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65화 (164/341)

마리오네트 (3)

방 안에 도청 장치나 카메라는 없다.

오랫동안 요정을 이용한 사람이자, 검사로서의 감으로 알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암만 방음이 잘된다고 한들, 안에서 소리치며 싸운다면 소리가 밖에 전해지지 않을 수가 없을 테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우리 라인에서 키워 준 건데, 한마디도 없이 나가는 게 말이 되는 겁니까?”

나는 성태현 의원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건 말 그대로 배신하는 거 아닙니까?”

성태현 의원도 내가 짜 준 시나리오에 맞춰 아주 열정적으로 받아쳤다.

“라인이 키워 준 거지, 당신이 키워 준 겁니까? 왜 당신이 나서서 지랄이야, 지랄은!”

“지랄이라니! 내가 라인 사람이니 말할 권리는 충분히 있지. 나는 최규현 의원님을 대신해서 당신을 만나러 온 거라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서로 핏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말도 거칠어지고 존댓말은 자연스레 잊히고 반말이 튀어나오고 있는 상태.

물론, 모두 연기였다.

“그럼 가서 똑똑히 전해. 온갖 비리의 온상인 그쪽 라인에서는 같이 못 해먹겠다고.”

“성 의원, 당신 후회할 텐데.”

“후회는 무슨. 당신이야말로 정신 차려. 검사라는 양반이 무슨 정치 권력의 개처럼 최규현의 앞잡이 노릇을 해?”

아주 실감나는 그의 연기에 흡족한 미소가 흘러나오려는 걸 꾹 참고 연기를 이어 갔다.

“내가 처제까지 소개시켜 줘서 만나는데, 그런 소리를 해?”

“이제 지수 가지고 협박하려고?”

성태현 의원은 코웃음을 치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암만 이야기해 봐. 한지수가 내 편 들지, 형부 편들겠어?”

“내 편은 안 들어도, 제 친언니 편은 들겠지.”

“한지유까지 이용하겠다, 이 소리지?”

“어, 당연하지! 내가 당신 같은 배신자랑 명절마다 얼굴 보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거든.”

그는 들고 있던 술잔까지 쾅!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내리쳤다.

“아니, 오늘 좋게 이야기해서 잘 이야기하려고 왔는데 이 따위로 나올 겁니까?”

“욕은 당신이 먼저 했지!”

“욕할 만하니까 욕하는 거 아니겠어?”

“어디 감히 대한민국 검사한테…….”

“그놈의 검사가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엄포를 놓았다.

“그 말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한 척,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이, 상종도 못 할 인간 같으니라고!”

물론, 성태현은 날 붙잡지 않았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문을 부술 듯이 세게 열며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요정의 직원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상태.

내가 눈을 부라리며 이들을 훑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직원들은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차 키 가져와!”

나는 분개하다 못해 직접 운전할 기세로 소리쳤지만, 근처에 있던 마담이 달려와 나를 진정시켰다.

“부장님, 릴렉스. 여기 근처에서 조금만 나가면 음주 단속해요. 우리 직원 바로 운전시켜서 보낼 테니까 화 가라앉히고 뒷좌석에서 안전하게 가세요.”

상황을 눈치챈 직원들은 쏜살같이 튀어나가 내가 나온 지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차를 가져왔다.

나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척, 콧바람을 쒸이익 내뱉고는 몇 번 짙은 한숨을 내뱉은 뒤, 겨우 진정한 척 말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원래 이렇게 흥분하는 사람이 아닌데, 저 인간이 너무 뻔뻔하게 구니까…….”

“괜찮아요. 이해합니다. 저도 대충 상황은 알고 있는데, 성태현 의원이 배신한 게 나쁜 거죠. 부장님은 화 푸시고 집에 가서 푹 쉬세요.”

나는 성태현이 있는 방을 흘긋 바라보고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거칠게 차로 향했다.

“가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부장님.”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바로 차에 올라타자, 마담은 응대 미소를 지으며 내 차 문을 닫고 손수 직원에게 안전 운전해서 모시라는 말까지 전하고 배웅해 주었다.

아마 돌아가서는 성태현 의원에게도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대하겠지.

그게 저 사람의 일이기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법이지.

우선은 이 운전기사도 요정의 직원이기에 여전히 화를 삭이는 척 시트에 몸을 기대고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천천히 머리를 식히며 요정에 입장할 때부터 퇴장할 때까지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연기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터.

그 와중에 마담이 직접 나와 뒤처리까지 도왔으니, 이후엔 전후 상황에 대해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볼 테고, 성태현과 내가 부딪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그리고 이 내용은 고스란히 최규현 의원에게 전해질 테고.

대화 내용까지 전해질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와 성태현이 남모르게 만난 자리에서 언성이 높아져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고, 그게 정리되지 못한 채 내가 뛰쳐나온 상황.

그리고 그 뒤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최규현의 입장에서는 내가 성태현의 뒤에 있지 않은 것을 확신하는 건 물론이고 둘의 사이에서 신뢰가 무너졌다고 생각할 테니까.

둘 사이에서는 대포폰으로 연락할 테니 따로 접촉할 일은 없을 것이고, 한지유와 한지수 또한 이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이니 슬슬 서먹서먹해진 척 연기할 터.

말 그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황.

지방선거가 펼쳐지는 6월까지 딱 4개월만 더 참으면 1번 라인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이고 나올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성태현이 당선되는 것 또한 가능해질 테고.

이대로만 가면 서울시장 자리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몸에 들어갔던 힘이 풀리려는 그 찰나.

번쩍.

뒤차의 전조등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사이드미러에 반사되어 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아까 요정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계속 차 한 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운전석에 있는 직원을 향해 물었다.

“뒤에 있는 차, 우리 따라오고 있는 건가?”

슬쩍 백미러를 확인한 직원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까부터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붙어 있긴 한데, 차량 번호는 보이지 않아서 같은 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내 기분 탓은 아니라는 거네.

피식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최규현 이 자식이 사람을 안 붙일 리가 없다니까.

아마 낮에도 붙어 있었겠지만, 밝은 시간대에 다른 차량에 섞여 있어서 눈치채지 못한 모양.

당연히 최규현이 실력이 뛰어난 인물을 붙인 탓도 있을 테고.

그러나 저녁이 된 데다가 도로가 한산하니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모른 척, 사이드미러에서 시선을 떼고 눈을 감았다.

“신호등 걸렸을 때, 슬쩍 차 번호 확인해 봐. 백미러로 몇 명 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봐 보고.”

“알겠습니다.”

약 10분 뒤, 직원은 나를 향해 말했다.

“43가에 1314이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한 명씩 타 있습니다. 따라붙는 게 아니라, 방향이 같은 것 같습니다.”

방향이 같은 건 충분히 연기할 수 있는 일이지.

무엇보다 이렇게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도로에서는 암만 베테랑이라도 존재를 숨기기가 쉽지 않은 법이니까.

나는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기어 위에 올리고 있는 운전하는 직원의 손에 쥐어 주었다.

순간, 그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혹시 누가 물어보더라도 방금 있었던 대화는 없는 거야. 따라 붙는 차량이나 사람 모두 잊어버리는 걸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운전해.”

“예.”

조금 전까지 생각하며 추측하던 게 확신으로 바뀌었다.

조만간 최규현은 나에 대한 불신을 지울 수밖에 없을 터.

성태현은 내일부터 다시 폭주한 듯 대한당과 1번 라인 소속 인물들을 까 내리기 시작할 테니 그를 공격하기 위해선 내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겠지.

분명 최규현은 1주일 내로 나를 부를 게 틀림없다.

***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나 보네요.”

윤설하는 여유롭게 웃으며 내 외투를 건넸다.

“그러게 말입니다.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

최규현은 강남까지 행차해서 나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물론, 겉으로는 볼일이 있어서 온 김에 만나자는 것이었지만, 누가 봐도 성태현이 대한당을 까 내리고 폭로하는 수위가 심해지자, 이걸 막기 위해 내 도움을 받으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잘 다녀오세요.”

“시간되면 퇴근하세요.”

“예, 부장님.”

나는 윤설하를 뒤로하고 아주 여유롭게 서울중앙지검을 나섰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애가 타는 건 최규현 측이었으니까.

강남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최규현이 안에서 홀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 최 검사 왔나?”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앉지.”

최규현은 뜸 들일 것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네도 성태현한테 좋은 감정은 없지?”

“예.”

나는 솔직히 털어놓는 척 말했다.

“사실 며칠 전에 성태현 의원을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단독으로?”

최규현은 이미 알 게 분명하지만, 처음 들은 척 태연하게 연기했다.

“언제?”

“엊그저께입니다. 제가 들어 보니, 민국당에서 바람을 넣은 것 같더군요.”

“바람을 넣다니.”

“그건…….”

내가 말하기를 망설이는 척 연기하자, 최규현은 능청스레 말을 유도했다.

“나도 최 검사는 100% 믿어. 우리 사이에 제일 굳건한 게 바로 신뢰 아닌가? 편하게 말해 주게.”

못 믿어서 사람을 붙여 확인한 주제에 신뢰를 논하다니.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알겠습니다.”

이쯤에서는 하나 소스를 흘려주는 게 좋겠지.

나는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서울시장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서울시장?”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예. 민국당에서 성태현을 새로운 서울시장 후보로 미는 것 같더군요.”

“허어…….”

최규현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지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는지, 그는 미간을 연신 찌푸렸다 펴기를 반복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내 계획대로 가는 것 같다는 직감이 절로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성태현의 서울시장 출마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

지금이야 말로 이 소스를 흘렸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회복됨과 동시에 성태현에 대한 적대감이 커진 이 판국에서 본인이 모르는 정보를 내가 알려 준 것이니까.

다시 말해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전혀 감도 잡지 못했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이를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자면, 성태현이 당적 변경하는 카드를 내가 생각했다면, 절대로 본인에게 흘리지 않는…… 아니, 흘려서는 안 되는 정보.

이 판을 내가 짰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의심이 남아 있더라도 그걸 제거해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최규현을 늪에 빠뜨리는 일.

그의 입장에서 나는 그저 성태현과 언성까지 높이고 싸움을 벌인 뒤에,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소스를 뿌리고 당선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보일 터.

자연스레 나와 손을 잡고 함께할 수밖에 없어진다.

이러한 생각의 늪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다른 생각은 들 수가 없다.

아니, 들려고 해도 스스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의심스럽다는 걸 생각한다는 건, 과거의 자신이 했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면 본인의 과오를 부정하기 위해 스스로 합리화를 하게 되며 이 늪에 더욱 깊숙이 빠지게 되고 결국은 헤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지.

나는 강조하듯 다시금 말을 덧붙였다.

“성태현의 목적은 서울시장 출마에 있었던 겁니다. 그러한 헛된 욕심 때문에 탈당을 한 것이죠.”

“하긴, 민국당에서 공천을 약속받았다면, 충분히 도전해봄직한 일이니까…….”

“제가 낙선되도록 만들겠습니다.”

나는 눈을 번뜩이며 그에게 말했다.

“성태현이 당선되지 않도록 돕겠습니다.”

“자네가 돕는다고?”

“예. 성태현과 오래 지낸 만큼 그의 약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걸 빌미 삼아 협박하면 우선 지금 우리 라인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있는 저 언론플레이부터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눈을 빛내며 내 손을 잡았다.

“그래 주겠나?”

“성태현의 폭주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의원님이 밀고 계시는 나경준 시장이 다시금 재임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나경준 시장의 선거를 돕는다면, 그들의 전략이 무엇인지 사전에 파악할 수 있을 터.

그러면 네거티브를 하더라도 사전에 알아내 미리 대처할 방법을 준비를 할 수 있고, 좋은 선거 전략들을 미리 유출시켜 성태현 측에서 가로채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속셈을 알 리 없는 최규현 의원은 벌써부터 든든하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는 최 검사 자네만 믿겠네.”

“예. 믿어 주십시오.”

나의 입꼬리가 히죽 비틀어졌다.

“나경준이 서울시장의 재선에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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