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81화 (180/341)

블랙박스 (2)

-이번 사고의 원인에 대해 수소문 하던 도중, 유일하게 일등석에 타고 있는 승객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등석에 한 명밖에 탑승하지 않았다는 소리인가?”

-정확히는 고객으로서는 유일한 승객입니다.

“그러면 고객이 아닌 승객이 있다는 거지?”

-맞습니다. 미르스의 여객마케팅부 전무인 김윤근와 그의 자식 두 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르스 항공은 가족 기업으로 유명한 회사.

“그 전무라는 인간도 미르스 사람이겠네?”

-예. 미르스 항공 대표의 차남입니다.

무언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다시 하던 이야기 이어 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제가 접촉한 인물은 양진대학교 소속으로 있는 금성택이라는 교수입니다.

남민제 검사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 남자는 양진대학교에 근속 연수만 20년이 넘는 원로 교수입니다. 그런데 금 교수가 말하기로는 비행기가 성층권에 접어든 뒤에 안정 궤도에 들어서자, 김윤근이 아이들을 데리고 조종실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암만 기장이 허락했다고 한들, 승무원이 아니라면 조종실에 출입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경영진으로서 조종실에 출입하는 게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문제는 비행 도중이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건 김윤근이 홀로 간 게 아니라, 아이들까지 데리고 조종실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장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를 허락했을 리 없다.

조종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돌아오는 게 당연했지만, 김윤근이 자식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갔다는 건 그가 미르스 그룹의 경영진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기장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뜻이겠지.

암만 기장이라고 한들, 밥줄이 달려 있으니 경영진의 압박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아이들 나이 대는?”

-제가 직접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첫째는 아들로 아홉 살, 둘째는 딸로 여섯 살입니다.

딱 봐도 그림이 나온다.

자식들에게 조종실을 구경시켜 주거나, 비행기가 운행하는 도중의 조종석에서의 뷰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터.

-처음엔 경영진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조종실에 들어간 지 약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직후 일종의 뱅크턴 현상이 벌어진 걸로 추정되는데, 그것도 잠시, 바로 기체가 추락했다고 합니다.

뱅크턴.

특정한 방향으로 원형 선회비행을 했다는 뜻.

한마디로 비행기 조종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이후에 SV그룹에 구조된 거고?”

-맞습니다.

일등석이 조종실과 붙어있는 데다가 일등석에 다른 탑승객이 없었던 만큼, 김윤근 가족이 조종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승객 중에서는 금성택 교수가 유일할 터.

승무원의 증언은 기대하지 않았다. 미르스 항공 소속인 만큼, 회사에서 압력을 넣으면 입을 열지 않을 테니까.

만약 불복해서 내부 고발이라도 한다면, 보복을 받는 건 뻔한 그림.

즉, 그의 목격담이 유일한 증언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는 것.

남민제 검사가 내게 직접 전화한 이유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잘했어, 남 검사.”

-감사합니다, 차장님.

“지금 이 목격담은 다른 쪽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겠지?”

-예. 금성택 교수는 SV그룹에서 구조를 해서 바로 병원으로 이송이 된 인물 중 하나라서 아직까지 경찰들이 조사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SV에서 구조한 사람들은 조사 대상으로서는 후순위에 위치한지라…….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외부로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해 볼까요?

“숨기는 거라고 오해하지 않게 잘 이야기해 둬. 검찰에서 나온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드러나지 않게 조사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란 뜻이야. 혹시 안 될 것 같으면 나한테 보고하고.”

교수라는 직업은 명예를 갖고 있는 지식인 층.

혹시나 은폐하려는 것처럼 보여 오해를 샀다가는, 예상도 못한 타이밍에 세간에 이 사실을 터뜨릴 수도 있을 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심신도 안정된 것 같고, 교수인 만큼 대화가 통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 끝내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전화를 끊고, 곧바로 윤설하를 불렀다.

대기 중이었는지, 그녀는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차장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설하 씨, 혹시 김윤근 전무에 대해 들어 봤어요?”

“김윤근이라면…… 혹시 미르스 항공의 전무로 있는 인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사람 성격이 어떻습니까?”

“재벌 중에서 망나니급은 아니지만, 자기 자랑 좋아하고 남들 괄시하기 좋아하는 그런 타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 인물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사해 볼까요?”

“예. 그 사람의 사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해 파악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윤설하가 자리를 떠난 뒤, 나는 다시금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추락하기 직전, 비행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금성택 교수는 일등석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문득 김윤근과 아이들이 조종실에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을 터.

경영진인 만큼, 승무원의 제재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조종실에 입장할 때도 마찬가지였느냐가 된다.

예고 없이 조종실을 가려고 했으면 기장이 한두 번 정도는 거부했으니, 당연히 주변의 승객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챘을 터.

그런데 금성택 교수는 그들이 조종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고 증언한 상황.

다시 말해 실랑이도 벌어지지 않고 기장이 쉽게 허락했다는 건,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우선 이게 첫 번째 문젯거리가 되겠지.

그러나 단순히 들어간 것만으로는 항공사 오너 일가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조종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가 핵심이 될 터.

다시금 머릿속으로 조종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기체에서 일어난 일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김윤근이 단순히 구경만 했으면 문제가 벌어졌을 리 없을 테니까.

아홉 살 아들과 여섯 살 딸.

분명 둘에게 조종실을 구경시켜 주는 것 외에도 조종석에 앉혀 보거나 하는 미친 짓을 범했을 터.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뱅크턴 현상까지 발생했다는 건, 아이들이 조종실에서 무언가를 만지다가 오토파일럿. 즉, 자동조종장치를 껐을 게 분명하다.

뒤늦게 기장이 알아채고 조종대를 잡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일이 벌어져 버렸고, 결국 비행기가 추락하고 말았다는 것.

여기까지가 나의 추론.

이게 가장 합리적인 그림일 테지만, 그러나 말 그대로 이건 추론일 뿐이다.

비행기의 블랙박스라는 증거를 얻기 전까지는 근거 없는 주장처럼 보일 수밖에 없을 터.

바로 휴대폰을 들어 신동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수신음이 울리기도 전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예, 검사님.

“실종자 수색 작업은 잘되고 계십니까?”

-네. 그런데 이제 슬슬 한계치가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라서 날씨가 쌀쌀한 탓에 이렇게 오랫동안 바다에 빠져 있었다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커서……. 그래도 일단 최선을 다해 보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혹시 지시하실 게 있으십니까?

“예. 실종자 수색 작업과 동시에 추락한 기체를 추적하는 작업을 서둘러 주셨으면 합니다. 항공기에 남아 있을 블랙박스가 필요해졌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건강 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TV를 틀자, 역시나 미르스 항공기 추락 사고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37명, 구조자는 120명, 실종자는 31명.

미래 문자로 보았던 45명의 사망자와 56명의 실종자에 비해 확실하게 더 나은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다.

신동현 대표와 미리 이야기를 해서 참사를 대비해 구조 작업을 준비하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한 게 확실히 큰 효과를 발휘했달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밖에 덧붙일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금성택 교수는 SV그룹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신동현이 미리 준비하고 움직이지 않았으면 차가운 바닷속에 수장되어 실종자 혹은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을 인물이라는 뜻.

미래 문자의 영향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추락 원인에 대하여 누구보다 내가 먼저 추측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왠지 모르게 금성택 교수를 비롯하여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인물들의 목숨을 구해 낸 것에 대한 보답을 받는 듯한 느낌.

일종의 나비효과랄까.

금성택 교수의 증언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단순히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으로 그칠 테지만, 검찰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수 있는 굉장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참사가 벌어졌으면, 수사기관은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기에 바쁘지, 누굴 목적으로 삼아 공격할지는 생각하지 않는 게 정석.

소위 말하는 악당 말이다.

그러나 블랙박스를 통해 모든 사실이 밝혀지면, 실제로 조종실에 들어갔다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는 게 확인될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추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이 사고의 원인은 미르스 항공 오너 일가로 밝혀질 터.

국민들의 비난을 오롯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테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상황에서 가장 큰 수혜자가 누가 될 것인가를 따져 보면 딱 두 케이스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익 관계를 따지지 않은 채 자신의 돈을 퍼부어 피해자들을 구조하는 데 힘 쓴 인물.

그리고 그 ‘악당’이 될 인물들의 죗값을 치르게 만드는 사람.

첫 번째는 신동현 대표가 이미 선점을 해 두었고, 두 번째는 아무도 손 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현 상황에서는 이 사건의 악당이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들을 처벌할 준비를 할 수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사고인지 사건인지도 구별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건 뻔하다.

누구보다 빠르게 미르스 항공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일.

그로써 이번 사건에 관한 수사권을 선점하는 것이다.

이번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단순하게 한 사건으로 처벌하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걸 털어 박살 내 버리는 게 정석 코스.

미운털이 박힌 녀석들을 처벌하는 게 국민들의 지지를 업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기 전에 내가 먼저 미르스 항공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면, 말 그대로 미르스에 관한 실적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

표적 수사라는 추측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거야 의혹일 뿐.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미르스 항공이 울부짖으며 언론으로 공격한다고 해도,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버티다가 블랙박스 찾기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 법.

그렇게 독점으로 그 사건을 차지한다면, 그 이후에 이번 사고의 진실이 밝혀진다고 한들, 다른 부서나 타 지검에서는 손을 댈 수도 없게 된다.

그건 말 그대로 우리가 차지한 밥그릇을 뺏겠다는 거니까.

엄청난 실적이긴 해도, 나와 전쟁할 배짱이 있는 녀석은 대한민국 검찰에 존재하지 않을 테지.

혹시라도 블랙박스를 찾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서해 바다에서 추락한 것은 물론이고, 신동현 대표가 누구보다 빠르게 나서서 사람들의 구조 작업에 나선 덕분에 생존자들이 발견된 장소를 기반으로 기체 추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구조된 장소를 기반으로 추측하면 기체가 어디에 추락했는지는 반드시 찾을 수 있을 테지.

아주 완벽한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남은 건, 미르스 항공을 터는 것뿐.

나는 곧장 이두형 부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차장님.”

“이 부장, 이번 사고가 사건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면서?”

“네, 맞습니다.”

그는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날 바라봤다.

“어떤 일이든 지시만 해 주십시오. 당장이라도 움직일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미르스 항공에 대해 완전히 파 봐. 티끌만 한 먼지 한 점까지 전부 털어서 준비하자고.”

이두형 부장의 눈빛이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사납게 반짝였다.

“알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