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69화 (168/341)

마리오네트 (7)

신의 손, 고성탁은 짙은 한숨을 내뱉고는 예의를 차려 존댓말을 사용했다.

“일단 자리는 옮기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아니요. 커피도 시켰는데 남기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내가 능청스레 말하자, 그는 이를 지르문 채로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상태.

고성탁은 아메리카노를 거침없이 단번에 들이켰다.

그가 오기 몇 분 전에 나왔기에 마시면서 목이 데일 정도는 아닐 테지만, 뜨거울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그는 탁 소리를 내며 커피를 완전히 비운 뒤에야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았다.

“자리 옮기시죠.”

그래,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나는 내 앞에 있던 커피를 한 모금 천천히 들이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차로 가시죠.”

고성탁은 군말 없이 내 뒤를 따랐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는 조수석에 탑승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주변 사람의 마음을 잘 사로잡고 계신 모양입니다. 그 정도 액수를 불렀는데 넘어갈 줄이야.”

커다란 액수를 제시한 것도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숨김이 없었다.

본인도 상황 파악을 하고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거겠지.

그러나 이런 기 싸움에서 밀릴 생각은 없었다.

“아까부터 이야기하는데 대화를 하려면 눈을 마주 봐야죠. 모자 안 벗으실 겁니까?”

고성탁은 안면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도 잠시, 순순히 모자를 벗어 무릎에 내려놓았다.

제일 먼저 시선을 잡은 건 그의 왼쪽 눈가에 있는 선명한 흉터 자국.

화상 자국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어둠의 세계에 몇 년 동안 있었다고 하니, 그때 생긴 상처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이래야 제대로 대화가 되죠.”

입꼬리를 비튼 채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 어떻게 상대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최서준을 그런 하바리들과 동급으로 취급하시면 곤란합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제 주변 사람들이 돈에 넘어갈 것 같았으면,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고성탁은 전혀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똑바로 내 눈을 마주 봤다.

“과연 윤설하 말고 다른 이들도 그럴까요?”

나는 냉소적으로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

“저를 적으로 돌릴 자신이 있습니까?”

“예.”

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제가 과연 혼자 움직였겠습니까?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되면, 최서준 씨도…….”

“최규현.”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치고 들어갔다.

“최규현이 시킨 걸 모른 것 같았습니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지만, 지금까지 표정을 드러냈던 모습과 달리,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적어도 의뢰인처럼 공개되어서 안 되는 인물에 대해서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모습.

그러나 나는 더 몰아쳤다.

“성태현 의원에게 접근한 것까지 파악했다고 말씀드려야 실토하시겠습니까?”

그 이름까지 언급하고 나서야 고성탁은 발뺌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인정했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눈치라니요. 전부 알고 있었던 거죠.”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윤설하 수사관이 말하지 않았으면 제가 모를 것 같았습니까?”

이번엔 참지 못하고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NIS 국정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소속. 사는 곳은 성북동 도미안 아파트. 두 아이는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간 상태고, 아내가 그들을 돌보기 위해 함께 가 있는 상태. 즉, 당신은 기러기 아빠죠.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두 가지. 이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죠.”

나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부족한 것 같으면, 스폰서 관계까지 더 읊어 드려야 순순히 백기를 드시려나?”

그제야 고성탁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는 힘 빠진 미소를 지었다.

“스폰서가 아니라, 내연 관계입니다.”

“어떻든 간에 미국에 있는 가족들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 날 거라는 건 변함이 없죠.”

가족보다 확실한 약점은 없다.

결국 그는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허심탄회하게 숨을 내뱉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고성탁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검사님 정도 되시는 분이 돈을 필요로 하진 않으실 테고…… 마냥 이런 식으로 저와 부딪치는 걸 원하시진 않을 텐데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누구처럼 돈으로 설득하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죠.”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손을 뻗는 일.

그것이야 말로 배신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확실한 수단이지.

내가 그에게 적대감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 고성탁의 얼굴에 안도감이 드러났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최규현의 몰락.”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고성탁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성태현 씨와 결별한 게 아니었네요.”

“당연하죠. 제가 쉽게 뒤통수 맞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와 손을 잡는다고 한들, 100% 승산이 있게 되는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최규현이 버티고 있는 한 나경준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시키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 부분은 전혀 문제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서울시장은 성태현이 당선될 겁니다.”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까?”

“저는 승산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면 저와 함께하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큰 그림을 그리는 거죠.”

두 손을 앞으로 뻗어 펼쳤다.

“저희가 단순히 서울시장 자리 하나 먹으려고 최규현을 등지면서 이 싸움판에 뛰어들었겠습니까?”

순간, 고성탁의 눈이 반짝였다.

“대권이군요.”

“빙고.”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성탁을 바라봤다.

“저는 고성탁 씨와 적이 아니라, 한 팀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걸 오픈하고 가는 거죠.”

“들고 있는 카드를 오픈할 정도면, 저를 꽤 좋게 봐주셨나 보군요.”

전부 오픈할 생각은 없지만, 일단 맞장구를 쳐 주었다.

“마음에 들면 직진을 하는 게 제 방식이거든요.”

그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대권이라…….”

고성탁은 천천히 고민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성태현이 대권을 가지면 최서준 씨는 검찰총장이 되시겠군요.”

나는 코를 찡긋했다.

“그 이상일지도 모르죠.”

고성탁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저는 큰 욕심이 없습니다.”

고개를 갸울이며 말했다.

“지금 국정원에 있으니, 그 꼭대기 정도랄까요?”

어두운 곳에 몸을 담았던 인간이 국정원장이라니.

욕심이 없긴 무슨.

아주 탐욕스러울 정도구먼.

“그건 앞으로 고성탁 씨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그의 콧바람이 거세게 내쉬어졌다.

“좋습니다.”

고성탁은 입꼬리를 비틀며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은 그저 최규현의 옆에서 알랑방귀를 뀌시면 됩니다. 그쪽과 손을 잡은 척하는 거죠.”

이 제안은 고성탁에게 전혀 나쁠 게 없었다.

최규현과 내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다가 만약 판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나머지 하나를 배신하면 되는 일이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울질하는 것 자체가 내게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

저울질한다는 건, 내 패를 최규현에게 보이지 않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니까.

물론, 상황이 정리되면 신의 손이 내게 붙을 수밖에 없을 테지.

내가 돕는 이상, 성태현의 서울시장 당선은 확실하니까.

“그러면 최규현 의원에게는 저희의 만남에 대해 보고하면 안 되겠군요.”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이미요?”

“예. 고개 돌리지 말고 들으십시오.”

나는 여전히 고성탁을 바라본 채로 말을 이었다.

“제 뒤편으로 자동차 네 대 정도를 건너뛰면 검은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최규현이 붙여 놓은 사람들이죠.”

“아, 그렇군요.”

“최규현 의원에게는 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성태현을 조사하다가 저에 대해 캐게 되었다고요. 그러나 그 뒤부터는 제가 일러드린 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는 흘긋 눈을 돌려 최규현이 보낸 사람의 차를 확인하고는 내 눈을 주시했다.

“최서준은 성태현을 부리려고 한다. 그래서…….”

고성탁에게 내 계획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한마디로 말해 고성탁을 이중간첩으로 만드는 일.

최규현에게는 나와의 만남을 통해 ‘최서준이 성태현에게 공사를 치라는 부탁을 했다.’고 보고할 것이다.

당연히 최규현은 나를 괘씸하게 생각하되, 겉으로는 모른 척할 테고, 나를 속인다는 명분 때문에라도 고성탁을 성태현의 곁에 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공사를 치는 게 아니라, 최규현의 계획이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눈속임.

그로 인해 최규현에게는 안도감을 심어 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모든 계획을 알고 있는 성태현은 넘어갈 리가 없을 터.

다만, 성태현과 짜고 공사치는 게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연기할 테니, 내가 나경준을 몰아내면 최규현은 차선책으로 성태현을 당선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꼭두각시처럼 서울시장을 조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실질적으로 성태현은 나를 포함해 고성탁과 셋이 손을 잡고 있는 상황.

저도 모르게 나를 돕는 셈이 되는 거지.

결국 선거가 끝나고 나면 최규현만 새가 되는 것이다.

세세하게 짠 플랜을 들은 그는 감탄을 쏟아 냈다.

“최규현이 넘어갈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죠. 이런 식으로 가면, 최규현이 생각하기론 제가 고성탁 씨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전혀 추측하지 못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맞습니다. 본인이 계속 한 발 앞서서 움직인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한마디로 말해, 나와 접촉한 걸 일부러 흘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이 최서준의 계략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오만함에 빠뜨리는 것. 그로 인해 녀석은 방심이라는 틀에 갇혀 시야를 넓힐 생각도 하지 않을 테지.

고성탁은 순수하게 감탄이 섞인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겁니까?”

“글쎄요.”

미래 문자 덕분이지.

“감이랄까요?”

고성탁은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제가 검사님의 뒤통수를 치고 최규현에게 이 계획을 말할 거라는 의심…… 아니, 걱정은 없으셨습니까?”

“물론이죠.”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런 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제 손을 잡겠다는 거거든요.”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고성탁이 최규현에게 일방적인 명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와의 대화에서 우위를 점해 놓고, 손을 뻗어 동등한 위치에 서자는 제안을 한 상황.

게다가 승리할 계획까지 완벽하다.

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

만약 이런 상황에서 내 뒤통수를 친다?

그건 말 그대로 사리분별 못하는 무지몽매한 녀석이 되는 것이다.

그런 부족한 놈과 내가 미래에서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 리가 없지.

그 정도 계산은 미래 문자를 통해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끝내두었다.

“결국 마리오네트는 최규현이 되겠군요.”

고성탁은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인간은 검사님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출 테니까요.”

“맞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저희가 밝히기 전까지 본인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모를 겁니다.”

나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비틀어졌다.

“꼭두각시 인형은 스스로 고개를 들 수가 없으니까요.”

그는 결코 자신의 머리 위에 뻗친 나의 마수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