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3)
“깜짝이야.”
내가 지른 탄성에 신용호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갑자기 왜 그래?”
“너 진짜 잘 왔다.”
나는 활짝 웃으며 그의 팔을 가볍게 툭 때렸다.
“나 보고 반가워서 미쳐 버린 거야?”
“하하하, 네 덕분에 중요한 게 떠올랐거든.”
“급한 일 있으면 내리고.”
“아니야, 밥 먹으러 가자. 대신 나 전화 한 통만 할게.”
“그래.”
신용호는 부드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식당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여전히 내 입가에 피어난 미소는 가시질 않았다.
지금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으니까.
퀸 인베스트먼트와 손을 잡는 건 확실하게 양날의 검이 맞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내가 타격을 입는 것에 비해 얻는 게 더 많은 것 또한 틀림없다.
한마디로 내가 얻는 것에 비해 지어야 할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것.
여기까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항에 대해 미래 문자가 왔다는 사실.
분명 지금까지 미래 문자가 알려 주던 사건들의 규모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벼운 건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숨겨진 게 아닐까 의혹을 품었었는데 신용호 덕분에 해결이 되었다.
개명.
제임스 킴이라는 인물의 행적은 이미 확인했으니 문제가 없다.
중요한 건 수면 아래 가려진 미쉘 장이라는 인물.
한국 이름으로는 분명 장순옥 여사라고 들었다.
재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여자가 퀸 인베스트먼트의 자금 줄을 대고 있다는 게 가장 의심스러웠던 터.
그런데 이 여자의 이름이 장순옥이 아니라면?
원래 이름이 따로 있고, 이 이름은 개명한 거라면?
이러한 의심에 힘을 보태 주는 건 바로 미래 문자.
미쉘 장이라는 인물이 강남 여왕벌로 불렸던 희대의 사기꾼, 장영순이라면 모든 상황이 설명된다.
겉으로는 나를 통해 조현웅 의원에게 줄을 서서 그가 당선될 경우에 크게 한 탕 해 먹을 것처럼 속여 놓고,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테지.
이후에 어떤 식으로 나를 엿 먹이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하나.
암만 강남 여왕벌이라고 불린 그녀였다고 한들, 배후도 없이 나에게 접근했을 리는 없다는 사실.
교도소에서 오랜 수감 생활을 마쳤다고 해도 최서준이라는 인물이 일개 검사가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으니까.
그녀의 뒤에 있는 사람이 보통이 아니라는 증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최규현.
그가 퀸 인베스트먼트의 뒤에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윤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차장님.
그녀는 식사 중이었는지 수화기 너머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전해져 왔다.
“설하 씨, 밥 먹는 중에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장순옥 여사의 정체가 장영순일 확률이 높습니다.”
-장영순이라면, 강남 여왕벌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맞습니다. 장영순이 출소한 이후에 만난 인물 목록 및 최근 행보에 관해서 전부 파악해 주세요. 그리고 장순옥 여사가 맞다고 판단되면 바로 보고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뇌물을 받고 움직이다가 문제가 될시, 일부러 받은 척 역으로 공격하는 것.
그러나 얼마 전에 최규현이 연설한 내용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나를 겨냥하고 말한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는 상황.
그 돈을 받지 않으면, 최규현은 편안하게 당선될 테고, 나는 자연스레 검사장 승진에 실패하게 될 게 분명하니까.
그러나 이 돈을 받으면 폭탄을 품에 안는 수준이 아니라, 독약을 삼키는 꼴이 되고 만다.
최규현은 이러한 내 처지를 알고 제임스 킴을 보낸 것일 테지.
하지만 마냥 나쁜 상황은 아니다.
KH신탁이 작년 11월에 퀸 인베스트먼트에 인수된 거라면, 이제 고작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급하게 준비한 게 분명한 만큼, 분명 빈틈은 있을 테니까.
이 돈을 받아 챙겨 이용하고서 그 빈틈을 이용해 빠져나가야 한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몰하게 해?”
어느새 식당에서 주차까지 마친 신용호가 안전벨트를 풀며 물었다.
“머리 아픈 게 있어서.”
“먹어야 머리도 잘 굴러가는 거야. 일단 내리자.”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장소는 중심가에서 벗어난 국밥집.
그러나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 수가 적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예약을 해 두었는지, 조용한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신용호는 방석을 깔고 앉으며 내게 물었다.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봐. 고민이라도 같이해 줄 테니까.”
이 녀석이라면 숨김없이 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신용호도 나처럼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로 뛰었던 경력까지 있는 녀석.
머리를 맞대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허심탄회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그는 고민을 오래 하지도 않고 해답을 내놓았다.
“그러면 장영순이랑 손잡으면 되겠네.”
물론, 고개를 저을 만한 대답이었다.
“이 새끼, 감 떨어졌네. 그게 가능하겠냐?”
“야, 내가 사업하면서 느낀 게 있어.”
신용호는 테이블에 팔을 올리며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서울중앙지검에 있을 때나 정치판에서는 일을 할 때는 나중에 잘 봐주겠다거나 필요한 상황이 도래하면 힘써 주겠다는 무형의 대가를 약속하고 움직이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사업 쪽은 달라. 여기는 확실하게 대가가 정해져 있어. 돈, 물품, 보상 혹은 다른 무언가가 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걸 약속했을 거라는 거지.”
“예를 들면?”
“어차피 최규현이 당선될 테니, 적당한 중견기업 하나 협박해서 뺏어다가 여왕벌에게 넘겨준다든가?”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보탰다.
“장영순 그 여자, 사기꾼이긴 하지만 어쨌든 사업가였잖아. 나중에 자리 하나 주겠다는 말 같은 거나 듣고 움직일 사람은 아니야.”
“네 말이 맞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네 말 대로 장영순과 손을 잡는 게 베스트긴 하지. 그런데 어떻게 해야 최규현의 뒤통수를 때리고 나한테 넘어오게 하느냐, 이게 문제지.”
“사업장이나 사업 상대를 뺏을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이거야.”
신용호는 입꼬리를 씨익 비틀었다.
“상대방의 제안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더 확실한 걸 제안하는 거지.”
“최규현의 손을 뿌리칠 만큼 달콤한 꿀을 뿌리라는 거구나.”
“그래, 그거야.”
그의 말이 끝난 순간, 국밥이 준비되었다.
식당 직원이 테이블에 음식을 올려 주고 떠난 뒤에야 그는 숟가락을 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장영순 그 여자, 사기꾼이잖아. 돈을 얼마나 밝히겠어? 그걸 이용해서 제안해 봐.”
“최규현 성격상, 절대 작은 걸 제안하지 않았을 텐데.”
“그게 힘들면, 최규현에 대한 신뢰를 깨 버리든가.”
신용호는 국밥을 푸지게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하면 되겠네.”
“뭘?”
“최규현에 대한 신뢰를 깨는 거.”
“그게 무슨…….”
그는 코웃음을 치려다가 문득 수저를 멈췄다.
그리고는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입술이 비틀어졌다.
“최서준 이 새끼, 친구 잘 이용해 먹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사업가.
교도소 출신.
그리고 신성호라는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은 개명했다는 걸 추정케 할 터.
이 세 개라면 장영순의 의심을 풀어 놓기에 아주 좋겠지.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거든?”
“말해 봐.”
“그러니까 내가 장영순을 만나기 전에 네가 먼저…….”
나의 계획을 듣고 나자, 신용호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너 생각보다 머리가 좋다.”
“연수원 때부터 내가 너보다 성적은 높았어, 인마.”
“……개새끼.”
신용호는 퍽 웃음을 짓고는 물었다.
“그래. 내가 이번에 도와주면 넌 뭘 해 줄래?”
“글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중에 도와주겠다는 그런 무형의 약속?”
“누가 정치 검사 아니랄까 봐 눈에 안 보이는 걸 보상으로 주네.”
“방금 누구한테 배웠거든.”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기가 잦아들고 난 뒤, 나는 제임스 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최서준입니다.”
-아, 검사님!
그는 반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안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한번 뵙고 이야기하시죠.”
-알겠습니다. 오래 기다릴 것 없이 사흘 뒤, 저녁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예. 강북에서 뵙죠.”
-그렇게 하시죠. 사흘 뒤에 뵙겠습니다.
신용호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이거 오랜만에 두근거리겠구먼.”
***
“만나기로 했다는 겁니까?”
-예. 사흘 뒤에 보기로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장영순의 말을 들은 최규현 의원의 얼굴엔 흡족한 미소가 만개했다.
“우리 장 여사님이 이렇게 일을 잘한다니까. 내가 이래서 믿고 부탁하는 거지. 조금만 더 고생해 줘요.”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약속은 지키시는 겁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최규현은 만족스러운 듯이 말을 덧붙였다.
“장 여사가 다시 강남 여왕벌 소리 듣게 해 준다니까. 일 끝나고 퀸 인베스트먼트가 건재하면 그 회사 자체도 넘겨드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알겠습니다. 사흘 뒤에 이야기 잘 끝내고 다시 연락드리죠.
“그래요.”
뒷좌석에 앉아 있던 최규현 의원은 조수석에 앉은 김 실장을 불렀다.
“김 실장.”
“예, 의원님.”
“불곰은 요즘 뭐 하고 있지?”
“정승민 위원장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불곰이 걔 말고 또 있어?”
“그 친구 들어오라고 해. 이번 선거 캠프에서 같이 일해야 할 테니까.”
김 실장은 제 귀를 의심하고서 물었다.
“정 위원장을 재기용하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번에 하는 거 보고 말이지.”
최규현은 혀를 가볍게 차며 말을 이었다.
“그 친구가 일은 참 잘하는데, 여자 문제 때문에 참…….”
“제가 듣기로는 최근엔 깔끔하게 정리해서 지금은 문제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발기부전 때문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긴 하다만……. 어쨌든 빠른 시일 내에 얼굴 한번 보자고 해.”
“알겠습니다.”
최규현은 시트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이번만큼은 본인의 생각대로 갈 확률이 크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다.
자신의 예상대로 최서준이 자금난에 빠진 건 확실한 상황.
이번 일을 문제 삼게 되면, 최서준의 숨겨진 재산까지 전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떡값을 받아 챙긴 건 전부 세탁해 놨을 테니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의 와이프인 한지유의 재산 규모는 오랜 배우 생활로 어마어마한 수준.
그것만 공개되어도 서민들의 지지를 받는 그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시민들은 예전만큼 지지는 보이지 않게 될 터.
서민들이 가진 부자들에 대한 증오는 절대 적지 않으니까.
최소한 그의 날개를 찢어 버리는 건 가능할 터.
그러다가 바닥에 추락하면 좋은 거고.
아니더라도 만신창이가 될 것만은 틀림없었다.
최규현은 최서준을 무너뜨릴 생각에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최서준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꿈에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