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5)
이두형 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김학민 실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빛에서는 살벌함까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허투루 대답했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는 직감이 들 정도.
지금의 대화는 단순히 이두형 부장검사와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서 은연중에 최서준 검사장의 실루엣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저는…….”
김학민 실장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단어를 골랐다.
“정말 살고 싶어서 왔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언론에서 한창 터지고 있는 썬더볼트 성폭행 사건에서 정작 중요한 성폭행은 묻히고 있고, 마약과 클럽의 운영에 관한 문제점으로 시선이 쏠리고 있잖습니까?”
실제로 그의 말처럼 언론에서는 썬더볼트 성폭행 사건에서 썬더볼트 게이트로 이름까지 바꿔 부르고 있는 상황.
이두형 부장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김학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검사장님께 전해 드린 자료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이번 썬더볼트 사건에서 사용된 마약의 중간 유통자가 접니다. 당연히 수익금은 최규현 대통령에게 들어갔고요.”
김학민 실장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사건이 이렇게 흘러가는 건, 실제 범죄자인 VIP를 숨기기 위해 계속해서 본질 흐리기를 함과 동시에 가짜 범인을 내세워서 처벌시킨 후 적당히 무마하려는 겁니다. 만에 하나 마약 유통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 그 책임은 제가 질 게 뻔하고요.”
그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대통령에게 쫓겨나고 난 뒤에도 자기 이름을 팔아서 마약 유통을 했다는 가식적인 소리나 할 겁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그 말을 믿을 거고요.”
이두형 부장은 숨을 깊게 한번 들이마신 뒤 물었다.
“그 VIP라는 놈이 누굽니까?”
“…….”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학민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십시오.”
“정말입니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이두형 부장은 알 수 없었다.
김학민 실장은 하소연하듯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도 살고 싶어서 나온 겁니다. 거기 있다가는 분명 이용당하다가 팽당할 게 뻔하기에…… 그래서 목숨이라도 건지려고 검사장님을 찾아갔던 겁니다.”
이렇게 말한 이상, 더 캐내 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두형 부장도 오랜 검사 경력으로 잘 알고 있기에 다그치지 않았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그가 프락치 짓을 하러 온 건지, 정말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서 온 건지 확인할 길은 있었다.
“만약 저희가 그쪽을 보호해 주지 않겠다면요?”
이두형 부장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그의 태도와 말은 김학민 실장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버려질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심어 주었다.
잠시 망설이던 김학민 실장은 주먹을 꽉 쥐고 간절하게 말했다.
“검사장님께 드린 자료는 확실합니다. 검토하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보충 자료도 즉시 가져다 드릴 수 있고…….”
이두형 부장은 김학민 실장의 말을 끊고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측에서 김학민 실장님을 보호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신다면…….”
김학민 실장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해외로 도피하든, 섬에 숨어 살든 해야죠. 최규현의 임기가 끝나는 5년만 버티면 어떻게든 될 테니…….”
그는 말하다가 탄식을 내뱉었다.
“아마 버티지 못할 게 뻔하지만요.”
“그렇다면 보호하겠다는 약속도 받지 않고 자료를 건넨 이유는 뭡니까?”
김학민 실장은 힘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차피 제가 검사장님께 정보를 넘기든, 넘기지 않든 상관없이 최규현은 절 죽이려고 할 겁니다.”
평소 최규현의 성격을 생각하면 김학민 실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정권이 가진 힘을 생각하면, 웬만한 이들은 최규현에게 반항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에게 대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죠.”
이두형은 아주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마지막 희망을 걸어 본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규현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요.”
그의 말에 이두형 부장은 눈을 감았다.
이런 식으로 궁지에 몰았는 데도 자신에게 바락바락 대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김학민 실장이 간절하다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최규현과 짜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태도.
이두형 부장은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김 실장님이 원하시는 최종 목표는 최규현을 탄핵시키는 겁니까?”
“아닙니다.”
김학민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생존입니다. 최서준 검사장님과 손을 잡았다고 하면, 적어도 저를 건들지는 못할 테니까요.”
결국 그의 의도가 완연하게 드러났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서 최서준에게 붙은 것이다.
암만 증거가 확실하다고 한들, 현재 정권을 생각하면 언론을 찍어 누르고 조작해서라도 탄핵의 탄이라는 글자는 언급되지 못하게 막힐 것이다.
하지만 탄핵이 아니라, 단순히 생존이 목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최서준 검사장도 무리해서 증거를 밝힐 필요성은 없고, 그걸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최규현이 건들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김학민 실장을 보호하는 걸 넘어서 최서준 검사장이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될 터.
최규현의 힘이 빠질 때까지, 그리고 최서준이 다시 힘을 키울 때까지 버티는 중간 다리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찬스였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최서준 사단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쉬운 건 김학민 실장이라는 사실.
갑의 위치에서 굳이 손을 내밀어 동등한 위치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건 최서준에게 배웠다.
그렇기에 이두형 부장은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는 뜨거운 물속에서 몸을 일으키고서.
“다시 연락드리죠.”
그 말을 끝으로 이두형 부장은 먼저 사우나에서 빠져나왔다.
***
“일단 김학민 실장의 말은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어제 그와 대화를 마치고 서울과 인천 쪽 경찰들에게 연락을 돌려 확인해 봤는데, 마약 유통에 관해서 김학민 실장이 설명한 상황엔 거짓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상황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도 틀림없었고요.”
“그렇다는 말이지…….”
나는 천천히 턱을 쓸어 만졌다.
어제 김학민 실장이 건넨 서류에도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확인한 터라 확실하지 않기에 검증 과정이 필요했고, 지금은 윤설하가 검토를 하고 있는 상태.
이두형 부장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최규현이 보내지 않았다는 건 믿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내가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김학민 실장은 최규현에 의해 장영순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그를 내 보호하에 둬야 했다.
단순히 김학민 실장과의 안면이 있다는 사사로운 정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규현과 붙어서 나를 괴롭혔던 옛정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쳐 내는 게 맞겠지.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인물의 정보를 가져와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여기서 내가 그를 쳐 낸다?
이걸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자신의 상관을 배신하고 내게 붙으려던 사람들은 이번 사례를 보고 오히려 본래의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그를 보호해 준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내 최대의 적수인 최규현의 오른팔이었던 인물을 너그러이 받아 준다면, 그 다른 어떤 인물이라도 내게 만족할 수 있는 정보를 가져올 경우엔 포용해 준다는 뜻이니까.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대의를 생각한다는 걸 몸소 보여 주는 사례가 될 테지.
단순히 눈앞의 나무만 보고 움직일 게 아니라, 숲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숲을 넘어 산맥까지 봐야 하고.
정치란 그런 것이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설하가 들어왔다.
“최규현 뇌물 리스트를 정리한 파일입니다.”
“고생하셨어요.”
“추가 검증은 끝나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최규현의 서류를 살피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많이도 해 처먹었네.”
대체 이 인간은 뒤 세계에서 챙기는 돈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제일가는 부자는 재벌 그룹 회장들이 아니라, 최규현인 것 같다니까.
내 손에 쥐인 이 서류들은 전부 장작이다.
불길이 치솟은 아궁이에 집어넣으면 활활 타오를 게 뻔히 보이는 장작.
하지만 아궁이에 넣은 불은 그저 그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를 뿐, 숲을 삼키지는 못한다.
그러다 화염이 사그라지면 장작을 낭비하는 꼴밖에 되지 않지.
그렇게 허비할 바에야 장작을 손에 쥐고 있는 게 낫다.
언제든 연료로 쓸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장작을 평생 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습기가 차서 쓰지 못하게 되거나 썩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다시 말해 그 장작을 못 쓰게 되기 전에 직접 화마(火魔)를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장작을 찾아내야만 한다.
김학민 실장으로부터 얻은 장작의 유효기간은 2년.
내가 그에게 얻어 낸 정보들을 터뜨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2년 안으로 최규현은 서류를 갈아엎어서라도 내가 들고 있는 증거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그에게 그 정도 능력은 충분히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2년 동안엔 최규현이 섣불리 날 건드리지 못한다는 뜻도 된다.
당연히 나도 그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고.
결국 앞으로 펼쳐질 2년은 냉전이 될 터.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검사장 임기 또한 2년이라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2년 뒤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날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나의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최규현은 김학민 실장이 전해 준 자료의 세탁을 마쳤을 터.
결국 그는 대통령의 힘을 이용해 내가 서울중앙지검장을 끝으로 검찰계에서 물러나도록 압력을 넣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다.
나는 검찰총장까지 올라가야 될 인물이니까.
그렇다면 최규현이 날 견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
2년 안에 커다란 사건을 하나 터뜨리는 것.
문소역 칼부림 사건과 같이 국민들에게 다시금 절대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임팩트 있는 건수를 찾아내서 터뜨린 후 최규현이 나를 승진시키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최규현보다 오래.
***
“검사장님.”
“예, 설하 씨.”
“김학민 실장에게 연락이 왔는데, 지방의 조용한 섬으로 가서 최규현의 눈에 띄지 않는 건 어떨까 하는데요?”
“그런 곳은 소리 소문 없이 죽기 딱 좋은 곳 아닙니까?”
윤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 붙어 있으라고 전하겠습니다.”
“붙어 있기만 하면 안 되죠.”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와 붙었다는 걸 최규현에게 보여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이 김학민 실장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려고 하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가 먼저 눈치채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알려 주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최규현의 귀에 들어가게 만들면 될까요?”
“아주 대대적으로 홍보해야죠.”
윤설하는 놀란 듯이 눈썹을 들썩였다.
“조만간 제 사람들 앞에 나설 겁니다. 근사한 양복 한 벌 맞춰 두라고 전해 두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