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 (6)
대체 왜?
밤새 머릿속엔 의문이 차올랐다.
무엇 때문에 윤설하가 신의 손, 고성탁을 만났을까.
어젯밤, 신의 손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그를 직접 찾아갔다.
정확히는 그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만나려고 했던 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는 퇴근 후 칼같이 집으로 향하는 것으로 홍석장 검사가 보고했으니까.
그러나 고성탁은 퇴근 후, 집이 아닌, 윤설하의 집으로 향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윤설하에게 신의 손에 관해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홍석장 검사 또한 마찬가지.
그의 수사관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긴 기간 동안 직접 발로 뛰며 고생했다는 걸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고성탁이 윤설하를 직접 찾아가다니.
그것도 일반 카페나 외부가 아니라, 그녀의 집에서.
아파트의 구조상 둘이 직접 만나는 것까지 볼 순 없었지만, 한 층에 두 세대만 사는 걸 생각하면, 고성탁이 윤설하를 찾아간 것만은 확실한 상황.
짧은 시간도 아니고 무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이나 말이다.
윤설하가 이미 신의 손에 대해 알고 있던 걸까.
혹시 이미 접촉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랬다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다.
성태현과 접촉했다는 건 윤설하도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제일 믿을 만한 인물로 심복이라 여기는 인물이 내가 모르는 공작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제일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설하가 들어왔다.
“부장님, 바쁘십니까?”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요, 무슨 일이죠?”
“긴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윤설하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평소의 기운 넘치고 당찬 느낌과 달리, 심각한 듯한 느낌.
혹시 신의 손 때문인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내가 먼저 떠보는 건 좋지 않다.
확실하게 알아낸 뒤, 사실을 실토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을 터.
“앉아서 이야기하죠.”
“예.”
나는 조아라 실무관에게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도록 지시하고서 윤설하를 소파로 안내했다.
“표정이 심각한데, 안 좋은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윤설하는 진지하게 대답한 뒤, 조심스레 날 바라보았다.
“부장님께서 혹시 의심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출근하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잠깐만.
혹시 어제 내가 신의 손을 미행한 걸 눈치챘나?
그래서 신의 손이 윤설하를 찾아간 거고?
우선은 최대한 태연한 척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고성탁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고성탁요?”
“예. 본인 말로는 국정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여기까진 OK.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는 부장님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 정보를요?”
“네. 그런데 소매 안에 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흉기로 보이는 쇠붙이를 가지고 있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죄송스런 표정으로 내게 머리를 숙였다.
“그래서 일단 정보를 넘기기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얼마나 넘긴 겁니까?”
“아직 넘기진 않았습니다.”
윤설하는 눈을 부릅뜨며 날 바라보았다.
“너무 피곤하고 정신이 없다며 적당히 얼버무린 덕분에 조만간 다시 만나서 정보를 넘기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그쪽에서 필요한 정보도 그 자리에서는 준비할 수 없었기도 하고요.”
“그러면 새벽이라도 바로 전화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게 실은, 그 남자가 집 안까지 들어왔던 터라, 혹시나 도청 장치가 설치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연락드리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더라도 다시 그를 만날 위험성이 있고요.”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해 왔기에 그녀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윤설하가 하는 모든 말은 진심일 터.
보통 상황과 달리, 집 안까지 들이닥쳤던 터라 문자나 다른 방법에 대해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봐야 할 테지.
그나마 걱정하던, 윤설하가 내 몰래 작당 모의를 하는 일은 없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 상황.
고성탁이 내 뒤를 캐기 시작했다라…….
이건 상당히 문제가 까다로워진다.
이런 식으로 접근한 걸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최규현이 의뢰한 건 성태현 한 명뿐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성태현 의원에 대해 조사하며 나에 대해 파기 시작했다면, 잘못하다간 그와의 커넥션이 드러날지도 모를 터.
아무래도 고성탁을 만나서 떠볼 게 아니라, 담판을 지어야 할 것 같다.
윤설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 그놈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녀석의 이름은 고성탁.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녀석입니다.”
“신의 손요?”
“예. 실제로 국정원 소속이며…….”
그에 관해 간단히 설명을 해 준 뒤, 어제 그를 미행하다가 윤설하의 집까지 따라갔던 이야기까지 해 주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제가 거짓말했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
“어차피 하지 않으시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풍겨지는 강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저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 넘기기로 했습니까?”
“그가 원하는 정보의 리스트를 받았습니다. 제가 미리 준비해 두면 그쪽에서 연락을 취해 넘겨받겠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아무런 보상 없이요?”
처음엔 흉기로 협박해서 정보를 얻어 냈다고 한들, 두 번째까지 통하리라는 법은 없다.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만큼, 아무런 준비 없이 움직이는 미련한 녀석은 아닐 터.
“아니요. 10억을 준다고 했습니다.”
“10억요?”
“예. 그 자리에서 계약금으로 1억을 받았습니다. 추가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때마다 1억씩 제공해서 총 아홉 번을 만난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들고 온 가방을 열어 500만 원 뭉치를 보여 주었다.
혹시나 확인해 봤지만, 위폐가 아닌, 제대로 된 현금.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1억을 현금으로 줬다는 건, 10억도 줄 수 있다는 증명일 터.
무려 10억이라니.
검사라면 모를까, 윤설하는 내 밑에 있긴 하나, 일개 수사관에 불과하다.
떡값을 받아 챙기는 일이 거의 없는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혹할 수밖에 없지.
무엇보다 흉기까지 들고 있다고 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돈까지 보여 주면, 일반인으로서는 자신이 돈 때문에 신의를 배신한 게 아니라,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주인의 뒤통수를 친다는 합리화를 하게 되는 게 보통.
고성탁 이거, 상당히 똑똑하면서도 위험한 녀석인데?
오히려 윤설하가 넘어가지 않은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돈에 혹해서 수락한 건 절대 아닙니다. 부장님께서 챙겨 주시는 것만 해도 차고 넘쳐요.”
“예. 그건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윤설하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걸린 통화.
윤설하는 내게 화면을 보여 주며 말했다.
“아마 그놈일 겁니다.”
“조만간이라더니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네요.”
“받지 말까요?”
“아니요. 받아 보세요.”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스피커폰과 녹음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여보세요?”
-논현동 익스프리시브 카페 오후 8시 정각.
짤막한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윤설하는 전화가 끊겼는지 확인하고는 어이가 없는지, 코웃음을 쳤다.
“진짜 목적만 말하고 끊을 줄이야…….”
“그놈 목소리 맞죠?”
“네. 확실합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며 물었다.
“한번 추적해 볼까요? 아마 안 나올 거긴 한데…….”
“됐습니다. 경찰을 통해 추적한다고 한들, 대포폰이라서 제대로 된 추적이 어렵도록 만들어 뒀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경찰을 대동하기엔, 아마 대리인을 부를 거라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
“아니요, 그놈이 직접 나올 겁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놈이 사람을 쓸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경찰을 부를까요?”
“아니요. 정보를 넘겨야죠.”
내가 태연하게 말하자, 윤설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가 원하는 정보 리스트에는 부장님 사생활까지 들어있습니다.”
“걱정 없습니다. 대신…….”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덧붙였다.
“정보를 전달해 주는 건 설하 씨가 아니라, 접니다. 제가 직접 갈 거거든요.”
윤설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사실, 그를 대면하는 건 그녀에게 어젯밤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부터 확정 짓고 있었다.
사실, 이럴 때 정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무엇보다 그가 나와 손을 잡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던질 수 있는 강수.
정면 돌파다.
그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고,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최규현이라는 어마어마한 거물을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고성탁을 설득할 수 있을 거란 자신도 있고.
나는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료 준비해 주세요. 리스트에 있는 정보들 퇴근 전까지 준비하려면 빠듯할 겁니다.”
***
퇴근하자마자 곧장 고성탁이 불러 준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가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에 대해 추측하며 한창 짱구를 굴리고 있는 와중에, 머리를 식힐 만한 상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이야, 최 부장님. 요즘 너무 비싼 척하시는 거 아닙니까? 전화 한 통도 없으시고 저 서운합니다.
“하하하, 이 자식. 지도 바빴으면서 내 탓은.”
-그래도 먼저 하셔야죠. 제가 어찌 부장님께 감히 전화를 걸겠습니까?
“신용호 사업한다더니, 이거 아주 뺀질이가 다 됐어?”
발신인은 다름 아닌 신용호.
최근 몇 달간 그랑교부터 시작해서 라인과 성태현으로 인해 바빠서 간간이 하던 연락조차 주고받지 못했던 참이라 더욱 반가웠다.
“아, 이제부터 신성호라고 불러야 되나?”
-너 편한 대로 불러, 인마. 참고로 명함은 신성호로 팠다.
“그래. 참, 곧 사업 시작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되어 가?”
-안 그래도 내일 개업식이야. 오는 건 안 바라고 덕담이나 한마디 들으려고 전화했다.
“잘해, 인마. 그게 누구 돈인지 알지?”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걱정 없이 펑펑 쓰려고.
“나쁜 새끼.”
-여하튼 고맙다.
“고맙긴. 주소나 찍어 놔. 내일 화환 하나 보낼게.”
-그래. 내가 꼭 성공해서 나중에 너한테 도움될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라.
“쪽박 차고서 나한테 손 벌리지나 마, 인마.”
-거, 새끼. 너나 나중에 사표 내고 특채해 달라고 하기만 해 봐.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대한다. 잘해.”
-알았다. 차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이제 퇴근해?
“아니, 야근인 것도 모자라 외근하러 간다.”
-하하하, 고생해라.
“그래, 파이팅하고.”
-오냐.
통화를 마치자 내 입가에 미소가 만개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저런 친구가 있다는 게 인생의 큰 행운이라니까.
그사이 차는 고성탁이 지명한 장소에 도착했고, 나는 멀찌감치 차를 대고 카페로 들어갔다.
약속 시간까지는 2시간 가까이 남았지만,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늦게 들어갔다가는, 혹시나 그가 밖에서 감시하고 있다가, 내가 온 걸 눈치채고 빠질 수도 있을 테니까.
***
오후 8시 정각.
아니나 다를까, 1분의 어긋남도 없이 카페 안으로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구석에 앉아 지긋이 그를 바라보았고, 내부를 둘러보던 그와 이내 눈이 마주쳤다.
모자에 가려져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당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상황.
윤설하가 없다는 걸 눈치챈 그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높이 들었다.
“어, 여기야!”
내가 소리치자,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자연스레 쏠렸다.
손님들 중 일부는 나를 알아보고 놀란 표정까지 지을 정도니, 그는 결국 나가지 못하고 내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앉지.”
“…….”
그는 나를 차갑게 내려다보았지만, 별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메리카노로 시켜 놨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나는 뺀질거리며 미리 주문해 둔 아메리카노를 그에게 내밀었다.
“윤설하가 다 말했나 보군.”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움직인 거 아니었나?”
그는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걸로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남자가 엄포를 놓듯 말하자, 나는 태연하게 앞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대화하는데 얼굴을 가리고 이야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적어도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고서는 윙크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지 않아, 고성탁 씨?”
순간, 그가 얼어붙은 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신의 손이라고 해야 대화가 편하려나?”
모자로 가리지 못했던 그의 하관이 순식간에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