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 (5)
“휴대폰에 저장된 영상 확인하고 그 기자의 직속 상사 및 소속 언론사 전부 조사해서 어떤 루트로 박재필에게 연결되는지 조사하세요.”
검찰청에 들어오자마자 외투를 벗으며 윤설하에게 지시했다.
“공 수사관한테 연락해서 또 비슷한 일 발생하지 않도록 이두형 차장에게 주의시키라고 전하시고요.”
“알겠습니다.”
나는 짙은 한숨을 뱉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기자의 앞에서 큰 소리 친 게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기에 그쪽에서 아무리 사건을 크게 터뜨리고 싶어도 키울 수가 없는 건이었으니까.
문제는 이두형 차장이다.
오는 길에 그녀의 딸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나서 시간만 지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들었으나, 그가 병원에서 소리친 일에 대해 기사가 나는 건 시간문제.
암만 기자의 휴대폰이 우리 손에 있긴 해도, 법적 문제로 인해 영상을 지우거나 조작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결국 폭행죄 처벌이 되지 않는다면 기자의 손에 휴대폰이 돌아갈 테고, 그가 찍은 영상은 언론을 통해 공개될 터.
기사가 터지는 걸 뒤로 미루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아직까지 차후 대책은 세우지 못한 상태.
녀석에게 휴대폰을 되돌려 주기 전에 이 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박재필의 수에 휘말리지 않을 테니까.
일단 확실한 건, 이미 한 번 감방에 갔다 온 만큼 박재필은 더욱 이를 갈고 움직일 테고 불곰까지 가세한 상황이기에 그들은 쉽게 증거를 흘리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유치원의 두 여교사를 추적해도 그들을 우리 편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박재필과의 연결 고리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없겠지.
결국 시간은 그들의 편이라는 것.
그들 간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기사가 터짐과 동시에 녀석들에게 끌려다니는 건 우리가 되고 말겠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녀석들의 목덜미를 잡을 수 있을까.
박재필은 실수하지 않아도 여교사들은 실수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봤지만 애초에 그녀들은 미친개의 오더를 받고 움직일 터.
절대 박재필이 개입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니…….
아니, 잠깐만.
그들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거꾸로 해석하면,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우리 측에서 이걸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 흐릿하게나마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잘만 벼리면 미친개의 숨통을 위협하는 수가 될 수도 있을 터.
나는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장하영 부장 호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조아라 실무관의 대답을 듣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생각 사이로 어렴풋이 떠오른 조각들을 찬찬히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확실한 건, 우리가 작정하고 덤비면 여교사들의 곁에 박재필의 사람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것.
우리에게 꼬리를 밟혔다간, 공수교대가 되는 건 한순간이니까.
이걸 이용해야 한다.
일단, 문제의 여교사와 유치원 원장은 대담하게도 도주하거나 숨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두형 차장의 앞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암만 서부지검장이 뒤에 있다고 한들, 이두형 차장을 저런 식으로 자극하면 본인들이 안 좋은 꼴을 보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박재필의 오더를 받아 이두형을 자극하고 있는 상황.
이를 설명할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직까지 약속했던 보상을 미친개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것.
이 정도까지 움직이는 걸 보면 다른 보상이 아니라, 돈일 확률이 크다.
아니, 확실하다.
그걸 받기 위해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그들이 돈을 받지 못하게 막는다면?
그것도 모자라 법적 포위망까지 좁혀 나간다면, 그들은 분명 패닉에 빠질 터.
그걸 이용하면 오히려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똑똑.
시나리오를 그리는 사이, 장하영 부장이 도착한 모양.
“들어와.”
문이 열리며, 장하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검사장님.”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왔을 때,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가용 가능한 수사관들이 몇이나 있지?”
“열다섯 명 정도 됩니다. 이두형 차장님에게 벌어진 일 때문에 급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쪽으로 대기시켜 둬서 추가 인력도 더 보강될 테고요.”
“대충 이번 사건에서 이두형 차장이 처한 상황은 알고 있지?”
“예. 조금 전에 병원에 따라 나간 수사관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문제의 여교사와 원장에게 사람을 붙여. 24시간으로 감시하고. 대신, 그 움직임이 대놓고 드러나게 해야 해.”
그녀는 고개를 갸울이며 물었다.
“그쪽에서 눈치챌 수 있게 움직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알아채더라도 절대 우리를 따돌리거나 감시망을 빠져나가선 안 돼.”
“알겠습니다.”
그녀는 빠르게 정리를 마치고 대답했다.
“2명에게 각각 6명씩 총 12명을 붙이겠습니다.”
“그래. 3교대로 진행하되, 한 시도 빠짐없이 두 명이 곁을 지키도록 해. 감시하는 둘은 서로 떨어 뜨려놓아서 빈틈이 없도록 해.”
그래야 한 명이 놓치더라도 다른 한 명이 계속해서 추적할 테니까.
“예. 지시하신 대로 이행하겠습니다.”
그녀는 상명하복의 질서를 지킨 뒤,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검사장님의 의중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장하영 검사도 내 뜻을 알아챘다.
“그들을 불안하게 하려는 목적이시군요.”
“그렇지.”
우리가 계속해서 포위망을 좁혀 가면, 녀석들은 박재필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루트조차 사라지게 될 터.
숨통이 조여 오면 조여 올수록 녀석들은 마음이 촉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바닥에서 오래 놀아 본 베테랑이라면 몰라도, 이번 일로 인해 고용된 일반인들이라면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을 테지.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자멸하기 직전에 당근 하나만 던져 주면 이쪽으로 넘어올 확률도 굉장히 높고.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
“두형아.”
병실에 들어가자,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이두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 검사장님.”
고작 반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이두형은 굉장히 피폐하게 변해 있었다.
“어, 앉아 있어.”
나를 보고 일어나려던 그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주며 다가갔다.
“소영이는 괜찮고?”
“예. 조금 전에 잠들었습니다.”
“제수씨는?”
“여기서 오래 머물러야 할 것 같아서 집에 잠깐 갈아입을 옷 챙기러…….”
그 말을 하기 무섭게 병실의 문이 열리며 이두형의 아내가 들어왔다.
“검사장님 오셨어요?”
그녀 또한 굉장히 지친 얼굴을 띠고 있었다.
“심려가 크실 텐데, 위로가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직접 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죠.”
그녀를 위로하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잠깐 두형이랑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네. 아이는 제가 볼 테니 천천히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를 두고 이두형과 병원 밖으로 나왔다.
흡연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고, 오늘만큼은 내가 직접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고생이 많다.”
그는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공 수사관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아까 기사 터질 뻔한 거 막아 주셨다고……. 감사합니다.”
“당연한 거지, 뭘 새삼스럽게.”
“죄송합니다. 차장 검사나나 되어서 흥분해 가지고 공과 사 구분도 못 하다니.”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이두형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또다시 새로운 담배를 물었다.
그는 자욱하게 담배 연기를 내뱉고 나서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까 수술 마치고 소영이가 잠깐 깨어났었습니다.”
“그랬나?”
“예. 그런데 그 교사들이 걱정된다며 온다고 하더라고요. 거절하려 했는데, 애 엄마가 그래도 선생님들이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반성할 수 있으니 들여보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집사람 말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담배를 쥔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깨어난 소영이가 그 여교사…… 교사라고 하기도 싫습니다. 그 썅년의 얼굴을 보더니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겁니다.”
이두형은 목멘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엄마 소매를 꽉 붙잡고 얼굴을 묻더군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 온다.
자식 가진 부모 심정으로서 아이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죄스러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진짜 제가 그걸 보고 가슴이 얼마나 아렸는지…….”
이두형은 다시금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얼굴에 반쯤 경련이 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 어린 게 얼마나 아프고 두려웠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짠하더라고요.”
나는 말없이 그를 품에 안아 주었다.
이두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검사장님, 솔직히 말해서 지금 마음 같아서는 승진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 망할 년들 찾아가서 죽이고 싶습니다.”
“이해한다, 두형아.”
그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않고 그저 그의 등을 쓸며 위로해 주는 게 전부였다.
“두형아.”
그는 끅끅거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예, 검사장님.”
“내가 처리할게. 네 마음 충분히 알고, 얼마나 분한지도 잘 알아. 하지만 여기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그 자식들의 의도에 휘말리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소영이 회복될 때까지 며칠간 푹 쉬어. 내가 그 개X끼들 전부 잡아들여서 조질 테니까 믿고 조금만 기다려 줘.”
이두형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어렵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지금 상태로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폐가 될 겁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
그는 내 두 팔을 뻗어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부디 그 자식들 잡아 주십시오. 정말 이대로 있다가는 더 이상 소영이 볼 낯이 없습니다.”
“그래. 걱정 마.”
나는 다른 손으로 그의 팔을 토닥였다.
“그 자식들 네 앞에서…… 아니, 소영이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도록 만들어 줄게.”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두형의 곁에서 그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위로를 해 주고 나서야 그를 병원으로 돌려보냈다.
지금까지 굳건하게 내 옆을 지키던 이두형이 이런 식으로 중심을 잃고 무너지는 걸 보니 더욱 더 복수심이 타올랐고.
여교사들뿐만 아니라, 박재필까지 전부 모가지를 날려 줄 것이다.
그래야 최소한 이두형을 위로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니까.
거리로 나와 차가운 밤공기를 삼킨 뒤, 장하영 검사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예, 검사장님.
“더욱더 몰아치십시오. 박재필과 그 쓰레기 자식들에게 정의란 무엇인지 직접 보여 줄 겁니다.”
대한민국 검사를. 아니, 최서준 라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