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80화 (179/341)

블랙박스 (1)

최대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숙취 해소 음료까지 마신 탓일까, 멀미가 날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택시 기사는 내 상태가 안 좋아 보였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천천히 갈까요?”

“아니요, 빨리 가 주세요.”

미식거리는 속을 누르며 차분하게 머리를 정리했다.

뇌가 알코올에 절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냉정해야 하는 법.

방금 전에 발생한 사고는 미래 문자로 보았던 항공기 사고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신동현 대표가 대권 후보로 꼽힐 만큼 국민들의 지지 기반을 얻게 된 사건.

미래문자대로 흘러간다면, 200명에 가까운 탑승객 중 절반이 넘는 수가 사망 및 실종이 되는 엄청난 참사가 벌어질 테지.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미리 대비해 놓은 대로 신동현 대표와 함께 움직여 희생자를 최소화시키는 일.

새벽 2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동안 울려 대는 수신음.

1분쯤 지났을까, 전화가 끊기기 직전에 그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전해져 왔다.

-여보세요?

완전히 잠겨 있는 목소리.

역시나 자고 있었던 모양.

그러나 그걸 양해해 줄 시간은 없었다.

“최서준입니다. 긴급사태이니, 빨리 정신 차리십시오.”

-무, 무슨 일입니까?

아직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간 누누이 말해왔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옷부터 챙겨 입으십시오.”

2번 라인의 힐컨시언스 호텔에서 신동현 대표를 처음 만난 날, 미래 문자를 본 이후부터 그에게 지시해 두었다.

대형 참사가 벌어질 때를 대비해 구조 인력 및 기기를 마련해 두라고.

물론, 비행기 추락 사고라고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다.

미리 예견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간, 어떤 의심을 살지 모르니까.

그저 KTX와 같은 기차의 탈선 사고, 대형 선박의 해상 교통사고 등을 포함하여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상황을 대비해 두라고 일러두었던 터.

신동현 대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목소리가 또렷하게 돌아왔다.

-어떤 사고가 벌어진 겁니까?

“미르스 항공사의 여객기가 서해 바다에 추락했습니다.”

-이럴 수가…….

그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검사님의 선견지명이 역시…….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닙니다. 당장 움직이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휴대폰 너머로 신동현 대표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 비행기가 추락한지 알고 계십니까?

“저도 지금 막 사건에 대해 듣고 움직이고 있는 터라, 전혀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면 SV 정보팀 돌려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알게 되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예. 신 대표님도 확인되는 대로 연락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또 전화드리겠습니다.

그와의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다.

어둠을 뚫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컴퓨터를 켜서 정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추락 사고는 아직까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는지 인터넷에도 기사가 몇 개 떠 있지 않은 상태.

국회 측과 라인 측에 전화를 해서 몇 가지 정보를 추린 결과, 추락한 비행기는 미르스 항공사 소속으로 오후 11시 상해발 인천행 여객기로 확인되었다.

이번 사고가 미래 문자를 통해 보았던 참사라는 게 확정된 것이다.

다만, 여전히 사고 원인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

지잉지잉.

휴대폰을 들어 올리자,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보낸 이 : 성태현

-추락 추정 위치 확인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아니나, 마지막 신호 수신 지점을 토대로 추정한 것이기에 그 부근으로 찍어서 좌표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이스, 성태현!

해당 사진이 도착함과 동시에 그 좌표를 신동현 대표에게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예, 검사님.

휴대폰 너머로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도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

“여객기가 추락한 장소로 추정되는 좌표 보냈습니다. 확인하시고 장비 챙겨서 전곡항으로 가십시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전곡항.

그곳이 그나마 추정 좌표에서 제일 가까우면서도 큰 항구였다

-알겠습니다. 검사님도 오십니까?

“아니요, 저는 서울에 남아서 정보가 나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미지 메이킹은 제가 신경 쓸 테니, 대표님은 살아 있는 승객 구조에 온힘을 쏟으셔야 합니다. 진심을 다해 희생자를 줄여야 해요. 정치와 언론은 절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검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꽤 길어질 겁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그와 전화를 끊고 나자, 온몸에 진이 빠져 버렸다.

안 그래도 잠을 못 잤는데 술까지 마시고 급하게 움직인 탓에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오고 있는 모양.

가장 중요했던 일인 신동현을 사건 현장으로 보내는 걸 끝내니, 긴장이 풀려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잠에 들면 급박한 상황 변화는 알 수 없을 터.

그걸 알고 있음에도 새벽 4시가 넘어가며 머리가 더욱 지끈거려 오기 시작해 더 견디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머릿속이 무겁게 꽉 차 있는 듯한 느낌.

아무래도 카페인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찰나, 바깥 불이 켜졌다.

누가 온 건가?

문을 열고 나가자, 이제 막 들어온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차장님?”

“설하 씨, 지금 온 거예요?”

“아, 네.”

윤설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 사고가 하나 터졌다고 들어서 차장님 출근 전까지 정리해 두려고 왔는데, 먼저 와 계셨네요.”

“밖에서 성 시장이랑 한잔하다가 소식 듣고 바로 공장으로 들어왔어요.”

“밤새우신 거예요?”

“예.”

그녀는 걱정스레 내 얼굴을 살폈다.

“어쩐지 안색이 안 좋으신데…… 좀 쉬셔야 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얼굴이 창백해요. 이번 사고 파일은 제가 정리할 테니, 소파에서 눈 좀 붙이세요.”

윤설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술을 한두 잔 드신 게 아닌 것 같은데……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술도 깨고 정신이 맑아진 상태에서 확인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별한 상황 생기면 바로 깨워 드릴게요.”

그녀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지금 내 상태로는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할 테니까.

“그러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예.”

사고 추정 좌표만 그녀에게 보여 준 뒤, 윤설하의 말대로 사무실에 들어가, 소파에 누웠다.

역시 윤설하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일반적인 사고라면, 검찰에서 관여할 일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 쪽과 깊게 연관된 나였기에 일반 검사들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물론이고,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미리 와서 내게 보고하기 위해 조사를 해 두려고 했다는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새삼스럽지만, 윤설하보다 뛰어난 업무 파트너는 평생을 가도 찾지 못하리라는 직감이 들 정도.

나는 소파에 머리를 기대기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

알람 소리를 듣지도 않았지만, 눈이 번쩍 뜨였다.

내 몸에는 분홍색 담요가 덮여 있었고 머리맡에는 목 베개가 놓여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 윤설하가 챙겨 준 모양.

한쪽으로 정리해 두고 곧장 몸을 일으켰다.

현재 시각은 오전 7시.

3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미동도 없이 잔 덕분인지, 얼마 자지도 않았는데 숙취나 피곤함은 말끔히 사라진 상태.

정신을 차리고 바로 차장실 밖으로 나가자, 윤설하가 날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주무셨어요?”

“네. 이제 멀쩡합니다. 그 동안 특별한 사항 있었어요?”

“아니요. 현재 추적 중이라는 기사만 올라오고 있습니다. 잡다한 건 지금 바로 보고드릴게요.”

“예.”

차장실로 들어가 보고를 받으려는데, 문득 부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 부장도 왔어요?”

“예. 1시간 정도 전에 왔습니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던 여객기가 갑자기 추락했다면, 얼마든지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바뀔 수 있으니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두형 부장도 근성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최고라니까.

이러니 특수부가 잘나갈 수밖에 없지.

새삼스레 피어나는 자부심을 뒤로하고, 윤설하를 불렀다.

“사고 내용 관련해서 파악하신 내용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해 주세요. 공식적이건, 추측이건 전부요.”

“알겠습니다. 우선 공식적인 부분부터 보고하겠습니다.”

윤설하는 메모장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현재 여객기가 추락한 정확한 위치는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며, 원인 또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은 전원 실종 상태이며, 해경은 물론이고 어민까지 동원해 수색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SV그룹에서도 헬기까지 동원해 함께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기사로 나왔어요?”

“6시 뉴스에서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신동현 대표가 국민들을 위해 승객 구조에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는 걸 알리는 신호탄은 기분 좋게 쏘아 올렸다고 봐도 괜찮을 터.

“알겠습니다. 다른 점은요?”

“승객 중에 고위 공무원이나 유명 인사는 탑승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윤설하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듣던 도중, 문득 이두형 부장이 했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여객기 추락 사건이라면,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추락 원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신동현 대표가 대권 후보로 올라선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해 신동현 대표가 영웅이 된다는 것.

그런데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악당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아무런 시련도 없이 그저 국민들의 환심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인물이 있어야 신동현 대표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어 주목받을 수 있을 터.

악당이 존재한다는 건, 다시 말해 이번 건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 확률이 굉장히 크다는 뜻이다.

사건의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설하 씨.”

“예.”

“남민제 검사와 박기원 검사 전곡항으로 투입시키세요.”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 사고의 진상에 대해 캐 보라고 하십시오. 이번 일의 결과를 보고 둘 중 누구를 장하영 검사의 후임으로 확정할지 정한다고 슬쩍 흘려주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그래야 둘의 능률이 최대치로 끌어 오를 테니까.

윤설하도 바로 내 뜻을 알아채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

경쟁 구도로 만들어 둘을 자극시킨 게 효과가 있었던 탓일까.

그들을 투입한 지 만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남민제 검사가 당당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윤설하나 장하영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게 직접 전화를 건 걸 보면, 제대로 건수를 파악한 모양.

나는 기대감을 숨긴 채로 전화를 받았다.

“어, 남 검사.”

-안녕하십니까, 차장님. 남민제 검사입니다. 이번 미르스 항공의 여객기 추락 사건에서 중요한 정보를 파악했는데, 사안이 사안인지라 직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습니다.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보고해 봐.”

-이번 참사는 부품 문제라든지, 연료와 같은 일반적인 항공기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사건으로 취급되어야만 하는 건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왜지?”

나의 물음에 남민제 검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사고 당시, 조종실에는 기장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도 함께 있었다는 목격담을 확보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

내 입꼬리가 아주 거칠게 비틀어졌다.

“브리핑 계속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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