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 (1)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윤설하가 창백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검사장님!”
황급히 달려왔는지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지금 이두형 차장에게 가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게 지금…….”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래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가 본데.
윤설하는 짙은 한숨을 내뱉은 뒤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두형 차장의 딸이 사망했답니다.”
“……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윤설하의 표정을 보아하니, 제대로 들은 모양.
“가벼운 수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건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일단 병원으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
우리가 도착한 병원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미처 장례식장까지 옮기지도 못한 소영이의 시신이 시트에 덮여 있는 상태.
불과 내가 기자회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두형 차장은 살아 있는 딸을 봤을 터.
질문까지 받았던 탓에 평소보다 기자회견을 더 오래하긴 했지만, 길게 잡아야 2시간 남짓.
그 짧은 시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두형 차장과 그녀의 아내는 오열하며 의사들의 멱살을 잡은 채로 절규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병원 직원들과 몇몇 수사관들이 입구를 통제하고 있어서 외부인은 출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나는 미리 도착해 있던 남민제 부부장에게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 검사장님. 그게…….”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수술 때문에 마취를 하던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까 자세히 좀 설명해 봐.”
“실제로 수술이 복잡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소영이가 수술했던 코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았기도 하고 워낙 어려서 전신마취를 해야 안전하다는 게 의사의 소견인지라, 기관지 삽관을 통한 전신마취를 시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취약을 투약하던 도중, 소영이가 기관지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대처만 제대로 했어도 살 수 있었는데…….”
남민제 부부장은 뒤쪽에 있는 의사를 살벌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의사 개X끼가 마취제 흡입을 중단시키는 것 외에 기관지 경련을 풀기 위해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결국 호흡 장애로 인해 뇌 손상이 와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나.
어이가 없다 못해 이가 갈릴 정도.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병원 측에서도 바로 본인들의 과실인 걸 인정했습니다.”
그걸 증명하듯 의사들은 단체로 나와 이두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어차피 중요한 게 아니라서…….”
남민제 검사도 답답한 듯이 얼굴을 감쌌다.
“그 어린애가 얼마나 아팠겠냐고!”
그때, 뒤에서 이두형이 소리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입을 꾹 닫고 그를 안아 주었다.
이두형은 나를 붙잡고 흐느끼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딸, 소영이는 유치원 교사들로 인해 장장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하고 나서 힘겹게 살아났다.
이후에도 자신의 딸이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안쓰럽고 안타까웠을까 심정을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이 저며 왔었다.
그런데 그 고생 끝에 아이가 겨우 밝은 모습을 되찾나 싶었더니,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작별해 버렸으니까.
그것도 의료진의 과실로 인해서.
나로서는 그의 슬픔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마 당장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이두형의 등을 쓸어내리는 것뿐이었다.
***
장례식장에서 이두형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친척이나 연고가 전혀 없는 그였기에 나는 특수부 검사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켰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최규현 측에서도 이쪽을 건들거나 움직이지 못했기에 잠깐이나마 소강상태에 들어선 상황.
그런데 그때.
“검사장님.”
윤설하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지금 밖에 그 인간이 왔…….”
그녀가 무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수사관들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박재필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이두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X발! 여기가 어디라고 네가 와?”
박재필에게 달려들려는 걸 검사들이 겨우 붙잡아 막았다.
나는 곧장 그에게 다가가 살벌하게 말을 내뱉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같은 검찰로서 위로해 주려고 왔는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얼굴 갈아 버리기 전에 나가라고.”
그는 히죽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가 면상에 철판을 깔고 다녀서 말이야.”
“개X끼야!”
뒤에서 검사들을 뿌리친 이두형이 튀어나와 박재필의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쿠당탕탕!
박재필은 그대로 뒤로 엎어져 쓰러졌고, 이두형이 그의 위에 올라타려는 걸 검사들이 달려들어 겨우 막아 냈다.
“네가 사람이야? 사람이냐고!”
이두형은 박재필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겨우 내려앉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박재필은 이두형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입술에 묻은 피를 닦더니 뒤쪽에 있던 남자를 보고 물었다.
“찍었나?”
그의 시선 끝에는 병원에서 이두형의 동영상을 찍었던 그 기자가 서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대로 찍혔습니다.”
“됐네, 그러면.”
그는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은 꺼져 줘야지.”
박재필을 낄낄대며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
“검사장님.”
“어, 출근했어?”
이두형은 초췌한 몰골로 검사장실에 들어왔다.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런 걸로 무슨 사과를 해. 오히려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해서 내가 미안하지.”
“아닙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커피 한 잔 내줄 테니까.”
손수 차를 끓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검사장님,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붙잡았다.
자리에 앉은 채 이두형을 올려다보자, 그는 속주머니에서 사표를 꺼내 내밀었다.
“두형아.”
“죄송합니다, 검사장님.”
이두형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검사장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면 중앙지검에 폐를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걸로 내가 자네를 버릴 것 같아?”
“아니요. 검사장님께서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가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그의 몸이 여리게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힘듭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소영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천사 같았던 애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게 도저히 실감나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두형이 장례식장에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고 있기에 차마 그에게 더 출근하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를 보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두형이 물러나는 건, 박재필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를 제외하고서도 이두형을 잃는 건 원치 않았다.
이제 그는 내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휴직 처리할게.”
나는 그 자리에서 사표를 찢었다.
“한 3개월…… 아니, 6개월 정도 푹 쉬다가 와.”
“검사장님…….”
그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날 바라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네 자리는 언제까지고 비워 둘 테니까 마음 추스르고 괜찮아지면 돌아와.”
이두형 차장은 나를 세게 껴안았다.
“검사장님…….”
“그리고 네가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박재필을 포함해서 그 녀석들 전부 쓸어 버릴게. 만약 내가 약속한 시간까지 해결이 안 되면, 돌아오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그때까지 사표는 보류하자.”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나는 그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푹 쉬어. 언제든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고.”
이두형이 흘린 눈물은 내 옷깃을 적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검사장님.”
***
“후우.”
내뱉은 담배 연기가 공기 중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가 손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그만큼 이두형이 겪은 일은 남 일 같지가 않았으니까.
발인할 때 이두형의 모습이 아른거려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아.”
그때, 옆에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계셨습니까?”
“어, 장 부장 왔나?”
그녀를 부르며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장하영 부장은 담뱃불을 붙여 주고는 자신도 한 대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차장님은…….”
“푹 쉬다 오라고 휴직 처리했어.”
“다행입니다.”
특수부의 직속 후배였던 만큼, 그녀도 꽤나 이두형을 믿고 의지했기에 마음이 편치 않을 테지.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장하영은 담뱃불을 짓이기며 날 바라봤다.
“검사장님께서 이두형 차장을 얼마나 아끼셨고, 사랑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네도 마찬가지지 않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 말씀드리기는 정말 송구스럽지만…….”
장하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그녀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온 국민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려 있습니다. 여론 또한 저희 편을 들고 있고요.”
맞는 말이다.
박재필은 이두형을 골탕 먹이려고 장례식장에서 얻어맞은 걸 기사로 썼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시민들은 우리 편을 들고 있었으니까.
온 국민이 측은지심과 연민 그리고 동정과 같은 감정들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국이 되었다.
“이두형 차장이 나가기 전에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검사장님께는 죄송스러워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얼마든지 자신을 이용해도 좋으니 제발 그 자식들을 무너뜨려 달라고 말하더군요.”
그래.
이렇게 낙담할 수만은 없다.
그를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재필 일당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게 정의이고, 그래야만 이두형을 볼 낯이 설 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박재필 일당을 철저하게 짓밟아 주는 것뿐.
그게 전부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녀석들을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뜨려 줄 것이다.
나는 장초를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또렷한 목소리로 장하영 부장을 향해 지시했다.
“특수부 전원 대회의실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수사관이고 검사고 할 것 없이 한 명도 빠지지 말고, 전부.”
이를 빠득 갈았다.
“이제부턴 사생결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