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 (2)
“빈집 털이요?”
“예. 그런데 자세히 설명드리기 전에…….”
휴대폰을 넣어 두고 다시금 대화를 이어 갔다.
“우선 고성탁 씨가 해 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기 무섭게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의지를 불태웠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성태현의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대통령직을 차지한 인물을 좀먹기 위해서는 그의 주변 인물부터 차근차근 끌어와야 한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건처럼 실수가 생겨서는 안 됩니다.”
고성탁은 자신의 과오가 떠오르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성태현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 건, 그가 제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100% 신뢰할 순 없었다.
까놓고 말해서 고성탁은 이미 한 번 실패한 인물이니까.
그로 인해 지금 같은 상황이 펼쳐진 것이고.
그러나 순전히 고성탁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격변하는 정치 상황에 의해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훨씬 더 이르게 성태현이 대권을 거머쥐었고, 그로 인해 계획이 틀어진 걸 누구 한 명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단순히 실패했다고 녀석을 내치거나 버릴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가 100%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기에 그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만약 제 정체를 모르는 녀석들이라면 어떤 인물이라도 가능합니다.”
고성탁은 주먹을 꽉 쥐며 말을 보탰다.
“지정만 해 주신다면, 제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아니,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되물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진심입니다.”
“정말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겁니까?”
목숨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진중하게 묻자, 고성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그는 결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예. 제가 물을 엎질렀으니, 직접 주워 담겠습니다. 한 번만 더 믿어 주신다면 꼭…….”
고성탁의 목소리에선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은 아닐 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체를 들었다.
“본인의 정체만 모르면 누구든 다 설득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자신 있어요.”
“하지만 지금 고성탁 씨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성탁은 선거일이었던 어제를 포함해 이미 2번 라인에 얼굴을 몇 번이나 비춘 경력이 있는 인물.
그것도 모자라, 특히 한동안 성태현을 보필하면서 그의 측근들에게 얼굴은 훤히 알려진 지 오래다.
그런데 이번 작전의 타깃들은 전부 성태현의 최측근.
그들이 성태현을 모를 리 없을 테지.
하물며 그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고성탁이 접근한다면 성태현이 알아채고 주의하라고 일러 줄 터.
사실상 고성탁이 누군가에게 은밀하게 접근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한 사실들은 나보다도 고성탁 본인이 더욱 잘 알고 있을 테고.
그는 지푸라기를 잡듯이 외쳤다.
“그래도 만에 하나 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에는 ‘만약’이란 단어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한 번 더 실패한다면, 고성탁은 물론이고, 나까지 전부 쓸려 나갈 테지.
“그리고 이번 타깃들 또한 성탁 씨가 신의 손이었다는 정체를 알고 있을 겁니다.”
일련의 상황들은 한마디로 고성탁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예?”
고성탁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를 아는데 어떻게 눈치를 못 챌 수가 있습니까?”
“죽을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 하셨죠?”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얼굴 한번 갈아엎으시죠.”
순간 그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눈, 코, 입 그리고 턱과 얼굴 윤곽까지 전부. 수술하는 동안 제가 신분은 세탁해 두도록 하죠. 성탁 씨는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가 활동할 수 없는 이유는 상대방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용한다는 걸 알면서도 당하는 멍청한 녀석들이 이 정치판에서 살아남았을 리 없으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른다면?
이 바닥에서 정점까지 찍어 놓고 쓸려 나가는 인물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
그런데 고성탁이 완벽하게 바뀌어 새로운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면, 아무리 가까운 인물이라도 쉽게 눈치챌 수가 없겠지.
“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고성탁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아니, 하게 해 주십시오. 어쨌든 간에 일이 이렇게 된 건 제 탓이 가장 크니, 제가 책임지고 나서는 게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주변을 정리해 주세요.”
“예. 가족은 병원에 계신 노모 한 분이 전부라…….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수술할 병원은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고성탁은 눈을 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러면 성형 후 복귀하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릴 텐데 그 동안은 어떤 걸 하면 되겠습니까?”
“고성탁 씨가 도와줄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가볍게 입술을 비틀었다.
“조만간 그 친구를 통해서 연락드리죠.”
“알겠습니다.”
“윤설하 씨.”
“예, 검사장님.”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윤설하가 내 곁에 다가와 섰다.
“사흘 뒤부터 제가 고성탁에게 크게 실망하고 쫓아냈다는 뉘앙스의 소식을 은연중에 흘려주십시오. 그리고 고성탁은 제 노여움을 피해 지방에 도망가서 숨어 살기 시작했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상황 준비는 여기까지 하고…… 작전에 관해 알려 드리죠.”
나는 상체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 특성상, 성태현은 국내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G7이나 G20과 같은 정상회담이라거나 FTA, 한반도 안보 문제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국외로 출장을 가는 상황이 생기죠.”
눈을 빛냈다.
“그때를 노리는 겁니다.”
“말 그대로 빈집 털이군요.”
“맞습니다.”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실무가 마비되는 건 아니다.
그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국가의 2인자인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그의 업무를 처리하게 되니까.
“그렇다면 국무총리만 저희 쪽으로 끌어들이면 되겠습니까?”
“아니요. 타깃은 총 세 명입니다.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 그리고 대검찰청 차장검사까지.”
목표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고성탁은 내 목적을 눈치챘다.
“……대검에 가시려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 세 명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게 된 이후, 대통령이 해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청와대를 비운 순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사표를 내고.
법무부장관은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보직으로 나의 승진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며.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해 이를 승인하는 그림.
이것이 내 작전이다.
마음 같아서는 검찰총장으로 직행하고 싶지만, 검찰총장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제청하고 임명한다고 갈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청문회와 국회 승인 등을 거쳐야 오를 수 있는 자리.
그렇기에 이러한 작전을 통해서는 검찰의 2인자인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최선이다.
대검찰청 차장.
나를 대신해 올라간 김구본 검찰총장의 턱밑에서 그와 성태현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게 되겠지.
우선은 그 자리에 가야 검찰에서 더 버티고 나서 검찰총장에 오를 수 있게 될 테니까.
고성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검사님,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세 명까지는 힘들 것 같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고 프로님이 작업할 사람은 국무총리 한 명뿐입니다.”
“나머지는…….”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물론이죠. 게다가 국무총리 작업 또한 제가 옆에서 충분히 도와드릴 테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신중하게 생각을 마치고 눈빛을 불태웠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실망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반드시 검사님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고성탁과 손을 굳건하게 마주잡았다.
오늘이 성태현에게 복수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터.
끝내 녀석은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기필코.
***
“검사장님, 제가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두형은 죄책감에 깃든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중간에 물러나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까지는…….”
“아니야. 자네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이두형 차장은 강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희는 끝까지…… 아니, 영원히 검사장님과 함께하겠습니다.”
“고맙네.”
“저뿐만이 아닙니다.”
장하영 부장이 뒷말을 이었다.
“저희 둘을 포함해 특수부의 모든 검사들이 검사장님과 생사를 함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 선거 전이나 지금이나 저희는 영원히 검사장님뿐입니다. 이번 발령으로 검사장님께서 고검으로 옮겨 가셔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다면, 언제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
고검장으로 발령이 날 거라는 소식 또한 이미 퍼진 모양.
“고마워.”
“미약하지만,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자네들이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 있어.”
나는 고개를 들어 확신에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2년 뒤에 대검 차장검사가 된다.”
그녀는 토끼 눈이 되어 날 바라봤다.
“그리고 그 2년 뒤에 검찰총장이 될 거야.”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엔 대한민국의 정상에 오르겠지.”
일말의 불안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단순히 검찰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집어삼킬 걸세.”
그들은 눈을 빛내며 날 바라봤다.
“그리고 그 위대한 대장정에 자네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어.”
이두형과 장하영의 어깨에 내 손을 얹었다.
“내 오른팔과 왼팔로서 말이지.”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검사장님!”
“감사는 무슨.”
나는 손을 가볍게 저으며 그들의 허리를 세웠다.
지금은 채찍이 아닌, 당근을 줄 시기.
이 둘과 특수부를 시작으로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성태현을 쓰러뜨리고, 더 높게 도약할 수 있을 테니까.
담배를 하나 꼬나물자, 장하영 부장이 담뱃불을 붙여 주며 물었다.
“검사장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검찰총장이 아닌, 대검 차장을 다음 행보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엔 왜일 것 같나?”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조소를 지었다.
“한 번에 너무 큰 걸 먹으려다가 체했거든. 아니, 목에 걸렸지.”
듣고 있던 이두형은 이를 지르물었다.
“그럼 어떡해, 일단 살려면 뱉어야지. 토해 내야 숨을 쉴 수 있으니까.”
“…….”
“근데 뱉었다고 버려? 침 좀 묻었다고 못 쓰는 건 아니잖아.”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잘 닦아야지. 그리고 목에 걸리지 않도록 잘 쪼개서 하나씩 입에 넣는 거야. 야금야금, 꼭꼭 씹어서. 그렇게 내 걸로 소화를 시켜야지.”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나름대로 진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평정심을 되찾지 못한 모양.
“후우.”
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담배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나직이 그를 불렀다.
“이 차장.”
그는 담배를 입에서 떼어 낸 뒤, 등 뒤로 숨기고 날 바라봤다.
“예.”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나는 그의 옷깃을 탁탁 털며 입을 열었다.
“두형아.”
“네, 검사장님.”
“너 배지 한번 달자.”
“……예?”
나는 담뱃불을 벽돌에 짓이기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여의도 한번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