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42화 (242/341)

업보 (6)

성태현과 이야기를 마치고 박형태 의원에게 다가갔다.

현재 민국당의 실세이자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인물.

“오랜만입니다, 박 의원님.”

“그러게. 잘 지냈나?”

“물론입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이번 촛불집회 및 탄핵과 관련해서 의원님께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셔서 일이 잘 풀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전부 민중들이 일어선 덕분이지. 나야 숟가락을 얹은 것뿐이고.”

“겸손이 과하십니다.”

“전혀 아니야. 실제로 폭탄을 준비하고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최 검사 아니겠나?”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안부와 서로에 대한 칭찬을 하다가 자연스레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저번에 말씀드렸던 안건에 대해 자세히 논의 좀 해 볼까 하는데요.”

그와 함께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말했던 통과시켜야 할 법안 말인가?”

“맞습니다. 대선 전에 통과시켜야 합니다. 기왕이면 이달 내로 처리했으면 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최 검사 이야기라면 무조건 오케이지. 이번 대선이라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게 누군데.”

박형태 의원은 푸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민국당 지지율은 하늘을 찌르고 있을 정도잖나. 지금 자네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사람들이 태반이야.”

그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든든하게 본인의 가슴을 쳤다.

“무슨 법안인지 말해 보게.”

“의원님.”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박형태 의원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검찰총장이 되고 싶습니다.”

바로 뜻을 알아챈 그는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검찰총장 조건을 완화시키면 되는 거군.”

“맞습니다.”

“그래. 국회의장도 민국당 소속이니 법 개정은 어렵지 않을 거야.”

“예. 제가 원하는 건 법을 개정하되,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선에서 처리하는 겁니다.”

“그러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구먼.”

박형태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물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개정되길 원하나?”

“현재 검찰청법 제12조 2항. 검찰총장은 판사, 검사 혹은 변호사 등의 직을 가진 채로 최소한 15년 이상 법조계에서 헌신한 인물 중에서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지.”

“저는 올해가 지나면 만으로 13년입니다. 2년이 부족하죠.”

“연차를 줄여 달라는 뜻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너무 대놓고 티가 나니…….”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법 연수원에서의 기간도 포함시켜 주십시오.”

현재는 로스쿨 제도 때문에 사라졌지만, 현직 검사들 중 실세를 잡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사법고시 출신으로 사법연수원을 거친 인물들.

그렇기에 이 법으로 수혜를 받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니, 국민들이 보기에는 날 위한 법안이라고 특정될 리는 없다.

다른 검사들도 본인들의 승진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반대할 리는 없고.

오히려 로스쿨 출신의 신입들을 견제하기 좋은 법안이라고 생각하겠지.

“검찰총장뿐만 아니라, 다른 보직까지 전부 포함시키는 게 낫겠지?”

“예.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돌릴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다른 정치인들이 보기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지만 국민들에게 반감만 주지 않으면 되는 일이니까.

박형태 의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대한당에서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내가 원하는 대로 검찰청 법을 개정시킬 안건이 국회에 상정되면, 대한당에서 분명 태클을 걸고 들어올 확률이 크다.

이번 탄핵 건으로 인해 최서준이라는 인물 자체가 반쯤 성역화가 되어 쉽게 건들 수가 없다.

그런데 만약 성태현이 당선되고 내가 검찰총장 자리에까지 오른다면, 대한당에서 나를 한 번이라도 견제했던 인물들은 죄다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상황.

하지만 법안 자체는 다르다.

최서준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의 위엄과 정체성 그리고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변명거리를 댈 수 있으니까.

게다가 민국당에서도 나를 검찰총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법안을 개정시키려는 것인 만큼, 내 이름을 꺼낼 수가 없다.

즉, 대한당은 대중들 앞에서 최서준을 건들지 않으면서도 날 견제할 수 있다는 뜻이지.

“예. 문제가 되는 점은 대한당에서 마음먹고 딜레이시킨다면 하면 최소 480일 이상 시간을 끌 수 있다는 겁니다.”

당장 내일부터 이 안건이 국회에 상정되더라도 480일이면, 성태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1년이 넘게 나는 검찰총장으로 임명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해 12월을 끝으로 나는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 임기가 끝이 난다.

만약 이 안건이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 통과되지 못한다면, 나는 서울고검 혹은 대검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

그 이후에 480일을 채워 법안이 통과된다고 한들, 나는 새로운 직책에서 1년도 채우지 못한 상태.

그런데 바로 승진 발령을 받자니, 국민들이 보기에도 대놓고 성태현이 가족을 챙기는 것처럼 보일 터.

그러면 적어도 법안이 통과되고 나서 서울고검 혹은 대검에서 1년은 더 채워 줘야 한다는 건데, 그러면 결국 만으로 14.5년 차가 되고 만다.

겨우 6개월 앞당기자고 이런 식으로 대한당과 설전을 벌이며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의미가 없는 일.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음 근무지에서 15년을 더 채워 버리는 게 나으니까.

“그래서 의원님께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이번 대선이 끝나기 전에 안건이 처리될 수 있도록 말이죠.”

박형태 의원은 잠깐 동안 고민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이번 탄핵 때문에 패스트 트랙으로 법안이 몇 가지 처리될 거거든.”

“그렇다면…….”

“그래. 그 법안도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해서 추진해 보겠네. 그래야 대한당에서도 마음대로 견제할 순 없을 테니까.”

패스트 트랙.

좋게 말하면 국회에서 정체시키고 표류된 법안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킬 수 있게 만드는 제도.

“패스트 트랙으로도 기간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문제지. 최 검사가 원하는 기간 내에 통과시키려면 의석수가 조금 부족해. 대한당의 의원들을 몇 명 정도는 끌어와야 하는데…….”

“걱정 마십시오. 그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방법이 있나?”

“하태원이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르자마자 한 일이 괜히 저를 복직시킨 거겠습니까?”

박태형 의원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의원님께서는 민국당 의원들을 전부 휘어잡아 주십시오.”

“알겠네. 추가적으로 만세당도 한번 접촉해 보도록 하지.”

“부탁드립니다.”

“그래. 꼭 통과시켜 보도록 하지.”

***

“법안 말입니까?”

하태원은 조심스럽게 턱을 매만지더니 날카롭게 날 올려다보았다.

“왠지 그걸 들으니, 이번 대선이 끝나면, 검사님이 무조건 검찰총장에 올라갈 수 있으실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글쎄요.”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검찰총장에 오를지, 말지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해 주지 않겠습니까?”

하태원은 대한당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고 있는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가 보기에 최 검사님께서는 이미 누가 대통령이 될지 결정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는 불쾌하다는 듯이 소파에 몸을 묻었다.

“민국당에서는 검사님의 동서가 대선에 나오는 게 확실시 되는 것 같던데…… 가족이 아닌, 저를 밀어 주실 리도 없고요.”

사실 여기에 오기 전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등등하게 어깨를 활짝 폈다.

“티가 났습니까?”

“그걸 모르고 정치한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왜 왔는지 생각은 해 보지 않으셨나 봅니다.”

하태원 권한대행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선 준비하는 사람에게 대권을 포기시킬 만한 딜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없으면 여기 왔겠습니까?”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대선이라는 게 이번 한 번만 있는 게 아니죠. 하 총리님…… 아니, 권한대행님은 이제 겨우 50대 초반입니다. 정치인으로서는 걸음마하는 젊은 나이죠.”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이번 대선은 포기하고 그쪽 비위나 맞추다가 다음을 노려라?”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하태원은 불쾌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할 이야기가 없겠군요. 돌아가십시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파에 몸을 묻은 채 말했다.

“권한대행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지.”

그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본인이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봅니까? 10%? 20%?”

나는 거만하게 다리까지 꼬았다.

“제가 보기엔 0%입니다. 제로.”

“…….”

하태원은 입을 꾹 닫았다.

그도 알고 있었으니까.

2당 체제인 미국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던 정당에서 다시금 대통령이 나오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 증거로 지난 대한당의 권재철 대통령이 탄핵된 직후에는 민국당의 경동수가 선거 초반부터 아주 압도적인 지지율을 갖고 시작했다.

게다가 성태현은 나와 동서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민심을 가져갈 터.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는 사람이 이러한 계산을 못 할 리 없지.

역시나 하태원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섰다.

“저에게 제안하실 게 뭡니까?”

“차기 대선을 노리십시오.”

“…….”

“어차피 이번 대선에 나와 봤자, 표 차이로 박살 나고 다음 대선 기회도 놓치는 겁니다. 그럴 바에야 힘을 모아서 다음번에 대통령이 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를 설득하듯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말하기엔 웃기긴 하지만, 최규현도 권재철 대통령 탄핵 직후엔 몸을 사렸습니다. 그리고 경동수에게 한 텀을 내주고 22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차지했고요.”

하태원은 숨을 깊게 내뱉은 뒤 말했다.

“저에겐 다음이라는 기회가 오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최규현만큼 큰 힘을 가지고 국무총리에 올라간 게 아니라, 그저 그의 오른팔이라는 것만으로 현재의 자리에 오른 것이니까.

최규현이 물러난 이 상황에서 개인의 힘으로 따지자면, 대한당에서의 1인자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대한당 당 대표가 문제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십시오.”

“……김 의원과 제 사이를 모르십니까?”

최규현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파탄 났을 만한 앙숙 사이.

“알죠. 알고 있으니까 추진하라는 겁니다.”

나는 거칠게 입꼬리르 비틀었다.

“제가 완전히 박살 내 드리죠.”

순간, 그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김정식 의원이 박살 나면, 대한당의 실세 자리는 권한대행님이 차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권에서 패배한다면, 당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나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하태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결심을 마친 듯 그는 결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

11월 초.

하태원의 도움을 받아 대한당의 의원을 끌어왔고, 민국당의 의원까지 합쳐 총 국회의원 중 3/5이 넘는 인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국민들은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대해 시선이 팔린 사이,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된 검찰청법의 개정 법안은 순식간에 통과가 되었고.

나는 해가 바뀌면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남은 건 대선뿐.

단 두 달.

두 달만 지나면 검찰총장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