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 타기 (6)
“후우.”
깊게 심호흡을 내뱉으며 차분하게 가슴을 가라앉혔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내가 이번 건과 연관되었다는 걸 최규현이 모를 리가 없다.
다만, 내가 어느 정도 선까지 알고 있는지, 얼마나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할 터.
나는 최규현을 골탕 먹이는 게 아니라, 그저 검사로서 사이비 종교인 그랑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일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여지를 줬다가는 빈틈을 파고들 터.
말 그대로 외줄 타기다.
상대방은 정치 경력만 30년이 넘는 최규현.
까딱하다가는 내가 외줄에서 미끄러질지도 모르는 일.
최대한 능청스럽게 가야 한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전해지기 무섭게.
벌컥.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며 최규현의 비서가 얼굴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검사님.”
“아, 네. 오랜만입니다, 김 실장님.”
“들어가시죠.”
그는 나를 안내하고는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내부에 들어서자, 드넓은 공간에서 최규현이 홀로 소파 상석에 앉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앉지.”
최규현의 중저음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태연한 척 옆에 다가가 앉자, 그는 안부 인사도 없이 바로 앉은 것이 불쾌한 듯이 물었다.
“최 검사, 이제 다 컸다고 목에 깁스한 건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언제나 의원님의 충직한 칼잡이로 남을 겁니다.”
“칼잡이의 칼이 주인을 향하는 건 반역이지.”
그는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내게 상체를 기울였다.
“이번 그랑교 사건 조사한 배후에 자네가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건 제가 지시한 게 맞습니다만…….”
나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슬쩍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그가 기가 차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그걸 모른다고?”
“아니,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나는 허심탄회한 척 말을 이었다.
“그랑교 사건에 대해 알게 되어서 조사를 진행한 것도 맞고, 지시한 것도 제가 맞습니다. 그런데 의원님께서 제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최규현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지그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최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네, 정말 내가 왜 부른지 몰라서 그래?”
“아, 혹시…….”
나는 이제 깨달았다는 듯이 조심스레 물었다.
“의원님도 그랑교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그걸 전혀 몰랐다고?”
그가 반신반의하며 묻자, 나는 기가 찬 것처럼 헛바람을 들이켰다.
“허어, 정말입니까?”
최규현 의원은 수상쩍은 듯이 날 바라봤다.
“그래. 거기 있는 최규성이가 내 친동생이야. 자네가 그걸 모르고 움직였다는 건가?”
“자, 잠깐만요. 그 장로로 있는 최규성을 말씀하시는 게 맞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럴 수가…….”
정말로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이내 그의 표정에서 지금까지 차올랐던 분개심이 사라지고 허탈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최서준이, 자네. 자세한 뒷조사도 안 하고 바로 보도를 때린 거야?”
“워낙 위에서 내려오는 견제가 심해서 신경 쓸 겨를도 없었습니다. 중점적으로 조사한 건 신형주 목사라서, 장로들까지는 제대로 캐지 못했습니다.”
“허허…….”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상체를 소파에 묻었다.
“뒤쪽에 커다란 배후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게 의원님 동생과 관련되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접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의원님!”
최규현 의원은 어이가 없는지 숨을 짧게 내뱉으며 손을 저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일단 앉아 봐.”
그러나 나는 접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제가 책임지고 물러나겠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됐다니까. 빨리 허리 펴고 앉아.”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걸 확인하고 다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최 검사가 나한테 거짓말 할 리는 없고…….”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의원님 앞에서 장난질을 치겠습니까?”
“하긴, 내가 연관되었다는 걸 알고 최 검사가 터뜨렸을 리는 없지.”
연신 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슬쩍 최규현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심쩍은 눈빛이 남아 있었는데, 죽을죄를 지었다며 부장검사직을 내려놓는다는 말을 하니, 최소한의 의심만을 남겨 놓고 나머지는 지워 낸 모양.
아무래도 그를 향해 충직한 태도를 계속해서 고수한 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최규현 의원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내게 물었다.
“그러면 TV로 보도된 게 조사된 내용의 전부야?”
“예.”
태연하게 거짓을 말했다.
“저와 방송사에서 파악한 대부분을 방송으로 낸 겁니다.”
“보도 되지 않은 것 중에서 알고 있는 내용들 전부 말해 봐.”
“우선 중국으로 인신매매 하는 것과…….”
나는 수박 겉핥기만을 한 것처럼 표면적인 내용들을 위주로 말했다.
한참을 들은 최규현 의원은 괜히 걱정했다는 듯이 찌푸렸던 미간의 주름이 서서히 펴졌다.
“정말 에 나온 게 전부네.”
“예. 방송으로 보내려는데 압박이 들어와서 급하게 내보내다 보니, 이후에 추가적으로 조사하기로 정리했었습니다.”
최규현 의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다시 확인할 생각인지 나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쨌든 간에 그랑교 자체는 우리 최서준이가 검사로서 일을 하다가 우연하게 얻어걸린 거라고 봐도 되는 거지?”
“예, 정말입니다. 의원님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제가 어찌 터뜨렸겠습니까. 라인 전체를 흔드는 내용인데…… 제가 알고 터뜨렸다는 건 정말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그래, 최 검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으니까.”
그는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 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공식적인 수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은 거야?”
“예. 지금까지는 첩보를 입수해서 제가 움직인 거고, 이번 방송을 계기로 저희 쪽에서 공식적으로 인지 수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상부로 보고된 건 아니고?”
“예. 특수부 내부적으로만 제가 내정했을 뿐이고, 공식 배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덮어.”
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주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첩보는 듣지 못했고, 아예 사건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모른 척하며 넘어가.”
“그러면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을 텐데요. 분명 다른 부서에서 나설 겁니다.”
“걱정 마. 뒷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최 검사가 훼방만 놓지 않으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그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네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
순간, 최규현 의원은 살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서는 낌새가 보이면 정말로 날 배신한 거라고 알 테니까.”
이번엔 모르고 했으니 한 번은 넘어가지만,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변명도 듣지 않고 처단하겠다는 소리.
또 한 번 그의 뒤통수를 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
그러나 티를 내지 않고 두 손을 모았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다음부턴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선언했습니다. 그랑교에 대한 조사를 위해 특별수사팀이 꾸려졌으며, 각종 특수 범죄 집단을 검거했던 황청용 형사가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정국현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서 빠르고 정확하게 사건에 대해 수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또한, 이번 건에는…….
최규현을 만난 지 이틀 만에 그랑교에 대한 사건은 경찰에서 도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보도가 터져 나왔다.
그 탓에 검찰에서는 자연스레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려고 나서는 이는 없는 상태.
암만 경찰 위에 검찰이 있다고 한들, 경찰청장이 앞에 나서서 기자회견까지 한 마당에 검찰이 나서는 건 대놓고 뺏어 먹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찰청장이 직접 나섰으니 그의 체면은 지켜 주자는 암묵적인 룰.
겉으로만 보면 그랑교를 잡아 처벌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듯이 보이지만, 최규현의 속내는 훤히 들여다보였다.
특별수사팀의 팀장인 황청용 형사는 1번 라인에 속해 있는 인물이고, 정국현 경찰청장 또한 최규현의 측근 인물.
언론으로 그랑교들을 잡아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줘 국민을 안심시키고 여론을 잠재우는 게 주목적.
시간이 흘러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힐 때쯤, 유야무야 사건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려는 생각이겠지.
그랑교에 대해 추가적인 보도가 나오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그런 전철을 밟는 게 정치인들과 연루된 범죄들의 특징이다.
의 PD인 송재훈이 내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2차 보도는 당연히 꿈도 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테고.
일단은 최규현이 추가적으로 나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도록 지금은 몸을 사리는 게 우선이었다.
외줄을 건너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었어도 강풍이 불면 다시 뒤로 물러나 바람이 진정되길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성태현이 당적 변경을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만큼, 괜히 꼬투리를 잡혀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나는 아나운서의 보도가 흘러나오던 TV를 끄고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네, 부장님.
“설하 씨, 장하영 검사한테 지시한 거 전했습니까?”
-예. 지금 막 전달을 마쳤습니다. 옆에 같이 있어요.
“그러면 당장 두 분 같이 부장실로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와 함께 윤설하와 장하영 검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나는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서 있는 둘을 향해 물었다.
“뉴스는 봤죠?”
“예. 아무래도 최규현이 이를 악물은 것 같더라고요.”
“맞습니다. 최규현이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전부 동원했어요. 이럴 때 부딪치면 저희만 손해입니다. 당분간은 사려야 해요.”
나는 둘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랑교에 대해 조사하던 사항들 전부 중지하세요.”
“네?”
윤설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장하영 검사는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요?”
“아니요. 중지하라는 건 겉으로만입니다.”
나는 입꼬리를 씨익 비틀며 말을 덧붙였다.
“은밀하게 조사는 계속해서 진행해야죠.”
“최규현에게 걸리지 않게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최규현은 물론이고 경찰의 눈에도 들어가면 안 됩니다.”
최규현 의원이 눈치채지 못하게 사건을 파악해서 모두 준비해 놓고 지방 선거 시기에 맞춰서 터뜨려야 제대로 한 방 먹여 줄 수 있다.
겉으로는 손을 뗀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사건 수사의 내실을 다지며 한 치의 부족함 없이 파악해 둬야 최규현을 흔들어 나경준을 서울시장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을 터.
몰아치는 강풍이 멈춘 뒤에 쏜살같이 튀어나가 외줄을 건너면 내가 움직인 걸 뒤늦게 알더라도 다시금 바람이 닿기 전에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니까.
“오늘 이후로 사건의 진행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장 검사와 윤설하 수사관 그리고 장 검사의 수사관까지 네 명이 전부입니다. 그 외의 특수부 소속 다른 검사들도 알아선 안 돼요.”
장하영 검사는 눈을 번뜩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두형 부부장도 모르게 진행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릴 테니까.
이번 일이 차기 부부장검사 자리를 향한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오늘 오후에 성태현 의원이 당적 변경을 선언할 참이라, 이제부턴 정말 살얼음판을 걷듯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장하영 검사는 눈을 빛내며 결연하게 대답했다.
“은밀하지만 아주 위대하게 진행하겠습니다.”
“기대해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