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66화 (165/341)

마리오네트 (4)

“어떠셨습니까?”

“확실히 구렁이가 있어.”

김 실장의 물음에 최규현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성태현이랑 보통 관계는 아닌 게 확실해.”

“그 말씀은 혹시 이번 일의 배후에도 그가 있다는 뜻입니까?”

“아니, 암만 관련이 있다고 한들, 이번 일 만큼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 같더라고.”

그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넥타이를 풀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자네도 들었잖아. 요정에서 그렇게 큰 다툼이 있었다고.”

“예, 맞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요정이 외부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도, 대판 싸웠으면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런데도 서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싸운 건 정말 열이 뻗쳤다는 소리밖에 안 되는 거 아니겠어?”

최규현 의원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김 실장이 보고하기로는, 그 사건 뒤로 둘이 접촉은커녕, 통화도 하지 않았다며?”

“예. 맞습니다. 한지유와 한지수도 둘의 사이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연락이 뜸해졌더군요.”

“그래. 최서준과 성태현 의원은 갈라선 거야. 나중에 서로 부인들 때문에 둘이 동서 지간이 되어 합심한다고 한들, 그게 서울시장 선거 이전에 펼쳐질 일은 절대 아니거든.”

“서울시장 선거 말입니까?”

김 실장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혹시 성태현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니까. 방금 전에 최서준이 그렇게 말했어. 성태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민국당으로 옮겼다고.”

“허어…….”

김 실장도 성태현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사실을 들은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정보.

그런데 그 정보의 출처가 최서준이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던 김 실장도 경계심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김 실장은 최규현이 지시하는 걸 처리하는 건 기본이고, 본디 그가 최규현 의원의 옆에서 존재하는 이유는 의심하기 위함이었다.

워낙 최규현이 날카롭고 대범하게 움직이는 성향인 만큼, 혹시나 빠뜨릴 수 있는 부분을 케어하며 꼼꼼하게 확인하고 움직이는 것.

그게 바로 김 실장이 20년이 넘도록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최규현의 옆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였으니까.

그러나 이 정도로 나왔다면 더 이상 최서준을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니, 신뢰해야 했다.

적정한 수준의 의심은 꼼꼼하고 완벽함을 추구하게 만들어주지만, 선을 넘는 순간, 그건 피로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이고 일을 진행할 때 불신을 갖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 버리니까.

이 정도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 사실을 넘겨줬다는 건, 결국 저희한테 확실하게 붙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안 그래도 오늘 최서준이 본인 입으로 내게 붙는다고 하더군.”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보탰다.

“하긴, 성태현이랑 관계가 틀어졌는데 선택지가 있겠어?”

“맞습니다.”

“나경준 그놈을 당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하니까 한번 같이 일해 보자고.”

“예. 그러면 최서준과 같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성태현을 칠 만한 방법을 한번 강구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녀석의 가슴 속에 구렁이가 있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최서준이 그놈을 잡고 있어야 도움이 될 거야. 적의 적은 내 동료라고 하지 않나?”

“옳은 말씀이십니다. 최서준이 성태현과 워낙 가까웠던 터라,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일단 그렇게 진행해 보라고.”

“알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 나가려다가 문득 멈춰 서서 다시금 물었다.

“그러면 의원님, 최서준과는 계속해서 같이 간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 있겠어?”

최규현 의원은 입꼬리를 거칠게 비틀었다.

“복심이 어떤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놈이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은 가까이 둬서 좋을 게 없지.”

“그 말씀은…….”

“이번 시장 선거가 끝나면 몰아내야지. 분명 내 옆에 있으면 보탬이 될 놈이긴 하지만…….”

그는 최서준의 얼굴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뭔가 위험해. 녀석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쳐내야겠어. 단물만 쫙 빨아먹고 쫓아내자고.”

“알겠습니다.”

“우선 사람 붙인 거는 한 달 동안 더 유지시켜. 혹시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하고. 별문제 없으면 한 달 뒤에 해체시켜. 그때부터는 선거 준비 때문에 인력이 부족할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규현 의원은 비열하게 턱을 쳐들며 김 실장에게 손짓했다.

“김 실장.”

“예, 의원님.”

“자네는 이번에 나경준이 서울시장에 재선될 확률을 어느 정도라고 보나?”

“지금 상황에서 큰 변화가 없다고 보면…….”

김 실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약 90% 정도라고 봅니다.”

“나머지 10%의 이유는?”

“선거라는 게 늘 어떻게 될지 모르잖습니까? 과거 대선들만 해도 마지막 뒤집기로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그 10%의 경우에는 아주 위험해져. 안 그래도 인천시장과 경기도지사가 민국당으로 넘어갈 상황인데 서울시장까지 넘어가면 대한당은 국회에서 다수당이라고 한들, 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어지니까.”

“맞습니다.”

“그 10%의 경우를 대비해 보자고.”

최규현 의원은 여유롭게 웃음을 지었다.

“자네 신의 손이라고 들어 봤나?”

“신의 손 말입니까?”

김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 봅니다.”

“그래, 모를 수 있지.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람이거든.”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말을 덧붙였다.

“다만, 이름값에 비해 능력이 심하게 출중해서 문제지.”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사람 다루는 분야에 있어서는 아주 스페셜리스트야.”

최규현 의원은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그 친구 연락처 알려 줄 테니까, 자네가 접촉해 봐. 그리고…….”

***

“찾았습니다!”

홍석장 검사는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부장님께서 말씀하신 그…….”

그는 말을 하려다가 조아라 실무관을 흘긋 바라보았다.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그녀는 기밀 사항이라는 걸 눈치채고 손수 문을 닫아 주었다.

“말하게.”

“예. 신의 손을 찾아냈습니다.”

“그래?”

그의 흥분과 환희 섞인 목소리에 나도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이 정도로 말하는 걸 보면 단순히 신의 손의 정체에 대해 찾아낸 걸 넘어서 플러스알파까지 있다는 거니까.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말해.”

“아, 죄송합니다. 너무 기뻐서 말을 급하게 했나 보네요.”

홍석장 검사는 민망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진정하는 사이, 나는 소파로 자리를 옮겼고 잠시 숨을 고른 뒤에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의 손의 정체를 파악했다고?”

“예. 프로필부터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는 품 안에 있던 서류를 건네며 내게 브리핑했다.

“우선 이름은 고성탁. 국가정보원, 흔히 말하는 국정원의 소속으로 국가사이버안전센터에 있는 녀석입니다. 나이는 올해로 서른아홉. 결혼은 했지만, 두 아이와 아내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

분명 미래 문자에서 본 그의 얼굴은 나에 비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편이었기에 비슷한 또래라고 봤었는데.

“기러기 아빠 생활한 지는 얼마나 된 거야?”

“이제 10년 정도 됐습니다. 결혼을 일찍 해서 두 아이는 모두 중학생이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미국에 건너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더 보고해 봐.”

“예. 뒷장에 보시면 두 가지로 크게 분류가 되어 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보고서를 뒤로 넘기자, 한 면이 양측으로 나뉘어 있었다.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국정원에 들어오기 전, 뒤 세계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그의 설명을 들어 본 결과, 첫 번째 사항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람을 골로 보내는 데 능하다는 것이었다.

높은 사람들 혹은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뢰를 받아 특정 인물을 범죄와 엮어 버리는 일을 아주 기가 막히게 처리해 왔다고 한다.

강도면 강도, 성폭행이면 성폭행. 심지어는 살인죄까지 특정 인물에게 뒤집어씌워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에서까지 유죄 판정이 나오도록 모든 상황을 조작하는 일.

한마디로 누명을 씌우는 것이다.

“높으신 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을 처리할 때, 깡패 녀석들이나 청부업자를 불러 처리하는 것보다는 나름대로 더 깔끔하고 깨끗하게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무력으로 처리하나, 누명을 씌우나 도긴개긴이지. 그래봤자 똥 묻은 개랑 겨 묻은 개 정도의 차이밖에 더 되겠어?”

“맞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에서는 이를 다르게 본 모양입니다.”

그는 국정원의 직원 리스트를 추가로 건네며 말을 이었다.

“분명 불법이긴 하나, 흔적도 없이 아주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뒤 세계에서 놀면, 어쩔 수 없이 국가가 골탕 먹게 되니,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정부에서 스카우트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국정원 특채죠.”

“국정원에서도 누명을 씌우는 일을 하는 건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신의 손이 두 번째 일만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보탰다.

“사실, 이 두 번째 일이 진짜입니다. 고성탁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 거죠.”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혹시 마리오네트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마리오네트.

프랑스어로 꼭두각시 인형 혹은 그 인형이 등장하는 인형극을 칭하는 말.

“알지, 왜?”

“고성탁이 이 친구가 사람을 다루는 데 아주 능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마음을 훔치는 거죠. 특정인을 아주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종할 정도라고 합니다. 국정원에서 신의 손을 스카우트한 이유가 바로 이 능력 때문이라고 들었고요.”

“그래서 마리오네트 이야기가 나온 거구먼.”

“맞습니다. 한마디로 특정인을 지목하면, 그 녀석은 꼭두각시 인형, 마리오네트가 되고 고성탁은 그 뒤에서 이들을 움직이는 조종 막대(Control Bar)가 되는 거죠.”

이 내용을 들으니, 내가 신의 손과 친해졌다는 미래가 바로 수긍이 갔다.

고작 범죄로 엮을 정도라면, 검사인 내게 이용 가치는 크게 없었던 터.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아 움직일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니, 무조건 필요하다.

이 가치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국정원에서도 이 가치를 알고 스카우트했겠지.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예.”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문이 닫혀 있는 걸 한 번 더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성태현 의원님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며칠 전부터 신의 손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찾아내서 꼬리를 밟아 본 결과, 그가 성태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는 걸 파악했습니다. 어제부로는 성태현의 비서인 조 실장과 접촉을 한 것으로 확인했고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다.

성태현에게 신의 손이 접촉했다니.

“자세히 이야기해 봐.”

“예,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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