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30화 (230/341)

격돌 (1)

띵동-.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고 나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어, 자네들 아침 일찍 무슨 일이야?”

“설날 문안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병오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고마워. 자네들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나는 껄껄 웃으며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오게.”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이두형과 장하영을 비롯한 특수부 검사들 중 소위 에이스라고 불리는 인물들이 집에 찾아왔다.

“어서오세요, 검사님들.”

요리 중이던 한지유는 앞치마를 한 채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어떻게 사모님은 뵐 때마다 더 아름다워지세요?”

“어유, 아니에요.”

한지유는 부끄러운 듯 볼을 만졌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이긴 한데…….”

나는 망설이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와서 같이 먹으면 되겠네. 안 그래도 식사 준비하고 있었거든.”

내 말에 장하영 검사는 손뼉을 치며 반색했다.

“어쩐지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고요.”

이두형 차장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한지유는 반갑게 수락했다.

“어유, 그럼요.”

“그래, 다들 앉아. 이리로 와.”

검사들의 수가 꽤 되어서 식탁이 아니라, 거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사모님,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장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엌에 있는 한지유에게 향했다.

“아니에요, 부부장님…… 참, 이제 부장님이라고 불러야지.”

한지유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앉아 계세요.”

“아니, 그래도…….”

“손님인데 일하시면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나는 장하영에게 손짓했다.

“그래, 장 부장, 와서 앉아.”

결국 장하영은 송구스런 표정으로 거실로 돌아왔다.

그때, 이두형이 스윽 주변을 살피더니 물었다.

“지훈이는 아직 잡니까?”

“응. 한창 잘 나이잖아.”

“그렇죠.”

이두형은 아쉬운 듯이 무릎을 쳤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용돈 좀 줘야 되는데 말입니다.”

“어유, 용돈은 무슨. 됐어.”

“아닙니다. 제가 지훈이한테 차장 승진하면 로봇 사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

“예. 하하핫.”

2026년 새해 인사로 이두형은 차장검사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내가 세웠던 기록 때문에 최연소 차장검사는 아니어도,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네 명의 차장검사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

그것도 과거에 내가 맡았던 제3차장검사 자리를 그대로 꿰차며 나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승진한 건 이두형뿐만이 아니었다.

장하영이 그의 뒤를 이어 특수부 부장검사 자리에 올랐고, 남민제 검사는 부부장검사 자리에 올랐다.

머지않아 남민제 검사는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인물을 선별하여 이두형에게 보고할 테고, 그들로 인해 우리의 자리는 더 견고해질 터.

검사장부터 차장검사와 부장검사를 거쳐 부부장검사와 평검사들까지.

자연스럽게 특수부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절대 깨지지 않을 아주 강력한 카르텔이.

이러한 승진 인사에서 가장 이슈가 된 건, 장하영이었다.

이두형도 지방대 출신인 데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에 오른 게 이슈가 되었긴 하지만, 장하영 검사를 넘어설 순 없었다.

지금까지 특수부가 설립된 이래로 단 한 번도 여검사가 특수부의 부장 자리에 오른 적은 없었으니까.

그 덕분에 그녀는 언론에 인터뷰까지 하며 전국에 얼굴을 알려 많은 여성 검사들의 귀감이 되었을 정도.

검사들과 잠깐 이야기를 하는 사이, 한지유가 요리를 마치고 푸짐하게 상을 차렸다.

사실, 검사들이 문안 인사를 오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넉넉하게 준비한 덕분에 음식이 부족하거나 모자란 일은 없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아니에요. 전부 다 저희가 좋아하는 음식들인데…… 새삼스럽게 검사장님이 부러워집니다. 이래서 결혼을 잘해야 된다니까요.”

“맞아요. 음식 솜씨가 진짜…… 한 번씩 인사드리러 와서 식사하고 집에 가면 와이프가 차려 준 밥 먹고 싶지가 않다니까요.”

“호호, 다들 거짓말이 느셨네.”

한지유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맘껏 드시고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양은 충분하니까.”

“그래, 먹자고.”

“잘 먹겠습니다.”

식사를 시작하자, 아니나 다를까 이두형 차장이 한 숟갈을 입에 넣더니 눈을 번쩍였다.

“와, 예전보다 더 맛있어졌는데요?”

나는 허허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반찬이라도 먹고 말하는 게 어때?”

“밥만 먹어도 환상적인데 어떡합니까?”

“어유, 이 차장 승진하더니 말발까지 늘었어.”

“진심입니다. 너무 맛있어요.”

한창 식사를 하던 도중, 작은 방의 문이 열리며 나의 아들이 눈을 부비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엄마.”

“어, 지훈이 일어났어?”

“응. 근데 삼촌들도 왔네.”

“지훈이 안녕.”

검사들은 지훈을 보고 아빠 미소를 지었다.

“어우, 더 귀여워졌어.”

“많이 컸네.”

“우리 지훈이 잘 지냈어?”

“네.”

녀석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한지유에게 말했다.

“그런데 엄마 이거 봐 봐. 방에…….”

한지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들 하고 계세요.”

그녀는 지훈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이두형 차장은 부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지훈이가 검사장님 많이 닮았네요. 잘생기고 똑부러지고.”

“자네도 셋째가 아들이지?”

“예. 맞습니다. 딱 지훈이 반만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얼굴도 잘생긴 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하고.”

“자네, 오늘 작정하고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르고 왔나 보네.”

“아, 티가 납니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식사를 이어 가던 도중, 이두형 차장이 스윽 한지유가 들어간 방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말하게.”

“최근에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뭔데?”

“미친개. 그러니까 박재필 전(前) 고검장이 검찰에 복귀한다고 하더군요.”

나도 들은 바가 있긴 하다.

그래서 그가 출소한 직후부터 윤설하에게 따로 그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 할 만한 정보가 없어 우선은 행동을 보류해 둔 상황.

“제가 사람을 보내 뒤를 좀 캐 봤는데, 최근에 검찰총장과 불곰 그리고 박재필 세 명이서 같은 호텔에 머물렀던 걸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

아마도 윤설하가 감시를 멈춘 걸 확인하고 움직인 모양.

“예. 그런데 제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이두형 차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지금 서부지검장 자리가 공석이잖습니까? 혹시 이 자리가 그를 위한 자리가 아닐지…….”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올 1월 새해 인사에서 서부지검장은 문책성 인사 발령으로 법무연수원의 연구위원으로 발령이 났고, 곧장 사표를 냈다.

법무연수원장이라면 검사장보다 높은 자리지만, 연구위원은 힘이 없는 유배지와 가깝다고 봐야 하니까.

그래서 그 자리를 누가 채우나 지켜봤지만, 이상하게도 최규현은 그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아무도 올리지 않았다.

최규현에게 그 자리를 채울 만한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넘친다고 봐야지.

그 덕분에 서부지검의 차장검사인 송현성만 검사장 권한대행이 되어 한층 업그레이드된 예우와 의전을 받고 있는 상태.

한마디로 노난 것이지.

송현성과 따로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서부지검에서도 자세한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만약 이두형의 말대로 최규현이 박재필을 다시 검찰에 복귀시키려고 한다면 퍼즐이 맞아 들어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암만 박재필이 고검장 출신이라고는 해도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데, 과연 복귀시키는 게 가능할지…….”

“충분히 가능하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죄라면 모를까, 고작 위증죄잖아.”

위증죄도 2심과 3심을 거치며 정상 참작되어 형량이 꽤나 줄어들었고.

“검사에게 신뢰가 중요하다고 한들, 대통령이 작정하고 나서서 포장하면 얼마든지 커버 가능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숟가락을 놓고 말을 이었다.

“최규현은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녀석이거든.”

“그렇군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박재필이 복귀한다는 걸 알아도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썬더볼트 게이트 사건을 처리하며 중앙지검의 몸집이 많이 커지긴 했지만, 최규현을 먼저 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여전히 팽팽한 긴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 정도가 알맞은 설명일 터.

그러니 그쪽에서 먼저 건들지 않으면 나도 움직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쯤 되니, 아무래도 이전에 받았던 과거 문자에서 박재필이 등장했던 장면은 그의 복귀를 예언한 게 아닐까 싶은 느낌.

최규현이 징역을 살았던 검사인 박재필을 데리고 왔다는 건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나와 한판 붙겠다는 소리니까.

아무래도 조만간 큰 격돌이 일어날 것 같다.

“이 차장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 될 거야.”

“준비라면…….”

“머지않아 큰 소용돌이가 펼쳐질 테니까.”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된 이상, 김 비서가 가져왔던 자료들을 포함한 다른 증거들은 크게 쓸모가 없어질 테니까.

그저 이번 승부에서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이번에 승리한다면 최규현은 더 이상 우리를 건들지 못할 거야.”

듣고 있던 특수부 검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끝까지 올라가는 게 확정된다는 뜻이지.”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출세 한번 해 보자고.”

***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박재필은 깍듯하게 머리를 숙이며 손을 뻗었다.

“어, 그래. 박 검사.”

최규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예, 그렇습니다.”

“앉지.”

최규현은 소파에 몸을 묻으며 다리를 꼬았다.

“우리 정 실장 통해서 이야기는 전해 들었을 테고.”

“예. 서부지검장 자리에 가는 걸로…….”

“그래. 3월 봄 인사에서 발령 날 거야. 내가 대국민담화에서 따로 이야기할 테니 정당성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최규현은 손에 깍지를 낀 채 무릎에 올리며 박재필에게 물었다.

“계획은 짜 봤나?”

“예.”

박재필은 비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대통령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최서준이 워낙 약삭빠르고 간교한 놈이잖습니까?”

“그렇지.”

“그것도 모자라 이번 썬더볼트 게이트를 통해서 중앙지검의 힘이 너무 강해졌습니다. 최서준 사단의 힘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라서 녀석을 직접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고검장 시절에도 당했는데 서부지검장으로 맞부닥뜨리면 힘들 테지.”

박재필은 자신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는 말이었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방심했다느니, 신용호가 나서서 꼬였다느니 말한다고 한들 그가 최서준에게 패배한 건 변하지 않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심복이었던 독사까지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교도소행이었으니 말이다.

박재필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녀석의 손발을 묶어 놓고 그것을 이용해 녀석을 치려고 합니다.”

최규현의 얼굴에 흥미가 드러났다.

“지금 녀석의 오른팔은 이두형이라는 놈입니다. 최서준이 특수부에 들어온 직후부터 데려와 키웠던 인물이라 충성도가 남다르고요.”

“그놈을 먼저 해치우겠다는 소리인가?”

“맞습니다. 이두형 차장검사를 치고 그 과정에서 특수부를 전복시키며 최서준 사단이 휘청거린 틈을 타, 최서준의 목에 칼을 들이밀 겁니다. 설명해 드리자면…….”

뒤이어 박재필의 자세한 계획을 들은 최규현은 입꼬리가 씨익 비틀어졌다.

“나쁘지 않네.”

“감사합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놈이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결정할 마지막 싸움이 되겠어.”

이내 최규현의 눈빛이 사악하게 빛났다.

“어디 한번 최서준 그 자식을 능욕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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