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93화 (193/341)

설계 (4)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TV를 지켜보던 최규현 의원은 헛바람을 삼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모든 상황이 그가 설계했던 대로 흘러갔다.

경동수가 뇌물을 받아먹은 것부터, 그게 밝혀져서 김병호 회장을 논개 삼는 것과, 최서준이 뇌물에 눈이 돌아 욕심을 내는 것까지.

어떤 부분에서도 그가 실수하거나 들통날 여지는 없었다.

딱 하나.

오늘 최서준이 뇌물을 받는 장면을 그저 증거나 약점으로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생중계로 터뜨리는 것.

그 점만 조금 오버했을 뿐이지, 그 외에는 완벽했다.

‘대체 어디서 잘못된 거지?’

이번 일을 아는 건 김병호와 자신 둘 뿐이다.

일을 이행하는 박 상무나 자신의 수행 비서인 김 실장이 아는 건 당연한 일.

박 상무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가 흘렸을 리는 없고…….

그러면 김병호 회장.

‘김 회장이 흘리는 건 말도 안 되지.’

만약 최서준과 형량 거래를 했다고 한들, 이번 일은 미르스 항공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일이다.

김병호는 재벌의 일원이 아니라, 총수다.

한 그룹의 회장.

자신의 생명보다 기업을 더 중요시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

그러니 김병호 회장도 자신의 뒤통수를 칠 리도 없고.

‘설마, 김 실장?’

지금까지 최서준을 놓쳤던 모든 일에는 김 실장도 연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내 최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그는 이를 악물고 냉정하게 머리를 식혔다.

김 실장은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자신의 수발을 들었던 인물이다.

최서준에게 붙을 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건 더더욱 잘 알고.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냐고!’

그는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젠장!”

최규현은 들고 있던 술잔을 벽에 내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산산조각 났지만, 최규현은 아직까지도 머리가 멍했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

그는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금 이번 사건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10분.

30분.

그리고 1시간.

최규현은 가만히 앉은 채로 머리를 굴렸지만, 도저히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TV에서는 최서준에 관한 뉴스 특보가 끝나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방송되었지만,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는 상태.

‘혹시 신이 돕기라도 하는 걸까?’

그러나 무신론자인 그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최규현은 그랑교를 뒤에서 운영할 때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 일만은 귀신이 곡할 노릇.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최서준이 눈치가 더럽게 빠르거나 머리가 미친 듯이 좋거나.

왠지 모르게 최서준과 자신의 사이에는 벽이 하나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최규현이었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번 일의 결과는 정해져 버렸다.

경동수는 살아남았고, 미르스 항공은 나락에 빠져들게 될 터.

다른 기업의 손에 넘어가거나 정말 기업 자체가 해체되거나.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최서준은 국민 검사를 넘어, 국민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는 것.

만약 그가 정치인으로 나서고 싶다고 한다면, 어느 지역구를 가든 간에 국회의원 배지 하나 다는 건 누워서 떡먹기라는 거지.

더 이상 최규현이 단번에 집어삼키기엔 최서준이 너무 커 버렸다.

계획을 바꿔야만 했다.

검사 나부랭이가 아니라, 거물 정치인을 상대할 때처럼.

그러나 지금 당장 또다시 최서준을 상대하려고 오래도록 차근차근 준비할 여유는 없었다.

이제 대선까지는 반년도 채 안 남았으니까.

‘최서준의 목을 치는 건 대권을 잡은 이후에 해도 충분해.’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별거 없다. 치고 빠질 때를 아는 게 최고.

최규현은 지금 한 걸음 물러날 때였다.

그러나 분노와 아쉬움에 차마 미련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딱 한 번만 더 해?’

그러나 본인이 직접 나설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가 대선에 영향이 가면 큰일이니까.

이번 일처럼 다른 이를 이용해 코를 풀어야 하는 상황.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래, 그 인간이 곧 출소였지?’

최규현은 곧장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24시간 대기를 하는 김 실장은 수신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응답했다.

-예, 의원님.

“김 실장, 자네 장영순 기억하지?”

-장영순이라면…… 강남 여왕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그 여자 말이야. 곧 출소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휴대폰 너머로 수첩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 3분 뒤, 내용을 발견한 김 실장이 대답했다.

-곧이 아니라, 이미 출소했습니다. 두 달 전에 만기 출소한 걸로 확인됩니다.

“아, 그래?”

최규현은 반색하며 말했다.

“그러면 당장 내일 연락해서 나랑 만날 자리 한번 주선해 봐.”

-알겠습니다, 의원님.

***

-서울중앙지검의 최서준 차장검사는 이번 일로 그의 청렴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직접 증명해 냈습니다. 국민들은 최서준 검사에 대해 이제 국민 검사를 넘어서 국민 영웅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또한, 그의 산하 부서인 특수부의 남민제 검사는 조종실에서의 일을 목격했던,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유일한 일등석 탑승자였던 금성택 교수의 증언을 확보해…….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나오던 도중, 아이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아빠!”

“응. 아빠 멋있지?”

한지유는 자신의 아들 안고 함께 TV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최지훈은 또랑또랑한 눈으로 TV에 나오는 아버지, 최서준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아빠가 진짜 멋있는 사람이라니까.”

한지유는 흐뭇하게 TV를 보며 아들의 볼을 매만졌다.

“아들도 아빠처럼 멋진 사람 되자.”

최지훈은 초롱초롱하게 엄마를 보며 외쳤다.

“검사!”

아들이 외친 짤막한 단어에 한지유는 지극히 온화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도 검사될 거야?”

그러나 아직 채 돌도 되지 못한 최지훈이 그 뜻을 제대로 알아먹을 리 없었다.

검사라는 단어의 뜻이 뭔지 알 리도 없을 테니까.

아들은 그저 티 없이 맑게 생글생글 미소만 지었다.

그저 10개월 만에 단어를 명확하게 말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수준이지.

“아빠한테 전화해 볼까?”

꺄르륵 웃어 대는 아들의 모습에 한지유는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녀는 스피커폰을 누르고 최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유야.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한지유는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빠, 바빠?”

***

가족들과 간단한 전화를 마치고 돌아오자, 기획재정부에서 특수부로부터 파란색 박스를 옮겨 가고 있었다.

먼저 내려와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윤설하는 내게 슬쩍 말했다.

“막상 이렇게 보니까 아깝네요.”

“어마어마한 돈이니까요.”

적은 돈도 아니고 무려 100억이다.

뇌물이기에 국고로 환수되는 게 당연했지만, 저 정도의 돈은 몇 번을 봐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니까.

나는 장난스럽게 윤설하에게 말했다.

“5만 원 다발 하나 슬쩍 하시지 그랬어요?”

윤설하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품에서 5만 원 다발 하나를 꺼냈다.

“이걸로 회식이나 할까요?”

“다 같이 콩밥 회식하는 건가요?”

그 말에 그녀는 풉 웃음을 터뜨리고는 기획재정부 직원을 불렀다.

“이게 복도에 있더라고요. 떨어진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직원은 5만 원 다발을 건네받으며 머리를 숙였다.

“떨어뜨린 줄도 몰랐어요.”

만약 중간에 자신들이 실수로 빠뜨린 거라면 위에서 된통 깨질 만한 일이었으니까.

윤설하는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조심히 챙기세요.”

“예,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금 고개를 꾸벅이는 직원이 떠난 뒤, 나는 윤설하에게 물었다.

“가져가려고 그랬어요?”

“진심으로 묻는 건 아니죠?”

“그랬으면 반씩 나눠 가지자고 하려 했는데.”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고는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돈은 어떻게 처리하는 거예요? 단순히 내년 예산으로 쓰이려나?”

“아니요. 미르스 항공에서 불법으로 모은 자금이니, 미르스 항공에 피해 본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추락 사고의 유가족 및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데 한 50억 정도 쓸 것 같고, 나머지 50억은 일자리 창출한다고 하는데, 잘될지 모르겠어요.”

“나쁘지 않네요.”

윤설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되면 경동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조금이나마 회복되겠는데요?”

“이미 임기가 끝물인 사람이니, 경동수 자신보다 민국당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하는 거죠.”

본인의 소속 당이었던 민국당에 힘을 조금이라도 실어 주려는 것일 터.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그가 국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박 상무는 아직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나요?”

“예. 이번 뇌물은 김병호 회장은 관련이 없고, 모두 자신이 회사를 생각하고 간부들을 빼내기 위해서 쓴 것이라고 초지일관 같은 증언만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사실대로 김병호 회장의 지시라고 말하는 순간, 김병호 회장은 실형 선고가 확정된다.

그와 동시에 미르스 항공은 무너지는 거고, 본인의 상무 자리까지도 물거품이 되는 거니까.

“이건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주머니에서 USB를 하나 꺼내 윤설하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김병호 회장이 제게 뇌물을 제안했을 때 녹음한 파일이에요.”

“이런 것까지 준비하셨어요?”

“만일을 대비해야죠.”

코를 찡긋하자, 윤설하는 혀를 내둘렀다.

“차장님은 절대 은퇴하지 마세요.”

무슨 뜻이냐는 말 대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검사들이랑 일하면 답답해서 죽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공판부로 사건 넘길 때쯤에 슬쩍 언론에 그 파일 흘려 주세요.”

윤설하는 바로 내 뜻을 캐치했다.

“사건이 잊힐 만할 때 또 언급시켜 주려는 거군요.”

“그렇죠. 그래야 이 녀석들 실형도 나올 테고…….”

“차장님 이미지도 정점을 찍고요.”

“그렇죠.”

그녀는 USB를 주머니에 소중히 넣고는 날 올려다보았다.

“이건 진지하게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말씀하세요.”

“나중에 정치하실 거예요?”

“글쎄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

간만에 들른 2번 라인은 대축제 분위기였다.

경동수가 살아남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미르스 항공을 박살 냈으니까.

게다가 몇 주 내내 전곡항에 있던 신동현 대표도 오랜만에 얼굴을 비춘 상황.

이번 일의 배후에 최규현이 있었다는 것까지 알면 아주 난리가 났겠지만, 그건 나만 알고 있기로 했다.

샴페인을 수십 병이나 터뜨린 뒤에야 겨우 진정되어 나는 신동현 대표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요, 고생은요.”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검사님 덕분에 어딜 가든 절 알아봅니다. SV그룹 자체 매출도 껑충 뛰었고요.”

“잘됐습니다. 축하드려요.”

“제가 어떻게 챙겨 드리고 싶은데 이번 일 때문에 자금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올해만 지나면 바로 처리해서 두둑이…….”

그는 말을 끝내는 대신 눈썹만 들썩였다.

“아이, 그런 걸 바라고 한 건 아닌데…….”

나는 능글맞게 받아쳤다.

“제가 또 거절은 못 하는 성격이라서요.”

신동현 대표는 웃음을 터뜨렸다.

“알죠, 알죠. 그래서 제가 강요하는 겁니다.”

몇 번이나 껄껄 웃음을 터뜨린 뒤에야 그가 샴페인을 마시며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다음 총선까지 기다리면 될까요?”

“에이, 그때까지 참으실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신동현 대표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혹시 할 수 있는 게 더 있습니까?”

“이번에 성왕동에 당선된 국회의원 하나가 부정선거로 투표 무효화된 건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만…… 성왕동이라면 종로 다음 가는 정치 지역구 아닙니까?”

“민국당에서 제대로 밀어드릴 겁니다.”

신동현 대표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보궐 선거에서 아주 화려하게 출사표를 내던져 보시죠.”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신동현 ‘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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