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 (2)
“안녕하십니까, 최규현입니다.”
단상에 선 그는 깍듯한 인사와 함께 활기찬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삼일절이자, 올해 봄의 시작을 맞이하여 국민 여러분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특별 대국민담화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능숙하게 말을 이어 갔다.
“봄의 기운이 만연하고 있는 이때, 세계 정세에 맞춰 우리 대한민국 또한 한 걸음 더 발돋움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약속드렸던 경제를 살리는 것과 더불어…….”
최규현은 한참 동안 국민들에게 경제 성장에 대한 약속과 당부를 하고 나서 자연스레 화제를 전환했다.
“이러한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전국의 범죄율이 꽤나 높은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검거율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상태고요. 이는 국민분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큰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가장 도드라지고 있는 지역은 서울에서도 강서. 즉, 서부지방검찰청의 관할 구역입니다.”
그는 능청스레 본 목적으로 들어갔다.
“청와대에서 분석한 결과, 이 문제의 원인은 서부지검장의 부재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올해 1월부로 공석이 되었지만, 작년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썬더볼트 게이트 사건부터 거의 공석과 다름없었던 자리였기에 계속해서 문제가 커지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서부지검장이 직접적으로 해당 사건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언론에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앙지검의 특수부와 서부지검이 해당 사건으로 부딪쳤던 건 온 국민이 아는 내용.
최규현은 은연중에 서부지검장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서부지검장의 자리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자리가 되었고, 결국 지검장의 공석이라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한들, 검사장 자리를 바라고 바라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사실상 주변에서 범죄가 발생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치안이라는 건 국민의 행복과 직결되는 사항이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서부지검장을 맡을 인물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적임자를 찾아냈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최규현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박재필 전(前) 고검장입니다.”
이를 듣고 있는 기자들의 표정에는 의아함이 차올랐다.
박재필이라는 인물 자체가 유명하거나 임팩트가 있었던 건 아니니까.
다만, 현직이 아니라, 전직 검사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
그렇다고 해도 조금만 조사해 보면 그가 위증죄로 복역했던 사실은 바로 파악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최규현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박 고검장은 위증죄를 저질렀고, 이에 대한 형량을 치른 뒤 얼마 전 출소했습니다.”
순식간에 플래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전과자를 검사장으로 올리겠다는 소리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한민국에 없었던 이례적인 사건.
최규현은 주먹까지 꽉 쥐고 외쳤다.
“그러나 제가 직접 만나 본 박재필은 본인의 과오를 씻기 위해 국가에 충성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인물이었습니다. 검사로서 법정에서 거짓을 말했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 이것이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거짓이기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과오에 대해서는 속사포처럼 말하더니 그의 장점에 대해서는 천천히 그리고 강조하며 말했다.
“박재필 전 고검장은 부산고검의 감찰부부터 시작해서 내부 감찰이 특기인 인물입니다. 썬더볼트 게이트에서 보셨다시피 현재 서부지검은 상당히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의 부패를 척결하고 올바른 검찰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대한민국에 박재필만 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뒤이어 최규현은 계속해서 박재필 고검장의 공무원들의 부패, 타락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박재필의 복귀에 대한 합리성을 드러내 국민을 설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꺼낸 카드는 바로 박재필이 ‘순수한 의도’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
“박재필 전 고검장은 서부지검장 이후에 추가 승진은 없을 것이며, 또한 본인이 직접 무임금으로 노동하겠다고 요청한 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민 여러분께서 걱정하시는 유착은 없을 거란 뜻이죠.”
최규현은 진심을 호소하듯 말했다.
“본인의 과오를 씻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인물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외면하는 각박한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인정이 있고 서로를 감싸며 사랑하는 그러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민 여러분께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국민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삶이 빡빡하고 삭막하여 자신의 앞길만 걸어가기도 바쁘고 지친 이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내용.
지금 같은 시기일수록 이런 프레임은 더욱 잘 먹히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마디로 박재필의 복귀가 확정되었다는 뜻이지.
최규현은 흡족한 표정을 숨기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
“저번에 네가 말했던 거 말이야.”
송현성은 술잔을 기울이며 말문을 열었다.
“미친개?”
“응. 네가 감시를 좀 해 달라고 했었잖아.”
박재필이 서부지검장으로 발령이 남과 동시에 송현성에게 따로 부탁했다.
박재필의 동향을 살피기엔 서부지검의 차장검사인 그가 제격이었으니까.
“그랬지, 뭔가 나왔어?”
“아니, 특별한 건 없는데…….”
송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관심을 갖는 것 같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은연중에 나를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어.”
“그건 조금 위화감이 드는데.”
“그렇지?”
둘 사이에 아예 인연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박재필이 서울고검장으로 있던 시절, 송현성은 고검의 감찰부에서 부부장을 맡고 있었으니까.
부장검사까지는 아니었기에 굉장히 가까운 사이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안면은 있는 사이.
그렇기에 송현성에게 접근했다는 게 억지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송현성이 나와 친하다는 걸 박재필이 모를 리 없을 터.
박재필이 이런 것도 조사해 보지 않고 나설 허술한 인간은 아니니까.
그래서 이상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은연중에 끌어들이려고 해도 신의 손 같은 인물로 작업을 치지 않는 이상, 송현성이 박재필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송현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박재필의 의도가 나에게 전해지리라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 사항.
박재필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은연중에 너에게 접근한 게 아니라, 일부러 드러낸 것 같은데?”
“그래?”
“어. 남몰래 접근하는 척하면 너도 이 사실을 파악하고 굉장히 긴장할 거 아니야?”
“그렇지.”
“그리고 이 사실이 나에게 전해진다면, 나도 다른 곳보다 너에게 더 신경을 쏟을 테고.”
“그건 맞긴 한데…….”
송현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차피 내가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데 박재필이 그런 짓을 할 만한 이유가 있어?”
나는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내 시선을 빼앗겠다는 거지.”
“자세히 말해 봐.”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송현성에게 집중하고 있는 사이, 다른 작업을 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이 집중하려는 무언가로부터 내 시선을 돌리겠다는 소리.
하나, 대놓고 박재필이 내 이목을 잡아 둔다는 건, 뒤에서 불곰 정승민이 움직인다는 것이라고 봐도 틀림없을 터.
그들의 본 목적인 무언가로부터 내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는 것.
그게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녀석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테니까.
***
“두형이를?”
“예. 이두형 차장에 관해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게 발견되었습니다.”
윤설하는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장하영 부장 및 남민제 검사 등을 포함한 특수부에 관해 전부 조사했던 정황이 파악되었으나, 그중에서도 이두형 차장을 가장 집중적으로 파악했습니다.”
이두형이 내 오른팔이라는 건 이쪽 바닥에 있는 인물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
아무래도 나를 직접 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해, 이두형 차장을 먼저 공격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조금 걱정스러운 건…….”
윤설하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두형 차장뿐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에 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가족?”
“예. 아내와 두 명의 딸에게 사람까지 붙여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위험하다.
다른 인물이라면 모를까, 박재필은 미친개.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독사까지 죽였던 인간이다.
어디로 튈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
상식적인 범주를 넘어서 범죄도 서슴지 않을 테기에 움직임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거기다가 최규현의 그림자라고 볼 수 있는 불곰까지 가세한 상황.
박재필이 상상으로만 그리던 걸 실현시킬 수 있는 힘까지 주어진 것이라고 봐야지.
“이 차장한테 박재필 측에서 주시한다는 사실 알려 주고, 당분간은 가족들도 정해진 스케줄 외에 따로 움직이지 말고 최대한 근신하라고 해.”
“예.”
“특이 사항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
박재필의 복귀 한 달 뒤, 아직까지 그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특수부 검사들에게는 외출할 일이 있으면 최소한 수사관 하나는 동원해서 움직이도록 하고 개인 활동 중 위험한 일은 삼가도록 전했다.
특히나 이두형 차장은 웬만해서는 혼자 밖에 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고.
지금까지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지만, 폭풍전야라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실에서는 특수부에서 새로 맡은 주요 사건에 대하여 장하영 부장의 요약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지이잉.
갑작스런 진동 소리에 이두형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는 휴대폰을 뒤집으며 전화를 끊었다.
“계속해.”
내 말을 듣고 다시금 장하영 검사가 보고를 이어 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똑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가 문에서 들려왔다.
보통 일이 아니면, 회의 시간에는 방해하지 않을 텐데.
“들어와.”
내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며 이두형의 담당 실무관이 들어왔다.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급한 전달 사항이 하나 있어서…….”
이두형은 미간을 찌푸리며 실무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게…….”
보는 눈이 많아 실무관이 망설이자, 이두형이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그냥 말해도 돼.”
실무관은 안절부절못한 채 입을 열었다.
“차장님 첫째 따님께서 지금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합니다.”
“……뭐?”
“갑자기 유치원에서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코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다고…….”
그 순간, 직감이 왔다.
박재필 이 개X끼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