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 (5)
“고성탁의 정체가 신의 손이라는 걸 파악했을 당시가 한창 부장님께서 바쁘실 시기라서 조금 더 캐 볼 생각으로 고성탁의 뒤를 캤습니다. 며칠쯤 팠더니, 이상하게 국정원의 소재지인 서초구 내곡동이 아니라, 자꾸만 도봉구 쪽으로 겉도는 겁니다.”
도봉구라면 성태현 의원의 지역구이자, 그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장소.
“그 결과, 어젯밤에 조 실장과 은밀하게 접촉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홍 검사 눈으로 똑똑히 본 거야?”
“예. 사람을 붙일 수가 없기에, 제가 직접 따라다녔습니다. 정확히는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조 실장과 함께 성태현 의원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 시간에 성태현 의원은 사무실에 있었고?”
“아니요. 성 의원은 퇴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밖에서 지켜본 결과, 사무실도 불이 꺼져 있었으니 확실할 겁니다.”
“그러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못 들었겠네?”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아니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소파에 몸을 묻고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신의 손이 성태현에게 접촉했다.
이건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정원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고 하나, 그 상부가 믿을 만하다고 믿을 수는 없는 일.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정원이라는 기관이 대통령의 정보기관으로 운영된다고 한들,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대통령인 경동수의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을 테지.
경동수가 움직인 거라면, 미리 나에게 정보가 전해졌을 터.
그도 나와 성태현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알고 있으니까.
2번 라인에서 움직인 게 아닌 건 확실하다.
함께 거사를 치를 입장인 데다가, 미래 문자를 통해서 나와 함께 손을 잡은 게 확실한 2번 라인의 조현웅 의원이 이런 일을 벌였을 리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
그렇다면 정답은 뻔하다.
1번 라인에서 움직인 것이지.
그중에서도 잔챙이가 아니며 성태현을 견제해야만 하는 인물.
결국 정답은 한 명밖에 남지 않는다.
최규현.
그가 신의 손에게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다.
무엇보다 밑에 있는 녀석들은 신의 손이라는 인물의 존재 자체도 몰랐을 테니까.
내가 최규현에게 성태현이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걸 알린 지, 딱 1주일이 지난 참이다.
그런데 벌써 성태현에게 접촉했다는 건, 사전에 신의 손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
최규현 정도가 아니면 그 정도 정보력은 파악할 수 없을 테지.
그가 확실하다.
신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그의 전문 분야를 살려 성태현을 최규현이 손에 쥐고 움직이려고 하는 것일 터.
누명을 씌우려고 했으면, 고성탁이 직접 조 실장을 만날 필요도 없었을 테고, 무엇보다 최규현의 성격상 그런 식으로 성태현을 물러나게 만들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한마디로 보험을 든 것이다.
만에 하나, 나경준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를 손절하고 성태현에게 줄을 달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려는 셈이지.
역시나 최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의 생각대로 가면 좋으나, 만약 어긋나더라도 그 상황을 대비하려는 속셈.
하나 그의 의도를 알아챈 이상,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아니, 녀석이 마수를 뻗는 걸 해치우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역이용해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방보다 한 수 더 멀리 봐야 하니까.
“홍 검사.”
“예, 부장님.”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제 수사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잘했어.”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우리 둘뿐이야. 이후에 윤설하 수사관에게 말할지는 모르더라도, 내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지 입 밖으로 내선 안 돼.”
홍석장 검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겠습니다.”
“그래, 좋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묻어 두었던 상체를 들었다.
“공정거래조사부 일은 안 바쁘지?”
“예. 부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부서가 멀어졌다고 우리 마음까지 멀어지면 안 돼.”
“물론입니다. 제 몸은 공정거래조사부에 있어도, 마음만은 특수부에 남아 있습니다. 언제든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그래, 홍 검사.”
그는 뿌듯한 듯이 미소를 짓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참. 신의 손 동선도 파악해 두었는데, 혹시 참고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자신이 알아온 정보를 최대한 내게 보여 주고 싶은 모양.
이것만 봐도 그의 충성심이 극치에 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줘 봐.”
홍석장 검사는 바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내게 건넸다.
“앞으로 계속 신의 손을 지켜보면 되겠습니까?”
“아니, 이제 홍 검사는 손 떼어도 돼.”
입꼬리를 씨익 비틀며 말을 이었다.
“이젠 내가 직접 움직일 차례거든.”
“그 말씀은…….”
“그래. 신의 손을 직접 만나 봐야겠어.”
***
-아, 그렇습니까?
신의 손에 관해 전달받은 성태현 의원은 놀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제 조 실장을 통해 한 인물이 접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런 사정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라도 아셨으면 됐습니다. 제가 듣기로, 고성탁 그 친구의 언변이 너무도 뛰어나서 알고도 휘둘린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능글맞게 말을 덧붙였다.
-저 성태현입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진심이었다.
다른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몰라도, 무려 성태현이다.
미래의 대통령이 될 인물.
고성탁에 대한 정체를 몰랐으면 모를까, 사전에 파악한 상태에서 그에게 휘둘린다면, 그건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다.
여기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흔들린다면, 암만 미래 문자에서 대통령 후보로 찍어 줬다고 한들 갈아타야 할 테지.
그만큼 성태현 의원이 고성탁에게 흔들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 터.
-그러면 속내는 모른 척하되, 거절하고 주변에서 보이지 않도록 만들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고성탁은 의원님의 곁에 두셔야 합니다.”
그는 숨을 짧게 들이마시며 물었다.
-왜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배후에는 최규현이 있습니다. 성 의원님께 거절당했다고 한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란 말이죠. 의원님께서 밀어낸다면, 주변 인물에게라도 붙어서 어떻게든 마수를 뻗치려 들 겁니다.”
-그렇군요.
성태현 의원은 이해했는지, 천천히 물었다.
-그러면 제 옆에 두고, 모르는 척하며 냉정하게 지켜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조 실장도 당분간은 주의하십시오. 혹시나 이미 그가 넘어갔다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걱정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대로 선거까지 가는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굳이 위험 요소를 안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덧붙였다.
“오늘 제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겁니다.”
-직접요?
성태현 의원은 깜짝 놀라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괜히 그러다가 최규현이라도 알게 되면…….
“괜찮습니다.”
자신 있었다.
미래 문자에서 본 신의 손은 믿을 만한 인물.
오늘 내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내 편으로 넘어오게 될 테지.
“혹시나 어그러지더라도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죠. 믿고 진행하겠습니다.
“예. 그러면 신의 손과 접촉한 이후에 다시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자정쯤 괜찮으실까요?”
-네. 아마 집에 있을 테니 편하게 전화 주십시오.
대포폰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상황이었기에 이처럼 사전에 조율을 해 둬야만 했다.
이처럼 미리 정해 놓지 않는 이상, 서로 문자로 시간을 맞춰야 안전하게 통화할 수 있었으니까.
“최규현의 감시 밖에서 전화하려니 불편함이 많네요.”
-그래도 안전하게 가는 게 좋죠. 다 저희를 위한 건데, 이러한 귀찮음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이 수고로움을 전부 보상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검사님만 믿겠습니다.
“나중에 또 통화하시죠.”
-예, 고생하십시오.
그와의 통화를 마치고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오자, 바로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조아라 실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외근 가십니까?”
“예. 아마 일 보고 바로 퇴근할 거예요. 실무관님도 시간되면 퇴근하세요.”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후 5시를 넘기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노을이 지진 않았다.
슬슬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달까.
그럼에도 도착할 때면, 완전히 캄캄해져 있겠지.
곧장 차를 출발시키며 라디오 뉴스를 틀었다.
그러자, 익숙한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혼수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으로 생활하다가 25년 만에 깨어난 인물이 의료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곧바로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의학적으로는 1개월에서 3개월 동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식물인간 상태에서 회복되기가 어렵다고 보나, 간혹 기년 만에 깨어나는 인물은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25년 만에 깨어난 인물은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25년 만에 깨어난 인물.
틀림없는 정철웅 이야기다.
-식물인간으로 20년 넘게 살다가 깨어난 인물은 6년 전, 미국에서 식물인간 상태가 23년 지속되다가 깨어난 여성 이후로 무려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정철웅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그 어디에도 식물인간이 된 이유나, 그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게 지시한 대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
이두형 부부장이 제대로 일처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정철웅이 깨어났다는 사실에만 주목을 받아야지, 이로 인해 나경준과 군대 비리가 주목을 받아선 안 되니까.
일단은 신의 손. 그 인물을 만나 최규현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
삑삑삑-.
도어락 버튼을 누르고 있던 윤설하의 뒤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설하 씨?”
깜짝 놀란 그녀는 도어락에서 손을 뗀 채 경계하며 뒤로 돌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윤설하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시죠?”
“할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대화를 원하는 남자는 여전히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인의 정체부터 밝히셔야 대화를 하든, 말든 하죠.”
윤설하는 앙칼진 목소리를 냈다.
“다짜고짜 남의 집 앞에 찾아와서 대화하고 싶다면, 어떤 여자가 미쳤다고 ‘네, 들어오세요.’ 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제 신분을 밝힐 수는 없는 처지여서요.”
“그러면 이야기할 수 없겠군요. 나중에 명함 만드시고 나서 찾아오시죠.”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몸으로 가린 채 도어락을 열었다.
혹시나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는 112를 눌러둔 상태.
여차하면 경찰에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
윤설하는 도어락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남자에게 말했다.
“돌아가 주세요. 오늘은 피곤해서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거든요.”
“죄송해서 어쩌죠? 저랑 이야기해야 해서 일찍 쉬기는 힘드실 것 같은데.”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윤설하는 정색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많이 참았습니다. 물러나지 않으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최서준.”
순간, 남자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윤설하 씨에게도 절대 나쁠 게 없죠. 아니, 득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남자는 입꼬리를 거칠게 비틀며 안경을 올려 썼다.
그 순간, 그의 소매 속에 쇠붙이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잠깐이면 됩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윤설하는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112를 입력했던 휴대폰을 닫고 도어락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남자는 비열하게 입꼬리를 휘며 윤설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