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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170화 (169/341)

마리오네트 (8)

고성탁은 처음의 불안정했던 표정과 달리, 흡족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그가 뻗은 손을 굳세게 잡고 가볍게 흔드는 순간, 그의 오른팔 소매에서 무언가 빛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쇠붙이 같은 느낌인데.

윤설하가 말했던 흉기가 바로 이건가?

나는 악수를 마치며 능청스레 말했다.

“그나저나 요즘 영화에서 보면 국정원 특수 요원들은 손목에 비밀 무기 같은 걸 차고 다닌다던데…….”

고성탁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 전혀요. 말 그대로 영화 이야기입니다.”

그는 직접 소매를 걷어 자신의 양팔을 보여 주었다.

“제 팔에는 시계가 전부네요.”

반짝거렸던 그의 오른팔 소매에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크리스털이 박혀 있어 일반적인 메탈 시계보다 반짝이는 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것일 뿐, 말 그대로 평범한 시계.

나는 별일이 아닌 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오른팔에 시계를 차시네요?”

“예. 제가 왼손잡이라서요.”

“그러시군요.”

아무래도 윤설하가 민감해서 오해한 모양.

그녀가 본 쇠붙이도 이 시계를 착각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물었다.

“국정원 요원들은 총 같은 건 안 가지고 다닙니까?”

“국정원도 국정원 나름이죠.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소속이라서 노트북만 들고 다닙니다.”

그는 코를 찡긋하며 다시 소매를 내렸다.

“그건 그렇고…….”

고성탁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성태현 의원을 서울시장에 당선시킬 수 있는 카드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직은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그는 이제 손을 잡은 사람일 뿐, 내 비장의 무기까지 공개하기엔 사이가 깊지 않다.

어디까지나 강력한 한 방을 들고 있어야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군요.”

“성태현 의원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니, 서운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성탁은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만, 걱정스러워서 그렇죠. 혹시나 저쪽에도 승산이 있다면…….”

“저는 도박꾼이 아닙니다.”

나는 입꼬리를 씨익 비틀며 말을 덧붙였다.

“확신 없는 싸움에 승부를 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죠.”

그제야 그는 불안감을 떨쳐 내고 기대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마음 놓고 있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그렇다고 한들, 고성탁이 나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사실, 그게 정상이다. 아니, 더 바람직하지.

그래야 녀석은 중간에서 저울질을 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분주하게 움직일 테니까.

“그러면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성탁 씨도 좋은 밤 되십시오.”

“아, 참.”

그는 문고리를 잡은 채 내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고 프로라고 불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검사님.”

고성탁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가 떠나간 뒤, 차를 출발시키며 곧장 성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감시하는 최규현의 꼬리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차에 연결한 채로.

-네, 검사님.

“지금 신의 손을 만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어제 만나시기로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루 늦으셨네요.

“예. 이것저것 파악하다 보니 딜레이 되었네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신의 손과 함께 손을 잡기로 했습니다.”

-그 말씀은 끝까지 같이 간다는 건가요?

“우선은 이번 선거까지입니다. 그 이후에는 최규현의 행보를 통해 신의 손이 믿을 만한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 그때 결정하려고 합니다.”

이 생각은 확고했다.

미래 문자를 통해 향후에 그와 손을 잡은 걸 봤다고 한들, 그게 맹목적으로 고성탁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미래 문자는 내게 도움을 주는 수단일 뿐, 그게 행동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모든 판단의 근거는 내 머릿속에 들어 있고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법.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100% 신뢰를 하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의심만이 내 안전을 보장해 주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움직이면 될까요?

“당분간은 함께 움직이는 거니, 선거 전략을 공유하되, 100% 신뢰하지는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게 옳죠.

“최규현 측에서는 성 의원님을 마리오네트로 만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에 맞춰서 가끔씩 연극 정도 해 주시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예. 그 정도 연기는 어렵지 않죠. 그러면 추가적으로 변동 사항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검사님.

이번 선거가 끝날 때가 되면, 미래 문자대로 그와 함께 손을 잡을지, 아니면 그를 쫓아낼지에 대한 윤곽이 그려질 터.

아마도 그는 옳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선거는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흘러갈 테니까.

***

“성태현에게 공사를 쳐 달라고 하더군요.”

신의 손, 고성탁은 최서준이 말해 준 전략을 그대로 최규현에게 펼쳤다.

“본인이 성태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니, 자신이 부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으로요. 아마 혹시라도 나경준 시장이 재선에 실패하는 걸 대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서준이 예상했던 대로 고성탁은 중간에서 저울질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

그게 고성탁이 실리를 취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저울질을 선택한 이상, 최서준의 전략대로 일단 따라가는 척 하는 게, 지금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

그렇기에 최서준의 전략을 최규현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그걸 공개하는 순간, 자신은 양손에 쥐고 있는 줄 중 하나를 놓쳐 버리는 거니까.

이번 일에서만큼은 고성탁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최서준의 마리오네트가 되어 있다는 걸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걸, 최규현이 알 리는 더더욱 없는 상황.

그는 고성탁의 일방적인 보고에 음흉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역시 최서준이 그놈은 능구렁이라니까.”

최규현은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 영악한 녀석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성하며 올인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까.

숨구멍 하나쯤은 파 놓을 거라고 생각했고, 운 좋게 그걸 찾아냈다.

어젯밤에 최서준에게 붙여 놓은 꼬리로부터 신의 손, 고성탁과 접촉했다는 걸 들었을 때만 해도 혹시나 신의 손이 이중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지만, 모든 걸 자신에게 직접 말했기에 그런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김 실장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면 최서준이 배신 때린 거라고 보면 됩니까?”

“그건 아니지.”

최규현은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보험 들어 놓은 거야. 우리처럼 말이지.”

그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다만, 우리보다 한 발 늦었을 뿐이고.”

김 실장은 걱정스레 손을 모았다.

“혹시 성태현에게 붙을 가능성은…….”

“그건 절대 없어.”

최규현은 확신에 찬 말투로 입을 열었다.

“우리 고 프로와 접촉했다는 건, 성태현을 집어삼켰으면 삼켰지, 수평 한 관계를 노린 건 아닐 테니까.”

그는 고성탁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의원님.”

고성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제가 본 최서준은 아예 성태현을 뒤에서 조종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 의원님과 마찬가지로요.”

“그놈이 생각하는 게 매섭다니까. 나랑 똑같잖아. 딱 한 발 느릴 뿐이지.”

겉으로 티내진 않았지만, 사실 놀란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라인에 들어온 지 아직 5년이 채 되지 않는 인물이다.

암만 신의 손이 먼저 접근했다고는 하나, 그의 정체를 파악하고 설득해서 역으로 성태현을 꼭두각시로 만들 생각을 할 줄이야.

자신이 먼저 움직인 게 아니었다면,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소름 끼칠 정도로 최규현 본인과 생각하는 게 똑같은 인물.

그렇기에 더욱 최서준이 위험하다는 걸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간 적지 않은 인물이 한낱 부장검사에게 쓸려 나가는 게 한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방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을 정도.

‘아무래도 최서준은 더 내버려 둬서는 안 돼.’

여차하다가는 라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까지 집어삼켜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고 프로는 어떻게 답했어?”

“일단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제가 성태현 의원과 접촉하는 걸 보고 안심해서 더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요.”

“아주 잘했어.”

최규현의 입가엔 흡족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래서 성태현 공사는 잘되고 있고?”

“예. 아주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제야 김 실장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만일 나경준이 낙선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나 시장이 당선되면 성태현과 최서준을 원 플러스 원으로 몰아내서 좋고, 낙선되어도 성태현은 우리 손에 있는 데다가 최서준만 몰아낼 수 있으니 좋고. 어떻게 되든 상황은 나쁘지 않아.”

최규현은 눈을 반짝이며 거칠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게다가 최서준이 고 프로랑 접촉한 게 우리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된 거지. 선거 끝나고 최서준을 몰아낼 아주 좋은 명분이 생겼으니까 말이야.”

그는 고성탁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했다.

“아주 잘했어, 고 프로.”

“감사합니다, 의원님.”

최규현의 은밀한 사무실에서 펼쳐지는 동상이몽은 그칠 줄을 몰랐다.

***

2022년 4월.

지방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슬슬 당내 선거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한, 최규현이 알고 있는 덕분에 오히려 신의 손, 고성탁을 더 당당하게 만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그가 성태현과의 연락을 이어 주고 있을 정도.

경동수와 조현웅 의원이 자리를 잡아 준 덕분에 성태현은 2번 라인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나 또한 검찰 내에서 자리를 확고하게 할 수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인 한동민도 나와 함께하고 있는 덕분에 내년에 있을 차장검사 승진을 위한 점수는 휩쓸고 있는 터라, 승진은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

물론, 지방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최규현이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고난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꾸역꾸역 버티면 올라가는 데 문제는 없을 터.

다만,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있을 언론 플레이다.

나경준을 확실히 쓰러뜨릴 수 있는 카드는 바로 그의 군 간부 시절,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깨어난 정철웅을 대신해 사회적으로 그를 고발하며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것.

그 직후, 그랑교로 최후의 일격을 먹이는 게 나의 시나리오였으나, PD X-File에서 처음 그랑교를 보도했던 때를 생각하면, 최규현은 언론 플레이에 있어서만큼은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인물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터뜨린 보도들을 꾸역꾸역 덮어서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아웅 한다면, 성태현의 당선이 불투명해지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일.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해 둬야만 했다.

단순히 자극적인 보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그런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게 중요했으니까.

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내 주변에 있었다.

다름 아닌 신의 손, 고성탁.

그의 메인은 사람을 홀려서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지만, 그것에 묻힌 고성탁의 특기 중 하나는 바로 범죄로 엮어 사람을 골로 보내는 것.

그가 지금까지 누명을 씌운 인물만 해도 지방 군수부터 시장에 이어 국회의원까지 아주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들을 잡아먹었다는 건, 언론 플레이에 아주 능하다는 증거.

제일 편한 건 그에게 내 카드를 오픈하고 언론플레이를 부탁하는 일이지만, 그건 선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신의 손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가는, 그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빼앗겨 버리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성태현을 서울시장으로 끌어올리는 건 신의 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히 내가 직접 해결해야 했다.

그 다음에 그에게 손을 내밀어야, 주도권을 완전히 쥐고 우위에 설 수 있을 테지.

이번 선거에서 고성탁의 역할은 최규현의 견제를 막고 시선을 돌리는 일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그러나 내 계획이 실천되기 위해서는 그의 언론플레이 방법을 알아내는 게 절실했다.

그와 한 배를 탔다고 한들, 아직까지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극치에 닿지는 못한 상황.

그렇기에 내가 궁금해 하는 부분이 있으면 100%를 전부 이야기해 주지는 않을 터.

고성탁과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그 방법을 유도해 내야만 했다.

“아, 검사님, 여기입니다!”

먼저 도착해 있던 그가 반갑게 손을 들어 날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오늘 대화에서의 성패가 앞으로 그와 나의 관계에서 누가 주도권을 가지게 될지를 정하게 될 터.

우리가 타고 있는 최서준 함선의 키는 반드시 내가 잡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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