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 (2)
“외부 인원들까지 전부 소집 명령 내렸습니다. 1시간 내로 대회의실로 집결할 테니, 넉넉하게 3시까지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생했어요.”
윤설하는 고개를 꾸벅이고 검사장실을 빠져나갔다.
이번 일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새해 인사로 차장검사로 승진하기 전인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이두형은 특수부의 부장으로서 다른 검사들의 온갖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권위적인 부장검사가 아니라, 평검사들과 사사로운 기쁨과 슬픔까지 함께 나누었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 덕분에 가끔씩 얼굴을 보이는 그녀의 두 딸들도 특수부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도 당연했던 일.
그런데 그중 막내인 소영이가 죽었다.
그것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박재필이 의도에 의해서.
장례식장에서 함께 울고 이두형의 곁을 지켜 준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만 해 봐도 그가 특수부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두형 차장이 박재필에 의해 딸이 죽고 나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한 검사들은 당장 옷 벗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그를 위해 나서려고 할 터.
그만큼 이두형 차장은 중요했던 인물이니까.
특수부의 검사들 또한, 슬픔과 노여움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일 것이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일 테지.
그때, 수화기가 울렸다.
“네, 최서준입니다.”
-검사장님, 지금 한샘 병원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한샘 병원이라면 이두형 차장의 딸, 소영이가 죽었던 병원.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한샘 병원도 가만히 두고 싶지는 않았다.
전후 사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의료 과실을 일으킨 건 이쪽이니까.
그러나 박재필 측과 달리, 이쪽은 처음부터 초지일관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를 해 왔다.
장례식에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걸 다 했고.
문제가 벌어지면 나몰라식 대응을 하는 일반적인 대형 병원과 달리, 잘못을 인정하기에 이두형 차장도 이들보다는 박재필에 대한 원한이 더 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소영이가 죽은 이상, 책임을 질 사람은 필요했으니까.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다섯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병원장을 필두로 의사들이 나를 향해 깍듯하게 허리를 접었다.
장례식 때 찾아와 사죄를 했던 얼굴들.
수술을 집도한 의사와 센터장 등 주요 인물들이다.
“앉으십시오.”
그들을 자리로 안내하자, 병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례식 때도 찾아뵈었지만, 다시금 사과를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이두형 차장은 오늘부로 휴직계를 냈습니다.”
“아…….”
“마음의 상처가 큰 것 같더군요.”
의사들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제가 이를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사과 자체가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대형 병원이라면 사과하는 게 아니라, 갑질하는 게 일상이었을 테니까.
만약 이두형 차장이 힘없는 소시민이었다면, 적당히 위로금이나 안겨 주며 의료 사고는 어쩔 수 없다며 나몰라식으로 대응했을 테지.
입을 다물고 있자,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수술을 집도한 김명식 의사가 병원장의 눈치를 받고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죄인처럼 머리를 푹 숙였다.
“제가 한 번 더 체크하고 신경 썼어야 했는데,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제가 차장님의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죠. 당신들은 두형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를 악물고 살벌하게 말했다.
“그쪽의 가족들이 죽어 나가야 이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죠.”
병원장과 의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눈빛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의지가 보였을 테니까.
한 번 숨을 고른 뒤, 말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죽은 소영이가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요.”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김명식 의사는 무릎을 꿇은 채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물 따위로 용서받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란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터.
“그리고 사과는 제가 아니라, 이두형 차장에게 하셔야죠.”
“…….”
“사죄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용서받는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싸늘하게 말하자, 병원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께서 필요하신 건 전부 돕겠습니다. 박재필 검사장과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과 관련해 여론 몰이라든지, 자금력으로 가능한 건 뭐든…….”
“당신들이 나설 건 없습니다.”
이들에겐 도움을 받고 싶지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조만간 프레임이 당신들 쪽에서 박재필 측으로 몰릴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발버둥 치세요.”
박재필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야 병원 측도 여론으로부터 책임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터.
그걸 위해 발버둥 치라는 소리였다.
지금 당장은 의료 과실로 인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 병원을 망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두형도 그걸 원치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목적은 박재필과 그 일당들이었으니까.
이두형 차장이 가장 원하는 것 또한 박재필의 몰락이다.
“가세요. 당신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들은 눈물 흘리며 사죄하는 김명식 의사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다른 이들이 나간 뒤, 병원장은 뒤돌아서서 내 책상에 하얀색 봉투를 놔두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거…….”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소하지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병원장이 내민 봉투를 찢어 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고 주먹을 꽉 쥔 채 병원장을 향해 말했다.
“제가 돈 따위나 받자고 이러는 것 같습니까?”
“죄송합니다.”
“그건 이두형 차장한테 직접 전달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여기 두고 가면 당신들 전부 뇌물죄로 감방 신세 지게 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병원장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중앙지검 여러분, 반갑습니다.”
대회의실엔 사람이 미어 터지고 있었다.
단순히 특수부만 모인 게 아니라, 이두형 차장에게 은혜를 입었거나, 그를 존경하던 타 부서의 인물들까지 전부 모였으니까.
이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불타고 있는 상태.
나는 단상을 짚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전해들은 분들도 있겠지만, 이두형 차장이 오늘부로 휴직계를 냈습니다.”
검사들의 입에서 탄식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가 가장 아끼는 후배였고, 사랑하는 동생이었으며 의지할 수 있는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박재필로 인해 무너졌습니다.”
몇몇 검사들은 부들부들 떨거나 좌절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다들 아실 겁니다. 조카 같던 소영이가 죽은 것만 해도 이토록 마음이 미어 터질 것 같은데, 심지어 제 아이가 사라지는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이두형 차장은 사지가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꼈을 겁니다. 제가 온전히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울컥하는 마음에 목이 메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쳐들었다.
한 템포를 쉰 뒤, 겨우 입을 열었다.
“그가 원하는 건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에 대한 처벌이라는 겁니다. 이 차장의 딸은…… 소영이는 박재필이 죽인 것과 다름없습니다.”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은 병원 측의 과실도 있긴 하나, 까놓고 말해서 소영이가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위험에 처할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박재필이 죽인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
“저는 이대로 못 있습니다. 제 사람을 절망의 나락에 떨어뜨려 놓고 기삿거리나 만들기 위해 뻔뻔하게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박재필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많은 검사들의 얼굴엔 분노가 차올랐고.
“그리고 당시에 이두형 차장이 얼마나 슬퍼했고 오열했는지도 기억 속에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몇몇 검사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두형 차장을 위해서라도…… 아니, 죽은 소영이의 넋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이번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해 관련자들을 전부 처벌해야 합니다. 이걸 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검사로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감정이 격해져 나는 검찰공무원증을 단상에 집어던지듯 올렸다.
“저는 검사장 자리를 걸고서라도 그 자식들을 처벌할 겁니다. 이 정도 각오가 없다면 나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그때, 제일 먼저 장하영 부장이 자신의 검찰공무원증을 꺼내 탁상에 내려놨다.
그녀를 필두로 특수부의 모든 검사들과 수사관 그리고 타 부서의 검사들까지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나는 단상에 몸을 기울인 채 입을 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은 방식으로 나가야 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나와 있다.
“박재필 그 자식이 장례식장에 와서 사진을 찍는 둥 직접 문제가 되는 증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또한 똑같이 갈 겁니다. 증거를 추적하되, 찾지 못한다면 유치원 여교사들이 돈을 받았다는 날짜에 대한 추정을 토대로 직접 증거를 만들 겁니다.”
이를 빠득 갈았다.
“녀석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증거를 말이죠.”
***
-3월 12일, 박재필 검사장과 사전 접촉.
-3월 18일, 박재필 검사장과 대면.
-3월 27일, 이두형 차장의 딸, 이소영 폭행 사주.
-4월 2일, 선수금 지급.
-4월 6일, 차장검사 딸에 대한 폭행.
-4월 15일, 이소영 사망.
모든 증거를 찾고, 없는 증거를 만들어 내는 데도 성공했다.
수십 명의 검찰 및 검찰 공무원이 함께 작업해 만든 증거에는 어떠한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나는 이를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현장 생중계로 각지에 보도되던 도중, 기자회견은 절반도 지나지 않아 잘리고 다른 뉴스로 대체되었다.
인터넷에 올라간 기사들은 전부 잘렸으며, 그 어떤 언론사에서도 나의 기자회견을 보도하지 않았다.
최규현이 언론 탄압을 한 것.
2026년에 언론 검열이라니.
마치 제5공화국 시절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언론사는 막아도, 개인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수십수백 명의 검사와 검찰공무원과 지인들이 인터넷에 나의 기자회견 내용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직접 지시하지 않았지만, 한샘 병원 측에서도 우리를 도와 사람까지 써 가며 이번 일에 대한 전말을 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언론 탄압에 대해 불복한 몇몇 기자들은 잘릴 걸 알면서도 이 사실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서서히 민초들은 깨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