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45화 (245/341)

업보 (9)

한지유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던 그때.

띠리리링-.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신의 손, 고성탁.

“예, 최서준입니다.”

-검사님, 드디어 저희가 해냈습니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기쁨에 절어 있다 못해 떨리고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보다 성탁 씨가 더 고생하셨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휴대폰 너머로 다른 이들의 웃음소리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역시나 그쪽은 축제 분위기인 모양.

-후보님은…… 아니, 이제 당선인이네요.

“그럼요. 100% 개표가 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확정만 찍어 주면 임기가 시작되니, 바로 내일부터 대통령입니다.”

-정말 꿈만 같습니다.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대통령 동서님은 뭐 하고 있습니까?”

-이제 당선 수락 연설하기 위해 이동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아마 장소는 광화문이 될 것 같고요.

“그렇군요.”

-지금 비서진들 통해서 라인분들에게 연락 돌리고 있습니다. 저희가 늘 가던 그곳에서 거하게 판을 벌린다고 하니, 검사님도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거기서 감사한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기도 하고요.

말이 좋아 감사함을 전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대통령 당선인의 속내를 듣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이번 선거에서 크게 도움을 준 이들을 특정해서 감사 인사를 한다는 명목하에, 새로운 인사 결정에 대해 언질을 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새 정부의 내각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 미리 통보해 주는 거랄까.

이런 사람들이 날 도와줬고, 주요 자리를 차지할 테니 알아서 줄을 설 수 있도록 라인 사람들에게 일러 주는 것이지.

까놓고 말해 당선 퍼포먼스라고 봐도 무방했다.

“대통령님은 연설 끝나고 오시는 겁니까?”

-예. 명목상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에, 당선 수락 연설 직후 집으로 돌아갔다가 비서진 차를 타고 호텔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거기서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한지유가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가야 돼?”

“응. 오늘은 날이 날이니까.”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말리지 않았다.

그곳이 어떤 자리인지는 한지유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내 옷까지 챙겨 주었다.

“잘 다녀와, 오빠.”

“먼저 자고 있어. 늦을 거야.”

“응. 지수랑 통화라도 해야겠다.”

“그래, 그렇게 해.”

나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해 주었다.

“다녀올게.”

나는 서둘러 양복을 차려입고 호텔로 나섰다.

***

“이게 누구야, 대통령 동서님 아니신가?”

“하하하, 아닙니다. 저는 평범한 검사일 뿐이죠.”

“아니죠. 누가 검사장님을 일개 검사로 보겠습니까?”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최서준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검사를 넘어 이제는 대통령의 가족인 실세 중에 실세였으니까.

국회의원 하나가 슬쩍 내 어깨를 주무르며 입발림 소리를 했다.

“이제 드디어 총장 소리를 들으시는 겁니까?”

“에헤이!”

나는 스읍 숨을 들이마시며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야 뭐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할 뿐이죠.”

“하하하, 역시 검사님이십니다.”

“검사님.”

시의원 하나가 공손하게 내게 다가와 샴페인 잔을 내밀었다.

“한잔하시죠. 오늘 같은 날, 취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럴까요?”

나는 잔을 받아 들어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머리 위로 잔을 올렸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권을 위하여.”

“위하여!”

샴페인을 한 모금에 털어 넣었다.

달달한 알코올 향이 입안에 퍼짐과 동시에 탄산이 시원하게 목을 긁고 지나갔다.

그 어느 때 마셨던 고급 양주보다도 훨씬 더 고급스럽고 감칠맛 나는 술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

“대통령님 오셨습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동시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당선 수락 연설을 마치고 온 성태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당당하고 기세가 등등했다.

그를 보니 내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기 시작할 정도.

성태현은 손을 뻗어 여유롭게 인사하며 단상으로 향했고, 그가 걷는 길은 모세의 기적처럼 일사불란하게 갈라졌다.

“감사합니다.”

그는 거침없이 단상에 올랐고, 준비된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외쳤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성태현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넘치고 우렁찼다.

따라온 비서진과 의원들은 펑- 소리가 나도록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들은 격식 없이 샴페인을 흩뿌렸고, 이내 성태현도 흠뻑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그에게서 불쾌함을 찾아보기는커녕, 입가에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여러분 덕분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축제.

모든 이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 있었고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린 이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 수치가 높은 장소를 꼽자면, 누가 뭐래도 이곳이 될 것이다.

한참 동안 그는 기쁨과 감사를 표했고.

단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늙은이들의 기력이 다해 어느 정도 분위기가 소강되었고, 그제야 성태현은 본격적인 감사 인사를 시작했다.

다들 이걸 들으려고 이곳에 모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 또한 그랬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렸습니다. 그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더 나은 학생들로 만들어 주는 건 성동구의 황선형 의원님이 제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부 장관으로 황선형 의원을 임명하겠다는 소리다.

어느 부서인지 직접적으로 가리키지 않는 이유는 하나.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여기서 대화 내용이 누출되었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말하면 반대당에서 물고 늘어질 순 있더라도, 실제로 어떠한 잘못으로 꼬집을 순 없을 테지.

“또한, 대한민국의 과학을 이끌기 위해서 오중식 순천시장님께서 한국판 NASA를 만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장관은 오중식.

성태현은 이미 모든 자리를 결정해 놓은 듯, 거침없이 말을 해 나갔다.

“김미연 대표님이 우리나라의 양성평등을 실현해 주실 수 있는 적격자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김미연.

“안지훈 참모총장님은 국방의 안전과…….”

그렇게 그는 한참 동안 새롭게 임명할 장관들에 대한 언질을 준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제를 꺼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법을 수호하며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실 분입니다.”

드디어 나왔다.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겨우 참고 있었다.

“현재 법무부에 계신 박창식 차관님께서 대한민국이 더 튼튼한 법치국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선 법무부장관은 박창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검찰을 이끌어 범죄자들에게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 주실 인물은 바로…….”

검찰총장.

나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할 준비를 했다.

그때, 성태현과 나의 눈이 마주쳤고, 그는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아니, 비틀었다.

한쪽만, 아주 음흉하게.

그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성태현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획 돌리며 반대편에 있던 한 남자를 보고 외쳤다.

“김구본 검사님이십니다.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있으셨던 경력을 살려 앞으로도 검찰의 앞에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성태현의 시선은 여전히 김구본에게 꽂혀 있었다.

몰래카메라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표정이 얼어붙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고.

“아, 술이 더 없나…….”

내 옆을 지키던 의원들은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머리 회전이 전혀 되지 않았다.

성태현의 사촌동생인 성진현도 아니고 김구본?

어이가 없어 헛웃음도 나지 않았다.

“저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성태현은 무슨 특별한 일이 있냐는 듯 태연하게 연설을 이어 갔다.

확실한 건 하나.

성태현 이 개자식이 내 뒤통수를 친 것이다.

***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도저히 사람들 사이에서 평정심을 잡고 있지 못할 것 같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옆에서 나를 추앙하던 인물들은 사라지고 내 곁에 남은 건 신의 손, 고성탁뿐이었다.

그러나 차마 목구멍으로 말이 나오지 않아, 계속해서 양주만 들이켜고 있는 상태.

당장이라도 성태현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쥐어흔들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저도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그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양주를 들이마셨다.

고성탁은 도저히 가만히 못 있겠는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제가 성태현을 직접 찾아가서…….”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그 순간.

끼익-.

문이 열리며 성태현이 들어왔다.

뻔뻔하게도 멀쩡한 상판대기를 들이밀면서.

고성탁이 따지듯이 물었다.

“대통령님,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해명이 필요할 것 같…….”

성태현은 고성탁의 말을 끊었다.

“자네는 나가 있지.”

밖으로 턱짓하자, 고성탁은 날 바라봤다.

나는 스트레이트로 양주 한 잔을 들이켜고 깊게 숨을 내뱉었다.

“나가 있어.”

“……알겠습니다.”

고성탁이 나간 뒤, 성태현은 이죽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실망하셨나 봅니다.”

그는 내 잔에 양주를 채워 주며 말했다.

“축하도 안 해 주신 채 사라지시고…… 서운하셨나요?”

“제가 분명 검찰총장 자리를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로 인해 이번 법 개정까지 시켰고요.”

“원하는 건 우리 검사님 자유죠.”

성태현은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누굴 임명할지는 제 자유고요.”

그의 태도를 보자, 도저히 흥분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당신은!”

이마와 목에 핏줄이 서는 게 느껴졌다.

“내가 당신을 당선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개처럼 뛰었는지 아는 데도 그런 짓을 해?”

“에이, 우리 형님이라면 이해해 주실 줄 알았는데.”

“가족끼리 뒤통수를 쳐?”

“가족…… 좋죠.”

그는 자신의 잔에도 양주를 따라 단번에 들이켰다.

“가족이라서 안 된다는 겁니다.”

대꾸 없이 노려보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형님을 검찰총장에 올리면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동서지간끼리 다 해먹는다고 하겠죠. 이제 막 대통령이 됐는데 그런 소리를 듣는 걸 바라시진 않잖습니까?”

그는 음하게 입꼬리를 휘었다.

“이런 X발,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짓을 했는데!”

나는 내 앞에 있던 잔을 벽에 집어던졌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박살 났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에게 말했다.

“그럴 거라면 미리 이야기라도 해 주든가.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고!”

“아, 그건 제 실수.”

성태현은 코를 찡긋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죄송합니다. 그건 사과드리죠.”

이가 악물어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밖에 사람만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녀석의 목을 비틀어 버렸을 것이다.

“진짜 이유가 뭐야?”

살벌한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당신 나 아니었으면 대통령 못 됐어. 이런 식으로 엿 먹일 만한 이유가 없었을 텐데.”

“하핫.”

그는 코웃음을 치고는.

“그렇긴 하겠죠. 하지만…….”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진실은 네가 더 잘 알 텐데.”

성태현도 정색하며 말했다.

“이렇게 된 게 전부 당신의 업보란 걸 말해 줘야 아나?”

“……뭐?”

“내게 고성탁을 붙인 저의를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어?”

젠장.

눈치챈 건가?

“그래, 그럴 만하지. 불과 얼마 전까지는 몰랐으니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선이 당겨지지 않았으면, 당신네들한테 아마 깜빡 넘어갔을 거야.”

성태현은 클클대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로서는 최규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 대통령 자리도 주고, 당신의 마수도 피하게 해 주고.”

그는 고개를 까딱이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내가 그래도 가족 간의 정을 생각해서 내치진 않을게. 우리 집사람 눈치도 봐야 되니까.”

“…….”

“서울고검장 정도면 만족하겠지?”

은퇴 코스인 고검장으로 들어가 2년간 푹 썩다가 나가라는 것이다.

성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날 내려다봤다.

“당신은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렸어. 적당히 만족하면 좋았을 것을.”

그 말을 끝으로 성태현은 방을 빠져나갔다.

“이런 젠장할!”

나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테이블을 엎었다.

병과 잔이 전부 박살 났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개X끼. 내가 복수한다.”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반드시 네놈의 모가지를 날려 주고 말 테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든.

기어코.

반드시.

결단코 녀석을 끌어내리고.

정상에 올라설 것이다.

검찰총장이 아니라.

더 높은 정점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뤄 내고 말 것이다.

≪검사님 출세하신다! 1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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