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33화 (233/341)

격돌 (4)

-잘 자요, 친구들.

아이들을 향해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깍-.

화면이 검게 변하더니 이내 마치 적외선 영상처럼 다시금 시야가 밝혀졌다.

동영상 속에서는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개중에는 역시나 이두형 차장의 딸, 이소영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상태.

일부 남자 아이들이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나 싶었지만, 오래 가지 않아 전부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조심스레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가 슬며시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이두형 차장의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바로 그 여교사.

그녀는 아이들이 깨어나지 않게 살금살금 발을 옮겨 이소영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여교사는 차갑게 이소영을 내려다보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소영의 머리 위로 올리나 싶더니.

-……하아.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내렸다.

느낌상 주먹으로 내려치려다가 차마 안 되겠는지 포기한 모양새.

여교사는 도저히 못하겠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완전히 일어나기도 전에 문득 멈춰 섰다.

딱 보아하니, 이번 일로 받을 보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일 터.

결국 그녀는 다시 마음을 굳히고 이소영의 근처에 다시금 엉덩이를 붙였다.

여교사는 조금 전과 달리, 그 어떠한 표정도 드러나고 있지 않았다.

완전한 무표정.

그러나 여전히 본인의 손으로는 직접 하지 못하겠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테이블에 놓여 있던 머그컵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들었다.

여교사는 눈을 질끈 감지도, 이를 악물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이소영의 얼굴을 향해 머그컵을 놓았다.

퍽-.

머그컵은 정확히 이소영의 코에 적중했다.

이제 갓 네 살이 된 아이는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눈을 번쩍 떴다가.

-후에에에엥!

곧장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여교사는 그 울음소리에 다른 아이들이 깰까 봐 걱정했는지, 분주하게 손을 움직여 떨어진 머그컵을 들어 올리더니,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것을 이소영의 얼굴로 떨어뜨렸다.

아니, 이번엔 집어던졌다고 해야 정확할 테지.

뻑-.

아까보다 훨씬 더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이소영의 울음이 그쳤다.

기절한 것이다.

차마 더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광경.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싶은 마음을 참고 동영상에 집중했다.

화면에 보일 정도로 이소영의 코뼈는 일그러졌지만, 여교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머그컵을 두 번이나 더 들어 이소영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지다가 정확히 컵이 두 동강이 나고 나서야 그녀의 손이 멈췄다.

-후우.

여교사는 땀을 닦으며 깨진 머그컵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에요? 방금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병원에 오지 않은 다른 여교사.

아무래도 처음 머그컵이 떨어질 때 이소영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급하게 달려온 모양.

아마도 이러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인물일 터.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도 여교사는 천연덕스럽게 대처했다.

-저도 방금 들어왔는데 무슨 일인지는 잘…… 김 선생님, 거기 불 좀 켜 주시겠어요?

-아, 네.

뒤늦게 온 김 선생이 전등을 켜자, 여교사는 뒤늦게 이소영을 발견한 듯이 화들짝 놀란 연기를 하며 뒷걸음질했다.

-어머, 어떡해!

-이게 뭐예요?

-소, 소영이 코피 나요!

불을 켜자, 이소영의 참담한 얼굴이 더욱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코뼈는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고, 광대도 주저앉은 듯 움푹 들어가 있었다.

아이라서 뼈가 무른 탓에 더 심각하게 손상이 된 모양.

아니, 이 정도 충격이라면 어른이라도 뼈가 부서질 수밖에 없을 테지.

그 와중에 여교사는 지금까지 무표정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경악스럽게 입을 막고 있는 상태.

뒤늦게 온 선생은 여교사를 향해 소리쳤다.

-일단 119부터 불러요. 지금 당장!

-네!

여교사는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갔고, 잠시 후에 119가 오는 장면을 끝으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영상을 다 보자마자, 육성으로 욕이 터져 나왔다.

“이런 미X년.”

미친 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만으로 두 살이 된 어린아이다. 반항도 못 할 정도로 작은 아이.

그런데 말썽을 부린 것도 아니고, 세상모른 듯이 천사처럼 자고 있는 어린애를 저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할 줄이야.

저건 단순 폭행도 아니다. 살인미수라고 봐도 될 정도.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렀다.

만약 내 자식에게 이러한 일이 터졌다면, 검사장이고 뭐고 전부 다 포기한 채 이 녀석들을 쓸어 버렸을 거란 생각이 들고 있으니 장본인인 이두형은 얼마나 분노가 끓어오르는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더 열받는 건, 저 여교사와 여자 원장이 이두형에게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박재필과의 거래 때문에 저 짓을 했다는 사실이다.

돈이 될지, 공무원으로 꽂아 주겠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용서할 수는 없었다.

이두형 차장의 딸이라면, 내 조카와 다름없는 아이들.

가슴은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었지만, 손이 떨리는 건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비에 자리를 잡고 앉은 기자는 휴대폰을 노트북에 연결하고 있었다.

필시 방금 전에 이두형이 분노를 폭발시켰던 장면을 찍은 영상 혹은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겨 기사에 쓰려는 것일 터.

이 모든 상황에서 제일 화가 나는 게 바로 저것이다.

박재필이 이 모든 상황을 계획한 건, 이두형 차장에 대한 개인적은 원한이나 보복이 아니라, 그가 화내는 모습을 찍어 기사를 올리기 위함이라는 사실.

고작 그깟 기사 하나 내서 이두형을 흔들기 위해 만 두 살짜리 어린아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녀석은 더 이상 상종할 수도 없는 쓰레기라는 판단밖에 들지 않았다.

미친개가 콩밥을 먹고 오더니 인간의 상식이란 범주를 넘어선 모양.

“후우.”

나는 주먹을 꽉 쥐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나까지 녀석의 계략에 휘말리면 안 된다.

우선은 기자.

저 기자가 기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분명 녀석은 검찰 간부의 갑질이니 뭐니 하는 프레임을 씌워, 안 그래도 멘탈이 나간 이두형을 흔들 테고, 그 틈을 노려 중앙지검을 전복시키려고 할 테니까.

그러나 강제로 기자의 휴대폰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박재필이 모를 리 없다.

적당한 수를 쓰면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방법을 일러 주었을 터.

오히려 어중간하게 움직였다간, 그것까지 기사를 내서 나까지 곤란하게 만들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걸 노리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주차장에 있는 차가 아니라, 이 병원 로비에서 기사를 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일 테니까.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래 끌었다가는 이두형의 갑질에 대한 기사가 뜨고 말 터.

무엇으로 기자를 막아야 할까.

대체 어떻게 해야…….

머리를 쥐어짠 끝에, 기가 막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저 멀리 벽 근처에 이두형 차장의 수하인 공 수사관이 벽에 기대어 있는 걸 확인하고 고민할 것 없이 바로 행동에 옮겼다.

나는 자연스레 로비에 있는 기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기자의 손에 일부러 부딪쳤다.

보통 세게 부딪친 게 아니기에 녀석이 쥐고 있던 휴대폰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무슨…….”

기자는 미간을 구기며 날 올려다보았고, 나는 능청스레 그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

주워 줄 생각이 없다는 의사 표현을 하고 앞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발을 들어서 옮긴 게 아니라, 뒤에서 앞으로 힘껏 당기듯이 찼다.

내 앞꿈치는 정확히 기자가 떨어뜨린 휴대폰에 적중했고.

퍽-.

휴대폰은 바닥에서 튀어 올라 반대편 벽 근처에 붙어 있던 공 수사관의 발목을 타격했다.

그것도 아주 세게.

“아악!”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공 수사관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기자는 따질 새도 없이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벙한 상태.

나는 그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곧장 입을 열었다.

“어, 공 수사관 미안해.”

미안한 표정으로 손을 들며 사과하자, 공 수사관이 낮게 탄성을 내며 날 올려다봤다.

“아, 검사장님이셨습니까?”

“응. 내가 실수로 휴대폰을 발로 차 버렸네.”

“괘, 괜찮습니다.”

공 수사관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야. 자네 안 괜찮아 보이는데. 공 수사관 지금 발목이 엄청 욱신거려서 걷지도 못할 것 같아. 병원에 한 3주 정도 입원해야 될 것 같은걸?”

“……예?”

순간, 그의 시선은 나와 옆에 있던 기자를 훑더니, 눈치 빠르게 내 말을 받아쳤다.

“아아악!”

공 수사관은 다시금 다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일어나려고 보니까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합니다. 최소한 금이 간 것 같은데요.”

“그래? 잘하면 부러진 것 같기도 하지?”

“예, 맞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폭행을 저지른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 휴대폰이 흉기가 된 거고.”

그제야 기자는 뭔가 상황이 오묘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닫고 내게 항의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공 수사관을 향해 말했다.

“공 수사관, 지금 신고할 거지?”

“예. 안 그래도 112에 신고하려고 하는데…….”

그때, 근처에 있던 윤설하가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공 수사관의 옆으로 다가갔다.

“112보다는 검찰이 낫지 않겠어요?”

“아, 그러네요.”

“일단 폭행이 벌어진 건 확실하니 흉기는 증거품으로 확보해야겠네요.”

이대로라면, 본인의 휴대폰이 우리 손에 들어올 거라는 눈치챘는지, 기자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헛소리들이야!”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회수할 생각으로 공 수사관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나 윤설하가 재빠르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증거품은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녀는 눈을 찡긋하며 기자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장 그녀를 불렀다.

“설하 씨.”

“예, 검사장님.”

“지금 폭행 혐의로 인해서 피해자가 신고할 의사가 충분하고, 여기는 긴급체포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인물이 있네요.”

나는 씨익 웃으며 내 가슴을 툭툭 쳤다.

“검사 권한으로 저 자신을 폭행 현행범으로 긴급체포 명령 내리겠습니다.”

“그게 뭔 개풀 뜯어 먹는 소리야!”

“무슨 말이냐 하면.”

윤설하가 방긋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이 휴대폰이 증거품이 된 탓에 주인도 함부로 가져갈 수가 없다는 뜻이지.”

기자는 윤설하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녀를 향해 내놓으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

“당장 휴대폰 돌려주십시오. 지금 이거 점유이탈물 횡령죄인 거 몰라?”

기레기 짓을 하며 주워들은 건 있는 모양.

그러나 어디 감히 검찰 앞에서 법을 논해?

“점유이탈물 횡령죄는 아는데 공무집행 방해죄는 모르나 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윤설하는 기자의 손을 뿌리치고 나를 향해 도도하게 다가와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최서준 씨, 당신을 폭행에 관한 법률에 의해 영장 없이 긴급체포 하겠습니다. 변호인 선임 및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변명할 말씀이 있으면 지금 바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나는 순순하게 그녀의 체포에 응했다.

“서울중앙지검으로 연행하겠습니다.”

“개소리하지 마!”

황급히 기자 녀석이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너희가 이딴 식으로 짜고 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거 다 기사로 쓰면 너희들 큰일 나!”

“설하 씨, 제가 어디서 협박을 듣는 것 같은데요.”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지죠.”

나는 기자를 향해 물었다.

“더 할 말 있나?”

기자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허망하게 흔들리는 동공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는 법대로 하는 거야.”

“……뭐?”

“불만 있으면 네가 국회로 가서 직접 법을 뜯어고치든가.”

나는 그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주제를 알고 까불어. 기자 새끼가 어디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대?”

“…….”

“우리를 흔들려면 박재필에게 잔꾀 쓰지 말고 직접 오라고 전해.”

기사에게 할 말을 끝내고 윤설하를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가자고.”

“예, 검사장님.”

말문이 막혀 얼빵한 표정을 짓는 기자를 뒤로하고 우리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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