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1)
김병호 회장과 김윤근 전무 부자를 보러 되돌아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다.
문자가 아니었으면, 최규현이 이러한 계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을 테니까.
역시나 오랫동안 정치에서 썩은 덕분인지 모략을 짜는 실력은 녹록지 않았다.
이 정도로 멀리 보고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수준.
그건 그렇다 치고 최규현 이 자식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약았다.
김병호 회장을 이용해서 날 제거하려는 건, 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를 풀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
그렇다고 하나, 김병호 회장이 멍청해서 최규현이 휘두르는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최규현 의원은 그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실제로 그가 미래 문자…… 아니, 과거 문자에서 말한 것처럼 대권을 쥐는 주인공은 최규현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 또한, 그의 당선을 염려해서 신동현 대표와 손을 잡았고 심지어 다음 대선에서 최규현의 낙선보다는 힘을 빼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일단, 현재 상황에서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 번째는 그냥 뇌물 제안을 거절해서 계획 자체를 망가뜨리는 일.
두 번째는 녀석들의 의견에 속는 척하면서 마지막에 박살 내 버리는 것.
첫 번째 방법이 가장 깔끔하긴 하나, 최규현은 절대 손해 보진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미르스 항공기 추락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게 사실이니까.
두 번째 방법은 리스크를 지고 있다.
녀석들이 언제든 변형해서 수를 던질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역으로 최규현의 행동을 제약하기에는 더 좋다고 봐야 한다.
자신의 방법이 먹혀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수를 던지진 않을 터.
그런데 만약 첫 번째 방법처럼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다면, 분명 다른 수를 생각해 낼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건 뻔했다.
당연히 두 번째 방법.
최규현을 엿 먹이기엔 이 방법이 더 좋으리라는 건 뻔하디뻔하다.
그러면 우선 김병호 회장의 제안을 수락해야 한다.
다만, 그 전에 안전장치 정도는 걸어 두는 게 좋겠지.
나는 아까 해 두었던 녹음을 한 번 끊고 새롭게 녹음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목소리를 낮춰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김병호 회장이 저, 검사 최서준에게 뇌물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김병호 회장은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닌 것 같기에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우선 그 제안을 수락하는 척하겠습니다.”
일종의 보험.
혹시나 내가 뇌물을 받고 나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최규현이 공격을 해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이 녹음이 나를 지켜 줄 것이다.
“참고로 이 녹음은 2024년 11월 11일을 오후 3시 15분을 기점으로 녹음되고 있으며 저는 뇌물을 받으려는 의사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 녹음 파일을 다음 대선 전까지 공개하겠습니다. 만약 그 이후에 공개된다면, 제가 뇌물을 받고 입을 닦으려는 것으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날짜까지 제한을 걸어 두었다.
혹시나 언론이나 여론에서 ‘안전빵으로 녹음만 해 두고 걸리면 터뜨리려고 준비한 것이다.’라고 주장할 경우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두는 것.
어차피 지금 당장 해결하지 못해도 최규현이 대선을 치르기 전에 공개할 것이기에 전혀 걱정할 여지는 없다.
이건 진심으로 내가 미르스 항공으로부터 뇌물을 받을 생각이 없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지금 녹음기를 켠 채로 미르스 항공 김병호 회장과 그 아들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화장실을 나섰다.
접견실에 들어가자, 김병호 회장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예.”
나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까 하던 말씀마저 하시죠.”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 뒀지만, 여전히 녹음은 되고 있는 상태.
영문을 알 리 없는 김병호 회장은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금 말을 이었다.
“검사님께서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사님께 금전적으로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뇌물을 받지 않습니다. 그쪽들을 용서해 줄 생각은 더더욱 없고요.”
“검사님, 절대 보통 제안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감 넘치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만져 보신 적 없는 액수와 더불어 가족들에 대한 지원까지 완벽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여유롭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제야 기회를 얻은 김병호 회장은 반색하며 손가락을 쫙 펼쳤다.
“500억.”
사전에 이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김윤근 전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버지!”
그럼에도 김병호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500억 드리겠습니다. 선수금 100억에 사건이 종료되면 나머지 400억 즉시 지급으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액수가 크긴 합니다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로 평범함을 벗어날 순 없죠.”
“물론입니다.”
김병호 회장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가족들에 대한 지원까지도 확실하게 해 드리죠.”
“가족들요?”
“예. 우선은 사모님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조만간 방송 복귀를 하신다며 준비 중에 있으신 걸로 압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차 준비하고 있는 건 맞다.
“저희가 후원 중인 프로덕션이 몇 개 있습니다. 지상파에도 충분히 광고를 넣고 있고요. 이곳과 이야기해서 블록버스터급 대작으로 바로 캐스팅 확정 지어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스크린 복귀를 원하시면 그쪽도 가능합니다. 각종 필름사와 배급사는 지금 당장이라도 저희가 후원을 시작할 수 있기에 원하시는 작품이 있으면 100% 확정지을 수 있게 해 드리죠.”
“흐음…….”
내가 고민스런 표정을 짓자, 그는 어필하듯 말을 보탰다.
“대한민국 인식상, 배우는 결혼하고 나서 복귀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여배우는 더욱더 말이죠. 그 복귀를 제가 성공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그제야 김병호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턱을 치켜올리며 그를 내려다봤다.
“제 아들은요?”
“우리 조카님은…….”
김병호 회장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학비 지원은 물론이고 한국대 법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완벽하게 입시 코디까지 해 드리겠습니다.”
“글쎄요.”
나는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제 아들은 공부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시킬 생각이라서요.”
“아…….”
그는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하고픈 일이 있다면, 뭐든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 미르스 재단에서 운영 중인 학교가 초, 중, 고 전부 다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김병호의 얼굴에서 최규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흡사 이건 김병호 회장의 탈을 쓴 최규현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물었다.
“원하시는 조건은요?”
“제 아들 녀석…….”
그는 김윤근 전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말 못난 놈이고, 검사님께 잘못도 많이 했습니다.”
김병호 회장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과 안 드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김윤근 전무는 입술을 깨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정말 사죄드립니다.”
둘의 머리가 테이블에 쿵 소리를 낼 정도로 세게 박혔다.
김병호 회장은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부족한 아들놈이지만, 앞으로는 소란 피우지 않고 살겠습니다.”
그제야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만 살짝 들어 말했다.
“무기징역만 면하게 해 주십시오.”
“본인은 괜찮으신 겁니까?”
“저는 시민들의 뿔이 가라앉기만 하면 2심, 3심에서 3-5 공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놈의 재벌 불패 3-5공식. 또 집행유예나 받겠다는 소리다.
“변호사 팀이 어마어마하게 꾸려지겠군요.”
“부장 판사 출신, 검사장 출신으로 꾸밀 것 같습니다.”
항소와 상고를 통해 2심, 3심이 진행될 때는 대권이 바뀌어 있을 터.
그렇다면 김병호 회장이 실형을 받지 않는 걸 넘어서, 무기징역 이하의 형을 선고받은 김윤근 전무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어영부영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겠지.
그들에게 시선이 쏠릴 때쯤, 뇌물 사건을 터뜨려서 나를 골로 보낼 생각인 거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수락할 거지만, 고민하는 척하는 거지.
보지 않아도 김병호 회장과 김윤근 전무가 긴장한 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걸 뻔히 알 수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귀에 들려올 정도니까.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녀석의 똥줄이 더 타도록.
이런 상황까지 전부 녹음되고 있는 상태.
이 녹음본은 언제 공개해야 좋을까.
녹음 파일에 보험은 들어 놨지만, 최규현의 스타일상 보험까지도 깨부수려 들 게 뻔하다.
그러면 내가 책임 소재를 피하면서 이들의 계략을 깨부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나보다 상급자에게 보고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완벽하게 사건의 핵심만 쏙 빼먹으면서도 최규현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니까.
그러나 현 검사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은 쉽게 믿을 수가 없다.
1번 라인에 속한 인물은 말할 필요도 없이 배제.
경동수가 임명한 사람이라고 한들, 그의 임기가 끝나 가는 상황에서 최규현에게 붙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차장검사 이상부터는 완전히 정치판이니까.
미르스 항공을 처음 칠 때처럼 경동수가 지시한 거라고 하면 검사장급 녀석들처럼 2번 라인으로 붙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잠깐만, 이번에도 경동수를 이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어차피 그를 살리고자 마련한 판이다.
그래, 경동수.
대통령에게 직속으로 이미 미르스 항공을 치라는 지시까지 받은 것이라고 밝힌 마당에 그에게 직접 보고하고 움직이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내 뒤에 그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암만 최규현이라고 한들 현직 대통령을 탓할 수는 없을 터.
대선을 앞둔 그에게는 경동수의 지지 세력을 적으로 돌릴 위험을 감수할 패기는 없을 테니까.
나는 그제야 눈을 뜨고 그들을 바라봤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도 재기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김병호 회장은 반색하며 바로 말했다.
“미르스 항공 고객들 중 65%가 외국인입니다. 한국인들은 불매운동을 한다고 해도, 잠깐이죠. 게다가 저희 항공사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돌아서지 않습니다. 어차피 짖는 건 저가 항공이나 사용하는 서민층 아니겠습니까?”
슬슬 넘어갈 기색을 보이자, 말을 함부로 하는 걸 보니 이 인간도 글러 먹었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게 연기를 이어 갔다.
“나라에 외화를 벌어다 주는 굴지의 항공사가 무너지면 국가에도 큰 손해겠죠.”
그를 보며 입꼬리를 가볍게 비틀었다.
“저도 앞으로 미르스 항공사만 이용하도록 하죠.”
“역시 검사님이십니다. 아주 현명하시고도 탁월한 선택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