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술 (2)
봉만수 사장은 이를 꽉 물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실제로 RK엔터테인먼트의 장부를 까서 확인한 결과, 봉 사장 이 인간도 깔끔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더러운 편에 가까웠지.
그래서 나한테 흰색, 검은색 하는 게 웃긴 거고.
“선택은 봉 사장님이 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저랑 등지실래요? 아니면 손잡으실래요?”
그는 입술을 앙 물고 고민하다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만족스레 웃음을 지었다.
“좋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특별한 건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날짜에 미팅을 딱 세 번만 잡아 주시면 됩니다.”
“미팅요?”
“예. 매니저와 미팅이건, 광고사가 되었든, 방송사와의 만남이든 상관없습니다. 대신 장소는 정해져 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호텔입니다.”
그의 목젖이 울렁였다.
“호, 호텔 말입니까?”
“예. 호텔에서 은밀하게 미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던데요.”
“그렇긴 합니다만, 대체 어떤 일로 엮이는 건지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적어도 회사 차원에서 대처는 해야 해서…….”
“뒷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미팅 약속만 잡아 주시면 됩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그러면 혹시 스캔들이…….”
“봉 사장님.”
나는 입가에 띄웠던 미소를 싹 지워 내고 말했다.
“우리 수평한 관계가 아니에요. 선 넘으시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대처를 하라고 사건을 터뜨리는 게 아니에요. 말씀드렸잖아요. 정소민을 ‘버리라고’요.”
그는 결국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검사님.”
“좋습니다. 잘 부탁드리죠.”
“정소민은 연예계와 완전히 멀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까?”
“봉 사장님께서 속세와 멀어지시고 싶지는 않으시죠?”
봉만수 사장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아닙니다. 시키시는 대로 하죠.”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농담입니다. 저는 지민 씨를 내쫓으려는 게 아닙니다. 잠깐 휴식 기간을 드리는 거죠. 요새 작품 활동 연이어 하시느라 고생하셨을 테니까. 제가 암만 더러워도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뜨릴 만큼 악마는 아니거든요.”
“…….”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톡톡 털어 주고는 뒤에 있던 벤처기업의 사장을 향해 다가갔다.
“어, 김 대표 왔어?”
***
2022년 5월.
당내 경선의 결과가 나왔다.
대한당은 나경준, 민국당은 성태현.
말할 것도 없는 결과였다.
대선이나 다른 지방 선거와 달리, 서울시장 선거에서만큼은 만세당이 전혀 힘도 쓰지 못하는 판이었기에 2강 구도가 펼쳐진 상황.
첫 여론조사에서는 나경준 45% 성태현 32%의 지지율이 나왔다.
뒤집기를 하기에도 충분하고, 무엇보다 선거까지 한 달이나 남아 있어 실질적인 당선을 가늠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은 수치.
그 와중에도 신의 손은 여전히 최규현과 나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최규현을 속이고 있었다.
다만, 최규현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나경준이 당선되고 성태현과 나를 동시에 몰아내는 것이기에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힘쓰고 있는 상태.
만약 성태현이 당선된다면, 신의 손이라는 중간 인물을 거쳐야 하는 만큼 불안 요소가 하나 늘어나는 것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신의 손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생기지 않도록 성태현이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연기를 보여 주고 있는 상태라, 최규현은 내가 성태현과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꿈에도 모르는 상태.
그렇게 시간이 흘러, 6월에 들어섰다.
올해의 지방선거일은 6월 15일.
2주 전인 6월 1일부터 정식 선거기간이 되기에, 성태현과 나경준은 각각 공식 선거 캠프를 차리고 선거 운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간 묵히고 묵혀 두었던 그랑교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송재훈은 그간 알면서도 아껴 두었던 그랑교의 온갖 비리와 범죄 혐의까지 완벽하게 추가 편집하여 PD X-File을 통해 방송으로 송출했다.
이번에도 최규현이 견제를 하려 했으나, 한 번 당했는데 또 당할 리가 있겠는가?
온갖 범죄와 연루되어 있는 사이비종교라고 한 번 방송을 때린 것도 모자라, 종교와 연관되어 있는 톱 여배우의 존재 사실까지 흘리자, 2022년 최고 시청률인 18.72%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최규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지.
자, 고생 좀 해 보라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
“최서준 이 새끼 어디 있어!”
최규현 의원은 들고 있던 휴대폰까지 집어 던지며 열불을 토해 냈다.
“당장 튀어오라고 해!”
“아, 그게 연락이 안 되어서…….”
“내 전화도 안 받는데 네 전화를 받겠어?”
그는 애꿎은 김 실장을 향해서 언성을 높였다.
“연락이 안 되면 잡아서라도 오라고!”
“예?”
“이 새끼가 아까부터 자꾸 말대답을 하고 있어!”
그는 책상에 있던 명패를 김 실장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졌다.
깜짝 놀란 김 실장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겨우 명패를 피해 냈다.
그럼에도 최규현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를 갈았다.
“최서준 이 자식이 완전히 죽으려고 발악을 하는 거지!”
그는 화를 삭이기 위해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려다가 안 되겠는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당장 신의 손 불러.”
“예?”
“이 새끼가 귓구멍에 대못을 처박았나!”
“부, 불러오겠습니다!”
김 실장이 다급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 순간.
“의원님!”
신의 손, 고성탁이 최규현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물론, 사전에 최서준에게 지령을 받은 상태.
여전히 그의 입장에서는 저울질을 하고 있다지만, 판세가 기울었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고 프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최규현 의원은 희망을 걸고 벌떡 일어섰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바로 최서준과 성태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고성탁은 바로 대화를 주도했다.
“제가 RK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RK엔터?”
그의 눈살이 절로 찌푸렸다.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한낱 딴따라 자식들을 만나고 와?”
“아닙니다, 의원님. 그랑교와 연루된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인물이 바로 RK엔터 소속인 정소민입니다.”
“뭐?”
“게다가 RK엔터 대표인 봉만수 사장이 말하기로는, 최서준이 따로 접근해서 정소민을 버리라고 지시했답니다. 회사 횡령 건으로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정소민을 그랑교와 엮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젠장!”
최규현은 책상에 있던 서류를 집어 죄다 구기고는 옆으로 던져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최서준이가 갑자기 성태현이랑 손을 잡은 거야?”
“아닙니다. 이건 손잡은 게 아니라, 일방적인 배신입니다.”
“일방적이라고?”
“예. 최서준이 2번 라인과 공작해서 넘어간 건 맞습니다만, 성태현과 화해한 건 아닙니다. 방금 전에 성태현과 통화해서 확인하고 왔으니 확실합니다.”
“그러면 최서준이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해? 아니, 2번 라인으로 갈 필요가 없잖아?”
“제 생각에는 아예 서울시장직을 집어삼킬 생각인 것 같습니다.”
최규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말은 비선실세가 되겠다는 소리야?”
“맞습니다. 저를 통해서 성태현을 조종하면서 서울시장 직위까지 손에 쥐고 주무르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서준이 평소 대화에서 그런 뉘앙스를 풍겼고요.”
“그런 건 진즉에 보고했어야지!”
“아, 저는 아무리 그래도 선거가 끝난 뒤에야 움직일 줄 알고…… 제 판단 착오였습니다. 죄송합니다.”
“후우.”
최규현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최서준 이 자식…… 야심이 넘치다 못해 도를 넘었어.”
그 순간, 최규현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RK엔터에서 어차피 정소민 버리는 카드가 된 거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PD X-File의 내용으로는 호텔에서 그랑교 간부를 만나 선교당한 것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정소민 열애설 터뜨려.”
“예?”
“열애설 터뜨리라고. 스캔들 말이야. 호텔이니까 대중들 자극하기엔 아주 좋을 거 아니야?”
“그러면 정소민 이미지가 완전히…….”
“자네는 그깟 딴따라 이미지 생각해 줄 여유가 있어? 이럴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전화해야겠어.”
그는 호통을 치며 RK엔터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봉 사장. 정소민이 열애설 터뜨려. 호텔에서 그랑교를 만난 게 아니라, 남자 신인 배우 하나랑 잔 걸로.”
안 그래도 사이비종교 연루설에 당황스러운데 최규현으로부터 당황스런 소리를 들으니 봉만수 사장은 얼이 빠져 버렸다.
-예?
“자네 회사에 노이즈 마케팅 할 신인 연예인 하나 있을 거 아니야? 걔랑 엮으라고!”
-아니, 의원님. 이미지가 생명인 배우한테 섹스 스캔들이라니요!
“그러면 자네 횡령 내가 터뜨려 줘?”
최규현 의원은 협박하듯 말을 보탰다.
“나라고 못 할 것 같아?”
그는 살벌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내가 최서준보다 안 무서워 보이나 보네.”
최규현의 협박에 봉만수 사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1시간 내로 안 터뜨리면 내가 죽기 전에 자네가 먼저 죽어.”
봉만수 사장은 중간에 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주 자극적으로. 시민들이 이 기사를 보자마자 그랑교는 잊고 정소민에 대해 충격에 빠질 만한 내용으로 쓰란 말이야. 어차피 버린다며? 내가 기사 확인할 거야. 알았어?”
-……알겠습니다.
***
-단독! 정소민, 신인 남배우 하선종과 열애?
-그랑교와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었던 배우 정소민이 호텔에 갔던 진짜 이유는 신인 배우 하선종과의 열애 때문인 것이 확인되었다. 당일 호텔에는 하선종이 미리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던 사실이 CCTV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당시 호텔 직원을 인터뷰 한 결과, 그들이 머물고 간 룸에서는 온갖 가학과 피학의 흔적이 남아 있어 놀라움을 자아내…….
“쯧쯧쯧.”
혀가 절로 차졌다.
겨우 생각해 낸 게 호텔에서 만나는 스캔들이라니.
그것도 이런 식으로 아주 저급하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청순가련의 상징인 정소민에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어떻게든 그랑교에게서 시선을 돌려 보려고 자극적으로 쓸 줄은 알았다만, 정소민이 10여 년이 넘도록 쌓아 온 이미지를 한순간에 박살 내는 방향으로 나갈 줄은 몰랐다.
아무리 실제 성격과 방송 성격이 다르다고는 하나, 별수 있겠는가?
여태껏 정소민은 청순가련한 배역만 맡아서 해 왔으니 연예계 복귀는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책상에 펼쳐진 노트에 적힌 세 가지의 시나리오 중 마지막 장을 펼쳤다.
고성탁이 말했던 대로 화술(化術)을 모두 준비해 두었던 상태.
웬만해서는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 정도로 정소민의 이미지가 망가진 이상, 나도 더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정소민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어쩔 수 없다.
괜히 질투심에 내 와이프의 배역을 뺏은 게 잘못이지.
나는 곧장 박수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검사님.
“제가 드렸던 USB에 있던 세 번째 파일 기억하세요?”
-아, 나경준 시장이 호텔에 들어가는 거요?
“예. 그걸로 준비해서 기사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사는 작성되어 있으니 5분 안에 올라갈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내가 준비한 세 번째 파일은 바로 유부남과의 불륜.
그 유부남이 나경준 시장이라는 게 핵심이다.
물론, 최규현이 성적 취향까지 기사로 내는 최악의 수를 범한지라, 배우 하선종과의 스캔들에 밀리기는 하겠지만, 그들의 스캔들로 인해 나경준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뻔해진 상황.
그의 이미지가 구겨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만족하긴 일렀다.
터뜨리지 못한 핵심 사건들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