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96화 (196/341)

양날의 검 (2)

잠깐만.

장영순?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지만, 문자 내용은 확실히 ‘양날의 검, 장영순’이라고 쓰여 있다.

장영순이라면 군부 시절에 강남에서 크게 폰지 사기를 벌이며 여왕벌이라고 불렸던 인물 중 하나.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제 70도 넘은 나이일 텐데.

그게 아니라면, 다른 장영순을 말하는 건가?

퀸 인베스트먼트와 손을 잡는 게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 문자가 왔다는 건, 이와 관련이 있다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우선 ‘양날의 검, 장영순’이라는 문자의 내용에서 중간에 반점이 있는 게 문제였다.

장영순이 양날의 검이라는 걸 뜻하는지, 양날의 검과 장영순 둘을 모두 가리켜 주의하라고 말하는 건지 불분명했으니까.

현재 상황에서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관련한 사항이 나오면 추측하는 것뿐.

“심각한 내용이면, 조금 이따가 다시 이야기할까요?”

제임스 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를 바라봤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임스 킴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정도 제안이면 검사님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어떠신지요?”

“좋은 제안이죠. 그러나…….”

나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릎에 올렸다.

“정책에 관련한 제안이라면 제가 아니라, 조현웅 의원께 직접 가서 제안하는 게 나았을 텐데요. 암만 제가 영향력이 있다고 한들, 일개 검사에 불과합니다. 정책을 만드는 건 국회의원과 대통령, 즉 정치인들이죠.”

제임스 킴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그 정치인들의 입에서 시도 때도 없이 검사님의 이름이 나오더군요.”

그는 능글맞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요 며칠 동안 라인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최서준 검사와 이야기를 해 봐라.’, ‘최서준이 그렇게 말했다.’, ‘최서준 검사가 지시한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이걸 보면 검사님과 손을 잡아야 제대로 줄을 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성태현과 2번 라인으로 함께 넘어온 이래로 지금까지 내가 라인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으니까.

물론, 그의 말처럼 라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과장을 조금이 아니라, 많이 보태셨네.”

일단 칭찬은 칭찬.

영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 제안은 한번 생각해 보죠.”

“감사합니다.”

제임스 킴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회사 운영은 본인이 독립적으로 맡아서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미국 본사 쪽의 지시를 받는 겁니까?”

“미국 본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그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한국에는 저보다 더 높으신 분이 한 분 계시긴 합니다.”

“그분이 실질적인 대표라는 겁니까?”

“운영은 제가 맡아서 하고, 그분은 자금 쪽을 담당하고 계시죠.”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시죠.”

“미쉘 장입니다.”

제임스 킴은 목소리를 낮췄다.

“한국 이름으로는 장순옥. 저는 장순옥 여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언론을 포함해서 회사 내부의 핵심 몇 명 외에는 그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고요.”

한마디로 말하면 장순옥이라는 여자가 진정한 실세라는 뜻.

“그분과 만나 보고 싶은데요.”

“예. 제안이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다른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미쉘 장이라…….

왠지 모르겠지만, 100% 믿어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윤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차장님.

“퀸 인베스트먼트에 대해 조사해 보세요. 회사 구조와 함께 내부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미국 본사와 어떤 관계로 이어져 있는지 전부요.”

-알겠습니다.

***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에서야 윤설하를 통해 퀸 인베스트먼트에 관해 간단한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퀸 인베스트먼트는 동전 주식과 상장 폐지된 주식을 주로 다루는 회사로…….”

“어떤 회사인지에 대한 정보는 압니다. 넘어가도 괜찮아요.”

“아, 그러면 대표에 관한 사항부터 보고드리면 될까요?”

“예.”

그녀는 들고 있던 서류를 다음 장으로 넘긴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대표는 제임스 킴. 한국 이름으로는 김현동. 1972년생으로 재미교포 2세입니다. 하버드 출신으로 월 스트리트에서도 꽤나 이름을 날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0년부터 한국에 들어와 활동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한국 증권가에서 일하던 도중 2022년에 KH신탁에 들어가 전문 CEO로 대표를 역임하기 시작했습니다.”

KH신탁은 들어 본 적 없는 이름.

“그 이후, 2024년 10월까지는 별다른 행보가 없다가 11월에 KH신탁이 미국에 있는 퀸 인베스트먼트에 흡수되며 한국 지사 역할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도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대표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빠르게 몸집을 키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 점은 처음 듣는다.

무엇보다 의아한 건, 인수합병이 되었는데 대표가 변하지 않았다는 점.

이건 의문을 넘어서 수상할 정도다.

“흡수합병이 된 건데 대표가 안 바뀌었네요?”

“예. 그 점은 저도 이상하게 여겨 확인을 해 봤는데, 특별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겉으로는 합병되었다고 하나, 속으로는 회사를 폐업 신고하고 넘어간 것으로 되어 있고요.”

평범한 인수가 아니라, 폐업 후 넘어갔다는 건 눈여겨볼 만한 사항이다.

이름이 바뀐다고 한들, 일반적인 기업으로서 매출을 냈다거나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폐업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폐업을 한다는 건 그간 기업으로서 해 온 걸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셈.

그럼에도 폐업을 했다?

일반적인 기업이 폐업으로 얻을 수 있는 건 하나.

그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얻었던 모든 정보를 파기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얻는 것.

이런 경우라면 이유는 뻔하다.

KH신탁의 경영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다는 거지.

이거 왠지 구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작정하고 폐업까지 한 마당에 정보를 추적하기는 어려운 상황.

“KH신탁은 작년 11월을 기점으로 퀸 인베스트먼트에 인수된 뒤,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윤설하의 브리핑이 계속되었지만, 제임스 킴이 말했던 여자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이상입니다.”

“혹시 조사 도중에 장순옥이라는 이름은 안 나왔습니까?”

“장순옥요?”

그녀는 처음 듣는 듯이 되물었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혹시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요?”

“예. 실질적인 소유주라고 하는데……. 아니면 미쉘 장이라는 이름일 수도 있고요.”

“제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런 이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채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

“다만, 제가 보고드린 사항은 전부 국내에 있는 퀸 인베스트먼트에 관한 내용이며, 미국에 있는 본사에 관해서는 국내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자세한 조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어림잡아 한 달입니다.”

한 달은 너무 늦다.

적어도 이번 달 내에 자금을 확보해야 하니까.

“그러면 미국에서 퀸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에 대한 평판은 어떻습니까?”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전문가 평판이나 시사 언론지에서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고민이 깊어질 것 같다.

단순히 한국에서의 지표만 보면 수상하긴 하나, 그렇다고 거절할 만한 이유도 찾기가 힘든 상황.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제임스 킴보다 더 좋은 조건을 내미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가야 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저 손 놓고 있다가는, 대선에서 최규현이 미쳐 날뛰는 상황이 펼쳐질 테지.

가만히 기다리다가 목이 잘려 나가는 것보다는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드는 게 나은 법이니까.

대선이 코앞까지 다가오니, 한 걸음을 내딛으려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머리가 지끈거릴 수준.

밑에 있던 시절이 아니라, 차장검사까지 올라온 만큼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모든 게 무너져 물거품이 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하달까.

한 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자욱한 안개가 낀 이 혼란스러운 시국에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조현웅 의원이 대선에서 패배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사실.

그러면 제임스 킴이 부탁했던 사항을 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퀸 인베스트먼트에 간접적인 홍보 모델이 되면서 영향을 받고 투자했던 시민들이 나를 탓하게 될 것이다.

하나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제임스 킴의 말을 들어 보면, 한지유의 입을 빌려 최서준도 투자한 것처럼 말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올 터.

그렇게 되면, 일이 마무리된 뒤에는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어느 정도 감안이 될 테니까.

물론, 소수는 여전히 반감이 남아 나를 미워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것까지 고려하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 모든 건 4월에 펼쳐질 대선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어디까지나 이번 대선의 목표는 최규현의 낙선이 아닌, 그의 힘을 빼는 것.

당선이 되려고 준비하다가 괜히 무리수를 둬서 최규현 등에 날개를 달아 주는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최악 대신 차악.

최규현의 뒤통수를 치고 넘어올 때부터 이런 상황이 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견했었지만, 더욱 더 빡센 느낌.

그래도 버텨야 한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만 하니까.

“더 지시하실 사항이 있으신지요?”

“장순옥 여사에 관해 조사해 보세요.”

“미쉘 장과 같은 인물이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분명히 퀸 인베스트먼트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흘 내로 찾아오겠습니다.”

나는 시계를 흘긋 보며 의자를 뒤로 미뤘다.

“벌써 12시가 넘었네요. 얼른 식사하러 가시죠.”

“차장님은 안 드세요?”

“저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고 차장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퀸 인베스트먼트.

그리고 미래 문자로 온 ‘양날의 검, 장영순.’

단순히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작 이런 상황만으로 미래 문자가 왔을 리가 없으니까.

분명 무언가 숨겨진 게 있을 걸 예상하고 움직여야만 한다.

그때,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신용호.

오랜만에 전화라니, 무슨 일 있나?

나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어, 웬일이야?”

-새끼, 정 없기는. 나 지금 주차장이다. 나와라.

“갑자기?”

-밥 먹자고, 인마. 간만에 얼굴이나 보려고 왔으니까 얼른 나와. 거절은 거절한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이놈, 진짜인가?

일어나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창가를 살피자, 정말로 신용호의 차가 주차장에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갑자기 사람 놀라게 하는 데 재주 있다니까.

점심은 거르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끼니는 제때 챙겨 먹으라는 와이프 말을 잘 듣는 남편이 될 것 같다.

나는 외투를 챙겨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익숙한 자동차에 다가가 조수석에 탑승했다.

“왔냐?”

신용호는 씨익 웃으며 핸들에 손을 얹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안전벨트를 채웠다.

“너는 무슨 예고도 없이 오냐? 나 외근이면 어쩌려고.”

“아라 씨한테 연락해서 사무실에 있는 거 확인했어.”

“약속 있으면?”

“철면피 깔고 같이 가서 앉으려고 했지.”

“어휴, 진짜 신용호답다.”

그는 시동을 걸며 나를 질책했다.

“언제 적 신용호냐? 나 개명한 지가 언제인데.”

그 순간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래, 개명!”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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