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18화 (218/341)

장작 (7)

“다시 말해 봐.”

집무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기, 김학민 실장이 어제 2번 라인의 모임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불곰 정승민 비서실장은 말하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규현은 책상에 있던 물건들을 와르르 쓸어 던져 버렸다.

“이런 개X끼가.”

그의 목소리에선 싸늘함을 넘어서 살벌함이 느껴졌다.

만약 김학민 실장이 눈앞에 있었다면, 최규현은 목을 졸라 죽여 버렸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

“최서준에게 붙은 게 확실해?”

그의 물음에 불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예. 최서준 검사장이 직접 그를 라인으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최규현의 주먹이 꽉 쥐어졌고, 그의 손톱은 살점을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의 팔이 바르르 떨려 올 정도.

‘김 실장이 갔다면 절대 맨손으로 갔을 리가 없지.’

자신의 비리에 대한 증거.

그게 최서준의 손에 들어갔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김 실장을 받아 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최서준은 절대 그 증거들을 허투루 날려 먹지 않을 존재.

이제 겨우 대통령이 된 지 3개월째다.

그런데 벌써부터 비리 사건이 터진다면, 앞으로 임기 동안 가시밭길이 펼쳐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탄핵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힘이 빠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그러한 사건들을 터뜨리면 최서준의 자리는 더욱 굳건해질 테지.

이렇게 된 상황에서 그가 바랄 수 있는 건 하나.

‘최서준이 사건을 직접 터뜨려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조사 과정을 빌미 삼아 2년 뒤에 그의 검사장 임기가 끝나면 옷을 벗길 수 있을 테니까.

정보의 출처가 김 실장이기에 최규현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서준이 만약 자신의 수족을 이용해 사건을 터뜨린다면 골치가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타격을 입되, 최서준은 수족을 잘라 내는 것으로 버틸 수 있으니까.

물론, 최서준의 성격상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최서준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었다.

제일 문제인 점은 따로 있었다.

만약 최서준이 정치인으로 나설 생각까지 있다?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이번 일을 터뜨리며 검사직에서 물러나고 본인 특유의 청렴한 이미지를 어필해 정계에 입문한다면 최규현은 힘 빠진 호랑이로, 최서준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실세 국회의원 혹은 시장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최서준이 직접 사건을 터뜨리되, 정계에 입문하지 않는 걸 바라는 수밖에 없는 상황.

최규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내 비리 터지는 걸 바라고 있다니.’

일이 단단히 꼬여 버렸다.

최규현은 머리가 지끈거려 와 두통약을 집었다.

그런데 그때.

지이잉.

정승민의 휴대폰에 다급하게 진동 소리가 울려 댔다.

안 그래도 예민했던 최규현이 짜증을 내려는 찰나.

“대통령님, 아무래도 TV를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정승민은 사색이 된 얼굴로 리모컨을 들었다.

그리고 화면이 켜지자, 검은 실루엣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로 인해 저는 서부지검에서 쫓겨나 중앙지검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변조된 목소리와 그림자뿐이었지만, 이를 지켜보던 정승민과 최규현은 실루엣 뒤에 숨어 있는 인물의 정체를 직감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방에서 위협이 가해지는 탓에 오래도록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희 검사장님께서 도움을 주셔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지금까지의 검사 커리어…… 아니, 앞으로의 제 인생을 걸고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그 사건과 대한민국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자들의 비리를 파헤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화면이 멈추며 자막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 검사의 눈물 (3부작)

이번 주 토요일 오후 11시라고 시간까지 명시되는 것을 끝으로 프로그램의 예고가 끝났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고, 정승민이 TV를 끄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성진현인 것 같습니다. 최서준에게 정보를 받아서…….”

불곰이 말하지 않아도 최규현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의 자리가 굉장히 위험해질 거라는 것도.

최규현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정 실장.”

“예, 대통령님.”

“막아.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막아.”

“알겠습니다.”

불곰 정승민은 도망치듯 집무실에서 빠져나갔다.

최규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가만히 있다가는 찢어발겨지고 말 터.

결국 그는 결심하고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날세. 오늘 저녁에 만나도록 하지.”

***

“이거 진짜 괜찮을까요?”

윤설하는 TV를 통해 예고편을 보며 걱정스런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최규현이 예상대로 움직일지…….”

“최규현이라면 그럴 겁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죠.”

눈에 불을 켜고 권력을 좇는 사람이다.

자신의 손에 쥔 권력이 흔들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 인간이지.

이 바닥에서 20년이 넘게 버틴 끝에 정상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이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하나가 얼마나 큰 여파를 불러올지는 최규현도 잘 알고 있을 터.

이 내용이 방영만 된다면, 국민들 사이에 불이 번져 활활 타오르는 건 말 그대로 시간문제다.

최규현이라면 이러한 장작에 불이 붙기 전에 꺼뜨리려고 모든 힘을 쏟을 테지.

그걸 바라고 이 예고편을 내놓은 것이고.

“우리는 느긋하게 차나 한 잔 마시죠.”

“예.”

윤설하와 함께 소파에 마주 앉아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발신인은 최규현.

“안 받으십니까?”

윤설하가 조심스레 물었지만,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바로 받으면 멋없잖아요.”

커피 잔을 빙그르르 돌리다가 전화가 끊기기 직전에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아주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대통령님.”

-어, 날세. 오늘 저녁에 만나도록 하지.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말투에서 얼마나 다급한지를 알 수 있었다.

티를 내지 않고 싶어도 심리적으로 워낙 몰려 있는 터라, 어쩔 수 없는 모양.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당연히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는 없지.

“글쎄요. 제가 오늘 저녁에 선약이 있어서…….”

-그러면 몇 시에 시간이 되는가?

“한 5년 뒤에 정권 바뀌고 나면 시간이 될 것 같은데 그 때 뵈시죠. 아, 그 전에 정권이 바뀌려나? 요즘 탄핵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는 걸 국민들도 잘 알고 있더라고요.”

살살 약을 올렸지만, 최규현은 이를 지르물고 대답했다.

-내가 그쪽으로 가지. 이번에 이사 간 집이 성북동이라고 했나?

“대통령님, 제가 한남동으로 이사 온 게 언젠데……. 저한테 너무 관심이 없으신 거 아닙니까? 이거 서운해지려고 하는데요.”

휴대폰 너머에서 그가 화를 꾹꾹 참고 있는 게 눈에 선했다.

“듣고 계십니까?”

-……오후 6시에 한남동으로 가겠네.

“아, 검찰청 퇴근 시간이 6시라서 그때는 힘들 것 같고 7시에 뵈시죠. 장소는 불곰…… 아이고, 실수. 정승민 비서실장에게 전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휙 끊었다.

윤설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 못해 입까지 쩍 벌리고 놀란 상태.

현 대통령에게, 그것도 이제 막 부임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에게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양.

나는 그녀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제 예상대로 됐죠?”

***

최규현과 7시에 약속을 잡았으니, 시간을 딱 맞춰서 8시에 등장했다.

“일찍도 왔군.”

그의 얼굴에선 벌써부터 노여움이 차올라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집에서 밥 먹고 오느라고요. 누구 얼굴 보고 가면 밥이 안 넘어갈 것 같아서…….”

나는 느긋하게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아, 늦어서 화나신 건 아니시죠? 눈썹이 삐죽 올라가 계신 것 같은데…….”

최규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분을 삭였다.

“질질 끌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나 나나 돌려 말하는 건 좋아하지 않잖나?”

“제가요?”

천연덕스럽게 눈썹을 들썩였다.

“저는 완곡한 어법의 달인인데…… 아, 청와대까지는 그 소문이 전달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최규현의 입술이 삐죽 올라가는 걸 보다가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겨우 참았다.

그는 손에 깍지를 끼고 내게 몸을 기울였다.

“김 실장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 갔나 봐.”

“아, 네. 그랬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김학민 실장님이 선물을 보따리로 가져오셔 가지고……. 어후, 저는 제가 생일인 줄 알았다니까요?”

최규현은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는 듯이 완강하게 말했다.

“자네나 나나 서로 건들면 다친다는 건 알지 않나?”

“그런가요?”

나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실제로 다칠지, 다치지 않을지 실험해 보고 싶긴 한데…….”

한 번 더 도발을 하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위험한 건 좋아하지 않아서요.”

참았다.

여기서 더 긁었다가는 최규현이 혈압이 올라서 쓰러질 것처럼 보였으니까.

“서로 건들지 않기로 하지.”

최규현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5년. 내 대통령 임기 내내 서로 터치하지 말자고. 나도 최 검사가 승진하는 걸 막지 않을 테니, 자네도 쿡쿡 쑤시지 말라는 거야. 둘 다 기분 좋게 5년 마무리하면 좋잖아?”

평화 협정 조약이라.

최규현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시간이 흘러 본인의 약점이 덮어진다면, 그는 다시금 내 뒤통수를 칠거라는 것 정도는 안다.

이 인간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니까.

최규현이 먼저 김 실장이 빼돌린 비리 증거들을 인멸하느냐, 아니면 내가 먼저 행정부의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건을 터뜨리느냐의 싸움이다.

시간이 승부처가 될 테지.

당연히 최종 승자는 내가 될 것이다.

최규현과 나는 동상이몽을 하며 가면 아래 속내를 숨기고 손을 마주잡았다.

“역시 최 검사가 말이 잘 통한다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대통령님.”

***

최규현과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송재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최서준입니다.”

-저 방금 국장님이랑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했는데 서준 씨가 말씀하셨던 그대로더군요.

그는 목소리부터 신나 있었다.

“방영하지 말라고 합디까?”

-예. 그래서 다큐멘터리 테이프까지 지우는 조건으로 이번 겨울 개편에서 총괄 권한 얻었습니다.

“잘됐네요. 축하합니다.”

-다 서준 씨 덕분이죠.

그는 흐뭇하게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다큐멘터리 촬영도 하지 않고 예고편만 방영했는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거죠.”

나 또한 호탕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페이크.

최규현이 보고 똥줄을 탔던 다큐멘터리의 예고는 말 그대로 페이크였다.

예고편만 찍었지, 본편은 찍지도……. 아니, 찍을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김학민 실장이 가져온 증거들로는 최규현과의 임시 평화 협정을 하는 게 내 목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아주 완벽하게 실현되었다.

그 과정에서 송재훈도 덕을 봤고.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간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푹 쉬십시오.

최규현이라는 보스는 미뤄 뒀으니, 지금부터는 잔당을 해치우면 될 터.

나는 송재훈과의 전화를 마무리하고, 곧장 성진현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검사장님.

“어제 김학민 실장 데려왔을 때 확인한 프락치들 목록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제 스파이들을 처단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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