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6)
“여기서 검사장님을 뵈어서 그런지 감회가 새롭네요.”
성진현은 내 사무실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매번 다른 곳에서만 이야기했었는데.”
“그러게요. 검사장실 오신 건 처음이시죠?”
“예. 제가 중앙지검은 들어올 일이 많이 없어서…….”
그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아, 서부지검에 비해 사무실은 확실히 좋더군요.”
“급하게 모셔 오느라고 빈자리가 거기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성진현이 배정된 부서는 건설부동산범죄전담부.
서부지검의 주요 부서에서 부장을 달고 있다가 오히려 부부장으로 내려온 격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그는 오히려 감사해하고 있었다.
“나중에 좋은 자리 생기면 바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꾸벅이며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들어 보니까 내년 초에 이두형 부장이 차장검사로 승진한다고 들었는데…….”
“특수부가 눈에 들어오시나 봅니다.”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다른 이라면 발칙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성진현이니 크게 개의치 않고 웃어넘길 수 있었다.
비록 도망쳐 온 신세라고는 하나, 그는 충분히 능력도 있고 인맥도 있었으니까.
다만, 특수부는 나의 심복들이 있는 부서.
그곳은 불가침 영역이다.
“죄송하지만, 다른 부서는 몰라도 특수부는 힘들 것 같습니다. 거긴 제 직속 부하들이 있는 곳이라…….”
이두형이 차장으로 올라가면, 그 밑에 있던 장하영이 부장으로. 또 그녀의 후임인 남민제 검사가 부부장으로 쭉쭉 올라와야 하니까.
남민제 검사와 라이벌이었던 박기원 검사는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 정권이 바뀌었어도 대검에서 잘 살아남아 있다고 전해 들었다.
둘을 나눠서 배치한 게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알아들은 성진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검사장님께 특수부는 의미가 특별할 텐데 제가 너무 욕심을 냈네요.”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그는 더 이상 다른 부서를 언급하거나 욕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내가 충분히 챙겨 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지금 건설부동산범죄전담부에 있다고 한들, 그쪽 업무를 맡아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시한 사건을 맡아서 처리할 것이기에 부서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건설부동산범죄전담부에서도 성진현이 부부장을 꿰차긴 했지만, 잠깐 머물다 갈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크게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고.
“그나저나 썬더볼트 게이트 자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잘 빼돌려서 가져왔습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투로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검사장실 들어오기 직전에 이두형 부장에게 넘기고 왔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시작인 걸요.”
“이두형 부장, 꽤나 능력이 뛰어난 친구입니다. 같이 일하시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성진현은 다시금 고개를 꾸벅였다.
“그나저나 조금 전에 이두형 부장한테 서류 전달하면서 들은 건데, 김학민 실장이 이쪽에 붙은 걸 최규현에게 알리신다고 하셨다던데 혹시 어떻게 하시려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방긋 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그와 관련해 성 검사님께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잔에 남아 있던 커피를 한입에 털어 마신 뒤 그를 향해 말했다.
“조만간 김학민 실장을 데리고 2번 라인에 갈 겁니다.”
“라인에요?”
눈을 휘둥그레 뜬 그에게 찬찬히 계획을 설명했다.
***
“어, 최 검사장 왔는가?”
박형태 의원은 손을 들어 반갑게 날 맞이했다.
“예, 의원님. 안녕하셨습니까?”
“요즘 사는 게 퍽퍽해서 그렇지, 뭐. 최규현이 정권을 잡아서 그런지 아주 죽을 맛이네.”
그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박형태 의원.
조현웅 의원이 대선에서 최규현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밀려난 자리를 꿰차고 등장한 민국당의 당대표이자, 2번 라인의 새로운 수장.
지난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내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에 2번 라인의 정권 교체가 끝나 버렸다.
조현웅 의원이 낙선하고 뒤로 밀려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내부 변화에 직접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새롭게 정해진 서열대로 대우만 해 줬더니 박형태 의원을 비롯한 새로운 실세들은 내가 역풍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했고, 그 덕분에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는 소주병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얼굴을 보자고 했나?”
“라인 쪽에서 한 가지 쇼를 보여 주려고 하는데, 의원님께는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박형태 의원은 고개를 갸울였다.
“쇼?”
“예. 요즘 한창 핫한 썬더볼트 게이트 사건 알고 계십니까?”
“대한민국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
내가 소주를 채워 주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잔을 부딪치고 단번에 털어 넣었다.
나는 잔을 입에 대기 전에 말했다.
“그 썬더볼트 게이트에 최규현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쿨럭!”
그는 깜짝 놀라 사래가 들렸는지 마시던 소주를 바닥에 뿜었다.
“괜찮으십니까?”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자, 입가를 닦고 나서 헛웃음을 지었다.
“나이를 먹으니 깜짝 놀라면 몸이 반응을 해 버리네.”
그는 잔을 내려놓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규현을 무너뜨릴 만한 증거까지는 없어서 우선 녀석의 심리를 졸이게 만들려고 합니다.”
“자세히 말해 보게.”
“그러니까 저희 라인 정규 모임에…….”
내 계획을 전해 들은 박형태 의원은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그거 아주 그럴듯하구먼.”
“그러면 이틀 뒤, 목요일에 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나도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지.”
그는 끌끌거리며 다시금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굉장히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겠구먼.”
***
힐 컨시어스 호텔의 최상층 펜트하우스, VIP라운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옆에 있던 김학민 실장은 종전부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면 사람들이 분명히 지탄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저랑 같이 가면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뒤에서 수군거리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톡 때렸다.
“어차피 저와 손잡았다는 사실을 최규현에게 보여 주러 가는 겁니다. 여기서 당당하셔야지, 긴장해 있으면 최규현이 겁먹겠습니까?”
“그렇겠네요.”
김학민 실장은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했다.
“최규현 대통령에게 또 휘둘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고, 몇 초 사이에 그의 얼굴에서 불안했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멈춰 설 즈음, 그는 완전히 여유로운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역시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만큼 김학민 실장도 프로는 프로라니까.
“가시죠.”
“예.”
그는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2번 라인은 이런 느낌이군요.”
김학민 실장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나의 뒤를 따라 VIP라운지에 들어섰다.
“어, 최 검사장님 오셨습니까?”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한 대검찰청의 주민혁 공판부장검사가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주 부장님.”
“그러게요. 간만에 뵈니 더 반가운 것 같습니다.”
“잘 지내셨죠?”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멀리서 보니 누구랑 같이 오신 것 같던데…….”
“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나며 김학민 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굴은 알고 계시죠?”
김학민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손을 뻗었다.
“김학민입니다.”
“헛!”
주민혁 부장검사는 헛바람을 삼키며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제가 아시는 그분 맞으시죠?”
“예.”
김학민 실장은 날 곁눈질하며 말했다.
“최서준 검사장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 그렇군요.”
주민혁 부장검사의 놀란 소리에 자연스레 주변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김학민 실장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테니,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
“나중에 또 이야기하시죠.”
“아, 예.”
여전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주민혁 부장검사를 뒤로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중간에 성진현 검사와 슬쩍 마주쳤지만, 눈인사만 하고 자연스레 다른 이들 사이에 끼어 들어갔다.
그렇게 천천히 인사를 하고 있는데.
“최 검사장.”
민국당의 새로운 원내대표인 김승찬 의원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며 반갑게 다가왔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그 또한 나의 옆에 있던 김학민 실장을 보고 당혹스러운 태도를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어, 그래.”
그는 몇 번 곁눈질을 하나 싶더니.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예.”
나는 김학민 실장을 두고 김승찬 의원과 단둘이 옆으로 벗어났다.
“최 검사장 제정신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인간이 최규현 오른팔이었던 걸 자네가 모를 리도 없고…….”
“예. 그런데 최규현에게 팽 당할 위기라고 하더군요.”
“본인이 그러던가?”
“네. 그래서 제가 거뒀습니다.”
그러나 김승찬 의원은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최규현이 심어 둔 프락치면 어떡하려고?”
“그건 절대 아닙니다.”
“확신할 수 있나?”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내일 박형태 의원님께서 알려 주실 겁니다.”
그는 진지하게 숨을 내뱉고는.
“자네가 그렇다면 뭔가 뜻이 있나 보구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주의하고. 김학민 실장 저 녀석 아주 영악한 놈이니까.”
“알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나는 빙긋이 웃으며 김학민 실장에게 돌아갔다.
그는 몇몇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경계하며 수군거리고 있는 상태.
다행히 김학민 실장은 최규현에 대한 복수라는 일념 하나로 다른 이들의 눈총과 스스로에 대한 부담감을 잘 견뎌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성진현 검사가 누군가의 뒤를 따라 빠르게 걸어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스!
김학민 실장을 데려온 진짜 목적이 실현되기 직전이다.
그를 이곳에 데려온 건, 정말로 우리 라인에 영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김학민 실장이 나와 손잡았다는 걸 최규현에게 알리면서 프락치들을 검출해 내기 위함.
내가 1번 라인 시절에 성진현을 통해 2번 라인의 정보를 전달받았던 것처럼 2번 라인에도 스파이로 들어와 최규현에게 정보를 전송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내가 김학민 실장을 데려왔다?
그러면 자연스레 그가 내게 붙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연히 맨손으로 온 김학민 실장을 받아 줄 리 없으니, 최규현의 정보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터.
게다가 대놓고 이곳으로 김학민 실장을 데려왔다는 건, 내가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증거.
다급해진 스파이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최규현에게 이 정보를 전달하려고 할 것이다.
그만큼 위급하고 중요한 사항이니까.
이 사실이 전달되면 최규현은 당연히 나를 섣불리 건들지 못하게 되겠지.
그뿐만 아니라, 이 VIP라운지 내에 성진현과 더불어 믿을 수 있는 몇몇 검사들을 더 심어 두었다.
그들은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다른 이들을 감시하다가, 내가 김학민 실장과 함께 등장했다는 사실을 최규현 혹은 그쪽 라인에 보고하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는 낌새가 보이면 쫓아가 증거를 확보할 것이다.
프락치들을 색출함과 동시에 쫓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처음에 만났던 주민혁 부장검사도 마찬가지로 내가 심어 둔 인물 중 하나.
연기가 아주 훌륭해서 나까지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물론, 이 사실은 김학민 실장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라인에 소개시켜 주는 걸로만 알고 있는 상황.
그래서 더욱 자연스러움이 부각되었던 것이고.
오늘이 지나면 대한당에서 이쪽으로 보낸 정보원들도 다 사라질 테니, 1번 라인은 민국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될 터.
이제 최규현 이제 똥줄 좀 타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