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섭 (3)
“대통령을 어떻게 꼬셔요?”
김나나는 몸을 뒤로 쭉 빼며 불만이라는 듯이 볼을 부풀렸다.
“누구든 내 남자로 만들 수 있다며?”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는 하소연하듯 말을 늘였다.
“그건 만날 수 있을 때 이야기죠. 대통령은 매일같이 청와대에 있을 텐데 내가 어떻게 만나요?”
“접촉할 수 있다면?”
“그러면 가능은 하겠죠. 대신 유부남은 하루 이틀로는 안 돼요. 특히나 대통령이나 되면 더 주의하고 신변에 더 신경 쓸 테니…….”
“그러니까 시간적 여유가 넉넉하고, 언제든 접근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소리지?”
“그런 조건이면 가능하죠. 근데 어떻게 그걸…….”
내 얼굴은 바라보던 김나나는 멈칫하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기억났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직접 날 가리키며 물었다.
“최서준 영감 아니에요?”
장하영 부장이 옆에서 매섭게 눈을 치켜뜨자, 김나나는 자신의 입을 때렸다.
“앗, 죄송. 입에 영감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검사님이요, 검사님.”
경찰은 짭새, 검찰은 영감 정도야 흔히 통용되는 은어 중 하나.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감흥도 없다.
“잠깐만, 대통령님이랑 검사님 둘이 가족 아니었나? 아니, 친척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근데 둘 사이에 불화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
“자세한 건 알 필요 없고.”
나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다시금 물었다.
“할 거야, 말 거야?”
“저한테 선택권이 있겠어요? 저는 무조건 콜이라니까요. 그런데…….”
김나나는 고개를 갸울이며 물었다.
“제가 대통령님한테 고자질하면 어쩌려고 이런 걸 저한테 제안하세요?”
그녀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검사보다 대통령의 권력이 더 센 건 확실하고, 그쪽에 붙는다면, 내가 제안한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보호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녀석이 중간에서 저울질하려는 걸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다.
어디서 감히 사기꾼 녀석이 검사의 머리 위에 올라설 엄두를 내?
“그러면 중국으로 보내야지.”
딱 잘라 말했다.
“아무리 대통령이 힘을 써도, 내가 이 자리 걸고 쫓아낼 거거든.”
중국.
그녀와 패거리가 핑크 다이아몬드를 훔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그 가치는 수백억이 넘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주인이 중국에서 부호일 터.
국가에 대한 입김도 꽤나 세겠지.
다시 말해 김나나와 패거리가 중국에 들어간다면, 사형을 당할 거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
그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내 이름을 들어 봤으니 내가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
김나나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걱정 마세요. 나도 굳이 위험 부담을 안고 싶진 않으니까.”
그녀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팔을 무릎에 올렸다.
“이런 게 훨씬 더 짜릿하니 재밌기도 하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청와대로 보내려고요?”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김나나 씨 몸 좀 유연하신가?”
“왜요?”
그녀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혹시 대통령님이 아크로바틱한 자세를 좋아하시나?”
김나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쭉 뻗었다.
“나름대로 유연하긴 하죠. 남자들이 라인에 환장하니까 몸은 좀 만들었거든요.”
나는 장하영 부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장 부장.”
“예, 검사장님.”
“그때 내가 지시했던 거 어떻게 됐어?”
“전원 매수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즉시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김나나를 바라보았다.
“김나나 씨, 내일부터 필라테스 좀 배우자고.”
***
“아, 그만두신다고요?”
-네, 죄송해요. 저희 남편이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서 급하게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거든요.
전화를 하던 한지수는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축하드려요. 그런데 너무 아쉽네요. 적어도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더 배우고 가려고 했는데…….”
한지수가 통화하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그녀의 전담 필라테스 강사.
실제로 그녀는 아이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 두 달 간 본가에서 지낸 뒤에 청와대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수는 셋째를 낳은 이후부터 몸매 관리를 위해 다니고 있었던 필라테스 학원도 끊지 않고 계속해서 다니고 있는 상태.
국민들이 보기에 오히려 중간에 그만둔다고 하면,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가족들이 변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계속해서 다니고 싶어 했던 탓이 컸다.
물론, 청와대에 들어가면 필라테스를 배우기 위해 나오는 게 불가능한 만큼,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수업을 듣는 게 낫다는 주변인의 조언도 있었고.
최서준은 한지유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성태현에게 복수하기 위함도 있지만, 단순히 그를 미워해서 가정을 파탄 낼 생각으로 움직인 건 아니었다.
실제로 성태현이 과음을 하고 난 다음에는 꼭 여자들이 나오는 룸살롱이나 업소에 들렀던 건 고성탁의 증언을 통해 최서준도 알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동서 지간인 최서준 자신에게 함께 업소에 가자고 제안까지 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처제가 안쓰러웠지만,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게 늘 마음에 걸렸던 건 사실.
성태현은 몰라도, 가족과 같은 한지수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평생 살아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러면 수업은 폐강되는 건가요?”
한지수 입장에서는 청와대 입성까지 이제 겨우 한 달하고도 1주일밖에 남겨 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필라테스 강사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니, 계획이 붕 떠 버렸다.
-아니요. 그래서 저 대신에 더 능력 있는 친구를 섭외해 뒀습니다.
“그래요?”
-네. 저보다 훨씬 더 능력 있는 강사예요. 미국에서 체조를 배우기 위해 유학까지 다녀왔거든요.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
강사는 지시받은 대로 슬쩍 이야기를 흘렸다.
-필라테스는 물론이고, 라인 관리 등에 관련해서는 정말 업계에서 알아주는 친구거든요. 남은 기간 동안 배우시다가 마음에 들면,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가셔도 돼요.
“그게 무슨 뜻인지…….”
-대통령 내외의 건강한 운동을 책임지는 전담 트레이너로 말입니다. 실제로 전 대통령님과 그 전에도 청와대에는 늘 각종 분야의 트레이너들이 있었으니 모셔 가는 건 가능할 겁니다.
그녀는 능청스레 말을 덧붙였다.
-영부인님만 필라테스를 하셔도 좋지만, 대통령님도 함께 몸의 근육을 풀어 주는 건 굉장히 릴렉스하는 데 좋거든요. 건강관리는 덤이고요.
한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도 남편이 업무와 술자리만 반복했던 터라, 그의 건강이 나빠지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몸이 피로해서 근육을 키우는 헬스 같은 건 불가능하니,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운동은 가끔씩 해도 좋을 터.
무엇보다 아직까지 영부인으로서 그렇다 할 특혜를 누리지 않았던 만큼 나름대로 전담 트레이너를 갖고 싶은 욕구도 생겨났고.
-물론, 영부인님께서 새로운 강사가 마음에 들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건강관리 잘하세요.
“예. 강사님도 미국에서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전화를 마친 한지수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실내에 들어섰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매트에서 간단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10분쯤 지났을까.
앞쪽 문이 열리며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매혹적이고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이 등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요가복을 입은 여자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을 소개했다.
“오늘부터 새롭게 레슨을 맡을 제니퍼 강이에요.”
“안녕하세요. 한지수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편하게 제니퍼라고 불러 주시면 돼요.”
“아, 네. 저도 이름으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박 선생님 말을 듣기로는 대단하신 분이라던데…….”
“아니에요.”
김나나는 능청스레 손을 저어 놓고 이내 말을 이었다.
“혹시 궁금하실까 봐 말씀드리면, 미국의 대학에서 Rhythmic gymnastics…….”
그녀는 능숙한 영어 발음이 몸에 밴 양, 일부러 발음을 꼬며 고급스럽게 말했다가 실수한 척 고개를 저었다.
“아니, 리듬체조와 발레를 전공했었어요. 졸업할 즈음부터는 뉴욕시티 발레단에서 2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필라테스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익혀 왔기에 국내와 해외를 통틀어 자격증은 6개를 갖고 있고요.”
“아, 그렇군요.”
스펙에서 압도당한 한지수의 눈에는 벌써부터 신뢰가 담기기 시작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강사님.”
김나나는 티 없이 순수하고 맑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지수 씨.”
***
성태현에게 폭탄을 안길 준비는 끝이 났다.
남은 건 김나나가 얼마나 한지수의 마음을 잘 사로잡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야만 청와대에 들어가, 준비한 계획을 이행할 수 있을 테니까.
김나나의 현재 신분은 이미 제니퍼 강, 한국 이름으로는 ‘강한나’라는 새로운 인물로 세탁시켜 뒀고, 남을 속이는 건 그녀의 특기인 만큼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무난하게 진행이 될 터.
그쪽은 김나나에게 맡겨 두고 이제 나는 다음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
작전명, 빈집 털이.
그 첫 번째 타깃은 법무부장관 박창식.
아직까지는 한창 청문회가 진행 중이지만, 그렇다 할 만한 문젯거리가 나오지 않은 채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그의 장관 임명은 시간문제라는 결론이 내려진 상황.
이제 내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가 직접 구해 주며 마음을 사로잡으면 되겠지.
“장 부장.”
“예, 검사장님.”
“슬슬 작업 시작해야지.”
나는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건넸다.
“대검 중수부에 있는 공상욱 검사야.”
공상욱 검사.
장하영의 후임 자리를 두고 남민제 검사와 대결하다가 대검에 들어갔던 박기원 검사가 섭외한 인재.
칼잡이로서 박창식 장관을 난도질할 인물이다.
일을 맡기는 건 확정되었지만, 내일 직접 만나서 한 번 더 확인해 볼 생각이다.
“뒷면에 대포폰 번호가 적혀 있으니 내가 지시 사항 내리면 그걸로 연락하면 돼. 자네도 준비해 뒀지?”
“예.”
그녀는 가슴팍에 있는 속주머니를 두드렸다.
“이번 일을 위해서 새로 준비해 뒀습니다.”
대포폰과 대포폰으로 연락할 테니, 문제는 없고.
“리스트 한번 보자고.”
장하영은 비장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보고서를 건넸다.
“범죄와 연루될 가능성이 있는 목록은 전부 뽑아 왔습니다.”
박창식을 곤란하게 만들 범죄 리스트.
군대, 선거, 과거 발언, 자식들의 부정 입학 등 다양한 내용이 있었지만, 그중에 눈을 사로잡는 건 단 하나였다.
누구나 저지르고 싶지만, 할 수 없고.
특정인에게 선택되어 정보를 입수한 소수만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나는 리스트의 가장 마지막 줄에 있는 그것을 가리키며 입꼬리를 거칠게 말아 올렸다.
“땅 투기로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