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02화 (202/341)

이 바닥에서 신뢰는 (5)

-퀸 인베스트먼트의 배후는 사실 사기꾼?

-희대의 사기꾼, 장영순! 양심 고백…… 인터뷰하겠다.

-장영순 曰 사실상 나는 정치인들의 꼭두각시…….

-막장으로 치닫는 대한민국. 진정 대한민국 정치판은 비리의 온상인가?

한창 대선에 시선이 쏠리는 와중에 기사의 1면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뒤덮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장영순이 STC 한 언론사를 통해 충격적인 제보를 했으니까.

퀸 인베스트먼트의 배후는 자신이며, 이 뒤에는 대선에 출마하고 있는 후보 한 명과 대한민국 검찰계의 거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선언.

또한, 그로 인해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본인을 잡기 위해 경찰들이 추적하고 있다는 걸 밝혔다.

기자들은 인맥을 동원해 그 사실을 확인했고,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하여 삽시간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 모든 걸 감내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니, 언론사들과 국민들의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

장영순이 순순히 물러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으나, 이런 식으로 일을 크게 벌일 거라고 생각지는 못했기에 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선거 캠프의 움직임을 보면, 최규현도 마찬가지로 당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태.

아무래도 그쪽은 장영순이 구속되며 일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

장영순이 선언한 기자회견 시간이 다가오자, 괜히 똥줄이 타는 기분이 들었다.

태연하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을 정도.

“괜찮으십니까?”

윤설하가 걱정스런 얼굴로 차를 한 잔 들고 차장실에 들어왔지만, 차마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장영순이 적당히 넘어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녀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작정하고 덤비는 게 아닐지…….”

“예. 아무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될 것 같습니다. 장영순에게는 받은 게 있어서 절대 어중간하게 끝내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문득 미래 문자로 날아왔던 ‘양날의 검, 장영순’이라는 내용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게 이런 의미였나?

이 정도로 판을 벌렸다면, 장영순은 자신이 모든 걸 잃을 걸 각오하고 기자회견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칼끝은 최규현과 나 모두를 향하게 되는 것.

이로 인해서 최규현이 타격을 받는 건 확실하다.

선거 기간임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겠지.

그걸 생각하면, 장영순에게 돈을 받은 건 절대 잘못된 행위가 아니었다.

그녀와 손을 잡지 않았다면, 최규현은 멀쩡하게 살아 있을 테니까.

아니, 오히려 잘한 거라고 봐야지.

하지만 이건 내가 수렁에서 안전하게 나올 수 있을 때의 이야기.

만약 내가 여기서 진구렁에 빠져 버린다면, 스스로의 무덤을 판 것밖에 되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때, TV의 화면이 바뀌며 기자회견장의 모습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네, 안녕하십니까. PBC 긴급 속보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나와 윤설하는 소파에 착석한 채 TV로 시선을 고정했다.

-현재 보시는 화면은 퀸 인베스트먼트의 배후라고 주장하는 장영순 씨가 모든 것을 밝힐 장소로 지명했던 기자회견장입니다만, 그녀의 모습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도망간 건가?

문득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위기의식을 느끼게 해 놓고 실제로는 최규현과 뒤에서 접촉해 다시금 손을 잡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되는 건 정말 최악의 일이다.

그랬다가는 나 혼자 이 모든 걸 덮어쓰게 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그때, 기자회견장으로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유유히 걸어, 장영순의 자리로 마련된 장소에 올라갔다.

오는 동안 제재를 받지 않은 걸 보면, 괴한은 아닐 텐데.

-누구십니까?

기자의 물음에 남자는 긴장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에 전해 주라고…….

그는 어색하게 말문을 떼며 노트북에 USB를 연결했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아나운서도 당황했는지 놀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태.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노트북 화면에서는 장영순의 얼굴이 비춰지며 그녀의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장영순입니다.

틀림없는 그녀였다.

조작된 것도, 강제로 찍힌 것도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듯한 앵글.

-현장에서 뵙고 말씀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했으나, 제가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순간,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제대로 한마디도 못 하고 구치소에 들어갈 게 뻔해서 이렇게나마 목소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윤설하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이럴 거면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아, 나이 때문에 모르는 건가.”

“그것보다는 이렇게 기자들을 직접 모아 두고 터뜨려야 훨씬 더 화제성이 크니까 그걸 이용한 거겠죠.”

나는 다시금 화면에 집중했다.

-저는 지난 9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회개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회로 나온 지 두 달 만에 한 정치인에게 불려 갔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현재 대한당의 대선후보인 최규현입니다.

순식간에 카메라에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분은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퀸 인베스트먼트를 줄 테니, 한 검사에게 접근해 뇌물을 던져라. 그렇게 하면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이죠.

장영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교도소에서 크게 뉘우치며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요.

이내 그녀는 답답한 듯 주먹으로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그러자 협박을 하더군요. 내 힘이면 너 따위는 다시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누가 사기꾼 아니랄까 봐, 그럴 듯하게 꾸며 내는 모습을 보니 말발 하나는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진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울상까지 짓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몰입이 되려고 하는 판.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다.

분명 나한테도 불똥이 튈 테니까.

-그래서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시한대로…….

그녀는 정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최서준 차장검사에게 뇌물을 건넸습니다.

젠장.

올 것이 왔다.

미간이 구겨진 채로 화면에 집중했다.

-그에게 100억 원의 뇌물을 상납하면서 부디 최규현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돈만 받은 뒤 입을 싹 닦았습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떠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협박을 일삼으며 경쟁 상대를 제거하려고 불법적인 만행을 저지르는 정치인과 부패한 검사가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다닌다면, 과연 정의가 바로 서겠습니까?

장영순은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몇 마디 말을 더 내뱉은 뒤에야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증거는 남자분께서 직접 보여 주실 겁니다.

USB를 들고 왔던 남성은 어색하게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최규현이 지시한 내용이 녹음된 상태.

그와 동시에 사진 자료가 공개되었다.

100억 원의 상품권이 담긴 캐리어를 가져와 내게 건네는 장면.

그나마 다행인 건 캐리어의 내용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는 점.

그러나 장영순은 눈을 부릅뜬 채 말했다.

-2차적인 증거는 다음 기자회견에서 공개하겠습니다.

잠깐만 증거가 더 있다고?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에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동영상이 종료되었다.

그때, 기자 하나가 손을 들고 남자에게 물었다.

-USB를 가져오신 분은 장영순 씨와 무슨 관계이십니까?

-아, 저는 심부름센터 직원입니다. 비용을 받고 여기로 가져온 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연행해 갔다.

장영순과의 접점에 대해 조사할 테지만, 혐의점이 없을 게 분명하기에 금방 풀려날 테지.

나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2차적인 증거라…….

최규현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가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증거는 분명 캐리어에 담겨 있는 게 상품권이라는 걸 증명해 주는 것일 터.

그녀가 주장하기로 건네받은 돈은 100억 원이지만, 건네받은 건 캐리어 하나라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어불성설이기에 반박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므로 장영순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그러나 2차적인 증거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만약 위와 같은 이유로 반박을 했다가, 캐리어에 상품권을 담는 동영상이라도 있다면, 오히려 나의 말이 내 발목을 잡고 만다.

불가능하다며 상대방의 주장을 깼는데, 가능한 걸 증명해 버리면 자가당착이 되고 마는 것이니까.

그렇게 되면 상황이 꽤나 곤란해진다.

뇌물을 받은 게 심증이 아니게 되기에 민심을 잃는 것은 당연하고, 구체적인 조사에 착수하게 될 테니까.

최규현도 큰 타격을 입는 건 맞지만, 나 또한 그에 못지않은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

그가 뒤에서 버티고 있는 데도 장영순이 이 정도로 목숨 걸고 나설 줄은 몰랐는데.

그녀를 나이 먹은 노인네로 여겨 너무 가벼이 본 탓일까.

이거 까딱하다가는 최규현이 골로 가는 걸 넘어서 나까지도 잘못되게 생겼다.

“차장님,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윤설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규현과 접촉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최규현요?”

“예. 혹시 같이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적의 적은 동지.

최규현과는 서로를 죽일 만큼 미워하는 사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번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둘이 견제하는 건 둘째 치고 다음까지 갈 수가 없게 된다.

손을 잡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거지.

그리고 장영순을 막을 수 있는 괜찮은 아이디어도 떠올랐고.

“윤설하 씨.”

“예, 차장님.”

“기자들한테 지라시 뿌리세요. 장영순이 퀸 인베스트먼트를 운영하며 사기를 치려다가 문제가 생겨서 돈 먹고 튄 거라고. 그래서 검찰에서 포위망이 좁혀 오니, 일부러 시선 돌리려고 거짓말 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도록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곧장 휴대폰으로 최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신호음이 울려 댔지만, 그는 쉽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겠지.

그러나 결국 전화가 끊기기 직전, 최규현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지?

까칠한 목소리.

마냥 반갑지는 않을 테니까.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안부 인사나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닐 테고……. 지금 보니까 자네도 똥줄 좀 타고 있을 텐데 빙빙 돌리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바라던 바입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손잡으시죠.”

-내가 너랑?

그는 코웃음을 쳤다.

-너와 같이 갈 바에는 나 혼자 불구덩이로…….

“이봐요, 최규현 씨.”

나는 정색하며 그의 말을 끊었다.

“지금 저와 손잡지 않으시면 둘 다 각개격파 당합니다. 민국당과 만세당 그리고 언론사들이 물어뜯는 거 버틸 수 있겠어요?”

암만 다혈질에 괴팍한 성격을 가진 최규현이라고 하나, 그는 베테랑 정치인.

내가 괘씸하고 싫더라도 치기 어린 오기 때문에 일을 그르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

아니나 다를까,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은 뒤 물었다.

-방법이 있나?

“있죠.”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장영순의 전적과 최대 약점을 이용하는 겁니다.”

-사기꾼이라는 걸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그걸 기반으로 언플해서 장영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겁니다.”

-대본 나오네.

그는 마음에 든다는 듯 콧바람을 쉬익 내뱉었다.

-세상을 속인 희대의 사기꾼이 또 기자회견으로 거짓을 말하며 국민들을 기만하려 한다.

“그렇죠. 그녀가 애초에 했던 말 전부를 못 믿을 만한 건으로 치부시켜 버리면, 이번 기자회견조차도 그저 쇼로 치부하게 될 테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자네 아이디어는 꽤나 괜찮다니까.

그 아이디어로 당신을 몇 번이나 골탕 먹였으니 당연한 일이지.

나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고 말을 이었다.

“저희가 물귀신에게 잡혀서 둘 다 수장되어 버리면 안 되잖습니까?”

-그래, 최서준이.

보지 않아도 그가 거칠게 입꼬리를 비튼 모습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살아남은 뒤에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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