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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 출세하신다!-164화 (163/341)

마리오네트 (2)

오후 5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

나는 외투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나가시게요?”

나를 발견한 조아라 실무관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나를 바라봤다.

“네. 약속이 있어서요.”

“제가 검사장님 담당인 고 계장님한테 듣기로, 오늘 검사장님께서 30분 일찍 퇴근하신다고 하셨는데 겹치지 않을까요?”

“한동민 검사장이라면 괜찮습니다.”

진즉에 나와 손을 잡기로 약속한 인물.

라인에서 만나 여자들과 유흥을 즐기는 모습도 본 사람인데 조금 일찍 나가는 것 가지고 뭐라 할 리가 있겠는가.

“먼저 가 볼게요. 시간 되면 퇴근하세요.”

“알겠습니다.”

서류 가방을 챙겨 나오려는 그 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대답 대신 직접 문을 열었다.

“어, 부장님?”

문 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이두형 부부장.

갑자기 열린 문에 놀란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내 손에 들린 가방과 외투를 발견하고 물었다.

“지금 퇴근하십니까?”

“그러려는데 무슨 일 있어?”

“다름이 아니고 저번에 지시하셨던 건에 관해 괜찮은 걸 알아왔는데…… 나중에 보고할까요?”

이두형 부부장에게 지시했던 건 나경준 시장의 치부를 알아오는 일.

저번에 준비해 온 건이 약했기에 제대로 된 걸로 가져오라고 퇴짜 놓았던 만큼, 이번엔 분명 작은 건수가 아니기에 보고하러 왔을 터.

이러면 듣지 않고 갈 수가 없지.

“아니, 들어와. 지금 듣지.”

“예.”

다시 사무실 안쪽으로 몸을 돌리자, 방긋 웃고 있는 조아라 실무관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민망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정시 퇴근해야겠네요.”

“차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이두형 부부장은 손사래를 쳤다.

“바로 퇴근해서 저녁 먹으러 갈 거라서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아라 씨도 하던 일 마무리해요.”

“예.”

안쪽으로 들어온 나와 이두형 부부장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괜찮은 것 좀 나왔나?”

“예.”

이두형 부부장은 아주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월척이 나왔습니다.”

“그래?”

내가 반갑게 되묻자, 그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듯, 내게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게 뭐야?”

반쯤 넋이 나간 듯 병상에 누워 있는 남자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노모로 추정되는 여성 하나.

보기만 해도 안쓰러움이 들 정도.

“나경준이 군인 시절에 저질렀던 만행으로 인한 피해자입니다.”

첫 마디만 들었는데도 왠지 제대로 된 건수가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사진을 내려놓고 이두형 부부장을 바라보며 몸을 기울였다.

“자세히 이야기해 봐.”

“나경준 시장이 ROTC 출신인 걸로 유명하잖습니까?”

“그렇지. 그 강직함과 충직함으로 최규현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강직하고 충직함은 개뿔, 진급에 눈이 먼 쓰레기였던 겁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이두형 부부장이 캐내 온 이야기는 상당히 놀랍다 못해 탄식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ROTC 출신인 나경준 시장이 대위로 중대장직을 맡아 수행하던 시절.

중대원 중 병사 하나가 신병 하나를 괴롭히다가 수위를 넘어 폭행에 이르렀고, 결국 신병은 일병으로 진급한 지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병원에 실려 갔다.

그러나 금방 퇴원할 줄로만 알았던 부대원들의 예측과 달리, 신병은 뇌손상으로 인해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 말았던 것.

상부에 보고하고 폭행 가해 병사를 처벌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이 사건이 벌어진 건 1990년대였다.

부대 내에서 폭행이 만연한 것은 물론이고 온갖 부조리까지 묵인되던 시절.

마침 소령으로 승진을 얼마 앞둔 나경준은 이 사건을 묻기로 결정했다.

당시는 육사와 ROTC의 차별이 지금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던 터.

보통 폭행사건도 아니고, 무려 장기 혼수상태에 빠진 피해자가 있는 만큼, 이러한 사건이 보고되었다가는 나경준이 소령을 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경준은 부대원들과 입을 맞춰 피해 병사가 샤워실에서 비누를 밟고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며 식물인간이 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병사의 몸에 구타 흔적이 지워질 즈음, 그의 홀어머니에게 연락해 사고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니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기에 노모는 그저 슬퍼하는 게 전부.

세월이 흘러 뒤늦게나마 억울한 사연을 알게 된 노모는 팔순에 가까운 나이였기에 자세한 절차나 방법도 알지 못해 공론화를 시키지도 못하고 끙끙 앓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어이가 없는 건, 이러한 일을 벌이고도 나경준은 소령으로 승진을 하지 못하고 대위로 제대를 했다는 사실.

그런데 가해 병사의 아버지가 재계에 힘 있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백으로 정계와 연관이 있는 봉사 단체에 입문할 수 있었고, 지금의 서울시장 자리까지 오게 된 것.

제3자의 입장에서 들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

나는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쓰레기 자식들…… 이게 끝이야?”

“아니, 더 있습니다.”

이두형은 새로운 사진 한 장을 더 건넸다.

이번엔 병상에 누워 있던 50대 남성이 눈을 뜬 채로 찍힌 장면.

“그런데 그 피해 병사가 25년 만에 눈을 뜬 거죠.”

“깨어났다고?”

“예. 병원 측에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합니다. 보통 식물인간으로 산 지 5년이 넘으면 다시 깨어나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이분은 그 긴 시간 만에 깨어나신 거죠.”

정말 말 그대로 기적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

“이 환자분은 완전히 의식을 회복하신 거야?”

“처음엔 눈만 깜빡이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어눌하지만 말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 뵙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왔어요.”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신고는 했고?”

“예. TV에서 우연히 나경준 시장이 뉴스에 나온 걸 보고 이 환자분, 정철웅 씨가 기억을 떠올려 노모께 이야기해서 경찰에 신고는 했는데, 경찰들이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제대로 믿지도 않고, 무엇보다 서울시장과 관련된 일이라서 조사할 생각도 안 했다나 봐요.”

재계에 힘 있는 인물의 아들과 사건을 덮은 대위 출신의 서울시장. 그것도 모자라 적당히 사건을 접수조차 하지 않으려던 경찰.

“이거 진짜 상종도 못 할 개새끼들이구먼.”

영화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시나리오다.

아니, 영화보다 더 하다. 비리의 온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거 알려지면 파급력이 장난이 아니겠는데?”

이두형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답했다.

“제가 월척이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잘했어, 이 부부장.”

“감사합니다, 부장님.”

나는 그가 건넨 두 장의 사진을 연신 번갈아보며 물었다.

“그러면 일단 이에 관해서는 언론으로 보도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지?”

“예. 병원 측에서 25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인물에 대해 보도하려 했으나, 정철웅 씨와 노모가 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경찰들도 조사하길 포기했는데, 언론에 가십거리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요.”

처음에 경찰들에게 신고했던 걸 보면, 이 사실을 밝힐 의지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언론에 공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들을 만나서 설득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터.

그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그러면 이 부부장은 이걸 어떻게 파악한 거야?”

“제가 믿을 만한 경찰 인맥을 통해 나경준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 그 친구가 자신의 학교 후배로부터 나경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해 주더군요. 그 후배가 바로 처음 노모에게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이라고 합니다.”

“그래?”

“예. 근데 정작 그 본인은 헛소리라고 생각해서 접수도 안 하고 넘기고서는 술자리에서 웃자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제 인맥이 듣고 저한테 전해 준 겁니다. 제가 사실 관계를 파악해 보니 진실이었고요.”

이두형 부부장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지. 궁하면 닿는다는 말처럼 이 부부장이 간절히 뛰니까 알게 된 거야.”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선 아주 멋들어진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나는 두 장의 사진을 겹쳐 그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이 부부장, 자네는 왜 검사가 되었나?”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당황했는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나는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모두가 다른 목적이 있겠지. 자네의 목적과 내 목적도 다를 거야. 그러나 검사가 되었으면 다들 지켜야만 하는 게 있어.”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법을 어긴 자는 처벌한다. 그리고 사건에 관한 사실 관계는 명명백백하게 밝혀낸다. 이게 바로 검사의 도리 아니겠어?”

내 말뜻을 알아챈 이두형 부부장은 눈을 번뜩이며 동의했다.

“맞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 또한 저희가 할 일이죠.”

“수사 들어가. 대신 공개수사가 아니라, 자네가 직접.”

“알겠습니다.”

“이후 순서도 알려 줄 테니 잘 기억해. 우선 정철웅 씨와 그 노모를 설복시켜서 언론에 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해.”

“예. 설득하는 건 자신 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그 다음엔 뇌사에서 깨어난 식물인간을 중점으로 보도하는 거야. 군 생활이나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전 세계 의학계에서도 경이로운 일이다. 뭐, 이런 식으로. 추가적인 기자의 접촉은 차단하고 병원에서도 정보가 빠져나가지 않게 막아.”

말 그대로 언론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이 인물에 대해서만 알릴뿐, 전후 사정에 대해 밝히는 건 차후의 일이다.

나경준에게 지금 타격을 입혔다가는 최규현이 오히려 서울시장 공천 후보를 바꿔 버릴 수도 있을 터.

중요한 건 선거 직전에 가서 터뜨려야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다음엔…….”

***

“아,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이두형의 특급 정보를 듣고 시나리오까지 짜서 지시하고 오느라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 버렸지만, 성태현은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옆에 끼고 있는 여성의 어깨를 만지며 능글맞게 나를 맞이했다.

“저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와 가볍게 악수를 하고는 옆에 있던 여성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제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자리를 비워 줘야겠는데?”

“예.”

요정에서 일하는 여성이 물러가자, 그가 시계를 흘긋 바라보고는 눈썹을 들썩였다.

오히려 늦게 온 게 더 잘했다는 뜻일 터.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 성태현은 일부러 업소 여성을 불러 시간을 보낸 상황.

분명 은근한 대화를 통해 갑작스레 만나게 되었다는 분위기를 풍겨 두었을 게 분명하니 최규현의 귀에 들어갈 때는 우리가 모든 것을 짜고서 만났을 의혹은 전혀 없다고 전해질 테지.

“일단 오셨으니 한 잔 받으시죠.”

“예, 좋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소주를 한잔하며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는 의원님이 저한테 말도 하지 않으시고 민국당에 가실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치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법이죠.”

“그래도 저한테는 말씀해 주셨어야죠.”

“죄송합니다. 그쪽 라인에 계신 분들한테는 전부 말하지 않고 나온 터라…….”

우리는 술을 한 잔씩 마시며 점점 얼굴을 붉혔고, 어느새 언성이 높아졌다.

그렇게 최규현을 낚기 위한 우리의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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