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에서 신뢰는 (7)
동영상을 본 탓일까.
최규현과 장영순에 대한 대비는커녕, 기자회견이고 뭐고 전부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져 버렸다.
그저 동영상 속의 나.
아니, 나의 죽음에 가까운 저 장면만이 선명하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칠 것 같다.
대체 왜?
이 최서준의 끝이 저런 비참한 죽음이라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다시금 동영상을 확인하려 했으나, 미래 문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는 상태.
욱신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다시 기억을 되짚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보낸 이는 37.
틀림없이 올해에 벌어진다는 것이다.
동영상 속에서는 분명 내가 죽어 가는 그 옆에서 다른 남자도 쓰러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 날 죽이려고 했던 녀석인가?
살인 청부업자인지, 내게 앙심을 품은 놈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그 살인마 녀석은 정말로 날 죽일 생각이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굴에 칼질을 할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동영상을 통해 확인한 상처 부위만 세 곳.
저게 전부인지 영상에 담기지 않은 상흔이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저 위협을 하려고 했으면 이러한 결과가 나오진 않았을 거라는 사실.
잠깐만.
영상 속의 내 손에는 흉기로 보이는 게 전혀 들려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옆에 있던 녀석은 어떻게 쓰러진 거지?
내가 쓰러진 뒤에 시민 중 하나가 살인마를 제압했다면, 분명 동영상 속에 담겼을 테지만, 그런 모습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은 두 개.
첫 번째는 녀석과 한참 동안 대치를 하다가 내가 칼에 찔린 뒤, 때마침 등장한 경찰에 의해서 곧바로 살인마도 제압당한 경우.
두 번째는 진범이 도주한 경우.
그러나 후자일 경우에는 경찰들의 관심이 오로지 나에게 쏠려 있는 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 또한 충분히 그럴 듯하진 않고.
내가 나이가 들긴 했지만, 어렸을 적에 유도를 몇 년이나 배운 게 몸에 남아 있어 저런 괴한이 흉기를 들고 있었다고 한들, 내가 저 정도로 쉽게 상처를 입었을 리가 없는데.
다시 머릿속을 굴려 보았지만, 어떤 시나리오를 그리건 간에 동영상과의 아귀가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래 문자로 본 건, 내가 원인을 알아채고 바꾸지 않는 한 그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을 터.
특별한 상황이라서 저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미래 문자로 본 지하철역에 가능한 한 가지 않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호신 용품을 가지고 다니는 일.
그게 전부다.
최대한 조심하면서 어떤 이유로 저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는 수밖에.
젠장.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적어도 이 대한민국의 정점까지는 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제대로 누리지도, 그곳에 닿지도 못했다.
비참한 최후…… 아니, 저건 개죽음이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
“이번 기자회견에 관해서 이두형 부장이 직접 STC와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이번에도 장영순은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1차 기자회견보다 더 많은 기자들과…….”
윤설하가 보고를 하고 있었지만, 차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래 문자를 본 직후,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백짓장처럼 하얘질 지경이었으니까.
그나마 두통약을 먹으며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번 문자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최규현.
하지만 최규현이 몹쓸 짓을 많이 하고 다니기는 해도, 절대 나에 대한 살인 청부까지 할 수 있을 만한 담력을 가진 위인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죽는다면 가장 큰 의심을 받을 게 최규현이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을뿐더러,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정치적으로 보복하지, 비겁하게 뒤에서 저런 꼼수나 벌이지는 않는다.
잠깐만, 혹시 장영순 때문에 최규현이 낙선을 하는 건가?
그래서 내게 화살을 돌린 거고?
아니다.
최규현은 나보다 죽이고 싶은 민국당 의원들이 수두룩할 텐데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박재필 고검장과 같은 미친개라면 모를까, 최규현은 그 정도까지 또라이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마냥 사람을 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힘없는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한다면, 최규현은 얼마든지 인륜을 저버리는 짓을 할 만한 녀석이니까.
그렇기에 마냥 안일한 생각을 하며 그를 견제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대통령의 유력 후보이자, 더 없이 악랄한 정치인이었으니까.
최악의 상황까지 전부 그려 둬야 한다.
“차장님?”
윤설하가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살폈다.
“나중에 다시 보고할까요?”
“아,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이 들어서.”
“낮부터 오늘 부쩍 몸이 안 좋아 보이세요.”
“괜찮습니다. 계속 브리핑해 주세요.”
“예.”
윤설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장영순의 기자회견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STC에서 직접 발표한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실까지도 밝힌다는 폭탄 발언을 예고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인지는 STC에서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이는 최규현과 차장님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추정되며…….”
문득 머릿속에 장영순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상황이 최규현의 원하는 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녀는 정말로 최규현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나와 달리, 그녀는 이 정치판에서 힘이 없으니까.
“최규현에 대해서 가족을 잃을 만한 발언을 한다고 했다는 거죠?”
“예, 맞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한발 뒤로 물러나야 될 것 같다.
이럴수록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지만, 내 목숨이 달린 일이다.
정치적인 죽음이 아니라, 생명적으로 수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
이번 일에서 최규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봐야 합리적인 판단을 세우고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일단 판단은 보류하겠습니다.”
“보류요?”
윤설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판단을 보류한 적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당장 이틀 뒤에 기자회견이라면 한시가 촉박한 상황.
그러나 내 결정은 확실했고, 번복할 생각 또한 없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특별한 상황이 생긴다면 즉시 보고하세요.”
윤설하는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설하 씨.”
“예, 차장님.”
“전기 충격기 하나 구해 주시겠어요?”
“네?”
“사는 김에 설하 씨 것도 같이 구매해서 들고 다니시고요.”
“차장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녀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저한테는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닙니다.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 우선 제 말을 따라 주세요.”
윤설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만약 신변에 위협이 생겼다면, 바로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하죠.”
***
“기어코 2차 기자회견을 진행한다고?”
“예. 이틀 뒤랍니다.”
“이런 망할 할망구 같으니라고!”
최규현은 성을 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핵심 사항은 보고하지 못했기에 불곰, 정승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장영순이 덧붙인 말이 있는데 아셔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최규현은 인상을 구겼다.
사소한 건이었다가는 경을 치겠다는 얼굴.
불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말했다.
“STC에 은밀하게 접촉한 결과, 후보님께서 과거에 장영순과 부적절한 관계였던 사실도 밝힐 예정이라는 걸 들었습니다.”
그 순간, 최규현은 어금니를 지르물었다.
‘내연 관계였던 과거까지 까발리겠다고?’
이건 아무래도 최규현이 받아 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대선에서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지금의 튼튼한 지지율이 하락하는 건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장영순이 지금 나오는 걸 보면, 분명 내연 관계 도중, 그녀가 최규현의 아이를 임신하고 낙태했던 사실까지 밝힐 게 분명한 상황.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한참 오래된 일이기에 진실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하나, 지라시 하나하나가 그의 지지율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테니까.
“……승민아.”
그는 나지막이 불곰을 불렀다.
별명을 섞어 부르던 평소와 달리, 아주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서 불곰 또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예, 후보님.”
“내가 웬만해서는 손에 때 묻히는 걸 싫어하는 거 잘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어.”
“…….”
“승민이, 너 작업 쳐 본 지 얼마나 됐어?”
최규현의 물음에 그렇게 떡대가 큰 불곰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게 시각적으로 보였다.
“의원님 밑에서 나가고 한 1, 2년 정도만 하고 바로 그만뒀습니다.”
“꽤 오래됐네.”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담배를 입에 꼬나물었다.
“작업 하나 더 쳐야 될 것 같다.”
“장영순의 추적이 쉽지 않을 겁니다. 이틀 만으로는…….”
“내가 방법을 알려 줄게.”
불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틀 뒤에 진행할 거야.”
최규현은 담배 연기를 한 모금만 마신 뒤, 곧장 장초를 재떨이에 짓눌렀다.
이를 바라보는 불곰의 머릿속에서 마치 멀쩡한 사람의 목이 꺾이는 듯한 느낌이 든 건 그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장영순 그 인간,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저번과 똑같은 짓을 할 거야. 그러면 이때…….”
최규현의 눈빛이 희번덕거리며 돌아갔다.
***
기자회견을 약속했던 오후 7시.
사실, 말이 기자회견이지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USB에 영상을 담아 송출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한을센터에는 역시나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최규현과 최서준이 장영순의 신뢰도를 깎았다고는 하나, 그만큼 더 많은 언급이 되며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전과 달리, 이번엔 처음부터 아예 세팅을 다르게 했다.
마이크와 의자, 테이블이 있었던 차 기자회견과 달리, 노트북과 빔 프로젝터 그리고 스크린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
USB를 꽂기만 하면 언제든 커다란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USB를 들고 기자회견장에 등장했다.
다만, 1차 때와 달리, 이번엔 남성이 아니라 여성.
소란스럽던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여자는 말없이 USB를 연결해 동영상을 재생했다.
이내 커다란 스크린에 비춰지기 시작한 동영상.
그곳에서는 역시나 장영순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장영순입니다.
그녀는 마음이 급했는지 오래 끌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사항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퀸 인베스트먼트는 저번에 주장했다시피, 최규현 후보에게서 넘겨받은 겁니다. 그가 실소유주였던 거죠. 그 회사는 그의 돈세탁용 회사로서 온갖 더러운 일들을 자행했던 기업입니다. 그런 곳을 폐업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팔짱을 낀 채 TV를 지켜보았다.
-그 퀸 인베스트먼트를 제가 왜 받았냐에 대해 의문을 가지실 겁니다. 예. 전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우선 제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 최규현 후보와 제가…….
팟-.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순식간에 기자회견장의 불이 꺼졌다.
-뭐야?
-정전이야?
검게 변한 화면에서 기자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휴대폰과 노트북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소란도 잠시, 곧장 전등이 켜지며 기자회견장의 모습이 밝혀졌다.
-영상은?
-왜 영상 정지됐어?
-기술팀!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TV를 통해 전해지던 그 순간.
-여기 있던 거 어디 갔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기자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노트북 누가 가져갔냐고!
그의 외침에 따라 모든 기자들의 시선은 노트북이 놓여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그러나 USB가 연결된 노트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잠깐만.”
그때, 생방송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TV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여자 어디 갔어요?”
“네?”
윤설하의 되물음에 나는 미간이 구겨졌다.
“USB 가져온 여자 말이에요. 방금 전까지 노트북 반대편에 있었는데 사라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