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 (3)
“검사장님.”
이두형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날 바라봤다.
딸에게 그런 사고가 발생한 걸 알게 된 이상,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터.
나는 그에게 서둘러 손짓했다.
“얼른 가 봐.”
“예.”
이두형 차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나는 곧바로 지시했다.
“실무관님, 공 수사관 보고 운전해서 이 차장 모시고 가라고 하세요. 지금 저 상태로 운전하다간 사고 납니다.”
“알겠습니다.”
가족 같은 이두형의 딸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니, 차마 가만히 회의실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장 부장이 회의 진행하고 마무리해.”
“알겠습니다.”
나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
윤설하와 함께 병원으로 가며 천천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단순한 사고일 수도 있다.
아직까지 박재필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으니까.
다만, 여전히 내 직감은 박재필의 수작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어요?”
“거의 다 왔습니다.”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해 들어가자, 역시나 수술실 앞에선 큰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코뼈가 으스러졌는데 누가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고!”
이두형은 분노가 극에 달한 듯,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하면 답니까? 애를 믿고 맡겨 놨는데 다친 것도 모자라…….”
호통을 치는 그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인물은 여자 두 명.
보아하니, 유치원의 담임교사와 원장인 모양.
그때, 멀리 서 있던 이두형의 수사관 공진형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검사장님, 오셨습니까?”
얼굴에 난색이 짙은 걸 보면, 차마 이두형을 말리지도 못하고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 터.
이두형을 말리기 전에 공 수사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일단 차장님의 따님은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랍니다.”
“천만다행이네요.”
“맞습니다. 하지만 코뼈가 완전히 조각나 버려서 수술 시간은 꽤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듣자마자 착잡한 생각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두형의 딸은 내 아들과 3개월 터울로 이제 겨우 네 살이 된 애다. 만으로 치면 아직 36개월도 채 못 된 어린 나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코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고 있으니 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인데 부모 심정은 오죽할까.
“사고입니까, 사건입니까?”
“수술 전에 확인한 바로는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건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최소한 둔기 혹은 성인 남자의 주먹 정도로 내려치지 않고서는 이 정도로 뼈가 바스라질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범인을 모르고요?”
“예. 저쪽 두 명이 유치원 선생들인데, 자기들도 사고가 난 뒤에야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유치원에 CCTV가 의무적으로 달려 있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을 하는 순간, 이두형이 소리쳤다.
“CCTV 내놓으세요. 직접 봐야겠습니다.”
“예.”
유치원 선생들은 조심스레 차로 향했고, 이두형 차장은 콧바람을 내뱉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나는 곧장 그에게 다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차장.”
“아, 검사장님…….”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고, 아직까지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턱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네는 남아 있게.”
“하지만…….”
“소영이 수술 결과는 자네가 들어야지. 안 그래도 지금 제수씨가 아직 오는 중이라며.”
“…….”
“내가 직접 가서 볼게. 소영이 깨면 제일 먼저 엄마 아빠 찾을 텐데 자네가 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 진짜 제 딸 잘못되면 저도 못 삽니다.”
“알지, 알아.”
이두형은 두 손을 뻗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공 수사관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흥분하며 따졌다.
“하필 이때 CCTV가 고장 나서 촬영이 안 되었다고요?”
“예. 정확히는 어제 고장 난 걸 확인했는데, 기사님을 불렀는데 출장이 밀려 있어서 이틀 뒤에나 오실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다른 교실은 촬영되고 있는데,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교실엔 CCTV가 꺼져 있었어요.”
“당신들 일부러 영상 삭제한 거 아닙니까? 본인들이 실수해 놓고 걸려서!”
“아니, 확인해 보세요. 녹화 자체가 안 되었다니까요?”
“원본 하드디스크 주십시오. 직접 확인할 테니까.”
공 수사관이 컴퓨터에 손을 대자, 유치원 원장이 조심스레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뭐요?”
그가 눈을 부릅떴지만, 유치원의 원장은 조곤조곤 말했다.
“하드디스크는 저희 유치원의 사유재산입니다. 확인하고 싶으시면 수색영장을 받아 오셔서 합법적으로 가져가십시오. 그렇지 않으시면 드리긴 힘듭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여전히 유치원에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드디스크를 가져가셨다가 사고라도 나면, 영상 자료가 없는 걸 그쪽이 책임질 겁니까?”
강제로 가져가면 똑같은 일을 또 한 번 발생시켜 놓고 검찰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뉘앙스다.
“……허.”
공 수사관은 헛웃음을 쳤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시는 겁니까? 이 유치원에서. 그것도 낮잠 시간에 저희 차장님의 따님 코뼈가 부러졌다고요. 원인도 알 수 없고요. 그런데 지금 원장님은…….”
원장과 공 수사관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윤설하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박재필이 개입했을 겁니다.”
아니, 의심할 여지도 없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사고 난 소영이가 차장검사의 딸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을 테고, 지금 현장에 있는 내가 중앙지검의 검사장이라는 것도 모를 리 없을 터.
그런데 이렇게 따지고 든다는 건 단순히 배짱이 있는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평범한 유치원이라면 이런 식으로 검찰을 적으로 돌릴 엄두조차 못 낼 테니까.
“역시 그 미친개가…….”
그녀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라이인 건 알았지만, 이제 만으로 두 살밖에 안 된 애한테 무슨 그런 짓을…….”
미친개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윤설하는 휴대폰을 꺼내며 물었다.
“수색영장 발부할까요? 그러면 일단 하드디스크는 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요. 애초에 녹화가 안 되었을 겁니다.”
처음부터 이두형의 딸을 해하고자 결심하고 움직였다면, 녹화 영상을 삭제하는 번거로운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녹화 자체가 되지 않도록 만들었겠지.
일부러 고장을 내서 A/S를 접수했던 기록까지 가지고 있을 터.
박재필은 허술한 인간이 아니니까.
“이거 아무래도 일이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특수부 인력 중,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최소 인력만 배정시키고 이쪽으로 투입시키세요. 그리고 제4차장검사한테 연락해서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인력도 끌어오시고요.”
“예.”
“추가적으로 오늘 내로 검사들로 하여금 유치원의 부모님과 접촉해서 아이들 중에 본 게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시고 자정 전까지 1차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박재필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교사.
여기 남아 있으면 검찰들이 움직일 때 분명 방해받을 수밖에 없을 터.
우선 이 두 명은 이곳에 남아 있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CCTV는 안 된다고 하시니, 그러면 일단 같이 병원으로 이동하죠.”
“예?”
둘은 또다시 병원에 갈 생각이 없었는지, 내 말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소영이 수술이 안 끝났습니다. 설마, 아이를 맡으시는 분들께서 무책임하게 외면하시진 않으실 거 아닙니까?”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차갑게 말했다.
“아니면 이곳에 남아서 할 일이라도 있는지요? 누구한테 연락한다든가…….”
“아닙니다. 가시죠.”
원장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저희도 한창 소영이가 걱정되어서 병원에 가고 싶었던 참입니다.”
***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역시나 상황을 전해 들은 이두형 차장은 유치원 여교사들을 향해 화를 냈다.
“누가 했는지도 모르고, 현장에는 없었는데 CCTV까지 고장 났다?”
그의 얼굴은 경련이 일 것 같은 수준.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애를 맡겨 놨더니 사고를 치는 것도 모자라…….”
두 명의 여교사는 여전히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유치원 원장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이내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근데 사실상 따지고 보면 100% 저희 측 과실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인가.
이두형 차장은 기가 차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뭐요?”
“물론, 저희 측에서 아이를 돌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과실은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질 겁니다. 다만, 혼자 넘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잖습니까?”
갑자기 이런 식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건, 분명 휴대폰으로 무언가 지시를 받은 게 틀림없을 터.
나는 곧바로 윤설하를 불렀다.
“원장 휴대폰 통화 내역 추적하세요.”
“알겠습니다.”
윤설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어 구석으로 이동했다.
이두형은 계속해서 유치원 원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까 의사 선생님 말 못 들었습니까? 무언가로 맞은 게 확실하다잖아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엎어졌을 수도 있죠. 저희는 애들을 낮잠을 재우고 방해하지 않기 위해 교실을 비운 터라, 실제로 움직였다고 해도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요.”
“허…….”
이두형 차장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분을 참으려는 듯 몇 번 호흡을 가다듬으려 했으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X발, 너네 내가 누군지 알아? 남의 금쪽같은 딸이 4시간이 넘게 수술실에 들어가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는데, 뭐? 우리 과실이 아니라고? 그게 지금 할 말이야?”
그는 삿대질까지 하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이러고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너희 자식이 이런 짓 당해도 똑같이 할 수 있어? 있냐고!”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큰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점점 수술실 앞으로 몰리기 시작했으나,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 차마 이두형을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공 수사관을 불러 대신 지시했다.
“다른 사람들이 봐서 좋을 게 없으니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세요.”
“알겠습니다.”
공 수사관이 몰려 있는 인파를 해체시키려고 다가가 허우적대고 있던 그때.
사람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인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왠지 꺼림칙한 느낌에 슬며시 그를 지켜봤다.
남자는 공 수사관이 미는 데도 계속해서 촬영이라도 해야 되는 것처럼 휴대폰을 들고 버티나 싶더니, 이내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으며 로비로 향했다.
그리고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더니, 노트북을 펼쳤다.
얼굴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저런 행동이라면 정답은 뻔했다.
기자.
박재필 측에서 보낸 기자다.
그러니까 내가 저 얼굴을 아는 거겠지.
100퍼센트 이두형에 대해 안 좋은 기사를 쓰려는 것일 터.
막아야 한다.
저렇게 흥분한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가는 암만 사고의 피해자라도 이두형도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을 테니까.
기자에게 다가가려던 그 순간.
지잉지잉.
짧게 두 번.
진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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