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님 출세하신다!-160화 (159/341)

외줄 타기 (4)

술잔을 비운 조현웅 의원의 얼굴엔 미소가 만개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성태현 의원을 챙기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성 의원이 능력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검사님이 전력투구를 하면서 도울 만한 이유까지는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혹시나 오해할까 싶었는지, 그는 손을 들어 말을 덧붙였다.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순수한 궁금증이에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머지않아 저와 동서 지간이 될 사람이거든요.”

“아!”

그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검사님의 처제분과 교제하신다는 건 알았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진지한 관계일 줄은 몰랐습니다. 생각보다 깊은 사이였군요.”

“예. 그렇더라고요.”

남의 연애사이기에 굳이 내가 나서서 왈가불가하지는 않았다.

조현웅 의원은 한참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최규현이 성태현은 몰라도 검사님은 잡고 놔주지 않으려고 할 텐데요.”

나는 차갑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렇다면 붙들고 매달린 그 손목을 잘라 버리고 넘어올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입꼬리를 비틀자, 조현웅은 섬뜩했는지 고개를 움츠렸고 이내 그의 턱살이 접혔다.

“저와 성태현 의원에 대해서는 2번 라인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해 주실 수 있죠?”

“물론입니다. 그게 제 일인데요.”

“그러면 차후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은 겉으로 성태현 의원만 넘어간 것처럼 하고 저는 1번 라인에 남아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 간을 보면서 차차…….”

***

“조심히 가십시오.”

“또 봅시다, 검사님.”

볼이 시뻘게진 조현웅 의원은 흡족한 표정으로 옆에 여자 하나를 낀 채로 차에 올라탔다.

그가 탄 차량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자, 나도 술기운이 훅 올라왔다.

얼마나 마신 건지, 오랜만에 머리가 어질할 정도.

“검사님도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채플린에서 나온 직원들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내 차를 몰고 로비에 나타났다.

“어디로 모실까요?”

“집으로. 내비게이션에 저장되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자동차가 부드럽게 출발하자, 나는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술을 거나하게 마시며 분위기가 좋아진 덕분인지, 조현웅 의원에게 추가적인 약속까지 받아 낼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성태현이 서울시장에 떨어지더라도, 최소한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것으로.

물론, 그러한 상황이 되는 것 자체가 최악의 경우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정도는 열어 둬야만 했으니까.

다만, 그 사실까지 성태현 의원에게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우는 것과 퇴로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전투에 임하는 건 마음가짐부터 차이가 날 테니까.

오후 11시를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아직 잠든 시간은 아닐 터.

성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이 들린 후에야 들려오는 목소리.

-네, 검사님.

목소리에서 또렷함이 전해져 왔다.

살짝 울리기까지 하는 걸 보니, 아직까지 사무실에서 퇴근하지 않은 모양.

“통화 괜찮으십니까?”

-예, 말씀하세요.

“방금 조현웅 의원 만나서 이야기 나눴는데, 2번 라인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검사님께서 이렇게 수고해 주시는데 제가 도와드릴 게 없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제안한 거니까 제 선에서 정리해야죠. 확실하게 서울시장 공천은 약속 받았으니, 이제 의원님은 1번 라인에 꼬투리 잡히지 않고 넘어오는 일만 남았습니다.”

-언제쯤 넘어가는 걸로 보면 될까요?

“1월 중하순에 로 그랑교 사건이 터질 겁니다. 최규현은 그거 막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 그때에 맞춰서 당적 변경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준비 단단히 하도록 하죠.

“좋은 밤 되십시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태현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1번 라인의 수장인 최규현.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그 누구보다도 더 강력하고 매서운 상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주 길고도 치열하면서 처절한 사투가 될 것이다.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게 아니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정점까지 나아가야만 한다.

***

“이런 멍청한 자식이!”

최규현 의원은 책상에 있던 서류들을 옆으로 쓸어 던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지상파에서 그랑교 특집 방송을 해?”

“죄송합니다, 형님.”

그의 동생 최규성은 불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잘 막으라고 했지. 다른 프로그램도 아니고 이면 전 국민이 다 시청하는 거 몰라?”

“저, 저희도 막아 보려고는 했는데, 이게 은밀하게 방송을 준비했던 거라…… 어느 정도 준비된 후에는 찾아가서 윽박을 질러도 효과가 없더라고요.”

최규현 의원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협박까지 했어?”

“아니요. 찾아갔는데 집이 비어 있어서…….”

“어휴.”

그는 짙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너 같은 놈을 동생이라고 믿고 둔 내가 바보지.”

“욕은 얼마든지 먹을 테니 이번 거 좀 막아 주세요. 제 힘으로는 힘듭니다.”

최규현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그의 동생 최규성은 그러한 형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송한다고 PD가 세 명이나 동원됐더라고요. 아무래도 제대로 냄새를 맡고 붙은 것 같아요.”

“PBC 사장한테는 연락해 봤어?”

“아니요. 근데 그 인간이 출신이라서 웬만해서는 잘 안 막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랑교에선 손도 닿지 않고요.”

“그러면 진즉에 나한테 이야기를 했어야 될 거 아니야? 이제 방송 1주일 남기고 예고편까지 때렸는데 이제 와서 무슨…….”

최규현은 질색을 하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형님한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제 선에서 해결하려 했는데…….”

“이게 폐 끼치는 거야.”

그는 쉬지 않고 질타를 뱉으며 PBC 사장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몇 번 들리지 않아 곧장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예, 사장님. 최규현입니다.”

-네, 의원님.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게 아니고 다음 주에 에서 그랑교 특집으로 방송을 한다고 들었거든요.”

-아, 그랬나요?

PBC 사장은 송재훈 PD로부터 직접 보고받았기에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답했다.

-제가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신경 쓰지는 않아서요. 어쨌든 그런데 그 방송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예. 제 친동생이 그쪽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종교 활동인지라, 부정적인 방송이 나가면 영향이 꽤 클 것 같아서요.”

-그거 참 유감입니다.

PBC사장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대체 편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무래도 방송은 나가야 될 것 같은데요.

“그 대체 편성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방송 자리만 빼 주시죠.”

-죄송합니다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순간, 최규현 의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강 사장님, 저와 손잡고 있는 기업에서 PBC에 들어간 광고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협박하려는 태도에 PBC 사장 또한, 상당히 기분이 나빴는지 정색하며 말했다.

-알긴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무료로 자원봉사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시청률 나온 프로그램에 광고가 붙어 있는 건데. 방송 하나둘씩 자르고 막다 보면 광고가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에 존폐 위기가 옵니다. 그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강 사장님.”

최규현은 아주 차갑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사장 자리까지 올라오고 안정화되었으니 이제 등 돌리자는 겁니까?”

물론, 강종민 사장도 최규현 의원을 적대할 생각은 없기에 이쯤에서는 한발 물러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다음 주 방송이면 이미 예고편까지 나와서 막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대신 시간을 조금 조정하도록 하죠. 타 방송사 드라마 시간과 겹치게 1시간 정도 당기면 되겠습니까?

강종민 사장이 몸을 움츠리자, 최규현 의원은 욱하는 감정을 꾹 눌렀다.

여기서 폭발하면 뒤고, 뭐고 없을 테니까.

호흡을 길게 내뱉은 그는 천천히 고민을 마친 뒤 입을 열었다.

“당기지 말고 1시간 뒤로 미뤄 주십시오.”

-그거면 되겠습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차후에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드리죠.”

-알겠습니다. 목요일 오후 11시 50분 방송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예.”

최규현 의원은 안부 인사도 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국무총리직에서 내려오니까 이제 반항한다 이거지?’

절로 이가 빠득 갈렸다.

‘이 인간이 누구 덕분에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이내 그의 분노는 멀뚱하게 서 있는 자신의 동생에게로 표출되었다.

“평소에 잘 좀 하라고 했지!”

최규현 의원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동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억!”

최규성은 다리를 잡으며 쓰러졌고 최규현 의원은 주먹을 꾹 쥔 채로 PBC의 경쟁사인 WBS와 TBN에 전화를 걸었다.

“어, 나 최규현인데…….”

***

“편성이 바뀌어요?”

“예.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창사 60주년 특집 방송을 한다며 1시간 미뤄 달라고 하더군요.”

“갑자기 그렇게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당연히 말이 안 되죠.”

송재훈 PD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도 어이가 없다는 겁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자정이 다 되어서 시작한다는 건데, 새벽이 되면 시청자 수가 급감하는 게 뻔한 거라…….”

그는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WBS와 TBN에서 오후 11시부터 특별 편성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더군요.”

“특별 편성요?”

“예. WBS는 연예계 톱스타의 열애설 특종이고 TBN은 주식 코인 특집이라고 하더군요.”

듣자마자 이건 대놓고 최규현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예계 톱스타의 열애설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한 특종거리이며, 주식 코인은 주식과 가상 화폐를 합친 것으로 2017년의 가상 화폐 파동 이후 가장 큰 화제를 끌고 있는 투자 종목으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

시청자들이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인 특집을 구성한 건 의 시청률을 떨어뜨리려는 생각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 상황이 된 걸 보니, 오히려 차갑게 머리가 식었다.

“차라리 1시간 미뤄진 게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다행이라고요?”

송재훈 PD는 자신이 잘못 들었냐는 듯이 되물었다.

“시청률이 폭망할 가능성이 생겼는데요?”

“이런 상황이라면, 편성이 된 게 다행인 겁니다. 자칫하다가 방송이 되지 않았으면 시청률이고 뭐고, 지금까지 해 온 게 다 물거품 되는 거니까요.”

“아…….”

그는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쩍 벌렸다.

“하긴, 최규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예. 분명히 강종민 사장이 신경 써서 제대로 방송이라도 나갈 수 있게 된 걸 겁니다.”

“하아…….”

송재훈 PD는 짙은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서준 씨 말이 맞는 것 같네요.”

“분명 악조건이긴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닙니다. 게다가 에서도 역대급 소재고요.”

“잘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모았다.

시청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을 터.

부디 화제성만 지켜지기를.

그래야 최규현을 궁지로 몰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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