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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226화 (226/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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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B, 물뽕을 이용한 성폭행에 본인까지 마약을 하는 녀석이라서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런 악질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동영상이라니.

딱 봐도 각이 나온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성폭행을 하면서 동영상을 찍어 놓고 만약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법적 분쟁을 일으킬 여지가 보인다면, 해당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다고 협박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을 터.

이런 종류의 영상은 한 번 유포되면 인터넷에서는 지우고 지워도 계속해서 다시 올라오니까.

잊히지 못하고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결국 피해자들은 겁이 나서 신고를 하지도 못하고 더욱 음지로 숨거나 성형수술을 하고 새로운 얼굴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동영상이 유포되었다는 걸 알게 되어도, 고소하는 과정까지 가는 것도 절대 쉽지 않다. 유포자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웹하드 카르텔이 탄탄하게 형성된 만큼, 애초에 업체 쪽에서 유포자나 업로더들을 찾지 못하도록 도와준다는 게 업계의 정설.

결국 이런 일을 당하고 나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해도 피의자를 찾기가 어렵고, 찾는다고 해도 협박을 당하니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KM그룹에서 내놓는 적당한 금액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X 같은 세상이지.

피해자가 을이 되고, 피의자가 갑이 되는 더러운 현실.

세태가 이러니까 홍태민은 반성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범죄나 저지르며 동영상을 찍어 대고 있는 것일 터.

그나마 이번에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었던 건, 피해자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었던 덕분.

실제로 피해자에게 들어 본 결과, KM그룹에서 합의금을 제시했다고 한다.

물론, 이제 와서 KM그룹 측에서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발뺌하고 있지만 말이다.

우선, 이런 상황이라면 확실한 건 하나.

홍태민은 아직도 휴대폰을 갖고 있을 거라는 사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한들, 그 많은 동영상이 찍혀 있는 휴대폰을 버렸을 리는 없다.

잘하면 백업본까지 쥐고 있을 확률도 컸다.

그의 변태적인 취향도 한몫했을 테지만, 그것보다는 그 많은 동영상을 삭제한다면, 지금까지 협박해서 입을 다물게 했던 여성 피해자들을 통제할 수단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니까.

결국 홍태민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폭탄을 쥐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

이제 와서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

“혹시 그때 당시에 보셨던 휴대폰 기종은 기억나시나요?”

“글쎄요.”

김부원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까지는…….”

그는 미간을 찌푸리나 싶더니.

“아!”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쳤다.

“휴대폰이 붉은색이었던 게 기억이 나요.”

“붉은색요?”

“네. 케이스를 끼고 있던 게 아니라, 그냥 붉은색이었어요. 그래서 ‘부자라 그런지 굉장히 특이한 휴대폰을 사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케이스가 아니라, 휴대폰이라는 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일반적으로 케이스를 끼면 볼륨 버튼이나 전원 버튼이 케이스에 가려지는데, 그건 보였거든요.”

그 짧은 순간에 캐치하다니.

이건 아주 좋은 힌트다.

휴대폰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 만약 동영상을 지웠어도 충분히 복원할 수 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혹시라도 더 떠오르는 게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꼭 부탁드릴게요.”

“네.”

김부원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제가 중간에 잠깐 이야기하긴 했는데, 이번에 입 다무는 조건으로 제가 돈을 조금 받았거든요. 5천 정도…….”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건 뱉어야 하는 걸까요? 제가 돈이 급해서 바로 썼던 터라 다시 모으기가 힘들 것 같은데.”

전화 통화를 할 때 김부원이 서울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던 게 아마도 이 때문이었을 터.

내심 돈 받은 게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만약에 그쪽에서 돈을 줬다고 밝히는 순간, 그들이 범인이라는 걸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밝히지 않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단숨에 김부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예. 게다가 홍태민이 직접 전달한 게 아니라, 허승건 실장이 돈을 전달했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그러면 증거인멸죄와 증거인멸교사죄로 허승건 실장과 홍태민을 각각 처벌할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특수강간 죄목이 있기에 가중처벌이 될 수도 있으니 그쪽에서도 입 다물 수밖에 없죠.”

“그렇군요.”

“대신 나중에 여유가 생기시면 받은 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에 환원해 주셨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물론 그래야죠. 꼭 그러겠습니다.”

그는 허리를 접어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저야 말로 감사드리죠. 그러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들어가세요.”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이고 밖으로 나왔다.

***

“……해서 가장 먼저 휴대폰을 1순위로 회수해야 합니다.”

김부원에게 들은 사실을 전해 주자, 윤설하는 바로 입을 열었다.

“만약 백업본이 있다면, 아마도 허승건 실장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압수수색영장을 받을 때 동시에 회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첫 번째가 굉장히 중요할 겁니다. 만약 처음에 녀석을 구속하고 압수수색을 동시에 시행했는데도 그 동영상들을 찾지 못하면, 그 녀석들은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휴대폰은 물론이고 백업본까지 전부 삭제할 테니까요.”

만약 작정하고 데이터들을 파괴한다면 우리의 힘으로 찾아내는 건 영영 불가능해질 터.

저장된 디스크를 찾더라도 복구가 힘들 테고.

“구속 명분으로는 마약 복용이 좋을 것 같은데, 설하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윤설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리며 이야기했다.

“제가 홍태민의 DNA를 채취하려고 만났을 당시에만 해도 멀쩡했지만, 특수부 검사의 말에 의하면 엊그저께 녀석이 온몸의 털을 모두 밀어 버렸다고 하더군요.”

이 자식, 아주 작정한 모양이다.

마약 투약을 하게 되면, 모발이나 털을 통해 어느 시기에 마약 투약을 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홍태민처럼 온몸을 왁싱한다면, 몸속에서 마약 성분이 빠져나간 뒤에는 마약 복용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되는 것.

NDFC에 DNA 대조를 위해 홍태민의 머리카락을 확보해 두긴 했지만, 공식적인 경로로 취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증거로 쓰일 수도 없는 상황.

적어도 이번 사건이 끝나기 전까지는 녀석도 더 이상 마약을 투약하지 않을 테니 뚜렷한 증거가 없으면 마약으로는 구속할 수 없을 터.

“그러면 결국 답은 휴대폰밖에 없다는 건데…….”

윤설하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김부원에게 최면을 통해 당시 기억을 확인해 볼까요? 그러면 휴대폰의 모습이 정확히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각인 효과 때문에 만에 하나 실제와 다른 휴대폰을 묘사한다면, 오히려 수사에 혼선이 일어날 테니까요.”

“그렇군요.”

윤설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본 녀석은 휴대폰을 총 3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붉은색의 휴대폰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기억을 되짚더니.

“아!”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중에 주옥전자 제품이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옥전자요?”

“예. KM그룹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KM전자가 아니라, 주옥전자 휴대폰을 들고 있어서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던 게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3대 중 2대는 KM 것이었지만, 나머지 하나가 주옥전자 것이었거든요.”

윤설하는 신중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했다.

“그게 아마 김부원이 말했던 붉은색 휴대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 확률이 높다.

KM그룹의 부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주옥전자 휴대폰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가는 언론에서 난리가 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회사 간부가 선호하지 않는 휴대폰을 국민들이 쓸 리가 있냐며 까 내릴 테니까.

그렇기에 KM뿐만 아니라, 모든 휴대폰 제작 공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의 간부들은 전부 자신의 회사 제품들만 사용하는 게 정석이다.

심지어 직원들도 타사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눈치를 주는 게 현실.

홍태민의 입장에서는 만에 하나 휴대폰을 분실하거나 특별한 이유로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된다면, 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발뺌할 만한 여지를 만들기 위함일 터.

이 녀석, 평범한 재벌 망나니로 봤는데, 생각보다 철저하다.

“그러면 주옥전자의 붉은색 휴대폰일 가능성이 크네요.”

“네. 맞습니다.”

윤설하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내게 물었다.

“제가 다시 한번 접근해 볼까요?”

“절대 안 됩니다.”

딱 잘라 거절했다.

“이미 머리카락과 칫솔을 가져온 탓에 그쪽에서 설하 씨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다시 만나면 위험해질 가능성이 커요.”

안전에 문제가 생길 만한 일은 권할 생각이 없다.

내 사람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

윤설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일단, 주옥전자 제품을 포함해서 현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휴대폰 중 케이스가 없이 붉은색으로 나오는 모델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예. 저는 이 부장과 이야기해서 휴대폰 회수 방법에 대해 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

집에서도 서재에 틀어박혀 머리를 굴리고 있었지만, 그렇다할 만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DNA 조사 결과가 언론에 밝혀지지 않았기에 녀석은 더욱 더 사리고 있을 터.

녀석을 끌어낼 만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한지유가 들어왔다.

“오빠, 산책이나 갈래?”

“응?”

“오늘따라 굉장히 복잡해 보여서. 아까 밥 먹을 때도 엄청 집중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한지유는 아들 지훈이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

“이럴 땐 바람이라도 쐬면서 머릿속을 환기시키는 게 좋아.”

“아…….”

“게다가 오늘 보름달이래.”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나가자.”

간단히 옷을 챙겨 입고 한지유와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아들을 품에 안고, 다른 한 손은 한지유의 손을 잡은 채 그녀와 한강을 거닐었다.

“아, 바람 좋다.”

한지유는 팔을 크게 벌리며 상쾌한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아내가 웃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질 정도.

나오길 잘한 것 같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한지유가 문득 멈춰 서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달 봐 봐.”

“맞다, 오늘 망월이라고 했지?”

“응. 완전 크고 예뻐.”

공해 때문에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휘영청 푸른 달은 청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달 보면서 한강 물 냄새 맡는 게 그렇게 좋더라. 오빠도 한번 크게 들이마셔 봐.”

한지유의 재촉에 나는 눈을 감고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그때.

지잉지잉.

짧게 울리는 두 번의 진동.

왠지 모를 직감이 들었다.

“지유야, 잠깐만.”

나는 그녀에게 아들을 안겨 주고서 곧장 휴대폰을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에는 미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보낸 이 : 28

-달빛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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