 뱃심 하나 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다.

게다가 긴장하긴 했어도 내 앞에서 떨지 않는 것만으로도 칼잡이 역할을 하기엔 충분할 터.

그러나 배짱을 한번 시험해 볼 필요는 있겠지.

“박 검사.”

내 시선을 받은 박기원 검사는 고개를 꾸벅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떠난 뒤, 단둘이 남게 되자, 여전히 긴장한 기색은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공상욱 검사는 떨지 않았다.

나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깊게 담배 연기를 내뱉은 뒤,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공 검사.”

“예, 검사장님.”

“자네가 성태현 라인이 아니라, 내게 붙었다는 건 야망이 있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지?”

그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무언의 긍정.

“지금 상황에서 내게 붙었다는 건 웬만큼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거거든.”

사실이었다.

원래 내 노선을 타는 녀석도 아니고, 대검 중수부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나는 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자네는 어디까지 가고 싶나?”

순간, 공상욱의 눈이 빛났다.

“검찰총장이 되고 싶습니다.”

그의 대답에서는 망설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 점수를 따기 위해 ‘검사장님의 오른팔입니다’와 같은 대답을 하는 나부랭이들과는 다르다.

이 녀석은 진짜배기다.

그렇기에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밟지 않는 것이다.

위험성이 있지만, 단번에 고속으로 승진을 할 수 있는 내게 붙은 거겠지.

나는 담배를 놓고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녀석의 얼굴을 보는 그 순간, 절로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만해.”

“……예?”

“그리고 아주 건방져.”

그는 본인이 실수했는가 싶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래서 굉장히 마음에 들어.”

그제야 공상욱 검사의 얼굴에 흥분이 피어올랐다.

마치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품에서 대포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저장해 둔 연락처는 하나야. 거기서 오는 전화만 받으면 돼.”

“예.”

“장하영 부장한테는 미리 전달해 놨으니까 먼저 지시 오기 전까지는 따로 연락할 것 없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 검사, 자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조소를 흘렸다.

“단순히 칼잡이로는 아까울 것 같은데.”

팔걸이에 올려져 있던 공상욱 검사의 손가락은 서서히 말려 들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나랑 같이 한번 일해 보자고.”

***

“오늘도 필라테스했어?”

-응. 이번에 새로 오신 강사님 실력이 엄청 좋으시더라고. 덕분에 금방 늘고 있다니까. 지금까지 배운 것보다 요 며칠 사이에 배운 게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몸도 여기저기 당기고…….

한지수의 몸엔 근육통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나나가 제대로 필라테스를 알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매일같이 다른 강사에게서 속성으로 배워 와서 그녀를 가르치고 있으니 자세가 완벽할 순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통증이 오는 것.

그러나 한지수의 입장에서 보기엔 그녀의 스펙이 화려한데 몸에 반응이 오니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네. 쌍둥이랑 우리 공주님은 잘 있고?”

-방금 전에 셋 모두 잠들었어.

“빨리 전부 들어왔으면 좋겠다.”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참아.

한지수는 슬쩍 속내를 꺼냈다.

-아, 참. 청와대에 당신 건강 관리해 주는 트레이너는 없지?

“응. 아직은 없는데…… 지금 필라테스 강사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한지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기왕이면 우리 대통령님도 함께 몸 관리하라고.

“그러면 그 사람은 내가 한번 알아볼게. 괜찮은 사람이면 우리 전담 트레이너로 붙일 수 있으니까.”

-고마워.

“그러면 일단 난 회의 중이라서 들어가 볼게.”

-이 시간에도 회의야? 오후 9시가 넘었는데.

“응. 신년에다가 임기 초반이라 너무 바쁘네.”

-끝나고 전화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늦을 수 있어. 먼저 자.”

-알았어. 파이팅!

성태현은 전화를 마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있던 예비 국무총리, 박형태 의원은 휴대폰을 보다가 다시 서류를 펼쳤다.

“통화는 잘하셨습니까?”

“예.”

그는 가볍게 웃으며 책상에 있던 서류를 덮었다.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죠.”

“그럴까요?”

박형태 의원도 서류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술이나 한잔하시겠습니까?”

박형태 의원이 술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묻자, 성태현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됐습니다.”

“당선되신 뒤로는 거의 술을 입에 안 대시는 것 같습니다.”

“자고로 음주에는 음악과 여자가 곁들여져야 제맛인데, 청와대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아, 그건 그렇죠.”

집무실은 물론이고, 청와대 자체에 함부로 그런 여자들을 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되어서 룸살롱이나 드나들 수도 없는 노릇.

성태현은 ‘대통령 성태현’이라고 쓰인 명패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자리가 다 좋은데 그런 점이 참 아쉽다니까요.”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버텨야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민생을 살피는 건 자신이 있는데.”

성태현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제 외로움은 달랠 길이 없네요.”

“한 달 뒤면 영부인께서 들어오시지 않습니까?”

“어찌 사내대장부가 여자 한 명으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둘은 마주보고 걸걸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박형태 의원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면 제가 조만간 한번 준비해 볼까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비서 중에서 재능이 있는 친구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역시 의원님…… 아니, 우리 총리님밖에 없다니까요.”

성태현은 음흉하게 웃음을 지으며 박형태 의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얼른 청문회 마무리하시고, 제 곁으로 오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님.”

***

“누구?”

민형택 경기도지사는 고개를 갸울이며 비서에게 되물었다.

“최서준입니다. 현재 서울고등검찰청장으로 있는…….”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물어본 거야.”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의자를 빙글 돌렸다.

“그 인간이 나를 왜 만나자고 할까?”

“글쎄요. 무슨 계략이 있는 거 아닐까요?”

“계략이 있어도 유분수지, 지금까지 나랑 접촉할 만한 면이 하나도 없었는데?”

민형택 경기도지사는 무엇 때문에 최서준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뼛속까지 대한당에 충성하고 있는 인물.

굳이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직속 비서를 통해 은밀하게 접촉을 요청한다는 건 수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인간, 지금 낙동강 오리알 신세 아니야? 이번에 총장도 못 달았잖아.”

“그러면 만나지 않겠다고 전할까요?”

“이 새끼야, 그러면 안 되지.”

민형택은 비서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혹시 알아, 나한테 도움이라도 될지? 그 인간 행동 하나하나에 수십억, 수백억이 왔다 갔다 한다고. 같이 일할지, 말지는 몰라도 무슨 일인지는 알아 둬야지.”

최서준 같은 거물이 움직이면 돈은 당연히 따라 움직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경기도지사 민형택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잇속을 따지는 계산적인 인물.

일단 돈 냄새가 나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만나 보자고 해. 대신 잔챙이 달지 말고 일대일로.”

“알겠습니다.”

“김 비서, 자네도 입단속 잘하고. 오 기사한테도 이야기하지 마. 내가 직접 차 몰고 갈 테니까.”

“예. 그러면 다음 주중으로 날짜 잡아 보겠습니다.”

“그래.”

민형택의 눈이 탐욕스럽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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