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 (7)
“최서준, 이 자식 얼굴 좋아진 거 봐라.”
신용호는 활짝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제 좀 살맛나나 보다?”
“난 예전부터 여전했어. 네가 삭은 거 아니고?”
“자식, 말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얄밉다니까.”
그는 소주병을 들며 고개를 까딱였다.
“잔이나 들어, 인마.”
나는 헛웃음을 치며 잔을 들었다.
“양주 산다니까 무슨 포장마차야.”
“야, 나 같은 서민은 소주가 최고더라. 양주 먹으면 몸에서 안 받아요.”
“네 입맛이 싸구려인 건 아니고?”
“그래서 넌 소주 안 먹냐?”
“나도 입이 싸구려라서 소주가 최고더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보고 킬킬거렸다.
“제수씨는 잘 지내시지?”
“그럼.”
“지훈이도 한번 보러 가야 되는데. 애는 많이 컸나?”
“놀란 게 애가 벌써부터 외국어를 하더라니까?”
“외국어를?”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도 조기교육 뭐 이런 거 시키는 거야?”
“아니, 영어 더빙된 애니메이션 보다가 말문이 트였어. 요즘은 제 엄마가 외국 합작 영화 찍었던 것까지 돌려 본다니까.”
“그 정도면 네가 아니라 제수씨 닮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날 빼다 박았지.”
“됐다, 됐어.”
신용호는 손을 휘휘 저으며 소주잔을 빙글 돌렸다.
“현성이도 오면 좋았을 텐데.”
“걔는 요즘 정신없더라. 서부지검이 워낙 만신창이가 되어서 복구하기가 장난이 아닌가 봐.”
“네 작품인데 가서 좀 도와줘라.”
“가서 돌팔매질 당할 일 있냐?”
“아쉽네. 좀 맞았으면 해서 가라고 한 건데.”
그는 큭큭 대며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선거 준비는 잘되어 가고?”
“응. 다음 주에 당내 경선인데, 당선시키기 싫어도 될 것 같더라. 민국당 내에서 지지율이 85%야.”
“어우, 그 정도면 선거 전까지 방석집이나 다녀도 당선되겠는데?”
“생각하는 수준하고는.”
나는 피식 웃으며 소주잔을 털어 넘겼다.
신용호는 꼼장어를 가리키며 내 앞에 놔주었다.
“여기 꼼장어가 제대로야, 먹어 봐.”
“어, 맛있네.”
“그나저나 사업은 어때?”
“늘 똑같지, 뭐.”
그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말했다.
“이번에 당선되면, 네가 나 사업 좀 팍팍 밀어줘라.”
신용호는 내게 몸을 가까이 기울여 목소리를 낮췄다.
“성태현 선거 자금 마련한다고 등골 빠지겠어. 날 위해서 비자금 마련해 둔 건데 선거한다고 다 쓰고 있다니까?”
“걱정 마. 내가 아니더라도 성태현이 직접 챙길 거야. 그 인간이 입 싹 닫고 모른 척할 만한 인간은 아니거든.”
“혹시 아냐? 막상 당선 되고 나면 확 180도 바뀔지.”
그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듯 코를 찡긋거렸다.
“내가 보기엔 그 인간 보통은 아니야.”
“보통이 아니니까 대선 후보로 올라왔지.”
“그런 수준이 아니라, 가슴 속에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를 품고 있어. 아니, 뱀이라고 봐야 될걸.”
신용호는 능글맞게 눈썹을 들썩였다.
“내가 옛날부터 감 하나는 죽였잖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무 100% 안심하지는 말라고.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알았다, 인마.”
***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민국당 대선 최종 후보 성태현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성태현은 당내 경선에서 아주 가볍게 승리했다. 민국당 자체에서도 성태현을 밀어주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당내 경선에 나온 후보들 자체가 성태현을 부각시키기 위한 풋내기들뿐이었다.
그 덕분에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이 속사정을 잘 모르는 대중이 보기엔 성태현에게 확실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 터.
혼란한 현 시국에서 리더십을 강조해 민심을 가져오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테지.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성태현은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은 반면교사 삼을 대상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부끄러운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어서 과거의 비리를 포함하여 많은 잘못을 청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더러운 정경유착의 고리를 모두 끊어 내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성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거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정치인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하여 제 온 힘을 쏟아붓겠습니다.”
성태현은 단상을 쾅 치며 힘차게 말했다.
“능력이 있는 자들은 그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국가로. 부족한 사람들에겐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모두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행복한 국민으로 가득 찬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그는 듣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이 땅에서 수많은 대통령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국력을 키운 대단한 사람도, 나라를 망치고 쫓겨난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 하나 만큼은 약속드리겠습니다.”
성태현은 국민에게 공감하는 듯이 가슴을 움켜쥐고 말했다.
“국민 여러분이 피곤에 찌들어서 술에 취해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 게 아닌,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 차서 하루를 상기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민국당인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또한, 저는…….”
아주 훌륭한 경선 승리 연설이다.
나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게 다 고성탁 씨가 쓴 연설문이라는 거죠?”
“전부는 아니고 제가 초고를 썼습니다.”
신의 손, 고성탁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성태현 후보님께서 퇴고 및 첨삭을 하셔서 완성본을 만드셨고요.”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자연스레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전부 검사님께서 그림을 만드신 덕분이죠.”
“과찬이십니다.”
“현재 돌아가는 판을 보면, 성태현 후보의 당선은 확실시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의 손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그나마 대한당의 주력 후보였던 하태원이 국정에 집중한다며 사퇴한 덕분에 뜨내기표를 가져오는 데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검사님께서 엄청난 버프를 해 주신 것이죠.”
난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현 후보님도 검사님께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야죠.”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성태현이 서울시장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모르면 안 되는 겁니다.”
“맞습니다.”
신의 손은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그걸 잊지 않도록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제가 또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발걸음을 멈추며 그에게 물었다.
“성태현에 대한 작업은 어떻게 잘 되어 가고 있는 겁니까?”
제일 걱정인 부분이었다.
신의 손을 통해 성태현을 구워삶으라고 지시를 해 뒀는데, 이번 최규현 대통령의 하야로 인해 그가 마인드컨트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졌으니까.
그러나 고성탁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간이 줄긴 했어도, 생각보다 작업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그렇습니까?”
“예. 저에 대한 의지력 또한 꽤나 높아진 상태입니다.”
하긴, 당내 경선 승리 직후의 연설에서 신의 손이 쓴 연설문을 읊는다는 것부터가 그에 대한 강한 신뢰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최근 들어 검사님에 대한 예찬을 자주 늘어놓으시는데, 신뢰가 상승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하하하, 그건 조금 부끄럽군요.”
“아마 성태현 후보님과 검사님께서 오래 전부터 함께하셨던 이유도 있겠지만…….”
그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무엇보다 가족인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입가에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성태현에게 한지수를 소개시켜 결혼하도록 만든 게 내 인생에서 최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 나에게 문제가 생기더라도, 운명 공동체로서 함께 가야만 하는 연결 고리를 만든 건 언제까지고 확실한 보험으로 작용할 수 있을 테니까.
“아마 검사님께서 생각하신 그 일은…….”
그는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하실 겁니다.”
비선 실세.
성태현의 뒤에서 그를 좌지우지하며 대한민국을 통솔할 수 있는 진짜 힘을 가지는 것.
그렇다고 단순히 그림자로만 남는 게 아니다.
성태현이 당선되는 것과 동시에 내 출세는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검찰로서의 정점.
검찰의 왕.
검찰총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될 테니까.
단순히 중앙지검을 통솔하는 수준을 넘어 국내에 있는 검찰을 휘어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때, 고성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걱정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현재 3개 당의 경선으로 들어가면 저희 쪽의 승리가 확실합니다만, 만에 하나 대한당과 만세당이 단일 후보를 내세운다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선거의 가장 키포인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대한당과 만세당이 힘을 합쳐 단일 후보를 내세워서 성태현에게 대적할 만한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지난 대선에서 대한당의 최규현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국당과 만세당이 서로 등을 돌리고 싸운 탓에 결국 최규현의 당선을 도왔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세당에선 그걸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이번 선거에서는 대한당과 힘을 합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을 테지.
이렇게 지지율이 확 벌어진 판국에서는 변수가 없으면 판은 뒤집히지 않는다.
만년 언더독인 만세당은 어떻게 해서든 변수를 창출해 내려고 하겠지.
“그 점은 고려하고 있습니다만, 최종 후보 등록을 며칠 앞두고도 아직 이견이 분분한지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신의 손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성태현의 연설장으로 돌아섰다.
“이제 슬슬 연설이 끝나 갑니다.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또 연락하시죠.”
“예.”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성태현의 연설이 끝나고 나 또한 곧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연설이 끝나고 인파가 몰리면 나가기 복잡할 테니까.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까지 연설이 끝나지 않은 모양.
연설문은 앞부분만 들어 봐도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에 딱 좋은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성태현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검찰총장으로 이끌어 줄 것이며, 최서준이라는 인물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눈이 부실 만큼 너무나도 화창한 가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