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03화 (203/341)

이 바닥에서 신뢰는 (6)

-국민 여러분, 사기꾼이 하는 말을 믿으실 겁니까?

최규현은 발 빠르게 움직임에 나섰다.

-현재 퀸 인베스트먼트는 검찰 조사 중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도 고객들에 대한 사기와 횡령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의 실소유주인 장영순이 저를 언급했습니다. 대선 후보인 저와 검찰의 대표로 불리는 최서준을 말이죠. 이게 진실처럼 보이십니까?

그는 한 치의 거리낌 없이 직접 언론 앞에 섰다.

-저거 전부 거짓말인 거 아시죠? 한 번 사기꾼은 영원한 사기꾼입니다. 장영순이 전과 몇 범인 줄 아십니까? 무려 7범입니다, 전과 7범.

사기만이 아니라, 다른 범죄까지 포함되어 있지만 전과 7범이라는 사실은 국민들의 신뢰를 깨기에 충분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늘어놓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다가 선거운동이 시작되니 나온다는 건, 마치 누군가가 저를 견제하려고 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란 말이죠.

그는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카메라를 향해 호소했다.

-제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다면, 검찰 조사든, 경찰 조사든 전부 받겠습니다. 또한…….

물론 이 와중에도 최규현이 민국당이나 만세당을 견제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미 손을 잡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그건 눈 감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에 대한 견제는 잠깐 멈춰 두고 내 살길을 찾아야 했으니까.

언론 앞에서 적극적으로 본인의 무고함을 어필하는 최규현과 달리, 나는 ‘수사를 통해 제 결백을 밝히겠습니다.’라는 말만 하며 침묵을 지켰다.

물론, 겉으로만.

뒤에서는 장영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전부 동원했다.

언론에 힘을 쓰는 건 물론이고, 신의 손, 고성탁에게 도움을 받아 국정원 간부를 통해 인터넷 댓글 조작까지 하고 있는 상태.

그 덕분일까, 서서히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장영순이 그냥 자기 살아남으려고 저러는 거 아님?

-내가 보기엔 민국당이나 만세당이랑 거래한 듯. 최규현 내려 깎아서 낙선되고 다른 사람이 당선되면 죄 없애 주기로.

-사실 전과 7범인 건 둘째 치고, 사기꾼이었다는데 어떻게 믿음? ㅋㅋㅋㅋ

-근데 최서준은 예전에도 뇌물 수수 혐의 있지 않았냐?

-그거 친구한테 뒤통수 맞은 걸로 결론 났잖아요. 그건 오히려 의리 지킨 것 때문에 멋져 보였음. 물론, 검사로서 숨기면 안 됐지만, 난 최서준 좋음.

-암만 친구여도 대한민국 검사면 그래선 안 됨. 난 잘못됐다고 봄.

-장영순 구라인 게 티 나는 게 예전에도 최서준 100억 뇌물 수수 혐의였는데 또 100억임 ㅋㅋㅋㅋ 안 걸리려면 액수라도 바꾸든가! 저런 애한테 사기당하는 사람은 대체 뭐냐? 바보임?

-캐리어 하나로 100억을 어떻게 넣음? 100억이면 최소 200kg인데 말이 됨?

-ㄴ 그러니까 구라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최규현은 예전부터 좀 수상하지 않음? 친동생이 그랑교도 운영하고…….

-최규현은 그냥 대선 후보니까 말려 들어간 거지. 딱 까놓고 말해서 장영순이 나쁜 년이고 둘은 이용 당한 거잖아.

-이번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1번 최규현, 2번 최서준, 3번 장영순, 4번 집에서 배 긁고 있던 민국당이랑 만세당.

-난 지라시 안 믿는다. 무조건 최규현이다. 지지율 50%가 넘는 유권자의 힘을 보여 주자.

-아, 또 최규현 기사단 등장했네.

-20대 대통령은 무조건 최규현!

-님들 이번 선거 1번요.

지금도 의심하는 댓글이 있긴 하지만, 거의 묻히는 수준.

지지하고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언론 인터뷰도 마찬가지인 상태.

다만, 아쉬운 건 최규현이 초반부터 세게 나온 덕분에 그의 지지자들의 이탈이 적었다는 것.

최규현에 대한 지지율은 57%에서 53%로 소폭 하락한 것에서 그쳤다.

어찌 보면 그를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원래 정치란 게 서로 얽히고 얽히는 것 아니겠는가.

장영순도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을 테지.

아마 골치 좀 아플 거다.

***

“예, STC 정치사회부 박성현 기자입니다.”

-장영순입니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

처음 보는 번호였지만, 박성현 기자는 단번에 장영순 본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여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2차 기자회견 하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박성현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지금 최규현이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던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죠. 이 나이에 무서운 게 있겠습니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그녀가 아주 굳게 결심했다는 게 느껴졌다.

박성현 기자에게 장영순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그녀의 행보 하나하나가 이슈가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2차 기자회견은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 만큼 지금은 위험한 시기이기에 한발 물러날 때라고 생각했다.

잘못하다간 최규현과 최서준이 거위의 배를 갈라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앞길을 막아설 순 없었다.

장영순을 설득하려고 했다가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기자한테 갈 거라는 게 뻔한 상황.

결국 그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날짜는 언제로 하면 되겠습니까?”

-이틀 뒤, 장소는 여의도 한을센터에서 오후 7시입니다.

“예. 그러면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따로 먼저 기사로 내거나 알릴 만한 사항이 있으십니까?”

-…….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아주 깊게 생각하는 모양.

박성현 기자는 재촉하지 않았다.

자신이 뭐라고 하든 결정은 그녀의 몫이었으니까.

그저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용히 숨소리도 내지 않고 기다릴 뿐.

얼마나 지났을까.

장영순이 입을 열었다.

-최규현이 저에게 지시한 증거와 함께 그가 가족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 그리고 최서준은 캐리어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증거. 이 모든 걸 2차 기자회견에서 공개하겠다고 선언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박성현은 통화의 녹음본을 들으며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의 손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기사가 단독이자 트래픽 1위를 먹을 거라는 사실은 물론이고, 2차 기자회견 이후에도 계속해서 특종을 낼 수 있도록 장영순에게 지원받을 수 있을 테니까.

***

기사를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장영순은 캐리어에 상품권을 넣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걸.

그러면 나의 뇌물수수는 의혹에서 그치지 않고 정말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커질 터.

이 정도면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겠다는 건데.

이거 상당히 일이 복잡해지려고 한다.

아무래도 최규현과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 될 것 같다.

그도 지금 상당히 똥줄이 타고 있을 테니까.

장영순이 폭로할 최규현에 대한 비밀.

가족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만한 일이라고 돌려 말했지만, 어느 정도 감이 왔다.

그의 내연 관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

가벼운 바람이나, 라인에서 만나는 수준이 아니고, 아주 깊은 관계.

그게 아니라면…… 만약의 경우이지만, 장영순이 최규현의 내연녀였을 수도 있고.

어디에도 내 추측이 옳다는 증거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만큼은 촉이 확실히 왔다.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들통나면, 대통령은 물 건너 간 것과 마찬가지가 될 거라는 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으니까.

그 순간,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최규현이 이걸 막기 위해 무리를 할 것 같은 그런 불길한 느낌.

지잉지잉.

때마침 짧게 두 번 울리는 진동.

곧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보낸 이 : 37

-동영상

미래 문자!

그것도 올해에 생기는 일이다.

필시 이번 일과 관련이 된 것일 터.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도움을 주려는 모양.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꺄아아악!

-이게 대체 뭐야?

-어떡해, 구급차 불러!

사람들의 비명과 자동차의 경적 소리, 휴대폰 카메라를 찍는 셔터음.

온갖 잡음들이 뒤섞여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큰 소음이 들려왔다.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정신 차리세요!

검사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화면이 밝혀졌다.

어디더라.

익숙한 곳인데…….

아, 우리 집 앞 지하철역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 꽤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했지만, 확실히 아파트 앞에 있는 ‘문소역’이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그때, 화면이 클로즈업되며 온갖 시민들이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앵글은 시민들 사이를 파고 들어갔다.

그 사이에는 두 명의 남자가 누워 있는 상태.

검은 옷의 남자는 엎어져 있었고, 정장을 입은 사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근처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정장을 입은 사내는 얼굴에 상처를 입었는지 안면이 피로 뒤덮여 누군지 식별이 되지 않는 상태.

그는 왼팔을 들어 피를 닦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팔은 들리지 않고 움찔거리기만 했다.

어깨 부분은 정장이 찢겨 나간 상태로 정확히 어깻죽지에는 상흔까지 보이고 있었다.

동맥이 찢어졌는지 피는 쏟아져 나온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

그 순간, 나는 이상한 걸 알아챘다.

잠깐만, 저 정장 내 옷인데.

그때 경찰 하나가 손수건을 꺼내, 남자의 얼굴 상처에서 흐른 피가 코에 들어가지 않도록 피를 닦아 주며 이마와 어깨의 상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이게 뭐야?

나였다.

얼굴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긴 했지만, 틀림없는 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서준 검사님, 정신 잃으시면 안 됩니다!

X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칼을 맞은 거지?

옆에서 쓰러져 있는 저 자식은 대체 누구고?

-쿨럭!

동영상 속 내가 기침을 크게 하자, 배에서 피가 꿀렁 튀어나왔다.

이거 어깨랑 얼굴이 아니라, 배에도 칼을 맞은 건가?

배에 난 상처는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피가 나는 걸 보면 보통 상처가 큰 게 아니다.

잘못하면 정말로 죽겠는데.

장기 손상은 둘째 치고, 저 정도면 과다 출혈로 죽게 생겼다.

그것도 모자라 무슨 일인지 동영상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젠장. 내 수명이 끝나간다는 걸 뜻하는 건가?

-하 순경, 구급차 언제 와!

선임으로 보이는 경찰관의 외침에 덜덜 떨던 순경이 말을 더듬었다.

-아, 아, 아까 출동한 직후에 119에 전화도 하긴 해, 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오냐고!

-지,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가 무전기인지, 휴대폰인지 모를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들어 앵글 밖으로 사라졌다.

내 어깻죽지의 출혈을 막고 있던 경찰관은 다른 경찰을 보며 언성을 높였다.

-배 막아, 배! 출혈 더 심해지면 위험해!

-알겠습니다!

경찰관은 침을 꿀꺽 삼키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배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스럽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고, 구급대원들이 내게 접근하던 그 순간.

마치 천천히 눈을 감는 것처럼 동영상이 위아래로부터 검게 잠식되며, 이내 동영상이 종료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