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50화 (250/341)

포섭 (2)

“……최, 최서준 검사?”

내 얼굴을 본 박형태 의원은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다가 의원님 계신다길래 잠깐 들렀습니다.”

“시, 신 대표는 그러면…….”

“잠깐 전화가 와서 담배 좀 태우고 온다고 했습니다.”

나 보고 먼저 들어가서 박형태에게 겁 좀 주라고 했으니 적어도 내가 먼저 나가기 전까지는 들어올 일은 없겠지.

“크흠.”

그는 어색하게 기침을 하며 엉덩이를 붙였다.

“오늘 낮에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던데…… 바쁘셨나 봅니다.”

박형태 의원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최 검사와 길게 이야기하는 건 힘들어. 자네도 알잖나, 지금 상황.”

그 말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생 함께 가자며 얼싸안고 파이팅을 외치던 인물이 이제는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도 힘들다니.

“암, 그러시겠죠.”

나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면 오래 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나는 테이블에 팔을 걸치며 녀석에게 몸을 기울였다.

“성태현이 국무총리 자리라도 챙겨 준답니까?”

순간, 박형태 의원의 얼굴에 당황한 기운이 차올랐다.

역시나 이 인간이 선택되었던 모양.

그러나 아직 엠바고가 걸려 있는지 그는 대답 대신 술잔을 들이켰다.

그래, 목이 타겠지.

“어차피 1주일 내로 언론에 밝혀질 거 아닙니까?”

나는 내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제가 민국당에 얼마나 기여했는데 이 정도는 알려 주실 만하지 않습니까?”

박형태 의원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국무총리직을 맡기로 했네.”

그럴 줄 알았다.

이런 떡고물을 챙겼으니, 그렇게 입을 싹 닫고 날 외면한 것이겠지.

충분히 그럴 만하다.

국무총리라면 그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었을 테니까.

게다가 민국당의 실세를 데려가면 나머지 의원들은 자연스레 따라올 테니 성태현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그러나 이 인간이 국무총리가 된다면, 여기서 단순히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 인간이 내 빈집 털이 작전의 타깃 중 하나가 된다는 뜻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입 싹 닫고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네만…… 국무총리라면, 대통령의 바로 밑에서 움직여야 하잖나. 내 입장도 헤아려 주게.”

“아무렴, 그래야죠.”

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서 놀란 표정이 드러났다.

분명 욕을 하거나 상을 뒤집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박형태는 언젠간 내 편으로 회유해야 할 인물.

내 먹잇감이 나를 경계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제가 성태현이라도 그랬을 겁니다. 의원님을 데려가야 민국당의 실권을 장악할 수 있을 테니까요.”

“…….”

“그 대신 딱 하나만 알려 주십시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하면 갈 텐가? 자네와 오래 있으면 조금 불편해서…….”

“그러도록 하죠. 대신 솔직하게 말해 주셔야 합니다.”

“약속하지.”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차갑게 그를 쳐다봤다.

“성태현이 언제 약속했습니까? 국무총리를 주겠다고.”

“그게…….”

박형태는 말을 길게 늘이며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쾅!

나는 상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테이블에 있던 접시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박형태 의원의 눈에 꽂혀 있었다.

“머리 쓰지 말고 사실대로 답하십시오.”

그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그의 시선은 내 주먹을 흘긋 향했다.

“서, 선거운동 시작하기 직전에…….”

피식.

속에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그랬다는 거지.

“알겠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기 전, 뒤돌아선 채로 그를 향해 말했다.

“의원님. 아니, 국무총리님.”

“그, 그래, 최 검사.”

“저는 국무총리님과 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

“그렇다고 마냥 도와달라는 건 아닙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가 온다면, 그때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화하자, 이게 전부입니다. 국무총리님께 악감정은 없으니까요.”

“……알겠네.”

“그러면 좋은 시간 되십시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왔다.

담배를 태우고 있던 신용호는 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곧장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방금 박형태 의원에게 물어본 질문을 통해 확실해졌다.

성태현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움직인 것이다.

국무총리로 박형태 의원을 내정하고 움직였다는 건, 다른 당과의 화합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갈라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

다시 말해, 처음부터 내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해 놓고서 나를 비롯한 특수부와 신용호 등에게 온갖 도움을 받아 당선이 되었다는 거지.

제대로 이용당한 것이다.

“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젠 배신감에 치가 떨리는 걸 넘어,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내 모습이 우스워질 지경.

그 덕분에 남아 있던 일말의 고민마저 사라졌다.

같은 가족으로서, 동서 지간으로서, 한때 같은 꿈을 향해 달려왔던 동료로서 남아 있던 그 자그마한 미련까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성태현을 무너뜨리는 데에 있어 죄책감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

그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만이,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사실에 대한 유일한 복수이자, 완벽한 보상이 되겠지.

조금의 희망도 품지 못하도록.

재기할 수 있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비참하고 처절하게 녀석을 짓밟아 줄 것이다.

***

2027년 1월.

내 직책은 서울중앙지검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은퇴 코스에 들어선 것이지.

그러나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녀석이 원하는 은퇴 전에 이 판을 뒤엎어 줄 테니까.

“검사장님.”

고검이라서 다행인 점이 하나 있긴 했다.

“장하영 부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의 바로 뒤 건물이라서 언제든지 특수부와 접촉할 수 있다는 사실.

물론, 새로 부임한 서울중앙지검장이 성태현의 직속 라인을 타고 있는 인물이라서 특수부에 대해 온갖 견제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로 흔들릴 만한 특수부는 아니기에 걱정은 없었다.

“장 부장이 아침부터 왜?”

“지시하신 일 중에서 두 번째 일의 적임자를 찾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일이라면…… 필시 성태현에게 안길 폭탄일 터.

나는 외투를 옷걸이에 걸다가 멈추고 윤설하를 돌아봤다.

“지금 장 부장 어디 있습니까?”

“특수부 사무실에서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바로 가도록 하죠.”

나는 다시금 외투를 입고 중앙지검으로 향했다.

걸어서 1분 30초.

그게 고검과 중앙지검의 거리였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특수부 검사들은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직책만 바뀌었을 뿐, 특수부에 대한 나의 영향력도 여전했다.

“어, 장 부장은?”

“조사실에 있습니다.”

검사 하나가 가리킨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장하영 부장은 이중 거울을 통해 조사실 안에 있는 인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검사장님 오셨습니까?”

“어, 저 친구야?”

“예.”

그녀는 곧장 프로필이 적혀 있는 보고서를 내게 건넸다.

“얼마 전에 특수부에서 검거한 녀석인데, 일단 이 친구 패거리를 잡는 데 동참하는 걸로 형량의 1/3을 감소시키는 걸로 협상을 해 뒀다고 합니다. 왠지 이번 일에 적합할 것 같아서 제가 데려왔고요.”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알겠습니다.”

나는 그대로 조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 이번엔 남자분이시네?”

여자의 교태 섞인 콧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표정의 변화 없이 그대로 보고서를 읽어 나갔다.

“스물일곱에 사기 전과 6범에 인터폴 적색 수배까지 받고 있고…….”

서류를 보니 가관이다.

“해외에서도 꽤나 날렸나 보네.”

“조금?”

여자는 눈을 찡긋했다.

“이름은 김나나…… 이거 본명이야?”

“그럼요. 이름도 예쁘죠?”

고개를 들자, 김나나는 언제 다가왔는지, 테이블 위로 가슴을 내민 채 턱받침을 하고 있었다.

“딱 봐도 뻔하네. 얼굴로 홀렸구먼.”

“네.”

그녀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얼굴로 꼬시면 누가 안 넘어오겠어요?”

“현상 수배로 2년이나 걸려 있었는데 이제야 잡힌 거야?”

김나나는 자신의 볼을 만지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네. 누가 이 얼굴 보고 사기꾼인 줄 알겠어요?”

말하는 걸 보니, 진짜배기 사기꾼인 건 확실하다.

게다가 본인이 말하는 대로 확실히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겼다.

전형적인 미인상.

지나가다 보면 웬만한 남자들은 한 번쯤 뒤돌아볼 정도랄까.

거기다가 여우짓이 몸에 배어 있으니 한 번 지목당하면, 남자들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패거리도 있다며.”

“네. 전부 숨은 것 같지만.”

이런 타입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신변잡기로 수사 이야기부터 뱅 둘러서 들어가야 한다.

“남자들은 어떻게 후린 거야?”

“쉽죠, 뭐. 낮에 길가나 상점에서 한 번 부딪쳐서 얼굴 각인시키고. 그날 저녁에 호텔 라운지나 칵테일 바 같은 데서 우연히 만난 척하고 하룻밤만 보내면 게임 끝. 이 쉬운 걸 왜 안 하나 몰라?”

김나나는 머리카락을 배배 꼬다가 낮게 탄식을 뱉었다.

“그러면 다 넘어오나?”

“네. 제가 예쁜 것도 모자라서 테크닉까지 죽여주거든요. 하룻밤만 보내면 뭐든 준다고 애원한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테크닉은 폭탄주 타는 기술이니 오해하지 말고.”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또다시 윙크를 했다.

교태가 아주 몸에 뱄다.

“그렇게 잘나가면 패거리는 왜 필요해?”

“에이, 마음 홀리는 것만으로는 100% 다 가져올 수 없잖아요.”

김나나는 수갑 찬 팔을 쭉 뻗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건 그렇고 저 손목 아픈데 이것 좀 풀어 주시면 안 돼요?”

“이야기 들어 보고.”

“히잉…….”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큰 목표가 있잖아요. 몇 년 전에 저희가 중국에서 훔친 핑크 다이아몬드 같은 거.”

“그게 얘네 짓이었어?”

장하영 부장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총 7인조로 움직였습니다.”

“나 설명해도 되죠?”

“그래.”

“거기 관장인지, 보안실장인지 뭔지 하는 인물이 있는데, 걔를 제가 꼬셔서 카드 키만 몰래 슥 복사하면 게임 끝이죠. 출입만 할 수 있으면, 나머지는 영화에서처럼 보안 뚫고 멋지게 들어가서 훔쳐 오면 되니까.”

말이 쉽지, 온갖 최첨단 장비를 사용해 며칠 동안 작업한 것이다.

그 덕분에 해외 토픽으로 며칠이나 보도되었었지.

“남자들은 단순해서 좋다니까. 진짜 세상 살기 편했는데…….”

철그렁.

“이거 차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야.”

김나나가 말하는 걸 보면, 남자의 마음을 이용하고 후려치는 것에 대해 죄책감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합격이다.

성태현에게 줄 폭탄으로는 아주 완벽한 합격.

“그나저나 우리 검사님, 참 잘생기셨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몇 살이에요?”

김나나가 내게 손을 뻗으려 하는 걸 팔로 쳐 내고 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찍은 놈이면 누구든지 꼬실 수 있다, 이거지?”

“그럼요. 얼마든지.”

그녀는 자신감 넘치게 웃더니.

“못 믿겠으면…….”

김나나는 목소리에 바람을 가득 넣어 끈적이게 말했다.

“우리 검사님도 한번 홀려 볼까요?”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가슴골을 드러내기라도 할 기세로 옷깃을 내리려고 한다.

“그건 됐고.”

그녀의 팔을 잡아 테이블에 올렸다.

“한 명 꼬실 수 있겠어?”

김나나는 연신 눈을 깜빡이며 날 바라봤다.

“그러면 뭐 해 줄 건데요?”

나는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번 일 맡는 즉시 인터폴 적색 수배 풀어 주고, 성공할 시에는 너희 패거리들을 잡는 여부에 상관없이 한국에서 형량은 모두 없애 주지.”

“진짜?”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말이죠?”

“그 정도면 할 만하지?”

“콜. 콜. 나는 무조건 콜이지. 그 정도 조건이면 대통령도 꼬시겠다.”

내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그러면 한번 꼬셔 봐.”

“……응?”

“대통령 말이야. 너한테 죽고 못 사는 인간으로 만들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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