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지고 솟아날 구멍이 없어도 (4)
“이런 미X 새끼야!”
박 경사의 육두문자가 하인수 순경의 귀에 꽂혔다.
“네가 왜 쏴!”
“아, 아니 저는 쏘, 쏘라고 하셔서…….”
“당연히 김 경장한테 말한 거지!”
“죄, 죄, 죄송합니다.”
“공포탄은 또 왜 안 넣었어? 아니, 애초에 너한테 실탄 지급이 안 되는데…….”
“저 이거 제 총이 아니라, 출동할 때 당황해서 실수로 김 경장님 총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제야 김 경장은 자신 또한 X 됐다는 걸 깨달았다.
총을 워낙 좋아해서 가끔씩 장난으로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처럼 탄창을 돌리며 닫기를 반복하는데, 워낙 급하게 신고 접수를 받고 출발한 탓에 제대로 정리해 놓지 못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권총 대신 테이저건을 들고 출동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살인범이라는 소식에 후임 녀석은 얼이 빠져서 자신의 총을 챙기고 나오는 것도 모자라 실탄까지 발포해 버렸다. 그것도 범죄자가 아니라, 시민에게.
‘이런, 제기랄.’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그들의 상사가 소리쳤다.
“이 자식들아, 너희 거기서 뭐 해? 빨리 119 부르고 피 지혈해!”
“예, 예!”
다른 경찰들은 다급하게 쓰러진 시민을 향해 뛰어갔다.
“쿨럭!”
그때, 최서준이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해 냈다.
이미 어깻죽지가 칼로 난자당해 상태가 좋지 않은데, 실탄이 장기를 찢어 놓았으니 상태가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민들은 쓰러진 최서준을 향해 휴대폰을 더 가까이 들이밀고 있는 지경.
경찰들은 워낙 당황해서 시민들을 제지할 틈도 없이 최서준의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시민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더 커졌다.
“어떡해?”
“진짜 죽은 거 아니야?”
“와, 시민 구하려다가…….”
“아니, 이거 경찰이 잘못 쏜 거잖아.”
“헐, 전혀 모르는 사람 구하려다가 총 맞은 거야?”
“대체 119는 언제 와?”
“피 봐 봐. 바닥에 핏자국이 낭자하다니까.”
“아, 무서워.”
“인질로 잡혀 있던 여자 어디 갔어?”
“아까 저쪽으로 도망가는 것 같던데…….”
“구해 줬는데 도망갔다고?”
“설마, 그러겠어?”
“아니, 진짜 안 보이는데…….”
“그러다 만약 최서준이 이러다가 잘못되면…….”
“하아, 대한민국 어쩌려고 이러냐?”
시민들은 그저 한마디씩 뱉었지만,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탓에 웅성거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영상을 SNS나 인터넷방송으로 실시간 중계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생겨난 상태.
박 경사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최서준의 어깨와 배에서 나는 피를 지혈하며 외쳤다.
“검사님, 정신 잃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최서준의 눈은 이미 뒤집어져 감겨 있었다.
그의 의식은 이미 심연의 뒤편으로 사라진 상태.
“이런 제기랄!”
김 경장은 머리가 백짓장으로 변하는 걸 겨우 막아 내며 외쳤다.
“119는 언제 오는 거야!”
“지, 지금 오고 있답니다.”
그때, 다급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대가 도착했고, 그들은 최서준을 싣고 응급실로 향했다.
***
“아직 혼수상태입니다.”
사흘.
최서준이 칼에 찔리는 것도 모자라 총까지 맞고 쓰러진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을 끝내고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제일 위험하다는 첫 24시간을 견뎌내 주었다.
그 사실에 한지유는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었지만, 시간이 더 흘러도 최서준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
한지유는 요 며칠 내내 하늘이 무너진 것같이 절망적인 감정이 가시질 않았다.
최서준은 이번 일이 위험할 수도 있긴 하지만, 이 정도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았으니까.
필시 일이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동의를 한 것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랬다면 애초에 그를 뜯어 말렸을 것이다.
그녀에겐 승진이나 출세보다도 가족의 안위가 더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져 버렸고 지금 한지유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서준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뿐.
그러나 그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간호사의 말에 한지유는 쫓겨나듯이 중환자실에서 빠져나왔다.
“처형.”
병실 밖으로 나가자, 성태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녀는 입을 벌리며 그들의 곁을 바라보았다.
“지수는 어디……?”
“곁은 제가 지킬 테니, 집에서 잠깐이라도 쉬고 오라고 보냈습니다.”
성태현은 조심스럽게 권했다.
“처형도 잠깐 쉬다 오세요. 여긴 제가 남아 있겠습니다.”
“아니에요.”
한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이따가 마감 전에 한 번 더 면회할 수 있으니까……. 그 때 보고 갈게요.”
간절한 그녀의 말에 성태현은 차마 더 강요할 수 없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집사람이 걱정합니다. 죽이라도 사 왔는데…….”
“입에 넘어가지 않아서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러면 차라도 한잔하시죠. 아무것도 안 드시면 처형도 쓰러지십니다.”
한지유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현은 혹시나 쓰러질까 봐 싶어 발걸음을 늦춘 채로 한지유와 함께 병원 지하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따뜻한 차를 주문했지만, 한지유는 입안을 적시는 정도만 마실 뿐, 더 이상 입에 대지 않았다.
천하의 성태현도 이럴 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단어를 고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훈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번 일 때문에 한지유를 대신해 돌봐 주고 있는 그녀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쌍둥이랑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밥도 잘 먹고 볼일도 잘 보고요. 지훈이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거 생기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예.”
한지유는 길게 답을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라는 사람이 민낯에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심경이 비통하고 슬픈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성태현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뜨거운 차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테이블에 있던 성태현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집어 들어 숨겼다.
“괜찮습니다. 보셔도 돼요.”
그제야 성태현은 테이블 밑으로 휴대폰을 내리고 확인했다.
-보낸 이 : 조 실장
-서울중앙지검장 황철민 검사장이 사표를 냈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왜지?’
이토록 중요한 시기에 검사장이 사퇴하다니.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한지유에게 알리는 건 무의미했다.
“가 보셔도 돼요.”
“아닙니다.”
성태현은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테이블 위로 한지유의 손을 감쌌다.
“최 검사님…… 아니, 형님 꼭 깨어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 있겠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예. 꼭 그럴 겁니다. 형님, 강하신 분이에요.”
“…….”
한지유는 고개를 푹 숙이며 힘겹게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금 한참의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의자를 부여잡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 보세요. 여긴 저 혼자 있어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따가 면회 끝나시고 제가 댁까지 태워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아니요, 밖에 기자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최서준이 쓰러진 날부터 기자들은 병원 주차장에서부터 포진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한지유의 한마디 인터뷰를 따거나, 병원 관계자에게 최서준의 건강 상태를 듣기 위해서였다.
선량한 시민을 구하기 위해 범죄자에 맞서다가 칼을 맞고, 어이없는 실수로 경찰의 실탄에까지 맞은 탓일까, 최서준에 대한 여론은 다시금 뒤집혀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현재는 최서준에 관해서 단신만 쓰더라도 특종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돌아가셔도 돼요.”
한지유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최서준이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
한지유가 추가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을 나서자, 역시나 죽치고 기다리던 기자들이 벌떡 일어나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지금 최서준 씨 상태는 어떤가요?”
“최서준 검사님께서 깨어날 가능성은 있나요?”
“경찰의 실수로 최서준 검사님이 입원해 계십니다. 경찰들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신지요?”
기자들의 질문에 한지유는 묵묵히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이들에게 답변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녀에게는 말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한 기자의 질문이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인질로 잡혀 계셨다가 살아남으신 피해자분께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감과 최서준 씨에 대해 송구함, 죄책감을 느끼신다고 합니다. 그분을 원망하시는지요?”
기자들에게 대꾸하지 않고 지나치려 했으나 그 질문을 들으니, 한지유는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연예계 활동을 하며 몇 번이나 스캔들에 휘말리며 답답함에 하소연하고 싶을 때도 침묵을 지켰지만, 이번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으니까.
결국 한지유는 자신의 자동차 문을 여는 대신, 뒤로 돌아 기자들을 바라봤다.
다시금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한지유가 이내 입을 열었다.
“사실, 원망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수많은 기자들과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의사 선생님께 남편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이 몰려와서 원망하고 탓할 대상이 필요했거든요.”
한지유는 진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시민들에게 ‘최서준은 국민 검사가 아니라, 국민 역적이다.’ ‘나가 죽어라,’, ‘그래 놓고도 검사냐.’ 이러한 소리를 듣고도 또 국민의 한 사람을 구하러 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녀는 천천히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 오늘 아침, 중환자실에 들어가 남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산소 호흡기를 낀 채 기계에 목숨을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체내에서 탄환이 부서져 장기 파열이 꽤나 심각한 탓에 생명 유지 장치가 없으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한지유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고개를 젓고 다시금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제 남편의 얼굴을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보이더군요. 심지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 순간에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지유는 힘겹게 눈물을 닦아 냈다.
“제 남편은…… 최서준이라는 사람은 국민을 위한 검사로서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었어요. 만약 이번 일로 몸을 회복하지 못한다고 한들,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제 남편은 또다시 몸을 던질 겁니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그녀는 울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설령 제 남편이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절대 피해자분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경찰분도 고의가 아니었기에 탓하지 않을 테고요.”
소란스럽던 기자들의 입은 다물어졌다.
“그저 제 아들에게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아빠였다고 말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고 한들, 저는 그이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한지유는 입술까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남편이 깨어날 수만 있다면 제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고 사랑하는 남편이니까요.”
이윽고 카메라의 셔터 소리마저 사라졌다.
“저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남편이 깨어나길 바라겠지만, 결단코 누군가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한지유는 눈물범벅이 된 채 정면에 있는 메인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피해자 여성분, 절대 자책하시지 말고, 본인의 삶을 살아가세요. 행복하게 살아가셔야 제 남편도 기뻐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