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20화 (220/341)

범람 (2)

사진 속에는 한 남자가 포토 라인에 서서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기자들이 그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며 플래시 세례를 터뜨리고 있고, 마이크를 든 기자들은 팔을 힘껏 뻗어 한마디라도 더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사진의 중앙에 서 있는 인물의 액면가는 대략 40대 초반에서 후반 사이.

알고 있는 얼굴은 아니다.

다만, 미래 문자는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사진의 하단부에는 몇 줄의 글귀가 더 붙어 있었다.

-KM자동차의 비서실장 허승건이 지난 20일 서울 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했다. 허승건은 경찰의 수사망이 좁아져 오자, 직접 자수를 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불구속 입건되어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경찰이 아니라, 검찰에 자수를 했다는 것. 허승건은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리고 화나게 한 점에 대해 사죄드린다.’는 말과 함께 ‘경찰 수사를 건너뛰고 더 빠르게 사건이 해결되기 위해 검찰에 직접 모든 걸 밝히기로 결심했다.’는 것으로 자수와 자진 출석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그는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갔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썬더볼트의 성폭행 및 마약 등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 전반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피해자인 A씨는 이번 사건의 피의자가 허승건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어 수사에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정치 1번지 박소민 기자

경찰에서 소환하기도 전에 검찰로 자진 출두라니.

이건 대놓고 답이 뻔했다.

이중호가 말했던 대로 KM그룹의 첫째 아들이 이번 성폭행 사건의 진범이라는 뜻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벌 그룹의 비서실장이나 되는 양반이 죄를 덮어쓸 리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수감 기간을 채우고 나오면 계열사 하나 정도를 받기로 약속했겠지.

내가 알기로 KM그룹의 첫째 아들은 단순히 재벌 그룹의 망나니라거나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인물이 아니라, 장차 KM을 물려받을 인물.

그것뿐만이 아니라, 현재 KM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재벌 부총수 자리를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KM그룹의 회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테고.

이토록 자질이 없는 녀석이 후계 구도에서 1순위를 차지한 이유는 하나.

KM그룹의 현 총수인 홍민규 회장이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으니까.

남의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가문 내에서 대물림시키는 게 낫기에 빠르게 후계 구도를 확정하고 물려주었을 테고, 첫째 아들 녀석은 단기간 내에 손에 큰 힘을 쥐다 보니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다가 이러한 사달이 난 것이지.

머릿속에 그림이 훤히 보였다.

그때, 이중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

홀로 너무 깊게 생각을 한 모양.

“아, 네.”

나는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이중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해서 답해 드리자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일곱 명에게는 이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이중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스파이를 많이 만드는 건 귀가 더 열리는 것이긴 하나, 그 만큼 걸릴 위험이 커지는 법.

차라리 정보력에서 제일 뛰어난 이중호 한 명만을 섭외하는 게 더 효율적일 테지.

물론, 1번 라인에 심어 둔 스파이가 이중호만이 있는 건 아니다.

이번에 우리 쪽에서 여덟 명이나 검거된 것과 같이 2번 라인에서 또한 1번 라인으로 프락치들을 심어 뒀으니까.

다만,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2번 라인에서 보낸 인물들.

당대표인 박형태 의원을 통해서 우리에게로 전달이 된다.

그 과정에서 정보의 전달에 있어 거름망을 거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렇기에 이중호처럼 직접적으로 내게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나 최규현이 대통령이 되어 1번 라인의 정보가 꽁꽁 싸매진 지금의 상황이라면 더욱더.

“지금 그쪽 라인에 돌아가면, 이번에 걸린 나머지 일곱 명과 같이 푸대접을 받을 게 뻔합니다. 그건 알고 계시죠?”

이중호는 착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도 꾸역꾸역 견디십시오. 나머지는 나가리가 되어도 대표님은 버티실 수 있을 겁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1번 라인에서 내가 심어 둔 인물이 그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모양.

하지만 그런 건 없다.

그러나 이중호의 정보력을 생각하면 최규현이나 1번 라인에서 쉽게 버리지는 못할 터.

금방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힘인 데도 내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면 충성심은 짙어질 테지.

플라시보 효과처럼 그 믿음 덕분에 더 빠르게 회복하면 더 좋고.

“앞으로 연락은 이쪽으로 하시면 됩니다.”

그에게 이두형 부장이 사용하는 대포폰의 연락처를 적어 건네주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따로 전달해 드리죠.”

***

“KM그룹이라니…….”

윤설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보통 녀석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재벌 부총수는 예상 밖이긴 하네요.”

그녀는 걱정스런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최규현이 뒤를 봐주기까지 한다면,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재벌이고 나발이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래야죠. 법치주의 국가에서 검사가 재벌을 겁내면 그걸 어떻게 제대로 된 국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윤설하는 기대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검사장님이십니다.”

그녀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진행하면 될까요?”

“특수부 검사들 전원 회의실로 집합시켜 주십시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KM그룹에 검찰의 힘을 한번 제대로 보여 줘야겠습니다.”

***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

수십 명의 검사들이 허리를 펴고 앉아 단상에 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최서준입니다.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검사들 중에서도 에이스로 거르고 거른 뒤, 믿을 만한 녀석들만 뽑아서 모아 놓은 게 바로 특별수사부다.

한마디로 내 직속 라인들이 모여 있는 곳.

그럼에도 나와 제대로 만나 본 적 없는 인물들이 태반이다.

검사장급까지 올라간 이상, 부장급이 아니면 직접 만날 일 자체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 중에서는 존경하는 눈빛으로 날 우러러보는 인물도 있었고 연예인 보듯 신기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내가 직접 특수부를 불러 모아 대면하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 준 것과 같았다.

-특수부는 대한민국 검찰의 중심이자, 얼굴이며 중앙지검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살아가도 좋습니다.

검사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한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특수부를 모아 놓고 검사장인 제가 직접 이곳에 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 눈치채셨을 겁니다.

예고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발언대에 양손을 짚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상대는 재벌입니다. 단순한 재벌도 아니고 재벌 부총수를 상대하는 일이죠.

저 멀리 몇몇 검사들의 동공이 확대된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웅성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후계 구도상 재벌 총수가 되는 걸로 확정이 된 인물입니다.

천천히 검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KM그룹 다들 들어 보셨죠?

국내에서 재계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 중의 재벌.

놀랐는지 몇몇 검사들은 헛바람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미리 말합니다. 재벌 그룹을 상대하다 보면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영광스런 특수부에 있지만, 언제든 지방 한직으로 밀려날 수도 있으며 변호사 개업이나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목소리 톤을 더욱 엄중하게 낮췄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이 부담스럽다면 지금 이 회의실에서 나가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에서 불이익을 준다거나 차별을 주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확실하게 약속하죠.

내가 고개를 돌리자, 윤설하는 직접 회의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눈치 보지 않고 나가셔도 됩니다.

나는 이두형 부장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부장, 장 부부장 눈 감으십시오.

그들은 내 말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실제로 여기서 나간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거나 욕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자신의 앞가림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법이니까.

다른 부서 같았으면 평검사들은 두리번거리며 주변 이들의 눈치를 보거나 조심스럽게 나갔겠지만, 이곳에서는 고개를 돌리는 이조차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검사들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마치 히말라야를 마주한 산악인의 그것처럼.

누구 하나 빠짐없이 굳건한 표정으로……. 아니, 재벌을 상대하는 게 기대되고 흥분된다는 듯이 주먹까지 꽉 쥐고 있었다.

이를 보자 절로 웃음이 났다.

그래.

이래야 특수부지.

이 정도는 되어야 최서준 사단 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침묵과 굳은 의지로 가득 찬 5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나갈 친구가 없는 것 같으니 문은 닫도록 하죠.

윤설하는 문을 굳게 닫고 잠갔다.

저 멀리 평검사 하나가 기대된다는 듯이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특수부답다.

-앞에 있는 책상의 서랍 속을 한번 확인하십시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항들을 미리 인쇄해 둔 자료다.

윤설하가 파일링해 놓은 내용이지만,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

-우리가 잡을 녀석은 이번 썬더볼트 게이트에서 묻히고 있는 성폭행 사건의 범인입니다.

다시금 특수부 검사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렸다.

-우선 진범부터 까놓고 가겠습니다.

진범인을 알고 있다는 말에 다들 놀라는 눈치를 지우지 못했다.

-KM그룹 첫째 아들, 홍태민입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 이번 수사는 표적 수사입니다. 물론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진범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이 녀석을 처벌하기 위한 수사죠.

특수부를 믿고 있기에 걸러서 말할 필요는 없었다.

또한 이 정도 규모로 움직이면 홍태민은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는 건 당연히 알아챌 터.

그렇다면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대놓고 당당하게 가야 한다.

-여러분들은 함정 수사든, 기획 수사든 상관없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 발정난 개X끼를 잡아 오시면 됩니다.

나는 힘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기대하겠습니다, 특수부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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