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73화 (172/341)

화술 (3)

<6월 7일 여론조사 결과>

-대한당 나경준 후보 : 37%

-민국당 성태현 후보 : 38%

-만세당 ……

근소하게나마 지지율이 역전되었다.

정소민의 스캔들에 의해 나경준의 이름이 계속해서 거론되며 안 좋은 이미지가 퍼지고 있는 덕분.

톱배우였던 만큼 그녀와의 불륜 스캔들로 인해 그녀의 팬들이 절대적인 원성을 보내는 것도 한몫했고.

또한, 처음 그녀가 언급되었던 방송이 바로 PD X-File.

그로 인해 그랑교도 꾸준히 언론에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 송재훈 PD가 아주 훌륭하게 편집을 해 놓은 덕분에 그랑교의 악행이 더욱 부각된 효과도 있었고, 이전에 최규현이 어정쩡하게 그랑교 사건을 마무리해 놓은 덕분에 경찰까지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최규현은 서울시장 선거가 아니라, 그랑교라는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도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 정도 지지율이면 충분히 오차 범위 내일 뿐더러, 확실한 승리가 점쳐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나경준의 지지 기반을 제대로 흔들어 놓기 위해 움직일 타이밍이라는 거지.

“이 부부장.”

“예, 부장님.”

이두형 부부장검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경준 장교 시절에 식물인간 되었다가 깨어난 정철웅 씨 사건.”

올해 초, 그와 접촉한 직후에 의학계에서 화제로 떠오르게 만들며,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식물인간에서 깨어났는지에 대한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아련한 이야기는 충분히 언론에 공개해 두었다.

지금 터뜨려 주면, 언론에서 바로 주워 먹고 빵빵 터뜨려줄만 하다는 거지.

“지금 바로 터뜨릴 수 있지?”

이두형 부부장검사는 믿어 달라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더 내려 주시면 30분 내에 터집니다.”

“지금이 1시 20분이니까…… 2시까지면 충분하지?”

“넉넉합니다.”

그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

-25년 만에 깨어난 정철웅. 사실은 나경준 시장의 장교 시절 진급의 희생양…….

“이게 뭐야?”

기사를 본 최규현은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사실이야?”

김 실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알아보니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

그는 신문을 팩 구겼다.

“승진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병사를 사고로 위장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최규현이었지만, 타인에 대한 기준은 더할 나위 없이 엄한 그가 보기에 나경준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자신은 청렴결백한 군인 출신으로 알고 나경준을 서울시장으로 밀고 있었으니까.

“이게 꼬리 자르기랑 뭐가 달라!”

최규현의 눈치를 보던 김 실장은 손을 비비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나경준은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노선을 변경하는 게…….”

“하아.”

최규현은 거친 한숨을 몰아쉬었다.

요 며칠 동안 그랑교를 안정시키느라 제대로 선거에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이런 참사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최서준을 잡아다가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현재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방어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심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 두는 건데!’

그러나 그는 몇 번의 심호흡을 통해 안정을 되찾았다.

아직까지 최규현은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신의 손한테 보고 들어왔어?”

“예. 거의 완성 단계랍니다.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답니다.”

“휴우.”

그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나 몰라서 들어 놨던 보험이 아주 잭팟이 터져 버린 상황.

최고의 시나리오는 아니어도, 차선책 정도는 된다.

중간에 고성탁을 거치긴 하더라도, 여전히 서울시장 자리는 최규현의 손에 있는 것이니까.

“신의 손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맞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김 실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그에게 맞장구를 쳤다.

“정말 의원님께서 탁월한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내가 누군데.”

금세 우쭐해진 그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여태껏 신의 손이 자기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서 뒤통수를 맞는 그 모습을 생각하니까 절로 웃음이 나오는구먼.”

최규현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선거 끝나고 성태현이 내게 붙는 그 소식을 들은 그 순간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그건 참 아쉽게 됐어.”

“맞습니다. 최서준 그놈, 비선 실세가 된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을 텐데 말이죠.”

“이번에 그랑교 정리만 되어 봐. 완전히 압박해서 서울중앙지검에서 버티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도 모르게 불안한 기운이 등골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의원님, 그런데 혹시라도 신의 손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거나…….”

“김 실장!”

최규현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자꾸 부정 타는 소리 할 거야?”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는 심정으로…….”

“됐어. 이럴 땐 그런 소리도 하지 마. 안 그래도 지금 최서준이 그놈 미쳐 날뛰는 게 감당이 안 되는데, 자네까지 그러면 나 두통으로 쓰러질 수가 있어.”

“조심하겠습니다.”

***

6월 11일.

선거를 나흘 앞두고 지지율의 격차는 결국 오차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

성태현은 40%를 넘어가기 시작했고, 나경준은 20%대 초반까지 떨어졌으니까.

만세당을 포함한 나머지 당에서 지지율을 나눠 먹긴 했지만, 높아 봤자 10% 언저리로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상태.

성태현에게 큰 이변이 없다면, 그의 당선은 확정되었다고 봐도 다름이 없을 터.

만약 그에게 흠이 있었다면, 제일 먼저 내가 알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이변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지.

정리하자면, 서울시장 당선은 확정되었다는 사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섭섭하지.

최규현이 그랑교를 갈무리 작업하면서 선거판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려는 걸 가만히 지켜봐 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나는 휴대폰을 들어 올려 전화를 걸었다.

-네, 검사님.

“임유나 기자님, 통화 괜찮으십니까?”

-말씀하십시오.

“저번에 말씀드렸던, 의혹 기사 바로 업로드 가능할까요?”

-예.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녀와 통화를 마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자로 하나의 기사 링크가 전송되어 왔다.

-서울시장 대한당 후보 나경준, 논란의 사이비종교인 그랑교 장로 출신?

-본 기자는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나경준 서울시장 후보가 그랑교의 장로 출신이라는 사실을 제공받았다. 현재 나경준 시장은 기독교인으로 위장하고 있으나, 과거 10년 가까이 그랑교에서 장로로서……. 한편, 경찰 수사가 급하게 마무리된 건 나경준이 서울시장으로서 압박을 넣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치 1번지 임유나 기자

“크흐흐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말 그대로 의혹 기사다.

전혀 증거가 없는 영양가 제로의 기사.

그러나 이건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나경준은 이미 몇 번이나 더러운 스캔들 기사가 터진 상황.

안 그래도 의혹과 불신 덩어리가 된 나경준은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기에 증거가 없어도 시민들은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경준에 대해 파면 팔수록 괴담만 나온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까.

이게 바로 진정한 화술(話術) 아니겠는가?

***

“버려.”

“예?”

“버리라고!”

최규현의 사무실에는 며칠 내내 호통 소리가 쉬지 않았다.

“버려. 이 정도면 못 살려. 작정하고 덤비는데 어떻게 버텨? 안 그래도 경찰 수사 적당히 마무리한 것 때문에 골치 아픈데……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전부 규성이 책임으로 돌려. 내가 연 끊으면 나한테 못 걸고넘어지잖아?”

김 실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버리라는 건, 그랑교와의 인연을 끊으라는 소리다.

그곳에 장로로 있는 친동생 최규성과의 고리까지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자신의 친동생을 꼬리 자르기로 버리라고 할 줄이야.

차마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김 실장은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마저 최규현의 동생처럼 버려질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최규현은 이를 악물고 치를 떨었다.

“우리는 성태현으로 최서준의 뒤통수를 칠 거야. 그래야 그 자식에게 완벽한 절망감을 안겨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이를 악물었다.

“성태현 당선시켜. 그쪽으로 표심 밀어 주고 성태현을 제대로 데려오는 거야. 신의 손한테 그렇게 전해.”

“알겠습니다.”

***

-민국당 성태현 후보 서울시장 당선 확정!

펑!

성태현의 선거 캠프에는 폭죽과 샴페인이 터졌다.

출구 조사에서 득표율이 50%를 넘는 기염을 토해 낸 것도 모자라 개표한 지 단 3시간 만에 당선이 확정된 것.

사실, 40% 후반으로 선거를 마무리할 줄 알았으나, 막판에 갑자기 최규현이 성태현을 밀어준 덕분에 확실하게 당선이 될 수 있었다.

성태현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입가에 함박미소를 띤 채 언론과 서울시장 당선 소감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화면으로 지켜보던 나와 고성탁은 아주 굳건하게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검사님이야 말로 고생 많으셨죠.”

성태현의 당선으로 인해 저울질하던 고성탁은 확실하게 내 줄을 잡는 것으로 노선을 확정지었고, 나는 그가 충분히 능력이 있고 믿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성태현 의원도…… 아니, 이제 성태현 시장이라고 해야겠네요. 성 시장도 얼른 왔으면 좋겠는데.”

“오늘 주인공이잖습니까? 봐줘야죠.”

우리는 창밖으로 수많은 빌딩 숲을 내려다보며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샴페인은 성 의원 오면 트죠.”

“성 시장이죠.”

“아, 자꾸 의원이 입에 붙어서…… 하하핫.”

약 1시간쯤 기다렸을까, 선거 캠프를 빠르게 정리하고 온 성태현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돌아온 아들 마냥 아주 의기양양하게 걸어 들어왔다.

“서울시장님 오셨습니까?”

“예, 검사님.”

그는 나와 고성탁을 번갈아보며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 덕분에 당선되었어요.”

“에이, 시장님께서 제일 고생하셨죠.”

“드디어 성공입니다. 아주 꿈만 같아요.”

“앞으로가 진정한 싸움이죠. 이제는 정말 피 터지는 전장에 발을 들이신 겁니다.”

“맞습니다. 최규현이 아마 죽자고 달려들 거예요. 친동생을 꼬리 자르기로 넘긴 악랄한 놈입니다. 정말 조심하셔야 돼요.”

고성탁의 맞장구에도 성태현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싸우는 거야 말로 제 체질이죠. 서울시장 토론회 안 보셨습니까?”

“하하하, 그때는 아주 완벽하셨죠.”

“그나저나 반가워서 깜빡하고 있었네. 샴페인 터뜨릴까요?”

“아, 그 전에!”

신의 손이 황급히 손을 들며 샴페인을 터뜨리려던 나를 막았다.

“최규현한테 인사라도 해 두죠. 저희 셋이 함께 있는 걸 최규현이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거든요.”

“그거 좋죠!”

“제가 샴페인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최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쯤 신호음이 들린 뒤, 그가 반쯤 신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최 검사. 안 그래도 내가 전화 걸려고 했는데 딱 자네가 전화를 했네?

아직까지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

“아, 의원님. 이거 영상 통화입니다. 얼굴 떼시고…….”

몇 초가 지난 뒤에야 화면에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뭐, 뭐야?

화면에 고성탁과 성태현 그리고 내가 한 번에 보이자, 최규현은 당황하다 못해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고 프로가 왜 거기 있어?

“그러게요. 왜 고 프로가 여기 있을까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고성탁이 대신해 주었다.

“왜긴 왜야, 최규현 뒤통수쳤으니까 여기 있지!”

그는 말하기 무섭게 샴페인을 터뜨려 상하좌우로 마구 흔들어댔다.

최규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그의 콧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그러나 성태현은 질 수 없다는 듯, 옆에서 내가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덕분에 편하게 서울시장 됐네요.”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조롱했다.

“차려 주신 밥상,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엄지를 치켜 올리며 몇 년 묵은 체증이 풀리도록 시원하게 용트림을 내뱉었다.

“꺼어억!”

최규현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떠는 게 화면 너머로 전해져 올 정도.

나는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의원님.”

아주 거칠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제 손아귀에서 아주 잘 놀아나 주셨습니다. 즐거웠어요.”

-이, 이, 이 개자식들이!

최규현은 혈압이 주체되지 않는 듯 뒷목을 잡았다.

“그럼 이만.”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의 웃음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얼마나 웃었을까.

배를 잡고 웃던 성태현은 아주 흡족하게 박수를 쳐 댔다.

“최규현이 저렇게 열 받아 하는 꼴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인 것 같네요.”

그사이 고성탁은 샴페인을 잔에 채워 와 우리에게 건넸다.

“자 자, 한 잔 마시고 하시죠.”

“그러면 건배사는 우리 시장님이 하실까요?”

“좋죠.”

성태현은 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우리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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