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4)
“임유나 기자에게 동영상 전송했습니다.”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더 지시하실 일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설하 씨는 바쁘세요?”
윤설하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커피 한 잔 타 올까요?”
역시 척하면 착이라니까.
“좋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준비해 왔고, 소파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설하 씨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어요?”
“박기원 검사가 동영상을 구해 온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걸 포함해서 남민제 검사와 박기원 검사의 일 진행에 관해서요.”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설하 씨의 말대로 둘을 라이벌 구도로 붙여 두길 잘했어요. 평검사 두 명이 해낼 수 없을 만한 건수를 찾아왔을 정도니까.”
“예상한 건 아니지만,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장하영 검사의 후임으로 누굴 선정할지는 결정하신 겁니까?”
“그럼요.”
둘 중 특수부의 엘리트 계보를 잇는 인물을 선택하는 건 오히려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대신 하나 달라진 게 있어요.”
“어떤 겁니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 명은 적당히 외곽으로 돌리고 다른 하나를 정석 코스를 밟게 하려고 했는데, 누구 하나 버리기 아쉬워졌거든요.”
둘을 붙여 놓은 덕분에 숨겨진 진가를 알았으니까.
“하나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데 능하고 또 다른 한 명은 검찰보다 정치에 어울리거든요.”
윤설하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민제 검사는 특수부에 남기고, 박기원 검사는 대검으로 보낼 겁니다.”
“대검찰청요?”
“예.”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머지않아 저도 대검에 들어갈 텐데, 그곳에서 기반을 먼저 닦아 두기에는 정치에 능한 박기원 검사가 적합할 테니까요.”
서울중앙지검도 내로라하는 검사들이 모이는 곳이라지만, 대검은 그보다 한 차원 위에 있는 상부 기관.
전국에서 선출되고 또 선출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암만 나라고 한들, 아무런 준비 없이 대검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을 터.
얼마 전, 김석원 법무부장관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데다가 차기 대선마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이제는 미래를 대비한 사전 작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박기원 검사라면 내부로 직접 들어가 초석을 다져 놓을 수 있을 터.
“한 수 앞이 아니라, 두세 수 앞을 보시는군요.”
“그럼요.”
나는 다리를 크게 꼬았다.
“그 한 수 차이에 성패가 달려 있으니까요.”
“두 검사님한테 전달하면 될까요?”
“아니요. 인사이동 준비만 해 두시고 일단 보류해 두세요. 전달은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단식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공감한다던 홍승권 의원, 알고 보니 남몰래 폭식 중이었던 걸로 밝혀져…….
-전곡항에서 미르스 항공기 사고의 피해자 가족 및 유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기다렸던 대한당 소속의 홍승권 의원은 그들의 아픔을 나누며 공감해 차마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며칠째 식음을 전폐했었으나, 실은 남몰래 폭식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해당 사실이 담긴 동영상을 정치 1번지에서 단독 입수했다. 총선을 앞둔 이 시점이기에 어떻게든 표심을 끌어모으려던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가나, 아무리 그래도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지탄 받아 마땅할 터.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홍승권 의원이 ‘중국발’ 비행기 사고 현장에서 이러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무려 중국요리를 시켜 먹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무려 임시 대피소의 바로 옆에서. 이는 마치 중국에서 오던 비행기 사고를 당한 이들을 조롱거리 삼아 놀리려고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면 모를까, 자장면에 탕수육까지 있는 걸 보면 그의 언행들은 국민들을 우롱하고 기만한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략)……. 총선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서 국민들은 ‘개돼지’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권을 행사해 정의를 구현하는 것뿐이다.
-정치 1번지 임유나 기자
기사를 보던 최규현 의원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 돼지 X끼야!”
그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재떨이를 던졌다.
홍승권 의원은 갑자기 날아온 유리 재떨이를 피하지 못했고, 그것은 그의 이마에 정확하게 꽂혀 산산조각 났다.
그럼에도 홍승권 의원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허리를 90도로 굽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분이 풀리지 않는지 최규현 의원은 윽박을 질렀다.
“짱개? 짱개를 처먹어?”
그는 오히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게 배가 고프면 출장 뷔페를 처불러서 먹지 그랬어? 아주 다 같이 파티를 하고 아예 샴페인까지 터뜨리지?”
“저는 정말로 의원님께서 보내신 줄 알고…….”
겁에 질린 그의 말에 최규현 의원은 정색했다.
“고개 들어.”
홍승권 의원이 힘겹게 허리를 펴자, 최규현 의원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너같이 한심하게 유가족들한테 가서 민심 좀 얻어 보려는 놈이 도대체 뭐가 예쁘다고 내가 사람을 보내겠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이 상황 끝나?”
최규현 의원은 혈압이 오르는 듯, 목에 핏대가 서기 시작한 상태.
“제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그때, 홍승권 의원의 이마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재떨이를 맞아 이마가 찢어진 탓.
분명 쓰라리고 아플 테지만, 그는 상처를 부여잡지도 못하고 연신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이걸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열받았는지 알아?”
“…….”
“모르지?”
최규현 의원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내려놓았다.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공감도 못 하는 녀석이 무슨 시민들의 마음을 공감해!”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그는 홍승권 의원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아주 날카로운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지만, 최규현 의원은 멈출 기세가 없었다.
“배고파 뒈지려고 하는 놈이 왜 식사도 못 한다고 뻥카를 쳐서!”
짝!
몇 번이나 뺨을 후려갈겼을까, 홍승권 의원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넘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최규현 의원의 손을 빨갛게 적신 상태.
안절부절못하고 쳐다보던 홍승권 의원의 보좌관은 한껏 긴장한 채로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
물론, 홍승권 의원이 아니라, 최규현 의원에게.
지금 상황에서 홍승권 의원을 챙기면, 더 상황이 악화될 뿐이었으니까.
“자네는 나가 있어.”
“알겠습니다.”
그는 결국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홍승권 의원을 뒤로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최규현 의원은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멀찌감치 서 있던 남자를 불렀다.
“김 실장.”
“예, 의원님.”
황급히 김 실장이 다가가자, 최규현 의원은 쓰러져 있는 홍승권 의원을 향해 물었다.
“그 검사 놈이 누구라고?”
홍승권 의원은 벌벌 떨며 답했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박기원 검사입니다.”
최규현 의원은 김 실장을 향해 말했다.
“자네가 한동민 검사장에게 전화해서 누군지 알아봐.”
“한동민 검사장은 고검으로 넘어갔으니, 서울중앙지검 소속 제4차장검사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그 친구가 1번 라인이라…….”
최규현 의원은 살벌하게 김 실장을 바라보며 성을 냈다.
“차장검사든, 법무부장관이든 누구한테 연락하는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지금 당장 알아내라고!”
“아, 알겠습니다.”
김 실장은 구석으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그는 사색이 되어 최규현 의원의 앞에 섰다.
이 말을 했다가는 최규현의 폭발이 여기서 멈추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새끼 2번 라인 소속이야?”
그러나 최규현이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보내는 상황에서 차마 입을 닫고 있을 순 없었다.
“그게…….”
“빨리 말 안 해?”
최규현이 다그치자, 김 실장은 말까지 더듬으며 대답했다.
“트, 특수부 소속이랍니다.”
“……특수부?”
최규현의 안면 근육이 순식간에 굳었다.
“최서준의 수족이라는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X발!”
최서준이라는 이름 석 자에 최규현은 결국 폭주해 버렸다.
***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터진 홍승권 의원의 중국집 사건은 민국당의 입장에서 보기엔 호재 중에서도 으뜸가는 호재였다.
기사가 터지자마자 민국당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한당 녀석들은 거짓 가면을 쓰고 국민을 속인다는 등의 이야기를 꺼내며 까 내리기 시작한 상태.
이러한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온갖 비난을 쏟아 냈다.
그러나 대한당에서는 이번 사건은 대한당 전체가 아니라, 홍승권 의원 혼자만의 일이라며 오히려 이런 건으로 당 전체를 비난하는 정치적 이용을 하지 말라며 반박을 하고 있었다.
총선에 가까워질수록 갑론을박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확실한 건 계속해서 판이 민국당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논란의 시작이 바로 대한당 소속인 홍승권 의원이었으니까.
이미 총선이 시작된 탓에 공천을 취소할 수도 없으니 패널티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
뒤늦게 대한당에서 변명하면 할수록 본인들에게 불리해진다는 걸 알고 다른 화제를 꺼냈지만, 민국당이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계속해서 언급한 덕분에 총선을 열흘 앞둔 오늘까지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서 나오고 있을 정도.
총성 없는 정치 전쟁이 벌어지는 사이, 특수부는 더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르스 항공 관련해서 문제 되는 사항들 전부 조사 끝냈습니다.”
이두형 부장은 10장에 가까운 보고서를 내게 건넸다.
생각보다 적은 양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게 전부야?”
그는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건 요약본이고 그중에서 자세히 확인하시려는 내용이 있으면 본 서류들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쩐지.
그래, 이두형 부장이 날 실망시킬 리가 없지.
“역시 이 부장이야.”
첫 장을 펼치자, 미르스 항공의 특정 노선 독과점 문제부터 튀어나왔다.
이번 사건과는 관계가 없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건 공정거래조사부도 함께 나서면 되겠네.”
공정거래조사부.
제3차장검사인 나의 산하 부서 중 하나.
다시 말해 당장이라도 미르스 항공 조사에 투입할 수 있는 부서라는 것이다.
차장검사가 되면서 다른 부서들까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된 덕분에 더 넓은 범위로 기업을 압박하는 게 가능해진 상황.
다른 기업도 아니고, 이러한 대기업을 상대로 하려면 여러 부서들을 투입하는 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
나는 다시금 보고서를 살폈다.
대기업이라면 역시나 빠질 수 없이 내부 횡령부터 시작해서 인사 비리 등 각종 문제가 가득한 상태.
고개를 들어 이두형 부장을 향해 말했다.
“이 부장이 조사해 온 거라면 여기에 나온 건 전부 확실하게 기소할 수 있다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전부 진행해.”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국민들 사이에는 아직까지 미르스 항공에 대한 적개심보다 참사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를 향한 슬픔이 자리한 상태라, 미르스 항공을 공격했다가는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두형 부장의 걱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남민제 검사가 확보한 생존자의 진술, 즉 추락 당시 비행기 조종실에서 무슨 일이 펼쳐졌는지 모르니까.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거칠 게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서야지.”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남들이 나서지 못할 때 칼을 빼 들어야 이 사건을 독점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맞는 말씀이십니다.”
“정확히 1주일 뒤, 총선을 사흘 앞두고 영장 발부해서 조사 들어가. 그 전까지 완벽하게 준비 끝내 두고.”
“알겠습니다.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미르스 항공, 제대로 털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