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1)
“제1차장검사 소명준입니다. 지난 두 달간…….”
검사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첫 번째로 한 일은 검사장 주관의 회의를 여는 것.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공석이었던 탓에 밀린 업무가 어마어마했고, 이를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만 했다.
그동안 제1차장검사가 권한대행 역할로 업무가 막히지 않도록 대신해서 일을 처리해 주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에서 한계가 있는 것들은 검사장인 내가 직접 해결해야 했으니까.
물론, 이건 명목상의 이야기.
실제로는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검찰청 내의 누군가가 엉큼한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르기에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한 번 살펴볼 생각으로 주요 간부들을 호출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회의에 참석한 4명의 차장검사와 28명의 부장검사는 누구 하나 나에게 토를 달거나 반항의 눈초리도 드러내지 않았다.
따로 분위기를 잡거나 서열 정리를 할 필요성도 보이지 않았달까.
아무래도 워낙 극적으로 검사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오늘 검사장으로서의 복귀 자체도 언론에서 주목하며 워낙 크게 응원까지 받은 덕분에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처음부터 검사장이 되기 위한 판을 깔아 놓고 움직인 건 맞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총을 맞아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걸 이용해 아내 한지유와 경동수가 엄청난 역할을 해 주며 국민들의 지지를 극치까지 끌어올린 덕분.
그래서 천하의 최규현도 대통령이 되었지만, 내가 병상에 누워 있는 공백기에도 차마 건들지 못했던 것이고.
국가원수라는 직위를 차지하고도 눈엣가시인 나를 치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녀석이 부들부들 떨었다는 게 눈에 훤해서 아주 고소했다.
밀렸던 브리핑이 끝나고 나서 나는 회의실 내부를 주욱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없는 동안 잘 버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제 권한대행으로 고생해 주신 소명진 차장검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공백이 느껴지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자, 연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손을 들어 이를 막고서 다시 찬찬히 이야기를 해 나갔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의 얼굴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다른 곳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검사들이 모이는 장소죠. 이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회의실에 있는 이들은 그 중요한 서울중앙지검에서 간부를 맡고 있는 인물들.
그들의 얼굴에서 자부심과 자긍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자만이 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 줘야 했다.
“그렇기에 더욱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됩니다. 옆에 있는 동료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부하 검사들 직원 관리에 꼭 힘써 주시길 바라고, 당연한 말이지만 업무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시는 분들은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으로 제가 보상을 할 테니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엔…….”
뒷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을 터.
부장검사 몇몇이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역대 최고의 서울중앙지검을 만들어 봅시다.”
짤막한 말로 검사장으로서의 첫 회의를 마무리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회의실에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장검사들이 따라 나왔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검사장님.”
나보다 기수도 높고, 나와 같은 한국대 출신의 선배들.
자신보다 낮은 기수가 승진하면 옷을 벗는 게 관례지만, 워낙에 내가 특이 케이스라 굳이 관례에 얽매이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차장검사직에 오를 때부터 부디 기수 역전으로 인해 사표를 내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겨우 서른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검사장에 올랐던 탓이 컸다.
역대 최연소 검사장인 걸 넘어서 검사장 중에서는 최초의 30대이자, 마지막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았고.
아예 논외로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차장검사들을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도 잘해 보시죠.”
말하고는 곧장 검사장실로 돌아왔다.
직급으로서는 그저 차장검사에서 검사장으로 한 단계 올라왔지만, 그 무게는 절대 가벼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검사장도 아니고 무려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이니까.
일반적인 검사장 수준을 넘어 고검장만큼의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뿐더러, 맡고 있는 일 또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검찰청 하나를 통째로 통제해야 하는 위치.
나는 사무실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며 눈을 감았다.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하면 사방이 적이다.
나를 건들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최규현은 내가 검사장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서울의 4대 지검을 전부 집어삼켜 버렸다.
일반적으로 다른 라인의 비율을 3 : 1 혹은 비라인 하나를 껴서 2 : 1 : 1 정도로 검사장을 임명하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한마디로 그만큼 저들끼리 힘을 모아 날 견제시키겠다는 소리지.
그렇기에 까딱하는 순간 골로 갈 수가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버텨 내야만 한다.
2년.
서울중앙지검장의 최대 임기인 2년을 굳건하게 버텨 내며 엄청난 성과를 내서 암만 최규현이 나를 지방 한직으로 보내고 싶어도 차마 보내지 못하고 승진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고 버티며 더 높이 올라가서 정상의 문턱에서 문을 두드릴 능력이 되어야, 다음 대통령인 성태현이 나를 검찰총장으로 끌어 줄 수 있을 테지.
그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장작을 넣어 화력을 키워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태우고 있는 불꽃이 마지막 불꽃이 되지 않고 더 크고 화려하게 타오를 수 있을 테니까.
똑똑.
“네, 들어오세요.”
검사장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윤설하.
나는 그녀를 보고 웃으며 새로운 직급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무관님.”
“오랜만에 오셔서 헤매실까 싶어 브리핑이라도 해 드릴 겸 들어왔습니다.”
“안 본 사이에 입담이 느셨네요.”
“요즘 세상에 여자 홀로 서기가 워낙 어려워야죠. 독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받아치는 거 보면, 예전의 윤설하가 아니라니까.
나는 소파로 내려가 상석에 앉았고, 윤설하는 태블릿 PC를 든 채 엉덩이를 붙였다.
“최근 언론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건 및 인물들에 대해 보고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예, 브리핑해 주세요.”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집사람이 휴식 기간에는 몸의 회복에만 집중하라며 외부 소식을 전혀 알려 주지 않아서 꽤나 고생했거든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군요.”
그녀는 생긋 웃고는 태블릿 PC를 읽어 내려갔다.
“요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건, 썬더볼트 게이트 사건입니다.”
“썬더볼트요?”
“예. 홍대에 있는 클럽 중 하나인데, 이곳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조사한 결과 GHB 즉, 물뽕이라고 불리는 마약류가 복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몇 번 스쳐 지나가며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자세히 좀 보려고 하니, 한지유가 리모컨을 뺏어 가서 입맛만 다셨던 기억이 머릿속에 선명하달까.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단순 마약 투약을 통한 성폭행이 아니었나 보네요?”
“예.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클럽의 MD 중 하나가 자신이 피해자를 보고 반해서 몹쓸 짓을 저질렀다고 자백하며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윤설하는 태블릿 PC를 내려놓고 심각하게 말을 이었다.
“피해자가 본 용의자는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고 하더군요. 이를 수상히 여긴 피해자는 사설 업체에 맡겨 DNA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놀랍게도 자백한 범인과 여성의 몸에서 채취된 DNA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도적으로 은폐한 거군요.”
“맞습니다.”
대충 보아하니, 어느 정도 감이 온다.
클럽의 VIP 중 하나가 몹쓸 짓을 했고, 그의 정체가 탄로 나는 걸 염려한 클럽에서 고객 관리 차원으로 대신 처벌을 받기 위해 직원 중 하나를 미끼로 던진 것일 테지.
높으신 양반이나 되는 인물이 GHB, 물뽕이라는 마약까지 써서 성욕을 충족시켜야 했는가에 대해 생각하면, 그들은 걸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터.
물뽕이라는 마약의 특성상, 다른 마약들과 달리 투약 후 짧게는 12시간에서 길어도 24시간 내에 호흡과 땀, 소변으로 배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한마디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술에 취해서 서로 좋아 잠자리를 했다고 하면 증거가 없게 되니까.
만약 피해 여성이 조금이라도 신고를 망설였다면, 분명 악질 녀석들의 의도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쯧쯧.
이 쓰레기 같은 녀석들.
상식선 상에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다. 당연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윤설하에게 물었다.
“어느 관할로 배정된 건입니까?”
“서울서부지검입니다.”
그곳은 성태현의 사촌동생인 성진현 검사가 근무하는 장소.
그에게 물어보면 어느 정도 내부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대충은 알 수 있을 테지.
아마 그놈의 VIP가 누군지에 대해 이미 파악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한번 연락해 봐야겠는걸.
***
윤설하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성진현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놈의 VIP가 어떤 녀석인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성진현 검사는 예상과 다른 말을 꺼냈다.
-저희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예?”
서부지검이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을 텐데.
내 놀란 목소리를 들은 그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 쉽게 추적이 되지 않는 걸 보면…….
성진현은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평범한 인물이 엮여 있는 것 같지 않아서요.
“그 말씀은…….”
-조사 결과를 보아하니, 평범한 커넥션이 아닌 걸로 보입니다. 경찰 쪽에서도 몇 번이나 은폐하고 사건을 축소해서 해결하려 했던 흔적이 발견되었고요.
VIP 대신 직원이 자수했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최소한 이 바닥의 거물이 연관되었다는 증거일 터.
진지하게 내막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무엇보다 가만히 지켜보다가는 피해자는 일개 시민이었기에 가해자들의 농간에 휘둘릴 게 뻔했기에 모른 체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나 이미 관할이 정해진 만큼 움직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
그때,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성진현 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사 진행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예.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조만간 뵙고 술 한잔 사겠습니다.”
-좋죠.
“그러면 건강 조심하시고 들어가십시오.”
-예. 아무쪼록 검사장님도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검사장님의 몸은 국민 모두의 것이니까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검사장님.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던 그 순간.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지잉지잉.
짧게 두 번.
-보낸 이 : 33
-동영상
미래 문자다.
아니, 잠깐만.
보낸 이가 33이면 미래가 아닌데.
2021년에 일어났던 일이라…….
벌써 4년이나 지난 탓에 기억이 흐릿하다.
나는 머릿속을 되짚으며 동영상을 재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