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201화 (201/341)

이 바닥에서 신뢰는 (4)

2025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전의 막이 올랐다.

시작부터 서로를 음해하는 네거티브 전략이 쏟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인신공격까지 해 대며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거운동의 첫날 국민 조사를 통해 밝혀진 지지율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차이가 났으니까.

대한당의 최규현이 57%.

민국당의 조현웅이 23%.

만세당의 강송문이 13%.

보류 및 그 외 후보들의 합이 7%.

다른 후보들은 어중간하게 있다가는 이 극심한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자극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들이 세게 나오는 이상, 최규현 또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터.

압도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강수를 둘 수밖에 없어진 거지.

그 덕분에 서로 치고 박는 난투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은연중에 민국당과 만세당은 손을 잡고 함께 움직이고 있는 상태.

후보 단일화는 아니었지만, 적의 적은 동료라는 말처럼 최규현이라는 커다란 적에 대항하여 함께 싸우려면 최소한의 단합은 필요했으니까.

물론, 나 또한 민국당의 일원으로서 그에 합세했다.

지지율 57%라는 수치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치나 다름없었으니까.

그저 이대로 선거가 끝나는 상황을 상상하면, 머릿속이 절로 아찔해지는 수준.

지지율이 아니라, 투표율까지 과반을 넘는다는 건, 삼권 분립까지 무시하며 행정부가 입법부와 사법부 위에 군림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는 뜻.

한마디로 최규현의 독재나 다름없어진다는 것이지.

그렇기에 무조건 그의 힘을 빼 놔야 했다.

낙선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날개는 꺾어 둬야 활개 치지 못할 테니까.

***

“추적 결과, 퀸 인베스트먼트의 자금이 YH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확인됩니다.”

“YH?”

생소한 기업의 이름에 최규현은 고개를 갸울였다.

“그게 어딘데?”

“신성호가 대표로 있는 기업입니다.”

“신성호라면…….”

최규현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불곰을 노려봤다.

“최서준 그 자식의 불알친구 놈 아니야?”

“맞습니다. 개명 전 이름이 신용호입니다.”

불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YH를 통해 최서준에게 비자금이 흘러 들어간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확실해?”

“확증은 없으나, 자금이 퀸 인베스트먼트에서 YH로 흘러간 정황은 틀림없습니다.”

정승민의 판단으로는 YH에 자금이 들어갔다면, 결론적으로 최서준에게 들어갔을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장영순, 이 미친년이 기어코 돌았구나.”

최규현은 치가 떨리는지 주먹을 꽉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불곰, 정승민은 보고서를 덮으며 옆구리에 꼈다.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어떡하긴, 퀸 인베스트먼트 엎어 버려. 제임스 킴이랑 장영순 둘 다 횡령으로 잡아 처넣어야지.”

“본격적인 선거기간에 돌입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제 보는 눈도 많고…….”

그의 걱정스런 물음에 최규현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 지지율 안 보여? 무려 과반이 넘는다고, 과반이.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건 지나가던 똥개도 알 수 있어.”

“…….”

“게다가 암만 장영순이라고 한들, 차기 대통령한테 덤비려고 하겠어? 그 양반 나이가 일흔하나야. 슬슬 죽음이 두려워지는 나이라고. 살고 싶으면 입 다물고 감방 가야지. 적당히 반항해 보려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게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최규현의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자살 당하고 싶겠어?”

불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자살로 위장한 타살.

최규현의 손에 의해 그렇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 할망구는 아무것도 못 해.”

왠지 모르게 진심이 담겨 있다는 느낌에 불곰은 섬뜩한 기운을 지우지 못했다.

“그런데 제임스 킴은 장영순에게 후보님 지시라고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만…….”

“무슨 상관이야?”

최규현은 기가 찬다는 듯이 차갑게 말했다.

“사람 죽여 놓고 몰랐다고 하면 끝이야?”

“둘 다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빠른 시일 내로 조져 버려.”

“알겠습니다.”

불곰이 머리를 숙이며 한 가지 더 물었다.

“그러면 YH로 흘러간 자금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YH에서 어떤 식으로 최서준한테 넘기는지 체크해. 그게 확인되면 움직이고.”

“예. 그러면 상품권 깡에 대한 건…….”

“그건 일단 뒤로 미뤄 둬. 지금 상황에선 그것보다 오히려 YH에서 자금을 받은 걸 노리는 게 녀석을 고꾸라뜨리기 쉬울 테니까.”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불곰이 떠나자, 최규현은 대한당의 마크가 박힌 점퍼를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서준이한테 붙었다 이거지?’

그 녀석이 어떤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자신의 뒤통수를 친 인간은 절대 용서치 않는다는 것.

‘이 할망구는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한 거야.’

당장은 최서준이 달콤해 보였을지라도, 한 달 뒤에 최규현이 당선이 되고 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천하의 최서준조차도 차장검사를 끝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할 터.

‘이렇게 지지율이 높을 줄 알았으면 굳이 그 녀석을 미리 손볼 필요도 없었는데.’

최규현은 약간은 아쉬움이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모든 인물들의 머리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될 테니까.

***

아침 일찍부터 검찰청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최규현의 퀸 인베스트먼트를 향한 보복이 시작되었으니까.

윤설하는 채 정리되지 못한 보고서를 든 채 차장실로 들어왔다.

“오전 10시 21분에 퀸 인베스트먼트의 대표 제임스 킴이 구속되었습니다. 현재 서울 강동 경찰서에서 체포해서 이송 중에 있습니다.”

“혐의는 횡령입니까?”

“예. 추가적으로 횡령의 배후에 장영순이 있는 것까지 확인하고 그녀에게도 구속 영장이 신청되어 있습니다. 장영순의 혐의는 사기와 횡령이며 영장이 발부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이고요.”

“담당 관할은요?”

“서울동부지검입니다.”

이럴 줄 알았다.

서울의 4대 지검 중에서 1번 라인에 소속된 인물들이 제일 많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으니까.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충분히 맡을 수 있는 건이지만, 일부러 내 손길이 닿지 않게 막으려고 동부지검을 통해 움직인 것일 터.

이미 동부지검에서 구속영장까지 발부해서 체포했다면, 암만 나라고 한들, 건들 수는 없었다.

최규현은 둘째 치고, 지검 간의 선을 넘는 일이었으니까.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장영순.

보나마나 상황이 수세에 몰렸으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겠지.

전화를 거절할까 하다가 우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최서준입니다.”

-검사님. 장영순입니다.

“예, 무슨 일이시죠?”

-지금 구속영장이 발부되어서 경찰들이 튀어오고 있답니다.

“아마 최규현이 손을 쓴 것 같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다.

-한배를 타고 가기로 하셨잖습니까?

그러나 나는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제가요?”

-……예?

장영순이 당황한 얼굴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검사님, 갑자기 이러시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어떻게 사기꾼이랑 손을 잡았겠어요?”

사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국민들의 피 같은 돈을 빨아 먹고 떵떵거리며 살았던 희대의 사기꾼과 진심으로 손을 잡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최규현의 명령이었다고 한들, 날 속이려고 했던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니까.

본인의 업보 정도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제야 그녀도 아차 싶었는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는 겁니까?

나는 아주 당당하게 답했다.

“예.”

-나한테 받아먹은 게 얼마인데!

“제가 돈을 받은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치미를 떼고 난 뒤,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당신이 수중에 쥐고 있는 돈은 전부 국민들의 뒤통수를 치고 등골을 뽑아서 모은 돈이란 것만은 잘 알고 있죠.”

-허.

장영순은 헛웃음을 쳤다.

-당신도 최규현이랑 똑같은 인물이야. 알아?

“끊겠습니다.”

-그 인간이랑 똑같이 남의 뒤통수나 치면서 배 불리는 그런 쓰레기라고!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의자에 몸을 묻고 눈을 감자, 그녀의 마지막 말이 문득 머릿속에 스쳤다.

‘남의 뒤통수를 치면서 배불리는 쓰레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는 말이니까.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뒤통수를 치는 대상이 시민들이 아니라, 범죄자와 더러운 정치인들이라는 게 남들과 다를 뿐이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저열한 수준의 표현으로 나를 수식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절대적인 선으로는 악을 처벌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더 큰 악(惡)을 해치우기 위해선 작은 악은 필수 불가결하니까.

이게 나의 가치관이며 정의이기에 이깟 사기꾼들의 세 치 혀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이잉.

그때, 다시금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장영순이라면 끊으려고 했으나, 발신인은 다름 아닌, 신용호였다.

“어, 웬일이야?”

-서준아, 지금 뉴스 속보에 퀸 인베스트먼트 나왔는데 알고 있어?

“당연하지, 인마. 내가 검사인데 모르겠냐?”

-이거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야?

“그럼. 나 믿지?”

걱정을 붙들어 매라는 듯이 말하자, 신용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계약서는 미리 받아 놨지?”

-응. 이면 계약서로 정리해 놨어.

“돈은?”

-한 18억 정도 챙겨 놨다.

“며칠 사이에 많이 챙겼네?”

-내가 일부러 힘 좀 썼지.

“잘했다. 이면 계약 포함해서 위법 사항 몇 가지 벌금 내고나면 얼마나 되는데?”

-다 내고 18억이지, 자식아.

그의 목소리에선 자신감이 듬뿍 담겨 있었다.

-내가 누구냐, 신용호야, 신용호!

“하하하, 고생했다.”

그는 가볍게 웃음을 지은 뒤 말했다.

-그나저나 이 돈은 어떻게 하면 되냐? 현금화하고 나서 받은 거라 돈 세탁만 몇 바퀴 돌리고 나면 바로 넘겨줄 수 있는데 어떻게 줄까? 현금 아니면, 부동산?

“됐어, 너 가져.”

-뭐?

신용호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이 물었다.

-어디 아프냐?

“너 가지라고, 인마.”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고생하기도 했고, 그간 고마웠던 것에 대한 보답이야. 사업 자금으로 써.”

-야, YH 세우는 돈도 다 너한테 받았어. 뭘 또 받아?

“줄 때 받고 나중에 나 힘들 때 도와줘라.”

-개새끼, 괜히 멋있는 척이야…….

“너한테 받은 게 얼마인데, 이 정도 가지고 무슨.”

-너 하나도 안 멋있거든?

“여하튼 이번 사건 관련해서는 걱정할 것 없고 경과만 나한테 바로바로 이야기해 줘.”

-알았다, 고마워.

“들어가라.”

-그래.

***

“이런 개X끼들…….”

장영순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최규현이 수족으로 쓰라고 하던 제임스 킴은 이미 구속되었고, 자신은 택시를 통해 대피하고 있는 상태.

사건을 터뜨린 건 최규현이었고, 그나마 믿고 있던 최서준한테도 배신을 당해 버렸다.

이제 돌아갈 데가 없어진 상황.

부르르 떨리는 눈을 감자, 그녀의 머릿속에선 강남 여왕벌이라고 불렸던 화려한 과거가 아련하게 스쳐 지나갔다.

‘구속되는 순간, 난 끝이야.’

사기 전과로 수십 년이나 복역한 마당에 또 사기와 횡령으로 잡혀 들어간다면, 송장이 되어서야 사회의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될 터.

남은 돈으로 도피 생활을 하며 살 수도 있지만, 늙은 나이인 만큼 도피 생활이 쉽지도 않을 테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악과 오기밖에 남지 않은 상태.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장영순의 감고 있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절대 못 죽지. 둘 다 같이 죽고 말 테다.’

최규현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휘어잡는 꼴을.

최서준이 검사로서 떵떵거리는 꼴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일흔하나라는 나이는 이미 살 만큼 산 그녀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게 만들어 줬으니까.

그녀는 이를 빠득 갈며 운전기사를 불렀다.

“기사 양반, 전화 좀 씁시다.”

“예?”

택시 기사가 장영순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는 걸 보았던 탓에 당황한 눈치를 보이자, 장영순은 말없이 5만 원권 지폐 한 장을 꺼내 운전석에 건넸다.

그러자 그는 말없이 돈과 휴대폰을 바꿔 주었다.

“쓰시죠.”

전화기를 넘겨받은 장영순은 곧장 본인의 수첩을 펼쳐 하나의 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네, STC 정치사회부 박성현 기자입니다.

“장순옥…… 아니, 장영순입니다. 제보 하나 하죠.”

그녀의 눈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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